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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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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 스자루루

DOZI 2023.07.14 20:37 read.403 /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스로의 못되먹은 성질머리를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다 계산된 연출이었고, 그 결과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를르슈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 채워지지 못한 소유욕에 고통스러운 건 싫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하다는 것을, 왜 그 혼자만 모르는 것일까? 다른 누구를 더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관계를 왜 자꾸 의심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의 귀여운 점이기도 하면서, 귀찮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아버지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를르슈보다 14살 많은 남자로, 호적상 그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를르슈는 어머니를 잃은 대신,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고 자신에게도 상냥했던 스자쿠에게 입양이 되었다. 를르슈에게 어떤 것도 남겨주지 않은 어머니가 어렸을 때에는 밉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녀의 죽음 덕분에 를르슈는 스자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뒤늦은 감사를 전하고 싶기도 했었다.

를르슈를 ‘쿠루루기’ 가문에 입양한 대가로, 스자쿠는 자신의 삶을 가문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서 늘 바빴지만, 를르슈와의 시간은 포기하지 않았다. 를르슈가 내미는 학부모 참관 수업에는 늘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고, 아버지로서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언제나 노력했다. 를르슈 또한 스자쿠의 정성에 늘 새롭게 기뻐했고, 그의 아들된 도리를 다하려고 했다.

그런 두 사람을 아니꼬워하는 ‘쿠루루기’ 가문은, 매번 훼방을 놓았다. 그들의 핑계는 단순했고, 레파토리는 하나 밖에 없었다. 스자쿠가 그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수법들 속, 그중 하나가 질리지도 않는 결혼 맞선이었다.

이건 꽤나 유효했다. 를르슈에게도 ‘어머니’가 필요하다거나, 스자쿠에게도 집안일을 뒷받쳐줄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그럴 때면 스자쿠는 어쩔 수 없이 를르슈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맞선 자리에 나가는 것이었다.

 

다음주 약속이 스자쿠의 맞선으로 취소되었다는 이야기에, 를르슈는 2시간 만에 계획을 세우고, 사흘 후에 계획대로 모든 일을 저질렀다.

스자쿠는 를르슈가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운전을 하다가 가드레일을 박아버렸다는 이야기에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왔다. 부상은 경미했지만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스자쿠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를르슈는 명품으로 빼입은 주제에 엉망으로 구겨진 스자쿠의 꼴을 보고 있자니 우쭐해졌다. 스자쿠는 회사 일이고 뭐고 다 내버려두고 를르슈에게 곧장 달려온 것이다.

의사가 나가고 나서, 스자쿠는 결국 흘려버린 눈물을 닦았다. 거칠게 눈물을 닦아내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로 울지 마. 나 안 죽었어.”

“그래도 다쳤잖아.”

“이정도면 다친 것도 아니야.”

“를르슈, 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알아.”

 

태연한 얼굴로 알고 있다는 말을 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주변의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음 속에서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앞으로 안 그런다고 그랬잖아. 왜 약속을 어겨?”

 

스자쿠의 목소리는 울음이 묻어났지만, 더 뚜렷한 것은 원망이었다. 를르슈는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알아먹었다.

 

'앞으로 안 그럴게.’ 

 

그 말은 를르슈가 지난번에 저질렀던 사고를 말했다. 작년 를르슈의 생일이었다. 아이로써 맞이하는 마지막 생일이었는데, 스자쿠는 그 전날에 맞선을 보러 갔다. 소식을 들은 를르슈는 달리는 차가 가득한 차도로 뛰어들었고, 기적적으로 팔 하나만 부러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날도 스자쿠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왔고, 한참이나 를르슈를 끌어안고 울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안겨있는 채로, 안도하거나 화내지도 않은 채로 그저 자신의 부러진 팔이 아프다는 말만 했다. 그때 부러진 를르슈의 팔을 보고서 스자쿠는 그제서야 눈치챘다. 자신의 아들이 보통의 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는 안 그럴게. 약속할게, 스자쿠.’

