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 람페르지는 자신의 연애가 꽤나 비극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연애’였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를르슈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 이유로, 를르슈의 연애 상대는 유부남이었다. 를르슈는 유부남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남자였다. 그러면서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남자라면? 그것도 멀쩡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유부남? 정말 더럽고 역겹기 짝이 없는 삼류 드라마 속의 설정이라고 해도 과하다고 싶을 정도인데, 슬프게도 이것은 를르슈의 현실이었다.
‘나는 유부남과 사랑을 하고 있다.’
카페에 앉아있던 를르슈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넘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나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관계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흘러들어오는 기분 나쁨이 역력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지만, 를르슈는 자신의 은근한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와의 관계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싶어지는 것은, 그 불륜을 하는 무리 특유의 천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신이 그 천박한 짓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에 를르슈는 순수하게 놀랐다. 그리고 슬퍼했다. 사랑이라는 것이, 를르슈 람페르지라는 지성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었던 것이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내연남 를르슈를 불륜관계로 두고 있는 유부남, 그러니까… 를르슈의 연애 상대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쿠루루기 스자쿠, 32살, 를르슈보다 한 살 어린 25살의 아내가 있으며, 그리고 때가 되면 물려받을 가업이 있는 남자였다. 를르슈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스자쿠는, 를르슈가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는 KMF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어 직접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였다. 표면적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은 KMF 프로젝트에 대한 미팅이라는 이유로, 스자쿠의 비서가 일정을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자쿠와 를르슈는 비서의 수첩에 적힌 ‘미팅’이라는 시간동안 호텔에서 만나서 섹스를 한다.
“아뇨, 금방 오셨네요.”
“앞에서 사고가 났더라고. 그래서 차에서 내려서 뛰어왔지. 시간이 별로 없잖아.”
“…뭐, 그렇게 급하게 오지 않아도 되는데.”
“를르슈의 성과가 기대되니까 어쩔 수 없어.”
를르슈는 스자쿠가 ‘쿠루루기’ 이름으로 1년 내내 빌려놓는 스위트 룸으로 향한다.
처음 이 방에 들어갔던 때는 무슨 이유였더라? 아, 사업 기밀은 아무데서나 떠드는 게 아니야, 라는 충고를 받고 들어갔다. 그리고 스자쿠가 식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룸서비스를 받고, 술을 마시고, 그리고……. 를르슈와 스자쿠는 이 방에 처음 들어오는 날에 섹스를 했다.
괜히 그것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지면, 스자쿠는 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를르슈를 빤히 쳐다보았다. 원래 나이보다 더 어리게 보이게 하는 그 커다란 눈동자에 비치는 제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꼴이었다. 를르슈는 화끈거리는 뺨을 손으로 가렸다.
방으로 들어가는 걸음걸이는 경쾌했다. 스자쿠는 퍽 여유로워보였다. 그 일주일 간을 못 견딘 건 를르슈 뿐인 것처럼. 그러나 그는 방문을 걸어잠그는 순간부터 를르슈의 입술을 물어뜯다시피 키스를 퍼부었다.
“자, 잠깐… 너무 빨라요.”
“존댓말 하지 마. 우리 둘 뿐인데.”
“빨라, 잠깐, 옷, 단추, 단추를 풀어야지…!”
“새로 사줄게.”
“싫어!”
옷을 찢으려고 하는 스자쿠를 겨우 말리고서 셔츠를 구겨서 던져버렸다. 를르슈의 다 벗은 상의를 본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면서 를르슈에게 말했다.
“나 만날 땐 셔츠 입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내 마음이다.”
“를르슈, 귀여운 소리 하지 마.”
스자쿠는 를르슈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 나머지 옷을 침대에서 벗기기 시작했다. 다리 라인이 드러나는 스키니 진을, 스자쿠가 선물한 벨트를, 그리고 그가 은근히 흥분하는 검은색 속옷을, 다 벗기고 나면 를르슈는 완전히 나체로 그의 아래에 누워있게 되었다.
