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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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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gerous Darling 完

DOZI 2023.04.11 12:25 read.370 /

키스를 한참이나 하고 나서, 얼굴이 새빨개진 두 사람은 손을 잡고서 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를르슈에게 정리된 도시락통을 건네준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제대로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가벼워진 도시락통을 받은 를르슈는 화끈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집에서 봐. 스자쿠의 말은 아쉬움이 듬뿍 묻어나서, 그러면서도 달콤해서 를르슈는 응, 하고 대답했다. 헐떡거리면서 걸어왔던 길들을 무슨 정신으로 내려가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스자쿠는 왜 키스를 했을까? 나는 왜 눈을 감았지?

 

그날 저녁에도 스자쿠와 를르슈는 키스를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키스를 계속했다.

키스는 스자쿠가 동의를 구하거나, 를르슈가 눈을 감을 때면 입술끼리 닿을 때면 할 수 있었다. 서로 실컷 이야기를 하던 중이나, 아니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손을 잡아올 때라던가. 처음 키스를 할 때만큼의 긴장감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그러면서도 설렘은 더해갔다.

를르슈는 자신이 위험에 처해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커녕 하루 종일 쿠루루기 스자쿠의 입술과 맞닿을 타이밍만 재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반성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사랑에 빠진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으니까. 를르슈는 나나리를 떠올렸다. 슈나이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를르슈는 스자쿠를 보기 좋게 등쳐먹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스자쿠와 두 번 다시 닿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그에게 미움을 살 것이다. 이제껏 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샀으면서 이제 와서 한 사람의 악감정을 등에 업는 것을 무서워하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를르슈를 그렇게 만드는 유치찬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스자쿠의 딸기를 키우는 하우스까지 또 헉헉거리면서 올라온 를르슈는 손에 든 도시락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스자쿠가 맛있다고 했던 새우튀김까지 착실하게 준비해온 자신은 말로 전하지만 않았지,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우스에 가까워질수록, 평소라면 하우스 안에서 열심히 작업 중이던 스자쿠가 밖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크게 들리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듣는 스자쿠의 화난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했다.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저도 알고 있다고요! 를르슈가 아버지 때문에 온 거 정도는!”

 

못 들은 척 넘어가기에는 엄청난 내용이었다. 를르슈는 발걸음을 늦추면서 숨소리를 죽였다. 스자쿠는 쿠루루기 겐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알아서 해요. 네, 제 인생 망쳐도 제가 망가지는 거니까 아버지가 신경쓰실 거 없어요. 죽어도 저 혼자 죽을 거라고요.”

 

스자쿠는 휴대폰을 쥔 채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는 숨을 고르고서 다시 한 번 새겨넣듯이 말했다.

 

“그렇게 제가 미웠으면 그때 죽게 내버려뒀어야죠.”

 

죽게 내버려두다니, 누구를? 스자쿠를?

를르슈는 귀를 의심했다. 스자쿠의 휴대폰은 그 말에 시끄러웠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바로 조용해졌다. 그 반응에 스자쿠는 더는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전화를 끊어버렸다. 격분했던 것과 다르게 스자쿠는 눈을 내리깐 채로,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런 스자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의문이 자꾸 생겨났다. 그걸 물어보고 싶어지고, 알고 싶어지고… 스자쿠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를르슈는 깨달았다.

그것은 자기 역할이 아니었다. 눈물이 나도록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를르슈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를르슈가 해야 하는 일은 쿠루루기 스자쿠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 쿠루루기 겐부에게서 아쉬운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를르슈는 마음을 다잡으며 스자쿠처럼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태연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스자쿠, 거기서 뭐해?”

“아, 를르슈!”

“도시락 싸왔어. 점심 먹을 거지?”

“도시락? 먹을래!”

 

스자쿠 역시 방금 전의 전화는 없었던 사람처럼 굴었다. 해맑게 웃으면서 를르슈의 묵직한 도시락을 받아든 스자쿠는 오늘의 메뉴를 물어보았다. 스자쿠가 좋아하는 것만 잔뜩 싸온 를르슈의 대답에 또 활기차게 ‘맛있겠다!’ 같은 소리를 했다.