 

그리고 보통과는 다르지만 영리한 를르슈는 바로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스자쿠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로는 이 상황에 대한 안정감은 바로 를르슈가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보이기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아버지에게, 를르슈는 일말의 연민도 느끼지 못했다. 분노라면 모를까. 그래, 분노라면 스자쿠보다 를르슈가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먼저 약속을 어긴건 스자쿠잖아.”

“……내가?”

“난 스자쿠 말고 다른 사람 필요 없어. 스자쿠도 그렇지?”

“맞선 때문에 그런 거야? 를르슈,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고….”

“어린애가 아니니까 더 필요 없는 거야.”

 

스자쿠의 팔을 잡아당긴 를르슈는, 더 가까워진 아버지의 얼굴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를르슈.”

“내가 언제 어머니가 갖고 싶다고 한 적 있어? 스자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 적 있냐고.”

“그렇지만….”

“웃기는 소리 좀 하지마.”

 

몇번 입술을 달싹거리던 스자쿠는 고개를 저으면서 앉았던 의자로부터 벌떡 일어났다. 스자쿠는 지금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를르슈는 직감했다. 하지만 도망치더라도 그가 돌아올 장소는 를르슈의 옆이었다. 다른 사람의 옆으로 가려고 하더라도, 를르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그도 알 것이다.

를르슈는 도망치려는 스자쿠에게 일부러 손을 뻗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지 않는 를르슈는 스자쿠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병실을 나가지 못한 스자쿠를 보면서, 를르슈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런 거 지겹지 않아?”

“무슨 소리야?”

“나는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해. 내가 스자쿠의 아들이라거나, 스자쿠가 내 아버지라는 그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둘이라는 거야.”

“…….”

“우리 둘만 있으면 충분하잖아.”

 

스자쿠 또한, 를르슈의 말이 단순히 새로운 가족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 * *

 

어렸을 때 보았던 를르슈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리안느 씨를 질투했다. 그녀는 를르슈와 완벽한 인연으로 이어져서, 영원히 를르슈의 옆에 있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족을 쓸데 없는 구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를르슈의 가족이 될 수 있다면 그런 구속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그랬던 나에게, 마리안느 씨가 죽은 것은 기회였다. 고아가 된 를르슈의 유일무이한 가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를르슈의 하나 뿐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의 사랑을 온전히 내가 독차지할 수 있다면.

커가는 를르슈를 보는 것은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아름답게 성장하는 를르슈가 언젠가 나의 품을 떠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억지로 만든 가족이라는 인연은 가짜라서,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유한하고, 그래서 그가 언제든 한계를 느끼고 나를 떠나갈 것 같았다.

 

차라리,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를르슈를…….

 

그런 생각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나의 것이 된 를르슈를, 세상은 용서하지 않겠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를르슈를 가질 수 있는 건 나뿐이겠지. 나밖에 모르는 를르슈는 얼마나 안쓰럽고, 가엾고, 불쌍하고,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내가 너의 유일한 것이 되었을 때, 를르슈는 나를 어떤 눈으로 볼까,

내가 그에게 품는 집착이 그러하듯, 를르슈의 질투가 비정상적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온몸을 던져서, 나의 맞선을 파토내는 것이 기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와 그의 관계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에 격렬한 거부를 하는 를르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를르슈의 나를 위한 질투가, 나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 견딜 수 없다. 나의 억지로 만들어진 거짓된 관계에서 오는 집착은 진짜가 아니니까.

 

* * * 

 

를르슈는 스자쿠가 자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를르슈가 어린 아이라서 받아들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옛날의 스자쿠가 어렸던 를르슈를 아들로 삼은 것은, 어린 아이가 하나 뿐인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 없는 것이 가여워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동정과 연민이 강한 사람이니, 를르슈를 그런 감정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도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이고,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라는 것을. 그가 망설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묶어놓은 이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끊기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를르슈는 지금의 말 한 마디가 스자쿠와의 평생을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음을 닫아둔 채로, 지금까지의 말들은 다 농담이었고, ‘가족으로서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으면, 스자쿠는 안도하듯 를르슈의 곁에서 온건한 가족과의 관계로 평생을 함께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원하는 게 아니야.