쏟아지는 시선이 어딘가 부끄러워서, 를르슈는 베개로 고개를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안 씻어도 돼?”
“를르슈는 씻고 왔잖아? 벌써 좋은 향기도 나고.”
“…스자쿠는?”
“나 냄새 나? 씻고 올까?”
이상하다, 향수도 뿌렸는데. 스자쿠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로 그렇게 말을 했다. 를르슈는 그에게서 희미하게 나는 향수의 향기를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씻으면서 해도 좋지만, 오늘은 있는 그대로의 스자쿠를 받고 싶었다. 를르슈의 허락에 스자쿠는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었다.
“조금 있다 씻으면서 또 하면 되잖아, 그렇지?”
“으응, 응… 스자쿠.”
“응?”
“뒤, 풀어서… 얼른 넣어.”
스자쿠는 를르슈의 보채는 말에 소리 없이 웃었다. 얼른 넣고, 를르슈가 좋아하는 곳에 박아줘? 스자쿠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랑에 빠진 멍청이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말을 똑같이 따라하며 대답했다. 얼른 넣어… 내가 좋아하는 곳에 박아줘. 를르슈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수치심으로 물드는 뺨을 가리면서 스자쿠의 목에 팔을 걸었다. 스자쿠의 손이 허벅지 사이를 파고 들고, 윤활제로 적신 손끝이 구멍을 벌려가며 넓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않았다. 하아, 으, 으아아…! 흡, 으응, 읏! 잔뜩 흥분한 스자쿠의 것이 안으로 들어와서, 정말 를르슈가 좋아하는 곳에 박히는 순간에는 한 톤 더 높은 신음이 호텔 방을 가득 채웠다. 스자쿠의 헐떡거리는 숨소리, 그가 사정을 참는 신음, 미간을 찌푸리며 거친 남자의 얼굴을 하는 것까지 모조리 다 느낀 를르슈는 만족한 듯이 사정을 했다. 그의 사정에 이어 스자쿠가 콘돔 너머로 사정하는 기미도 느꼈다.
“하, 너무 좋아, 를르슈….”
그는 여운에 젖은 를르슈의 눈가에 입을 맞추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를르슈는 그때만큼은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그런 를르슈를 품으며, 스자쿠는 다 쓴 콘돔을 묶고 2회전까지 연달아 하더니, 를르슈를 끌어안고서 욕실까지 가서 몇 차례 섹스를 했다.
두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은 3시간 30분, 섹스와 정담은 늘 해도 해도 모자랐다.
섹스와 샤워가 끝난 후, 를르슈는 한숨 자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스스로 설정해둔 알람 타이머가 울리는 것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스자쿠는 그 타이머 소리에 속상한듯이, 품에 안고 있던 를르슈가 빠져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이제 가야죠.”
“아직 시간 있는데. 존댓말 하지 말고.”
“…그럴 시간 없어, 스자쿠. 가야 돼. 사모님이 기다리시잖아.”
를르슈는 냉정하게 현실을 들이밀었다. 스자쿠는 단호한 거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벗어 던졌던 옷을 다시 차려입고, 스자쿠와 를르슈는 진득하게 혀를 엮었다. 스자쿠가 ‘한 번 더 하고 싶어’라고 말했지만,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자쿠가 먼저 나가고, 를르슈가 다음 번 엘리베이터로 나가는 것이 이 관계의 끝이었다. 스자쿠에게 먼저 나가라고 눈짓하자, 스자쿠는 나가기는커녕 를르슈의 왼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그린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의 링에 를르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뭐냐고, 그것을 물으면 스자쿠는 자신의 왼손을 흔들어보였다. 를르슈와 똑같은 디자인에, 퍼플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를르슈, 인기 많으니까 내 꺼라는 표시.”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리고 곤란해요.”