두 사람은 간이테이블에 도시락을 두고서 점심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는 를르슈와 다르게 스자쿠는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를 의심하진 않았다. 걱정이나 염려조차도 하지 않은 채로, 를르슈가 싸온 도시락을 말끔하게 비웠을 뿐이었다.

 

“를르슈, 굳이 무리해서 여기까지 안 와도 돼. 내가 집에 가서 점심 먹어도 되니까.”

 

스자쿠는 대뜸 그런 소리를 했다.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를르슈는 어딘가 가슴 한 구석이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에 전화통화를 엿들은 것을 들킨걸까? 를르슈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잡아오며 말했다.

 

“여기, 햇볕에 탔어. 알아? 따갑지?”

“…그렇게 아프진 않아.”

“선크림 같은 거 없지?”

“아, 챙기는 걸 잊었어.”

“그럼 다음에 장 보러 갈 때 사러 갈까.”

 

자연스럽게 ‘다음’을 약속하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를르슈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잡아온 스자쿠의 손을 보았다. 장갑을 끼고 일한다고 하더라도, 거칠고 딱딱한 손끝이 갈라져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딱 한 번 정도는 ‘다음’이 있어도 좋잖아.’

 

를르슈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말했다.

 

“핸드크림도 사자.”

“핸드크림?”

“네 손, 너무 텄어. 안 아파?”

“음…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아, 거칠어서 싫었어?”

“싫다기보다는, 아플 거 같아서.”

“괜찮아.”

 

‘다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니, 를르슈는 스자쿠와 다시 평소처럼 대화할 수 있었다. 시덥잖은 대화, 산들산들 부는 바람,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으면, 를르슈는 이대로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그래서는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도시락통을 든 를르슈가 다시 집으로 가기 전에, 스자쿠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아닌 뺨에 닿는 키스였다. ‘왜 이쪽에?’ 라는 얼굴로 쳐다보면, 스자쿠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뺨에 닿는 베이비 키스도 좋았다. 를르슈도 스자쿠의 뺨에 키스를 했다.

 

* * *

 

스자쿠를 떠나야할 날이 와야하는데, 를르슈는 그것을 한정 없이 미루고 있었다.

그 사이에 를르슈는 스자쿠가 사준 선크림을 바르면서 점심 도시락을 들고 다녔고, 스자쿠는 를르슈가 사준 핸드크림을 낮밤으로 바르면서 일을 했다. 서로 나눈 선물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그것들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를르슈는 초조함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다음’이란 없었다. 스자쿠에게 함께 있자고 약속할 수 있는 내일은 없었다. 

 

‘너 답지 않게 꽤 늦는구나, 를르슈.’

“알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렴. 나는 늘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거의 다 왔으니까 괜한 걱정은 안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나나리가 많이 외로워하고 있어.’

 

나나리. 를르슈는 그 이름을 떠올릴 때면 죄책감에 시달렸다. 슈나이젤에게 인질로 잡힌 여동생을 뒷전으로 하고, 사랑놀음에 눈이 멀어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치솟았다.

를르슈는 슈나이젤과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되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자쿠를 좋아하는 자신과, 아마도 스자쿠 또한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진실 말고는, 이루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슈나이젤이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를르슈가 세 달 가까이 진척 없이 시골에 박혀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실패했다는 것은 무섭지 않다. 슈나이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감흥도 없었다.

다만 무서운 것은 스자쿠였다.

 

“…이제 못 보겠지.”

 

미움을 받을 것이고, 증오를 살 것이며, 그렇게 영원히 헤어지게 되겠지. 마음이 더 커지고,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를르슈는 이제 정리해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를르슈는 도시락을 들고 가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스자쿠는 손을 흔들면서 를르슈를 반기고 있었다. 도시락을 간이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를르슈는 말했다.

 

“오늘은 너 혼자 먹어.”

“를르슈는?”

“도시락 싸면서, 망친 게 많았더니… 그거 다 처리하느라 배불러.”

“뭐야, 그게. 그냥 같이 먹자.”

“네가 먹을 양만 준비했어.”