 

를르슈의 말에는 언제나 도망칠 구석이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던져진 그 고백에는, 어떠한 틈도 느껴지지 않아서, 스자쿠는 를르슈가 진심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의 사정을 꿰뚫고 있기라도 한듯, 그런 형편 좋은 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스자쿠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곁으로 다가갔다.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를르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스자쿠는 심호흡을 했다. 허세를 부리듯 스자쿠의 손을 내치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붙잡아놓고, 스자쿠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런 일은 하지 마.”

 

스자쿠의 눈은 를르슈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았다. 말은 냉정하게 내뱉어놓고서는, 일렁거리는 욕망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는 것이 우스워서, 를르슈는 황당할 지경이었다. 를르슈에게 쉬라고 말해놓고 스자쿠는 바로 병실 밖으로 나갔다.

기어이 도망을 치는 스자쿠의 모습은 보기 흉했다. 하지만 그것을 탓하는 것보다 속상한 마음이 컸다. 이런 저런 수를 쓰더라도 스자쿠는 손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를르슈는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분노를 삭혔다. 씩씩거리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나를 원하면서, 나를 사랑하면서, 나 아니면 안 되는 주제에!

 

* * *

 

를르슈가 퇴원을 하고 돌아온 집은 변함이 없었다.

몸을 내던져 막은 맞선은 아쉽게도 날짜가 미뤄진 것 같았다. 그걸 알 수 있었던 것은 스자쿠에게서 나는 여자 향수 냄새 때문이었다. 스자쿠는 그 맞선에서 만난 여자를 단순히 한 번만 만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여자를 만나는 듯 했다. 뭐,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집안에서 맺어준 여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길어봤자 한 달이고, 그 시간을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스자쿠가 돌아올 곳은 를르슈의 옆이고, 한 달 후에 사라질 여자에게 질투해봤자 피곤할 뿐이니까.

그러나 이번에 사귀는 여자는 예상 외로 한 달보다 더 오래 만나고 있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서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어느 여자 향수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드레일에 들이박았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오늘도 퇴근한 스자쿠의 겉옷을 받자마자 느껴지는 향수 냄새에 를르슈는 인상을 찡그렸다. 스자쿠는 늦은 시간까지 자고 있지 않은 를르슈를 걱정하며, ‘아버지’다운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런 이야기에 적당히 장단을 맞추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 평소에서 한참이나 벗어난지 오래였다.

 

“잔소리는 적당히 해, 스자쿠.”

“잔소리라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를르슈, 너는 체력도 없으면서 매번 늦게 자면 예전처럼 또 쓰러질 수도 있다고….”

“그럼 내가 안 기다리게 스자쿠가 일찍 들어오면 되잖아. 나도 스자쿠 걱정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난 걱정할 필요없어.”

“내 걱정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

 

를르슈의 날이 선 물음에 스자쿠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를르슈를 돌아보았다. 스자쿠 또한 를르슈가 아닌 여자에게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에 대한 피로가 상당한 듯, 쉽게 짜증이 솟은 얼굴이었다. 그래, 알고 있잖아. 너와 나 사이에 비밀은 새삼스러운 거라니까. 를르슈는 입술을 비스듬히 올리며 물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 찾았지?”

“…를르슈, 이건 내 일이야.”

“쓸데없는 일이네.”

“를르슈!”

“왜 이런 거로 화를 내? 사실이잖아. 아아, 아니면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중요해? 그래서 쓸데없다고 한 거에 화났어?”

 

를르슈의 도발에 스자쿠는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굴다가도, 그는 어른처럼 굴었다. 이렇게 미묘하게 선을 긋는 스자쿠를 보고 있으면 를르슈는 울고만 싶었다. 자기만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며 아이처럼 스자쿠를 탐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당하는 기분이었다.

를르슈는 들고 있던 스자쿠의 겉옷을 내던지며 외쳤다. 엉망으로 구겨진 옷자락이 바닥에 흩어지는 것이, 꼭 자기 꼴을 보는 것 같아서 를르슈는 더 화가 났다.

 

“결국엔 내가 필요없다는 거잖아!”

“를르슈, 그런 게 아니야!”

