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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DOZI 2022.11.15 03:46 read.155 /

#쥬리씨투

색욕님 리퀘스트. 

 

 

 

 

 

 

자신의 첫 경험을 남자와 했다는 것, 그것도 바텀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줄리어스는 아마도 자신이 평생 동정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꾼 것은 4초 뒤였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한쪽 눈을 가리고 있음에도 잘생긴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았고, 세상 모든 여자들의 눈이 외눈박이가 되더라도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외눈박이가 뭐야, 눈이 멀어도 줄리어스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들은 줄리어스를 숭배할 것이 틀림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동정을 버리겠지—라는 생각으로 줄리어스는 조금 안일하게 살고 있었다. 동정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는 성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남자들이 줄기차게 해오는 생각이지만, 줄리어스는 처녀를 먼저 아낌없이 버렸기에, 동정 만큼은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를르슈라던가! 

 

“근친상간이잖아, 그거.”

“근친상간이라고 해도 좋아, 오히려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잖아.”

“를르슈의 의지는?”

“그 지점에서 아쉬운 거야. 를르슈에게는 망할 쿠루루기 스자쿠가 있으니까.”

 

줄리어스가 말한대로, 그의 쌍둥이 형 를르슈에게는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소중한 연인이 있었다. 그 둘은 떨어지고는 못사는 닭살 커플로… 아무튼 를르슈가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있으니 줄리어스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를르슈와 근친상간 섹스를 할 수 있다면 원이 없을 정도지만, 줄리어스는 가정의 파탄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근친상간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님 를르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야?”

“…그러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내가 박고 싶은 사람의 기준 같은 건.”

“말은 똑바로 해라…. 동정을 바칠 상대라고 말하는 게 더 로맨틱하잖아?”

“로맨틱? 글쎄.”

 

줄리어스는 C.C.의 지적에 와인을 소리 없이 들이켰다. 

뒤늦게 설명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술자리 중이었다.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온 마리안느가 세계 각지에서 모아온 유명한 술들을 털어마시는 자리였고, 정작 자리를 마련한 마리안느는 마리안느를 사랑하다 못해 마리안느가 없으면 죽을 거 같다는 108명의 애첩이 딸려 있는 그 남자 샤를에게로 달려갔다.

‘사랑이란 뭘까, 나는 모르겠다.’ 라고 말한 C.C.의 말이 시작이었다. 사랑에 대해서는 줄리어스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사랑 없는 섹스가 익숙했으며, 사랑이 뒤섞인 섹스는 역겹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구속해, 나는 그냥 섹스가 좋아.’ 라고 말하는 줄리어스를 애송이 보듯 한 C.C.는 줄리어스에게 아직 어리다면서 비웃었다. 

기꺼이 할 수 있는 섹스가 있다면, 그게 조금 더 사랑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하면서…, 줄리어스는 나름의 철학을 펼치다가 언젠가 동정을 바칠 상대로써 를르슈를 언급한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또 C.C.가 날카롭게 비웃었고.

 

“우선 예뻤으면 좋겠어. 응, 잘생긴 건 지겹고, 예쁜 게 좋아. 나 만큼.”

“본인이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라… 밥맛 떨어져.”

“술맛은 돌게 하잖아?”

“말 장난하는 걸 봐서 혀가 길겠어, 줄리어스.”

“볼래? 나 키스도 잘해.”

 

줄리어스는 붉게 익은 혀를 날름거렸다. C.C.는 싫은 표정을 짓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상처 받을 줄리어스가 아니었다. 그는 C.C.의 빈 잔에 와인을 느릿한 손짓으로 따랐다. 그의 깔끔한 매너는 를르슈와 똑같다고, C.C.가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C.C., 지금 무슨 생각 했는지 맞춰볼까?”

“…맞추지 마.”

“를르슈 생각 했지?”

“……맞추지 말라고 한 말 못 들었어?”

“정확히 맞춰볼까?”

“너 한 번만 혀 놀리면 진짜 죽는다.”

 

줄리어스는 킬킬대면서 다음 술병을 꺼냈다. 오프너로 병을 열고, 자기 몫의 잔에 다시 붓고, 그 단정한 손놀림은 를르슈와 비슷하고… C.C.는 멈추지 않는 사고를 다시 한 번 탓하며 혀를 찼다.

 

“지금 우리 엄마 같다고 생각했지?”

“죽는다고 그랬어, 너.”