 

를르슈의 어딘가 단호한 말에 스자쿠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를르슈는 뭐하고 있을래? 를르슈는 비닐하우스를 가리켰다. 딸기 구경 좀 할게. 스자쿠는 흔쾌히 승낙했다. 

비닐하우스 안은 후텁지근했다. 를르슈는 촉촉한 흙바닥을 밟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정리라는 것은 쉬이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을 스자쿠를 생각하면, 혼자서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지면서, 그때 전화로 말했던 ‘죽게 내버려뒀어야’한다는 말은 무엇이며… 그런 많은 생각들 속에서, 스자쿠 또한 를르슈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을지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다 말로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전해질 수 없을 것이고, 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를르슈는 후끈거리는 눈가를 더듬었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나고 있었다. 눈물은 방울방울 떨어지더니, 이내 줄줄 흐르면서 를르슈의 뺨을 적시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이런 걸로, 이런 걸로 울다니.”

 

를르슈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면서 중얼거렸다. 눈물을 참으려고 멀리 보이는 딸기들을 노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먼 시선 끝에는 스자쿠가 있었다. 스자쿠는 울고 있는 를르슈를 보며 바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를르슈. 왜 울어?”

“아, 안 울어.”

“울고 있잖아!”

“누, 눈에 뭐가 들어가서.”

 

를르슈의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렸다. 항상 웃기만 하는 스자쿠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어딘가 씁쓸했다. 스자쿠는 울고 있는 를르슈의 입술에 다가왔다.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키스였다. 저를 달래주려고 하는 듯한 키스에 를르슈는 무심코 눈을 감았다. 더 매달리고 싶었지만 겨우 억누르며, 떨어지는 입술에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나는 눈이라고 했지, 입이라고 한 적 없어.”

“알아. 근데 이제 안 우니까, 여기도 정답이었던거지.”

 

스자쿠의 말은 엉터리였다. 하지만 를르슈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 웃으면서 말하는 거야. 를르슈는 그렇게 각오하며 말했다.

 

“있잖아, 스자쿠.”

 

초록빛의 눈동자가 찬란하게 반짝이는 것을, 평생 가슴에 새기겠다고 다짐하며 를르슈는 말했다.

 

“그만두자.”

 

를르슈는 그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스자쿠가 물어보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대답해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던 것과 다르게, 스자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를르슈와 손을 잡은 채로, 그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비겁하구나, 너.”

 

스자쿠 또한 알고 있었던 걸까. 이런 생활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 없고, 행복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내일 떠날 거야, 그동안 미안했어.”

 

를르슈는 떨리는 입술을 겨우 다잡으면서 스자쿠에게 이별을 고했다. 고마웠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저 미안했을 뿐이었다.

스자쿠는 를르슈를 끌어안았다. 그만두자고 말해놓은 주제에, 를르슈는 얌전히 안겨 있었다. 그리고 망설이는 손으로 스자쿠에게 매달렸다. 스자쿠는 자신의 등을 끌어안는 를르슈의 손에,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시선을 맞추어 왔다. 알 수 없는 열기가 스자쿠로부터 전해졌다. 아니, 알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으니까.

 

* * *

 

바람 소리가 크게 울릴수록, 하우스의 비닐도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먼 곳까지 누군가 올 리도 없고, 스자쿠의 집과 일터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를르슈는 불안했다. 그런 를르슈와 다르게,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완전히 빠져든 상태로 그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축축한 공기가 맨살에 닿을 때마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불렀다. 스자쿠는 그럴 때마다 어린애를 달래는 것마냥 괜찮다고 대답했다.

스자쿠가 셔츠를 벗기고, 아래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조금 조급하게 느껴졌다. 괜찮다고 말했으면서도 그도 역시 괜찮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면 이런 곳에서 벗고 있는 부끄러움이 조금은 줄어드는 거 같아서,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스자쿠는 그 웃음소리에 를르슈를 바로 쳐다보았고, 곧 어딘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를르슈에게 키스를 했다.

 

“미안… 이런 곳에서.”

“사과하지 마.”

“를르슈도 미안하다고 했잖아.”

“…….”

