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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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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기 때문에 그의 총명함은 모든 황족의 시선을 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어머니인 마리안느 비 브리타니아가 나이트 오브 라운즈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 가문은 여타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쉬웠는데, 를르슈 황자의 영민함은 더 좋은 소잿거리가 되었다.

쉬도 없이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를르슈 황자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고 지냈으며,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아리에스의 이궁에 틀어박혀 지냈다. 마리안느 황비는 바깥 일이 바쁜 황비였기 때문에 아리에스에 붙어있을 수 없었기에, 그런 황자를 돌볼 수 없었다.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황자는 그런 어머니의 사정을 이해한다면서 홀로 있기를 자처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다섯 살의 를르슈가 아리에스에서 홀로 있었던 날이었다. 혼자 마리안느의 서재에 틀어박혀서 아랫것들을 한 명도 두지 않은 채로 공부를 하고 있었던 황자는 납치를 당했다. 납치범이 비 가문의 대를 끊어버리겠다는 심산이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였겠지만, 그것으로 풀릴 분이 아니었는지 를르슈 황자는 험한 꼴을 당했다.

범인은 옛 귀족 중에 한 명이었으며, 마리안느 황비의 활약 때문에 귀족 작위를 빼앗긴 남작이었다. 그는 를르슈 황자를 욕보여서 마리안느에게 사과를 받아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마리안느는 자기 혈육에 대해서 크게 애달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거기서 죽는다면, 그게 거기까지인 운명인 거지.’

 

납치범의 전화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납치범은 어린 아이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최음제를 들이부은 참이었고, 를르슈 황자는 그 약에 대한 쇼크로 기절과 깨어남을 반복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지 않는구나, 라고 를르슈 황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브리타니아는 비겁한 수에 응하지 않으며, 또한 약자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힘없이 납치를 당한 를르슈가 사라진다면 사라지는 게 맞는 이치인 세계였다.

납치범은 괜한 짓을 했다면서 를르슈 황자를 어느 뒷골목에 팔아버릴 생각이었으나, 그때 때마침 가니메데로 쳐들어온 마리안느에 의해서 목숨이 끊어졌다. 그때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내 아이의 운명마저 바꾸는 여자니까.’ 정도가 될 것이다.

브리타니아 황실에서는 황족 납치 사건은 소소하게 늘 존재했던 해프닝이었다. 를르슈 황자라고 더 특별하게 다루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안느가 직접 납치범을 처단했다는 점에서 좀 화제가 되었을 뿐이었다.

아마 를르슈 황자 본인 인생에서도 그 납치 사건은 소소한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나이트 오브 세븐, 쿠루루기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하며 읽고 있던 파일을 덮었다.

 

“정—말, 스자쿠는 진짜 성실하다니까.”

“성실한 게 아니라 기본이잖아. 호위 대상을 제대로 알아야지 어떻게 호위를 할 건지 알 수 있고.”

“뭐,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황실 기록물 보관고까지 들리진 않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스자쿠가 날을 세워 물으면, 지노는 히죽 웃으면서 스자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갑자기 묵직하게 느껴지는 무게감에 스자쿠는 무겁다며 그의 팔을 치워냈다. 거의 내동댕이 쳐지다시피한 지노는 스자쿠의 모습에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어깨에 힘 좀 풀라고 하고 싶은 거지.”

“그렇게 긴장하지도 않았어.”

“에이, 방금 전에 보니까 완전 굳었던데. 나중에 마사지라도 같이 받으러 갈래?”

“그럴 시간 없어. 이제 곧 아리에스로 가야하니까.”

 

스자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서 ‘쿠루루기 경!’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에스로 향하는 차가 도착했다고 알리는 말이었다. 지노는 스자쿠에게 배웅을 해주겠다면서 그를 따라왔다.

 

“그래도 아리에스의 황자님을 잘 도와드리면 스자쿠의 인생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