“C.C.는 우리 엄마가 슬퍼할 짓은 절대 안하잖아.”

“그거 믿고 제발 아무 말이나 하지 마. 난 진짜 봐주고 있으니까.”

 

C.C.는 줄리어스와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그가 처음으로 처녀를 버리고 온 날에, C.C.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줄리어스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그 축하를 받으면서, 줄리어스는 C.C.에게, 자신의 ‘루’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별로였고, 이 남자는 좋았어, 하지만 나는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어. 줄리어스의 밤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C.C.는 미묘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받아주었다. 그것은 마리안느도, 를르슈도 해줄 수 없는 것이었고, 줄리어스는 그렇게 C.C.를 ‘특별’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C.C.는 엄마 같기도 하면서… 루 같기도 하고… 또 모르겠어.”

“루? 너 아직도 를르슈를 그렇게 부르는 거야?”

“본인 앞에서는 못하지. 정말 싫어하거든.”

“어렸을 때는 서로 루니, 쥬리니, 그렇게 불러댔으면서.”

“어렸을 때의 일이지. 정말 슬프다. 이제 루는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있으니까… 나도 루 말고 다른 남자랑 자버렸고.”

“슬픈 목소리가 아니잖아. 내용도 발랑 까져서.”

 

C.C.는 줄리어스의 이야기를 흘려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이 꼭 마리안느 곁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줄리어스는 늘 남자를 갈아치우는 일상을 살고 있고,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꼭 마리안느를 보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슬퍼하는 모습은 마리안느와 겹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C.C.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C.C.의 술수라면, 그리고 줄리어스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를르슈와의 근친상간 자리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아니면 나나리라도, 혹은 로로도 상관 없다면. 하지만 줄리어스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줄리어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고 싶었다. 

마치 마리안느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던 것을 갚아주듯이.

 

“나는 어때?”

“너? C.C.?”

“예쁘잖아.”

“너는… 뭐랄까, 개념으로 치자면 엄마와 루 사이야. 애매해. 서지 않을 걸?”

“요즘은 또 엄마 같은 여자가 대세라던데.”

“난 또 대세와 다르게 스테디한 사람이라.”

“빗치가 언제부터 스테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네 동정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해.”

“내 동정은 너한테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나는 정말, 정말… 정말…….”

 

줄리어스는 새로 딴 술의 라벨을 살폈다. 이거 꽤 센데. 졸리다. 줄리어스의 혓바닥은 느릿하게 늘어지기 시작했고, 그는 곧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줄리어스의 잔을 들어서 그 속의 맛을 본 C.C.는 혀를 찼다. C.C.의 혀에도 알싸한 알코올이 독하게 남아있는데, 그녀보다 술에 약한 줄리어스가 이걸 버텨내는 것은 무리였다. 줄리어스를 그대로 침대로 부축해서 끌고 간 C.C.는 그를 침대 위로 내동댕이쳤다. 

추워어…. 줄리어스가 이불을 찾으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C.C.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머리, 술 기운에 붉어진 얼굴, 어딘가 응석을 부리는 듯한 모습. 

남자든 여자든, 그 미색에 홀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여태껏 계속 놓쳐왔잖아, 그렇다면 한 번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 C.C.는 그런 생각을 하며 줄리어스의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하얀 이마가 드러나면서, 단단히 묶인 안대의 끈이 보였다. 그것에 살며시 손을 걸면 줄리어스가 고개를 돌렸다.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반항이었다. 

아직 어느 정도의 의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C.C.는 ‘한 번 정도는’ 이라는 마음으로 그의 위에 올라탔다. 줄리어스의 눈은 어렴풋하게, 희미한 시선으로 C.C.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C.C.는 줄리어스를 내려다보면서 그를 안타까워 하기로 결심했다. 

 

 

줄리어스는 그렇게 동정을 잃었다. 

기억도 잃은 채로, 동정까지 잃은 것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C.C.의 멀어져가는 신음소리와, 자신의 헐떡거리는 숨소리, 그리고 그녀를 밀어낸 손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체온, 아래에서 느껴지는 조이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섹스 도중에 완벽하게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C.C.는 눈을 뜬 줄리어스를 보면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줄리어스는 눈을 가리는 안대를 확인하고, 거울을 보고, 자기 꼴을 살핀 후, 입을 가리고…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했다. 먹었던 것을 다 게워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C.C.는 땀에 젖은 머리를 넘기면서 한숨을 쉬었다.