 

그런 대화를 나누고, 스자쿠는 를르슈의 목덜미에 달라붙어 천천히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입술이 살갗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면, 를르슈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스자쿠의 손은 를르슈의 페니스를 거침없이 주무르고 있었고, 발기한 기둥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스자쿠의 굳은 손끝이 느껴질 때면 를르슈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어서 아아, 하고 신음했다.

 

“후, 흐응, 읏, 아… 스, 자쿠.”

 

스자쿠는 목덜미를 지나서 가슴팍에 매달렸다. 유륜을 핥고, 유두 끝을 가볍게 깨물기도 하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꼬집으며 애무하는 스자쿠의 손은 집요했다. 왜 스자쿠가 남자의 가슴에 그렇게까지 매달리고 있는지 를르슈는 알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끝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어쩌면 지금의 과정도 정답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스자쿠에게 가슴을 내밀고, 페니스를 더 만져달라고 조르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를르슈는 멈추지 않았다. 스자쿠도 미안하다거나, 혹은 다른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흣, 으응, 나, 이제 갈 것, 같아.”

 

를르슈의 페니스가 움찔거리면서 사정을 앞두고 있었을 때, 스자쿠는 페니스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면서 를르슈가 토해내는 정액을 모두 받아냈다. 죄여오는 쾌락 속에서 를르슈는 헐떡거리며 사정했다. 남의 손으로 사정되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를르슈를 단단하게 붙들고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다리 사이에 제 손을 밀어넣었다. 스자쿠는 정액을 받은 손으로 를르슈의 뒤를 천천히 문질렀다. 꽉 다물린 주름 위를 두드리는 손끝에 를르슈는 바짝 긴장하며 스자쿠의 팔에 손톱을 세웠다.

 

“아, 거기, 거기로….”

“응.”

“들어… 오는 거야?”

 

겁 먹은 듯한 를르슈의 목소리에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를르슈는 제 안으로 하나씩 들어오는 스자쿠의 손가락을 느꼈다. 손가락 하나가 속으로 들어와서, 안을 천천히 탐색하듯 넓히고 있었다. 두 번째가 들어올 때에는, 확장되는 느낌에 를르슈가 숨을 참아버리자, 스자쿠가 키스를 하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괜찮다고 속삭였다. 세 번째 손가락부터는 질척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찬 손가락들이 내벽을 훑었고, 마주한 입술에서는 혀끼리 오가며 나누는 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마주한 허벅지에서는 스자쿠의 뜨거운 열이 은근히 느껴졌다. 손가락 세 개보다 더 큰 질량감이 두려웠다. 그런 게, 이렇게 좁은 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걸까. 그랬다가는 몸이 이상해지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에 스자쿠가 자세를 바꾸고, 를르슈는 뒤를 내민 채로 스자쿠의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자 두려움은 한층 더 커졌고, 를르슈는 쾌락으로 얼얼한 몸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를르슈… 무서워?”

 

스자쿠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 또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를르슈가 그만두자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겁을 먹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멈추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는 어떠한 결과에 도달할 수도 없고, 의미를 갖기에도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스자쿠를 가졌다는 행복 하나만으로도 를르슈에게는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를르슈가 고개를 젓고, ‘빨리…’라고 말하며 애타는 목소리로 자신을 재촉하는 것에, 스자쿠는 바지를 내리고서 페니스를 꺼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스자쿠의 페니스가 자신의 뒤에 천천히 밀려들어올 때, 를르슈는 잠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뻔 했다.

너무 크고, 뜨겁고, 아프고… 를르슈는 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 바로 뒤에 있는 비닐하우스의 차가운 뼈대를 붙잡고서 울컥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참아냈다.

 

“아, 으, 으응… 흐, 읍…! 하, 으윽.”

“후, 를르슈, 를르슈.”

“흐으, 하아, 아, 아! 아아, 아으, 응!”

 

스자쿠의 것은 다 들어오자마자,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쁜놈, 적응할 시간을 주던가…! 를르슈는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서 거칠게 움직이는 스자쿠를 탓하고 싶다가도, 스자쿠의 페니스가 배 안쪽을 들쑤시면서 열을 더해가는 것에 기뻐서 소리를 높이는 자신을 깨달았다. 게다가 스자쿠가 기분 좋은 곳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이제껏 느꼈던 부끄러움도 모르고서 기분이 좋다고 울었다.

