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뭔 정신으로 썻는지 몰르겟음... ㅋㅋ
손풀기용~
행사가 끝나고 난 뒤의 밤이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오랜만에 원고 없는 밤을 축하하기 위해서, 현재 동성연애 중인 상대 쿠루루기 스자쿠를 불러냈다. 를르슈가 모처럼 집으로 초대해준 것에 스자쿠는 기뻐하며 찾아왔지만, 문을 열어준 를르슈의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것을 보고서 그는 오늘밤의 섹스는 물 건너 갔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를르슈는 지금 위로해줄 상대를 찾기 위해서 그저 제일 만만한 스자쿠를 불러낸 것이라고—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리고 그 사실은 빠르게 현실로 드러났다.
문을 열어준 를르슈는 이미 반쯤 풀린 눈으로 스자쿠를 맞이했고, 어딘가 느릿한 말대답과 가까이 다가가면 느껴지는 술 냄새로 그가 이미 만취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또 뭐가 문제였을까. 오늘은 오타쿠 를르슈가 제일 즐거워 하는 오타쿠 행사가 있던 날 아니던가. 스자쿠는 흐느적거리는 를르슈를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실에는 이미 술병이 즐비했고 안주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를르슈는 정말 악으로 깡으로 빈속에 술을 들이붓고 있는 모양이었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얼굴이 붓는다거나 혹은 긴장한 탓에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쫄쫄 굶고 가는 를르슈를 알고 있는 스자쿠는 급하게 음식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가로막은 것은 를르슈였다.
“됐어, 이제 취할대로 취했으니까 이제 와서 안주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럼 물이라도 떠올게.”
“필요 없어.”
“약이라도 사올까? 숙취해소약?”
“필요 없어.”
를르슈는 다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스자쿠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술 냄새가 나는 를르슈의 옆에 꼭 붙어앉은 스자쿠는 불안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를르슈?—라고 묻기에는 대충 눈치챌 수 있는 뭔가의 요소가 있었다.
이지적이고 냉정한 이성덩어리 를르슈를 이렇게 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세 가지 밖에 되지 않았다. 첫 번째는 나나리, 두 번째는 쿠루루기 스자쿠, 세 번째는 슬프게도 코드기어스의 이야기였다. 나나리는 최근에 별 일 없고, 오늘 아침까지 스자쿠는 멀쩡했으니, 소거법에 의하면 를르슈가 술을 퍼마신 이유는 코드기어스 때문일 것이다.
한껏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를르슈가 낮은 목소리로 스자쿠를 불렀다.
“스자쿠.”
“응.”
“넌… 코드기어스가 재미있냐?”
“어? 어.”
“진짜로?”
“어….”
난데 없이 코드기어스가 재미있는 진정성 증명 시험에 스자쿠는 익숙하게 대꾸했다. 를르슈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 이런 문답은 제법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익숙했다.
“어떤 점이 재미있는데?”
“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져서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해.”
“그건 지난 번에도 말했잖아!”
“주인공이 친구를 위해서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해.”
“그것도 지지난 번에 말한 거야!”
“…어, 주인공이 잘생겨서 재밌어.”
“……그래. 를르슈의 얼굴은 코드기어스의 재미 중에 하나지.”
를르슈는 자기와 이름이 똑같은 그 캐릭터의 이름을 읊는 것에 수치심 하나 느끼지 않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진정성 증명 시험에 통과를 한 모양인지 스자쿠가 안심하고 있을 때, 를르슈는 까지 않은 캔 맥주 한 캔을 까고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를르슈, 또 마시는 거야?!”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무, 무슨 소리야?!”
“필요 없어, 이제.”
“를르슈, 속 버리니까 이제 술 그만 마시고…!”
“필요 없다고!”
를르슈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캔 맥주를 뺏으려는 스자쿠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 필요 없어, 다 필요 없다고…. 갑자기 오열하는 를르슈의 모습에서 스자쿠는 공포를 느꼈다. 아, 아냐, 맥주 마셔. 숙취해소약 사올게. 스자쿠가 재빠르게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를르슈가 다시 스자쿠를 불렀다. 어디 가, 여기 있어. 낮고 음울한 목소리에 스자쿠는 겁에 질려 얌전히 제 자리로 돌아앉았다.
“무슨 일… 인데?”
“무슨 일이 있는지 이제 물어봐?”
“아니 물어볼 틈을 안 줬잖아.”
“물어보기 싫은 건 아니었고?”
정곡을 찔린 스자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주제로, 대충 를르슈의 속을 썩이게 한 그 코드기어스에 대해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코드기어스에 무슨 일 있어?”
“…새로운 극장판 나왔잖아.”
“응. 지난 달에 보러 갔지. 재밌었잖아. 흥행도 잘 되서 를르슈도 좋아했고.”
“…내가 좋아했다고?”
“응?”
“내가… 내가 그걸 좋아했다고?”
“……아니었어?”
“하, 내가 그걸 좋아해? 내가 그걸 좋아한 거 같았어?”
“아, 안 좋아했구나!”
급하게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바꾼 스자쿠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를르슈는 바들바들 떨면서 캔 맥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이번에 코드기어스 온리전에 말이지….”
“으, 응.”
“새로 나온 캐릭터들 커플링 회지 밖에 없는 거야.”
“응?”
“나랑 같이 스자루루 해주겠다던 사람도 스자루루는 펑크내고 그 캐릭터들 회지는 또 냈더라고. 그것도 올캐릭터용이랑 R18용이랑, 두 권씩이나!”