“이거 놔. 됐어. 이제 와서 아버지처럼 굴지 마. 진짜 가족도 아니면서…!”

 

진짜 가족. 그 말이 나오자마자 스자쿠는 눈을 부릅떴다. 상처 받은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고개를 돌렸다. 어떤 말도 쉬이 나올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정적은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스자쿠였다.

 

“맞아, 어차피 나는 진짜 가족이 아니니까, 그래서 더 를르슈를 소중하게 여겨줘야 된다고 생각했어.”

 

스자쿠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이 묻어났다.

 

“일부러 아버지처럼 굴고 싶었던 게 아니야. 를르슈한테 가족이 되고 싶었어.”

“…….”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자신의 행복을 원했다는 그 말에 를르슈는 스자쿠와 마주했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가 보통의 아버지처럼 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 욕망대로 를르슈를 갖고 싶은 것인지, 를르슈는 그의 알 수 없는 머릿속을 억지로 파헤치며 입을 열었다.

 

“스자쿠가 내 가족이 되면, 나는 행복해져?”

 

이번엔 스자쿠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둘만 있어도 괜찮은 일을, 왜, 이렇게까지… 번거롭고 귀찮게 만드는 건지. 를르슈는 스스로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주제에 저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스자쿠가 괘씸했다. 그래, 괘씸한 아버지가 따로 없다. 아들을 이렇게 번민 속에 내버려둔 채로, 본인만 달아나려고 하는 걸까.

 

“좋아, 그게 스자쿠가 원하는 나의 행복이면… 그렇게 살아. 앞으로 계속 원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고, 나랑 계속 이렇게 싸워. 아니, 싸울 필요도 없이 내가 나가서 살게.”

“를르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왜 그렇게 되는 거야?”

“왜 그렇게 되는지, 네가 알잖아. 나는 네 아들이고, 너는 내 아버지니까.”

“…….”

“그리고 우리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 건 너야.”

 

를르슈는 스자쿠를 스쳐지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쾅하고 닫는 문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건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같아서, 마치 스자쿠와 자신의 관계가 무너지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를르슈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어차피 스자쿠는 내게 돌아올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픈 건 싫었다. 

 

* * *

 

“…를르슈, 일어났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스름한 빛이 아직 새벽인 것 같았다. 몽롱한 기운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스자쿠의 목소리에, 를르슈는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 흐릿하게 보이는 스자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를르슈를 만지고 있었다. 왜 그런 얼굴이야, 멋대로 망쳐놓은 건 너잖아. 를르슈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스자쿠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방금 전에 했던 말들… 다시 정리해봤어. 나도 를르슈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솔직하게 말하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워있는 를르슈의 뺨을 지나,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에 걸어주면서, 스자쿠는 말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도 안 되는 게 있어.”

“그게 뭔데?”

 

를르슈는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물었다. 스자쿠의 윤리관이나, 도덕적인 잣대가 를르슈를 원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를르슈는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스자쿠의 손을 잡으며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스자쿠는 붙들린 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할수록 돌이킬 수 없어져. 를르슈.”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

“나를 안아, 스자쿠.”

“그럴 수는 없어.”

“아니, 할 수 있어. 나랑 섹스해서, 너 때문에 불행해진 나를… 평생 위로해.”

 

를르슈는 있는 힘껏 스자쿠의 팔을 끌어당겼다. 가까워진 거리는 금방이라도 입술을 맞댈 수 있을 것 같았다.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스자쿠의 팔만 아니었다면. 를르슈는 자신에게 욕정하는 녹색의 눈동자가 사실은 어느 곳도 헤매지 않은 채로 를르슈만을 줄곧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를르슈는 눈을 감았다. 이것은 도박이었다. 스자쿠가 자신을 두고 갈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자신의 것이 되어줄 지에 대한 도박이었다. 인생을 건 자신과의 내기에 스자쿠는 솔직하게 져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신념대로 를르슈를 두고 갈 것인가, 그 결과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를르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입술에 닿는 뜨거운 살갗의 느낌에, 를르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를르슈의 승리였다. 