“괜찮아, 나도 여기 올 때만 낄 거고… 를르슈도 원할 때만 하면 돼.”
“그래도.”
“내가 하고 싶어. 안 될까?”
를르슈는 스자쿠의 애원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를르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가 스자쿠의 것이라는 표시를 받아드는 것을 보면서, 스자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켓과 코트를 걸쳐입은 스자쿠는 문앞에 섰다. 를르슈는 그로부터 두세 걸음 멀어진 거리에서 그를 배웅했다. 더 가까이 있다가는 그를 붙잡을 것만 같았다. 그것을 안 스자쿠는 씁쓸한 표정으로 를르슈에게 손을 흔들고 문 밖으로 나섰다. 스자쿠가 나가는 소리에 를르슈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었다.
어차피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관계이다. 불륜, 내연, 이런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는 거짓된 사랑인데, 왜 아직까지도…. 를르슈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텅 비어버린 호텔 방에 혼자 남은 제 자신을 돌아보았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그 반짝임 마저도 헛되게 느껴졌다. 한숨 고르고 나면 를르슈도 코트를 입었다. 반지를 거칠게 빼고서, 코트 안쪽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자신이 그의 것이라는 표시는 어디에도 남겨선 안 된다. 이성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감정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내 연애는 비극이다.
얼마 뒤, KMF 프로젝트의 시연 발표회가 있고 나서, 그 성공을 축하하고자 스자쿠는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몇번이고 말했지만 스자쿠는 ‘내 를르슈가 이렇게 잘했다고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라면서 또 다시 애원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맞춰준 수트를 입고서, 그 수트 자켓 안주머니에는 그가 준 반지를 넣은 채로 파티에 참석했다.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만약 이 반지를 들키면…? 스자쿠가 곤란해질 것이고, 를르슈 또한 곤란을 넘어서 파멸에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이서 파멸을 맞이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파티에 나타난 쿠루루기 스자쿠 부부의 모습에 를르슈는 그 파멸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손을 잡고 나타난 부인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꽤나 익숙했다. 를르슈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샴페인을 들이켰다. 주머니 안쪽의 그린 다이아몬드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의 것이라는 표시.
저것은 그의 것이라는 표시이다.
그래, 여기서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 뿐이다. 그렇다면 를르슈가 가지고 있는 그 반지는, 어떤 의미인가? 를르슈는 자신이 서있는 곳을 떠올렸다.
축하 파티, 무엇을 위한? 쿠루루기 스자쿠가 를르슈 람페르지에게 투자한 성과를 축하하는…. 그렇다. 이 자리는 스자쿠가 를르슈를 위해 만든 자리였지만, 그 속은 완벽한 투자의 계산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를르슈는 투자라는 말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단어가 있었다.
화대.
저것은 표시이고, 이것은 화대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다뤄지는 가치와 방식이 다르며, 관계성에 따라 크게 의미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스자쿠 부인의 반지는 스자쿠의 것이라는 표식이며, 를르슈의 반지는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준 화대이다. 를르슈가 KMF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자쿠에게 받았던 돈과 같은 것이다.
화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몸을 팔고, 마음도 줘버리고.
그것을 깨닫고 나면, 를르슈는 그 파티 회장에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인파를 거스르고, 아무 곳이나 향해 내달리면서, 를르슈는 건물 밖으로, 거리 밖으로, 그리고 으슥한 골목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음침하고 추운 그곳에서 하얗게 얼은 숨을 내쉬면서, 를르슈는 주머니 속의 반지를 꺼냈다. 이런 곳에서 내버리면 끝난다.
스자쿠가 자신에게 준… 화대… 아니, 스자쿠의 것이라는…!
하지만 를르슈는 한참이나 그 반지를 쥐고 있는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추위 속에서 를르슈는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했다. 그저 자신의 연애는 비극이며, 이 뒷골목에서 맞이하는 끝이 너무 서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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