“……;;;”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그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말해야할지 감도 안 잡히는 쿠루루기 스자쿠는 머리를 힘껏 굴렸다. 아무튼 를르슈는 지금 대충 배신 당한 거 같으니까 뭐라고 위로를 해주긴 해야하는데 대체 뭐라고 해줘야하지? 그 사람 내가 혼내줄까? 아니지, 난 알지도 못하는데 혼내줘서 어쩔건데. 다시 스자루루 하라고 협박할까? 아니지, 나도 안하는데 무슨;; (스자쿠는 스자루루를 하는 를르슈를 사랑할 뿐, 스자루루를 사랑하진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 말 안 들려?”
“잘 들려….”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어?”
“어….”
“내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냐고. 대체 어떻게 하면… 스자루루가… 어… 이렇게…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고 이제 더 이상 아무도 해주지 않는 세기의 멸망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냐고! 21세기 르네상스의 대몰락이 바로 이렇게 일어나는데 나같이 무력한 인간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지, 진정해.”
“진정? 진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는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스자루루 하고 있어?”
스자쿠는 스자루루의 ㅅ도 한 적 없었지만 우선 고개를 저었다. 안일한 적 없어, 를르슈만큼이나 진지해. 를르슈는 진정한 것처럼 숨을 천천히 내쉬고는 스자쿠에게 말했다.
“스자쿠가… 를르슈를 사랑해.”
“응, 응.”
“스자쿠가 를르슈를 사랑한다고.”
“응, 맞아, 알아.”
“스자쿠가 를르슈를 사랑하는데 왜 세상은 그걸 몰라주냐고!”
“아냐, 다 알아. 걱정하지 마.”
“웃기지 마, 너 지금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저 허튼 수작을 부리고 있을 뿐이잖아?!”
“…그럼 진실을 가르쳐줄까, 를르슈?”
“진실…?”
“진실은, 스자쿠한테는 유페미아라는 여자친구가 있고 를르슈한테는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가 3명 넘게 있다는 이야기야. 스자쿠랑 를르슈는 각자 딸린 여자들 신경 쓰느라 서로한테 관심은 하나도 없어. 그게 진실이야.”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이 ‘진실’이 사실 그렇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가 있던 말던 스자쿠랑 를르슈는 서로 사랑을 해. 그것이 진실이야. 이게 바로 를르슈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의 ‘진실’을 듣자마자 잘생긴 얼굴을 무너뜨리면서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여자들이 헐벗고 달려들어도 스자쿠랑 를르슈는 서로만 바라볼 거야!!!!! 네가 뭘 알아, 네가 그딴 소리를 해도 스자쿠랑 를르슈는 서로 사랑을 해, 모른다면 알려주지!! 스자쿠, 쿠루루기 스자쿠, 너 따라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를르슈는 휴지로 얼굴을 한 번 닦아내고서, 스자쿠가 죽어도 들어가기 싫어하는 금단의 방(를르슈의 작업실이자 동인지가 가득한 방)의 문을 열었다. 들어가기 전에 손소독제를 서로 사이좋게 나눠 바른 뒤,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을 잡고 스자루루 동인지로 가득한 책장 앞에 그를 세워뒀다.
1cm도 안되는 얇은 책들이 어느덧 5단 책장을 3칸이나 만들고 있다는 것이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스자쿠가 가볍게 소름이 돋고 있을 때, 를르슈는 비닐에 쌓인 책을 하나 하나 꺼내가며 스자쿠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거 읽고, 저거도 읽고, 이건 진짜 명작이니까 더 읽고, 이건 어쩌고 저쩌고… 술에 취한 주제에 를르슈의 발음은 또렷했다.
“이렇게 많은 책이 나오고 난 뒤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제 안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세상에 스자루루 말고 다른 씨피 할 생각이 있으면 죽는 게 나아!”
“…….”
“…아니, 다른 건 해도 좋지만 그렇다고 환승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
“새 캐릭터들로 지지고 볶는 게 언제부터 코드기어스 트렌드야!!!”
“…….”
진정하라는 말도 못하고 스자쿠는 를르슈가 안겨준 얇은 책들을 그의 작업장인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너마저 스자루루를 져버리는 거냐, 쿠루루기 스자쿠…! 이 비겁한 놈! 를르슈가 엄포를 놓았지만 스자쿠는 이제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것을 겨우 다잡고서 를르슈에게 말했다.
“세상이 코드기어스의 스자루루를 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여기 있는 스자쿠는 를르슈를 사랑하고 있어! 우리가 스자루루라고!”
“…니가 코드기어스의 스자쿠도 아니면서 그딴 소리 하지마. 소름 돋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무슨 스자루루야… 너 코드기어스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를르슈는 스자쿠를 밀어내며 다시 얇은 책 고르기에 나섰다. 방해하지 말고 빨리 이거 다 읽고 감상문 쓸 준비나 해. 스자쿠는 감상문이라는 소리에 진심으로 싫어졌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스자루루를 해야하는데?”
“그럼 넌 이렇게까지 해도 왜 스자루루 안 하는데?”
“…됐다, 이제 됐어.”
“뭐가 됐는데?”
“이제 지쳤어.”
“지친 건 나야, 니가 아니라.”
ㅠㅠ;;;
스자쿠는 당당하게 자신의 피로함을 말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이젠 진짜 울고 싶어졌다.
“니가 쓴 감상문으로 사람들한테 다 말걸 거니까 제대로 써라.”
아니 대체 내가 왜… 널 사랑한다는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만화랑 소설책 보면서 감상문까지 써야하는데….
스자쿠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스자루루 얇은 책을 고르고 있던 를르슈가 책장 앞에서 시원하게 개워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 말도 못하고 바로 그를 들처업고 화장실로 내달렸다. 대체 스자루루가 뭐길래ㅠㅠ 그는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토까지 하는가ㅠㅠ
그리고 청소는 왜 쿠루루기 스자쿠의 몫일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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