 

* * *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를르슈를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는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옷을 벗기면서 를르슈의 드러나는 맨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자쿠도, 를르슈도, 계속해서 원했던 일을 드디어 하는 것이다. 그런 말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를르슈를 원한다고 말하면 좋을 텐데. 하지만 스자쿠는 그러지 않을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를르슈가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를르슈는 뜨거운 흥분과 차가운 긴장으로 몸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벗겨지는 옷자락 사이로 드는 한기에, 그 살갗을 스치는 스자쿠의 손끝이 뜨거운 것을 깨달으면 를르슈는 작게 신음했다. 스자쿠의 손이 훤히 드러난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며, 아직 벗겨지지 않은 속옷 사이를 파고들 때에,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스자쿠의 손을 잡았다.

 

“왜? 싫어?”

“그게 아니라….”

“응.”

“스자쿠는… 정말로 좋은거지?”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듯 쳐다보면, 를르슈는 시선을 맞추지 못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섹스를 해달라고 말한 주제에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 그런 불안감이 계속해서 를르슈의 목을 옥죄어 왔다.

 

“나는 남자잖아. 남자인데 스자쿠가 억지로 무리하고 있는 거… 같아서.”

“…응?”

“계속 여자랑만 해왔지? 내가 아무리… 해도 스자쿠가 별로라고 느끼면.”

“…….”

“그때는 진짜, 다른 사람한테 가서 나한테 오지 않을 거 같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를르슈는 스스로를 탓하며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를 깨도 적당히 해야지. 를르슈는 이내 훌쩍거리면서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텐데, 를르슈는 그저 그런 하룻밤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스자쿠가 가지게 될, 앞으로의 모든 것을 탐내고자 하는 나를 받아들여줘. 를르슈의 조용한 울음소리에 스자쿠는 그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달래듯이 혀를 섞는 움직임에 를르슈는 호흡을 하면서 어리광을 부리듯, 어릴 때처럼 스자쿠의 몸에 매달렸다.

 

“난 너만 있으면 돼, 를르슈.”

 

* * *

 

두 사람의 섹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자쿠의 상냥한 배려 속에서 이루어졌다. 스자쿠의 페니스를 뒤로 다 받아냈을 때의 충족감은 를르슈를 울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는 를르슈를 보면서 스자쿠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이제껏 참아온 것들을 모두 풀어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를르슈를 몰아세우는 스자쿠의 모습에서는 아버지의 조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몇번이나 갔을까. 를르슈는 정액으로 가득찬 뒤가 흘러넘치는 것을 느끼면서, 아직까지도 단단하게 발기한 채로 안쪽을 들쑤시는 스자쿠의 것에 헐떡거리며 말했다. 

 

“스자쿠, 나, 계속 기분 좋은 곳에, 닿아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를르슈의 안쪽이 꽉 죄여오며 스자쿠의 사정을 부추겼다. 젠장, 스자쿠는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정하지 못한 몸짓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를르슈의 페니스에서는 이젠 묽은 정액이 흩뿌려졌다. 부드럽게 녹은 를르슈의 뒤는 스자쿠의 것으로 질척거렸다. 일부러 를르슈의 다리를 더 벌려 붉어진 구멍 부분을 손끝으로 만져주면 를르슈는 헐떡거리면서 허리를 떨었다.

 

“만, 만지지 마아…. 아, 아앙, 흐으읏!”

“여기 쑤시는 게, 자지 만져주는 거보다, 더 기분 좋지? 응?”

“응, 좋아, 기분 좋아아…!”

“를르슈, 몸이 이렇게 야해서… 후, 아빠는 걱정이야.”

 

그러면서도 그 음란한 몸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것에 대해서 스자쿠는 솔직하게 기뻐했다. 스자쿠의 거칠어지는 움직임에 를르슈는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 이상 하면 이상해진다. 그런데도 이미 엉망으로 사정하고 있는 페니스는 물론이고, 이렇게 거칠게 박혀진 뒷구멍이 여자의 성기마냥 정말 스자쿠를 원하며 벌름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온몸으로 스자쿠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져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시선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왜 울어, 를르슈…?”

“부, 부끄러우니까. 너무, 어, 엉망이야, 나.”

“부끄러울 거 없어. 귀여우니까.”

