오전 3시 48분.
아침 해가 뜨기에는 어느 계절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를르슈는 눈을 떴다.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가족들만 알고 있는 번호로 쓰는 휴대폰이라서,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멍한 머리로 발신인을 확인했다. 나나리였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상냥한 아이가, 지금 시간의 브리타니아가 새벽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아마 새벽임에도 전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건 것이겠지. 를르슈는 잠긴 목을 풀면서 아아, 하고 소리를 냈다. 괜히 자고 있던 것을 티내면서 나나리에게 죄책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를르슈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라버니? 주무시고 계셨죠? 죄송해요.’
“아냐, 나나리. 일 때문에 안 자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그게… 스자쿠 씨 일인데요.’
그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고는 반쯤은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이름을 소리내어 듣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어딘가 현실감이 없다.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전화를 하는 나나리 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다. 를르슈는 그녀가 말할 수 있게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스자쿠와 관련된 급한 전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아프다던가, 다쳤다던가, 혹은 브리타니아에 온다거나, 그런….
‘아내 분이 돌아가셨대요.’
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를르슈는 한숨을 삼켰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나나리는 그런 를르슈의 반응에 덩달아 침묵했다.
를르슈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스자쿠와는 이제 연락을 안 한지 오 년이 넘게 흘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서로를 끊어낸 것은 아니다. 스자쿠는 아직도 를르슈의 번호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를르슈는 그 번호를 바꾸지 않은 채로, 일본에서 브리타니아로 돌아와서도 꼬박꼬박 통신비를 내가면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연락은 오긴 했었으니까. 서로의 생일, 크리스마스, 새해, 이런 날들을 축하하면서.
‘그것도 꽤 됐나봐요. 저도 오늘 미레이 씨가 알려주셔서…. 가족들끼리만 장례식을 치렀대요.’
나나리는 우울에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무언가의 위로를 바라고서 를르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나 친했는데, 가까웠는데, 어째서 우리한테까지 숨겼을까… 같은 말들을 하고 싶지만, 워낙에 다정한 그녀는 그런 말들을 함부로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미레이 씨도 나중에 알았다고 하셔서, 전화해도 받지도 않는다고 그러고. 저도 걱정이 되어서 연락했는데, 제 전화도 역시…….’
를르슈에게 SOS를 보내는 나나리. 를르슈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가 하는 말들의 다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나리는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를르슈의 차례였다.
스자쿠의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스자루루 이야기.
스자쿠와 를르슈는 10년 전에 서로 좋아했지만, '남자끼리'라는 이유로 사귀지 않고 친구로 남기로 함. 그 이후로 스자쿠는 결혼을 하고 를르슈는 브리타니아로 돌아감. 스자쿠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로써'의 교제는 그럭저럭 이어왔다가... 어느날 스자쿠의 아내가 사고로 죽고 만다.
나나리가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한 후에,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연락을 한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을 찾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일본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만난 스자쿠와 를르슈는...
으로 시작해서 서로를 잘 보듬고 끝나는 이야기였음 좋겠음 ^^~~ (아무래도 여기까지 말한 이상 쓰지 않을 것 같음)
사실 충격 받을 것도 없다. 사람이란 때가 되면 하게 되어있다. 유치원을 다니다보면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면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서 별 일이 없는 이상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이렇듯 시간이 흐르는 것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든 일들은, 조금의 늦고 빠름이 있을 뿐이지 다 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 아무리 늦된 를르슈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사람을 사귀고 키스를 하고 섹스 정도는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를르슈 본인이 워낙에 연애와 성에 대해서는 담백하다 못해 고지식하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를르슈가 평생을 홀로 정절을 지키며 살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를르슈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워낙에 뛰어난 외모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를르슈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줄리어스, 바로 자신이다.
그래서 더 충격을 받은 걸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줄리어스는 침대 위에 드러누운 채로, 천장의 벽지 무늬를 하나 둘씩 세어보았다.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마다 하는 그 습관은, 오늘따라 목표 달성과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눈을 감으면 를르슈의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 를르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너무 좋아서, 그대로 녹아버릴 것 같은 부드러운 미소로, 타인에게 기대며 온몸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를르슈는, 이제껏 보아왔던 를르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 를르슈와 마주하는 순간의 거리감에 줄리어스는 그만 자리를 박차고 뒤로 돌아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벽지 무늬나 세다가 눈을 질끈 감는 꼴이다.
스스로를 꾸짖거나, 혹은 자기합리화를 통해 이해하려고 해도, 계속 벽에 튕겨나오는 공처럼 줄리어스의 사고는 일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줄리어스는 이제껏 시작했던 모든 전제의 첫문장을 바꾸기로 했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줄리어스는 순식간에 술렁거렸던 마음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차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애나 느낄 법한 당황스러움이 가시고, 마음 속에는 알게 모르게 뜨거워지는 배신감 밖에 남지 않았다.
를르슈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줄리어스가 그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승의 날 기념으로 쓰려고 했던 것.
쿠루루기 선생님과 사귀고 있는 쌍둥이 형의 비밀을 알고 나서부터 속상해져버리는 줄리어스의 이야기... 기어제네에서 줄리어스 뽑고 나니까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음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뭐든지 배우는 게 빠르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듣는 말이라면 칭찬이겠지만, 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스자쿠는 어딘가 아쉬운 기색이었다. 스자쿠는 빨리 배우는 내가 싫은 건가, 하고 눈치를 보면 또 그것을 바로 알아차리고선 스자쿠는 웃어주었다.
중딩 를르슈가 대학생 스자쿠와 사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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