 

—애송이 자식, 그러니까 어른 놀리면 안 된다는 걸 이런 교훈으로 알려주는 거야.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C.C.는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면서 화장실에서 펑펑 울고 있는 줄리어스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내 동정 내놔—!!!!!!!!!”

 

아다남 따먹은 여자 치고는 쿨하지 못한 감정이 용솟음 쳤지만, C.C.는 그런 줄리어스를 화장실에서 끌어내고서 샤워를 했다. 어차피 애를 가지지도 못하는 몸, 임신 위험도 없으니 콘돔도 안 끼고 대줬고, 아다한테는 딱 아니었냐고. C.C.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줄리어스의 우는 소리가 다 들리는 밖을 모른척했다. 샤워를 마치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줄리어스는 무릎 사이로 얼굴을 박은 채로 울고 있었다. (그것도 알몸으로)

 

“이거 성폭행이야, 너 신고할 거야, 나를 술 먹이고… 어?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옷이나 입고 말해.”

 

C.C.가 내던지는 옷가지를 주워입은 줄리어스는 이번엔 C.C.가 던지는 곽티슈를 얼굴로 받아내며 훌쩍거렸다. 팍팍 뽑는 손길은 거칠었고, 코를 풀고 눈물을 닦는 것도 거칠었다. 그러다가 예쁜 얼굴 흉질라, 하고 C.C.가 놀리듯 말하면 줄리어스는 ‘장난 치지 마!’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본인은 지금의 C.C.가 하는 방식대로 아다남을 따먹어 본 적이 있으면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발광하는 걸까…. C.C.는 남은 술을 잔 속으로 붓기 시작했다. 사실 C.C.도 제정신으로 있기가 어려웠다. 

 

줄리어스랑 잤다고?

내가?

뭐 때문에?

 

“루한테 줄 생각이었다구!! 아니면 루가 나중에 쿠루루기 스자쿠랑 헤어져서, 그 이별의 여파로 급하게 만난 여자랑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 여자랑 불륜하면서 바치는 플랜도 있었고!! 너한테 줄 동정이 아니었단 말이야! 너 같은 게, 너 따위가, 내, 내, 내, 내… 내 동정을—!!”

“지리멸렬한 상상이군. 형수랑 섹스하는 게 네 꿈이었어?”

“너 같은 마녀랑 섹스하는 것보단 지리멸렬한 첫 경험이 훨씬 나아! 그리고 형수 판타지가 뭐 어때서!”

“야, 너도 세웠고, 즐겼고, 뭐… 싸지는 못했지만 박는 동안 행복해보이던데.”

“내가 박았어? 내가 세우고 싶어서 세웠어? 이 마녀, 마녀, 마녀!”

“계속 욕해봐라, 좀 더 창의적인 걸로 욕해봐.”

“닳고 닳았으면서… 어떻게 나같이 순수한!”

“줄리어스, 네가 순수하다는 건 좀 어폐가 있지. 방금 전까지 형수 판타지 어쩌고 하는 게 어디가 순수해? 그렇게 따지자면 엄마 친구랑 섹스하는 것도 세상에선 제법 수요가 있는데, 그쪽의 판타지가 충족된 감상을 말해보는 건 어때?”

“더러워!”

 

줄리어스는 자기 몸을 이불로 감싼 채로 훌쩍거렸다. 기분 더러워, 역겨워, 또 토할 거 같아…. 줄리어스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C.C.는 오랜만에 담배를 찾고 싶어졌다. 를르슈가 담배를 피우는 C.C.를 흉내냈던 5살 이후로 끊었던 담배를.

줄리어스는 성병 검사를 하러 갈 것이고, 그 검사비용을 대줄 것을 요구했다. 나 성병 없어, 너나 에이즈 조심해. C.C.가 그렇게 말하자 줄리어스는 이를 악물고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줄리어스의 신사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C.C.가 그렇게 속을 긁어대도 그는 마녀라고 욕을 할 지언정 손찌검은 하지 않았다.

훌쩍훌쩍 울던 줄리어스는 해가 뜨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고, C.C.는 남은 술병을 다 털어마실 기세로 들이부었다. 그날밤 스자쿠와의 뜨거운 밤을 위해 외박을 했던 를르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집으로 돌아왔고, C.C.와 줄리어스가 잤다는 이야기를 마리안느에게 들음으로써 졸도하고 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