 

스자쿠는 를르슈의 페니스를 쥐었다. 이미 흐물흐물해진 채로 발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데도, 스자쿠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를르슈의 것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이제 안 나와. 를르슈가 흐느끼며 하는 말에 스자쿠는 키스를 퍼부었다. 숨을 조금씩 나누며 혀를 섞는 그 키스에 를르슈의 머릿속은 더 몽롱해졌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다리를 더 넓게 벌리고, 그의 페니스를 만지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압박되는 느낌 속에서 를르슈는 훌쩍거리면서 그가 넘기는 타액을 모조리 다 삼켜야만 했다. 다 삼키지 못한 것이 흐르면, 스자쿠의 입술이 쫓아와 다시 그것을 핥았다. 혀끝으로 살갗이 핥아지는 느낌은 민감해진 몸에는 독이었다.

뜨겁게 젖어가는 두 신체 사이에는 경계가 흐릿해져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심장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언제나 자신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그 몸이, 이렇게 를르슈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를르슈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으…. 그만, 놔줘, 스자쿠, 이제, 안, 나오니까. 기, 기분 좋은데, 힘들어….”

“그렇지…. 지금의 를르슈한테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네.”

“응?”

“를르슈, 참지 마.”

 

무엇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것을 이제까지 쥐었던 힘보다 더 강하게, 그리고 민감한 귀두를 더 거칠게 문지르면서 그의 목소리부터 앗아갔다. 스자쿠는 목소리를 죽이며 아랫구멍을 옥죄면서 사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를르슈에게 씩 웃어보였다. 그는 다시 말했다.

 

“참지 말라고, 했잖아.”

“시, 싫어, 이상해, 이상한 거, 나, 나, 이런 거, 싫어…!”

“싫은 게 아니야, 기분 좋은 거라니까.”

“싫어, 스자쿠, 스, 스자쿠, 스자쿠, 아, 아, 나 싫어… 싫어어어… 흐응, 으, 손, 손 놔줘…!”

 

착하지, 라며 를르슈를 타이르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그럼에도 를르슈는 울먹거리면서 아래에서 쏟아질 것 같은 것을 억눌렀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참아야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수치스러움 그 이상의 감정으로 내몰리는 것에 를르슈는 헐떡거리면서 스자쿠의 팔을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스자쿠는 멈추고 있던 허릿짓을 가세했다. 기분 좋은 곳까지 짓누르며 박는 스자쿠의 페니스에 를르슈는 눈앞이 하얗게 빛으로 물들어갔다.

를르슈의 숨을 들이 참는 소리와 함께, 그의 페니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명한 물줄기에 스자쿠는 흡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시트가 젖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뿜어낸 물웅덩이 위로 내던져진 를르슈는 멍한 눈으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스자쿠의 문지르던 손길에 붉게 달아오른 페니스, 체액 투성이로 젖어든 몸, 하도 들쑤셔대서 다물리지 못한 구멍에서 흐르고 있는 정액 같은 것들이 스자쿠를 다시 욕정으로 차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무리를 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스자쿠는 를르슈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를르슈는 조심스럽게 스자쿠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얌전히 안겨있었다. 눈을 몇번 깜빡이던 를르슈는 숨을 고르면서 중얼거렸다.

 

“마, 지막은… 무서웠어.”

“무서웠어?”

“응. 그래도, 스자쿠가… 스자쿠가 하고 싶으면 해도 좋아. 내가 하기 싫다고 해서… 스자쿠가 나 대신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건 싫으니까.”

 

를르슈의 답지 않은 솔직한 말에, 스자쿠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기껏 큰맘 먹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시절에나 했을 법한 키스가 돌아오는 것에 를르슈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대답해,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정액으로 끈적이는 가슴팍부터 아랫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 같은 건 필요없어, 를르슈.”

“……정말로?”

“응. 말했잖아? 너만 있으면 된다고.”

 

스자쿠의 목소리는 언젠가 를르슈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소유욕이 묻어났다. 땀으로 젖어있는 스자쿠의 두 손이 를르슈를 어루만질 때마다, 를르슈는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완벽하게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