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 비 브리타니아에 대한 소문은 그렇게 좋지 않다.
불행을 불러오는 검은 황자. 그것이 그의 별명이었다. 그가 불러온 첫번째 불행은 아마도 어머니 마리안느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라는 이름으로 황위계승권 싸움에 휩쓸려 죽은 황후는 이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흔하디 흔한 일이었기에, 그의 첫번째 불행은 그렇게 특별해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불행은 그의 여동생 나나리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유로 브리타니아에서 유학 중이던 시절에 암살을 당했다. 저멀리 브리타니아 본국에서 그녀의 귀국을 기다리던 를르슈는 그녀의 부고를 듣고서 무력하게 쓰러지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불행부터는 세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세 번째 불행부터 이야기의 결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의 주변에 있던 가족들이 모두 죽고 나서부터 를르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자들과의 하룻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남자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는 것이 그가 몰고 다니는 불행이었다. 남자들은 를르슈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정말로 죽는지 실험하고 싶어했으며, 또 그 아름다운 황자가 침대에서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을 기대했다.
를르슈는 그런 남자들이 다가오는 것에 나름의 기준을 두며 그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기준은 그때그때 달랐지만, 확실한 것은 세 번째 불행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와의 하룻밤을 보낸 남자들은 행방이 묘연해졌고, 혹은 변사체로 발견되거나 하는 경우는 꼭 일어났다.
를르슈가 참석하는 파티는 그를 차지하겠다고 달려드는 남자들이 응전하는 장소나 다름 없었다. 그날의 를르슈는 자신의 별명에 맞는 검은옷을 입은 채로 우울한 표정으로 와인을 들이키고 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어느 누군가의 승전 파티에 참석한 이유는 오늘밤의 상대를 찾을 생각으로 를르슈는 온 것이었다.
“미인은 우울한 표정을 지어도 미인이군요.”
를르슈는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썩 나쁘지 않은 외모였지만 나이가 를르슈보다 많아보였다. 오늘은 연상이 취향이 아닌데. 를르슈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를르슈 전하, 달이 아름다운 밤입니다. 잘 지내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렇다면 굳이 아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신가보군요.”
“좋지 않다고 하면 나를 달랠건가?”
그것은 거의 신호와 같았다. 남자는 자신 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를르슈에게 손을 내밀었다. 를르슈는 그 손을 잡았다. 오늘밤의 상대로는 조금 아쉽긴 했지만 더 이상 탐색전을 벌이는 것도 피곤했다. 어디로 갈까요, 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를르슈는 아무데나, 라고 대답했다.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작위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런 황족이 참가하는 파티에 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신원이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를르슈는 지레짐작했다. 어차피 아니라고 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운이 안 좋게 나쁜 꼴을 당해도 삶에 미련은 없었으니.
를르슈는 저택 정원의 으슥한 곳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남자를 따라갔다. 이 저택에서 묵을 방 하나 없이 지낸다는 것은 파티의 호스트와 그렇게 친분이 깊은 편은 아닌 것 같았다. 방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건 싫은데. 를르슈는 잘못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어차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중에 이제 와서 몸을 아낀다고 해봤자 스스로가 더 우스워질 뿐이었다.
남자는 건물의 그림자 사이로 숨으면서 를르슈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노골적으로 를르슈를 원하는 손길에 를르슈는 얌전히 안겨있었다. 목덜미에 가까이 달라붙은 남자가 속삭였다.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를르슈 전하?”
“아니.”
“후후, 알겠습니다. 전하를 안게 되는 영광을 누리다니….”
“너, 말이 너무 많군.”
를르슈는 남자의 입술에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한껏 젊은척 꾸민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오늘밤은 글렀군, 하고 속으로 한 번 더 혀를 찼다. 키스를 하면 방금 전에 마셨던 와인 향이 났다.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향수 보다 훨씬 나았다.
키스를 하는 중에 성급하게 를르슈의 옷을 벗기려는 손길은 거칠었다. 를르슈는 단추 하나를 풀다가 이내 못참고 뜯어버리는 남자의 성질머리에 오늘밤은 꽝이라는 기분에 가라앉았다. 억지로 를르슈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으면서 발기시키려고 하는 손길도 흥분되지 않았다. 생리적으로 무리인 남자다. 를르슈는 남자의 타액마저 삼키는 게 싫어서 일부러 흘리기까지 했음에도, 남자는 그것에 더 흥분한 모양이었다.
가슴팍이 훤히 드러나는 것에 날이 그렇게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를르슈는 자신의 유두를 더듬으면서 발기하지 않는 아랫도리 사정에 초조해하는 남자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오늘밤을 달래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를르슈는 자신의 몸을 비추는 환한 불빛에 피곤해졌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보면 기회였다.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를르슈는 남자를 밀어내고서 벗겨진 옷자락으로 몸을 감쌌다.