 

“아! 아윽, 후, 으응! 으아, 앙! 스, 스자쿠, 스자쿠.”

 

를르슈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면, 스자쿠는 그의 몸에 페니스를 치받고서 키스를 퍼부었다. 두 사람은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서 다시 한 번 서로를 끌어안았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등줄기에 혀를 세웠다. 잔뜩 달아오른 몸에 스자쿠의 혀는 달콤한 독이었다. 를르슈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사정하자, 사정의 여파로 죄여드는 뒤쪽에 스자쿠는 가까스로 그의 안에서 빠져 나와, 내밀어진 둔덕 위로 사정을 했다.

체액을 뒤집어 쓴 를르슈는 열기로 붉게 익어있었다. 쾌락 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를르슈의 멍한 시선에 스자쿠는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물이랑 수건, 갖다줄게.”

 

겨우 억누른 스자쿠가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지는 것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이내 잠들고 말아버렸다. 

이런 곳에서 섹스를 했다. 그것도 남자랑. 내가 받아내면서.

를르슈는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멀어지는 스자쿠의 등을 마지막까지 쳐다보았다. 

 

이것으로 마지막이 될 거니까. 

 

* * *

 

[피곤해 보여서 안 깨웠어. 아침은 꼭 먹기.]

 

를르슈는 스자쿠의 집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날 아침을 떠올리며, 버리지 못한 메모를 손에 들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섹스 후, 쓰러진 를르슈는 다음날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스자쿠가 데려다주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스자쿠도 보았을 것이다. 다 정리된 짐과 정말로 내일이면 떠나는 를르슈에 대해서, 충분히 차고도 넘치게 알 수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날 아침, 를르슈는 아침은 손도 대지 않고서 캐리어를 끌고서 스자쿠의 집을 나왔고, 그대로 도쿄로 올라왔다. 사실 저녁이 되면 브리타니아로 떠나는 것이 맞았지만, 왜인지 며칠은 더 도쿄에 있겠다고 슈나이젤에게 말한 뒤였다.

 

“사쿠라다이트 건은… 죄송합니다.”

‘아냐, 어린 동생에게 맡기려고 했던 내 계산 착오였지.’

“…….”

‘얼마나 더 있을 거지?’

“…금방 돌아갈게요. 나나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나리의 핑계를 대면서도, 를르슈는 아직까지도 브리타니아행 티켓을 구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면 스자쿠가 남긴 메모를 한 번씩 펼쳐보는 미련한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도쿄로 온 지 일주일. 를르슈는 올 리가 없는 스자쿠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리고 메모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얼마나 바보 같은지, 일주일째 곱씹고 있었다. 내일은 정말 떠나야지.

그러면서도 기적 같은 만남을 기대했다. 쿠루루기 스자쿠라면 그 ‘쿠루루기’라는 힘으로 를르슈 람페르지를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를르슈가 ‘비 브리타니아’라는 성을 숨기긴 했지만, 그것으로 화를 내고 포기할 스자쿠가 아니다. 그는 언제든지 찾아와서 를르슈를 끌어안고 키스를 해줄 것이다. 어디든, 언제든, 무슨 일이 되었더라도.

나가는 호텔 로비에서도 스자쿠의 흔적을 찾았고, 브리타니아로 떠나는 비행기의 게이트 앞에서도 스자쿠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실연을 당한 것이다. 를르슈는 자신의 상황을 그렇게 한 문장으로 일축했다. 를르슈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와인을 부어라 마셨고, 취했고,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머릿속이 몽롱해지면서 스자쿠의 생각만 났다. 스자쿠를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만나서… 만나서 뭘 어쩐담. 실제로 만나는 것도 아닌데.

를르슈는 차오르는 숨을 겨우 내쉬면서 담요를 뒤집어 썼다.

