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뭔가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기가 민망해서...
어두운 조명,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절정에 이른 를르슈가 뒤를 조이는 것에 스자쿠가 한 박자 늦게 사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꽤 오래 이어져있었는데도 이제서야 사정하는 스자쿠가 징그럽다 못해 대단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아, 하고 스자쿠가 귓가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더운 숨이 흩뿌려지는 것에 를르슈는 다시 한 번 뒤를 조였다. 아직 발기가 풀리지 않은 스자쿠가 낮게 신음하며 를르슈,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를르슈는 웃음도 울음도 티낼 새 없이 다시 한 번 제 뒤를 푹, 하고 깊게 쑤셔박는 스자쿠의 것에 앓는 소리를 냈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돼?”
를르슈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스자쿠는 키득거리면서 를르슈의 안에 박혀있던 자신의 페니스를 빼냈다. 안을 가득 채워왔던 그것이 빠져나가는 것이 왠지 허전해졌다. 그렇지만 오늘 밤은 길 것이고, 한두 번의 섹스로 그간의 아쉬움을 달랠 수는 없다고 예상했기에, 를르슈는 잠깐의 휴식을 권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자쿠는 시원스럽게 그것을 받아주었다. 평소라면 스자쿠가 달라붙어서 아직, 한 번만 더, 하고 조르는 게 룰이었지만, 그러나 그 또한 오늘 밤이 길고 또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듯 했다.
스자쿠가 말없이 옆자리에 누웠다. 그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를르슈는 자신의 옆에 있는 협탁에 놓인 물을 마시고, 다시 스자쿠의 옆에 드러누웠다. 서로 한참을 마주보고서 가만히 있던 것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스자쿠였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네.”
“그래?”
“응, 보통 이 시간엔 로로랑 나나리랑 넷이서 같이 있었잖아.”
“……나랑 단둘이 보내는 게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외동에, 삭막한 집안사정에, 그렇게 큰 스자쿠가 가족의 시끌벅적함을 동경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를르슈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브리타니아로 돌아가서 브리타니아식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 정석이었으나, 올해는 를르슈가 브리타니아로 돌아가지도 않고, 일본에 남아서 스자쿠와 단둘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왜 갑자기?—라고 묻지도 않고, 스자쿠는 웃으면서 ‘그럼 크리스마스에 둘이서 데이트할까?’라고 말했다. 둘이서 데이트는 이제까지 수백 번도 했을 텐데 왜 이제 와서 설레는 것인지. 를르슈는 스스로도 주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뺨을 붉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에 호텔 방은 구할 수도 없었고, 영화관 표는 매진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자고 했지만 대기줄이 120분이었다. 겨우 40분 줄을 서서 구한 케이크가 올해 크리스마스의 수확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평소처럼 를르슈가 요리를 하고 스자쿠가 설거지를 하고, 후식으로 케이크를 먹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의 낮은 특별하진 않았지만, 밤이라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를르슈의 심중을 읽기라도 하듯이 스자쿠가 ‘이번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고 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를르슈랑 함께 있기만 해도 좋아.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를르슈를 독점하는 건 처음이 아닌가 싶어서.”
“결혼하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잖아.”
“신경 써준 거야?”
“나도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진 않아.”
를르슈는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스자쿠를 바라보며 말했다. 를르슈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던 스자쿠는 싱긋 웃으면서 뭐든 좋아, 라고 말했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크리스마스에는 단둘이서 보내고 싶었거든.”
[치키타 구구 AU]
길게 쓰고 싶음...
아마 책으로 내고 싶다... 정도의 감정임
옛날, 또 아주 먼 옛날… 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만, 사실은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를르슈와 스자쿠가 만난 것은 아주 먼 옛날의 일은 아니지만, 스자쿠가 살아온 시간이 옛날, 또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옛날, 또 아주 먼 옛날부터 스자쿠는 요괴로 살아왔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사람을 셀 수 없이 잡아먹은 후였습니다. 어느날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쟁이가 있는 가족들을 먹어치우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한 마을에 불을 질러서 모조리 다 구워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어요.
스자쿠의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빌었습니다. 나를 먹지 마세요, 내 연인을 먹지 마세요, 내 가족을 먹지 마세요. 하지만 스자쿠는 애원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먹었습니다. 머리카락부터 발가락 끝까지. 남김 없이 먹고 나면 배고픔은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 스자쿠는 또 다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살았을까요?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자쿠가 마지막으로 잡아먹은 것은 어느 나라의 일족이었습니다. 다 비슷비슷한 맛이 나는 일족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것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와구와구 잡아먹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공간 안에서 어린 아이 둘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별미에요. 잔뼈가 많아서 귀찮긴 하지만 살점은 여린 살이라 맛있다는 생각에 스자쿠는 먼저 작은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 끌었습니다.
“안 돼, 나나리는 안 돼!”
“오라버니!”
“차라리 나를 먹어!”
스자쿠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은 작은 아이보다 조금 큰 아이였습니다. 보라색 눈이 맛있게 빛나는 소년이었습니다. 아, 맛있겠다. 스자쿠는 잽싸게 사냥감을 바꿨습니다. 차라리 자기를 먹으라는 소년은 얼마나 맛있을까요. 스자쿠는 그 소년을 낚아채 목덜미에 이를 세웠습니다.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고 피가 식기 전에 빨리 먹어치울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맛있어보이는 그 보라색 눈동자와 다르게, 소년의 살갗에서는 쓰고, 떫고, 시고… 정말 맛이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는데다가, 혀가 아리고 조금 흘린 피를 삼킨 목구멍까지 쓰린 고통이 스자쿠를 덮쳐왔습니다. 내장이 뒤틀리고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스자쿠는 비명도 못 지르고 소년을 꽉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다 못해 정신이 나갈 정도로 소년은 맛이 없었어요! 정말, 너무 맛이 없어서 스자쿠는 죽을 뻔했습니다!
‘맛없어! 정말 맛없어! 이런 맛없는 인간을 먹으면 죽어버릴 거야…!’
소년을 앞에 두고서 그 옆에 작은 아이를 먼저 먹어버릴까 했지만, 파멸적으로 맛없는 소년 때문에 스자쿠는 속이 쓰려서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어요.
침을 삼키면 삼킬 수록 ‘맛없는’ 느낌이 스자쿠를 덮쳐왔습니다. 온몸이 아릴 정도의 고통에 스자쿠가 멈칫하는 중, 소년은 그 사이에 스자쿠를 박차고 작은 아이와 함께 달아났어요. 스자쿠는 처음으로 사람을 먹지 않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스자쿠는 7년 동안 인간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 소년을 먹으려고 했다가 맛본 혀가 까맣게 죽어버려서, 다시 살아나기까지 7년이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쫄쫄 굶고 있던 7년 사이에 스자쿠는 요괴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맛없는 인간을 100년 동안 기르면, 엄청 맛있어진다!
맛없는 인간이라는 게 있긴 하는 거냐며 요괴들은 반신반의했지만, 혀가 까맣게 죽을 정도로 맛없는 인간을 맛본 스자쿠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맛없는 소년을 100년 기르면 맛있어지겠지요?
혀를 다시 되살리고 7년째 되던 해, 스자쿠는 그 소년을 다시 찾았습니다. 소년은 조금 컸으며, 요란한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아직 꽤 어려보이는데도 그를 ‘황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줄을 서며 그의 주변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곁에는 그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나나리’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니 배가 고팠습니다. 스자쿠는 오랜만에 나나리부터 잡아먹고, 소년을 100년 동안 기르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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