그런 를르슈를 보자마자 소리를 내지른 누군가는 를르슈의 옷을 벗긴 남자의 머리통을 발로 내리찍었다. 남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며 를르슈의 앞에서 무너졌다. 기절한 남자는 눈을 까뒤집은 채로 흉한 꼴로 넘어졌다. 를르슈는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에게서 두 발자국 멀어졌다.
“괜찮으신가요? 아… 당신은.”
“……나이트 오브 라운즈?”
를르슈는 자신에게 불빛을 비추면서 다가오는 남자가 파란색의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망토를 두르고 있는 것에 눈을 부릅떴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황족 다음 가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지간한 입막음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게다가 지금 이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를르슈의 하룻밤 상대—그것도 귀족을 때려눕힌 것이다.
“네. 나이트 오브 세븐,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다.”
“알고 있습니다, 를르슈 전하.”
를르슈는 자신이 초대받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승전 파티가 이 남자의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적당히 참석한다는 것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파티였다면 오지 않았을 터인데. 오늘은 정말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알고 있으면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이 상황을 말하는 거다만.”
“제가 늦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줄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나이트 오브 세븐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를르슈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벗겨진 옷자락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곧 낮은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몰라서, 를르슈는 그의 품에서 떨어지면서 뜯겨나간 단추 몇 개를 제외하고서 셔츠 앞섬을 가렸다.
“죄송하면 가만히 있지 그랬어?”
“제가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하께서 이런 일을….”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
“네?”
“저 남자. 어떻게 할 거야? 오늘밤 내 상대였단 말이다.”
를르슈는 멀찍이 멀어져 쓰러져 누운 남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나이트 오브 세븐은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말했다.
“전하께 상해를 입힌 죄를 심문할 예정입니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군.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상황이라면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하, 지금 당하실 뻔한 일이 여간 큰일이….”
“아니라니까! 내 상대라고, 너 내 소문을 모르는 거야?”
악을 지르듯 말하는 를르슈의 목소리에 쿠루루기 스자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쓰러져 누운 남자와 를르슈를 번갈아보았다.
“설마… 연인이신가요?”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면 왜 이런 곳에서.”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괜한 짓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잖아!”
스자쿠는 ‘괜한 짓’이라는 말에 를르슈의 팔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남자 쪽으로 가려던 를르슈를 붙잡은 스자쿠는 아니잖아요, 라고 입을 열었다.
“괜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위험하실 뻔 했어요.”
“내가 위험하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전하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두고 보란 말입니까?”
“하, 말이 안 통하는군.”
를르슈는 스자쿠의 팔을 뿌리쳤다. 이제 쓰러져 누운 남자든, 눈앞의 나이트 오브 세븐이든 둘 다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이대로 그냥 아리에스로 돌아가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섹스고 나발이고, 를르슈는 피곤해졌다.
“됐어. 돌아간다. 차를 준비해.”
“……전하.”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를르슈의 낮게 명령하는 목소리에 스자쿠는 좁힌 미간을 풀지 않았다. 대답 없는 그에게서 를르슈는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셔츠가 엉망인 채였지만 우선 파티장으로 돌아가서 차를 타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 싶었다. 어차피 를르슈의 닳고 닳은 바닥에 대해서 누구든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새삼 흉한 꼴을 보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래, 달라질 건 없다. 를르슈가 파티장까지 가는 걸음을 몇 걸음 채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스자쿠가 그런 를르슈를 뒤따라가며 붙잡았다. 다시 붙잡힌 팔은 아플 정도로 강한 힘으로 붙들렸다.
“젠장, 아프잖아!”
“전하. 저는 전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과 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개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나에게 훈계까지 해? 승전 파티 한 번 열었다고 너무 기세등등한 거 아닌가?”
“훈계라니,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닌 주제에 혀가 길군, 나이트 오브 세븐.”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고 있음에도, 나이트 오브 세븐은 자신의 망토를 풀더니 를르슈에게 둘러주었다. 를르슈는 갑자기 덮어지는 따뜻한 온기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또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면 스자쿠는 를르슈의 다 뜯겨 나간 셔츠를 보고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저 전하를 걱정하는 것 뿐입니다.”
“걱정 같은 건 네 뒤를 봐주는 황족한테나 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너야말로 왜 그렇게 나를 신경쓰지?”
를르슈는 이제까지 만났던 남자들을 떠올렸다. 어떤 남자도 를르슈와 자고 나서 살아남지 못했다. 죽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나이트 오브 세븐은 어떨까.
“나이트 오브 세븐은 나를 걱정하다 못해 이제 나를 위로할 셈인가?”
그렇게 말하며 나이트 오브 세븐의 망토를 끌어안으면,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를르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뒤에서 비치는 환한 파티장의 불빛이 새어나가며 나이트 오브 세븐의 커다란 두 눈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여태까지 만나온 남자들에게서 느껴졌던 욕정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를르슈를 바라보고만 있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올곧고 깨끗한 시선에 를르슈는 이를 악물었다. 이 남자,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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