 

[를르슈,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그리고 자고 일어났을 때, 제 손에 쥐어진 꾸깃한 메모를 보고서 를르슈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익숙한 필체였으며, 요 며칠 질리도록 본 메모지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이었다. 어디지?! 를르슈가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확인하려고 할 때, 승무원이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손님, 곧 착륙하니 앉아주셔야…. 를르슈는 어쩔 수 없이 앉으면서 주위를 확인했다. 그러나 를르슈의 주변 어디에서도 스자쿠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럼 내가 일어나자마자 꿈이라도 꾼 건가? 를르슈는 손에 쥔 쪽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잠결에 세게 쥐었는지 구겨진 흔적이 남았지만 글자를 알아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즉, 물증은 확실했으니 꿈은 아니라는 것이고… 스자쿠가 이 비행기에 탔다는 것 또한 확실했다.

를르슈는 어떻게 해서든지 스자쿠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이 비행기에 테러범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난 김에 실행하려고 를르슈는 손을 번쩍 들어 승무원을 부르려고 했다. 무슨 일이시죠? 다가오는 여자에게 를르슈가 ‘여기에 테러범이 있다’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이 친구가 술을 많이 마셨더니 아직도 속이 안 좋은가봐요. 금방 내리면 낫겠죠.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기다렸다는 듯이 쿠루루기 스자쿠가 나타났다. 그는 본 적 없는 명품 수트로 몸을 휘감은 채로, 아주 여유롭게 웃으면서 를르슈에게 손짓했다.

 

“그렇지, 를르슈?”

 

무슨, 말도 안되는, 이런…!

 

“짐 내려줄게, 기다려.”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를르슈는 스자쿠가 내려주는 짐을 들고서 터벅터벅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입국심사 하고 올게, 라고 말하는 스자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얌전히 기다렸다. 짐 찾고 올게, 하는 말에 고개를 또 끄덕였다. 스자쿠가 손을 잡고 가자는 말에 멍하니 손을 잡고 가면서… 어디로 가는데?—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냉정을 되찾았다.

 

“스자쿠, 너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를르슈! 드디어 말하는구나!”

 

스자쿠는 아하하, 웃으면서 를르슈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안기면서 를르슈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이성으로 다스렸다. 물어볼 말이 산더미였다.

 

“를르슈가 사쿠라다이트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줄 몰랐어. 적당한 건수도 잡았는데 말이야.”

“…….”

 

그렇다. 스자쿠가 남자를 밝힌다는 추문으로 쿠루루기 겐부를 압박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스자쿠와의 섹스를 강간으로 치부해서 스캔들을 꾸밀 수도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를르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어?”

“…너야말로, 왜 나를 쫓아와서.”

“를르슈는 그런 나를 기다리지 않았어?”

 

그것 또한 사실이다. 를르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스자쿠는 잡고 있던 를르슈의 손을 놓았다. 순간 떨어지는 따뜻한 체온이 간절해져서, 를르슈는 머뭇거리며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계약하자고 했었지?”

“…그래.”

“친구를 해준다고 했는데… 친구도 안 해주고. 멋대로 떠나기나 하고. 를르슈는 계약 위반이야.”

“…….”

“그런데도 내 호의를… 아니, 정확히는 내 사랑을 얻었으니까 이건 일방적으로 내가 당한 거, 맞지?”

“그건, 너무 이상한 계산이군.”

 

스자쿠는 사랑을 운운했다. 를르슈는 그 말에 설레고 말아버리는 자신이 견딜 수가 없었다.

스자쿠의 말은 너무 달콤하고 부드럽고 상냥하고, 를르슈가 원하는 말들이라서, 를르슈는 듣고 있다보면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스자쿠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둘 사이에서 튀어나오자마자, 가슴이 세게 뛰는 위험을 느꼈다. 위험하다, 위험해. 그 선을 넘으면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너 또한 돌아갈 수 없게 되는데. 스자쿠는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고, 를르슈는 달아나지도 않은 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를르슈.”

 

스자쿠는 를르슈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 몰라 를르슈는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를르슈의 시선 끝에는 이 사랑이 두려워 어쩔 줄 모르는 스자쿠가 있었다. 를르슈는 도망가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대면서 키스를 했다. 웅성이는 사람들 사이의 소음 속에서 스자쿠를 질끈 끌어안고 키스를 하며, 를르슈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스자쿠의 따뜻한 팔이 를르슈를 단단히 붙잡고서 놓아주질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