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황자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가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약하다는 사실은 유명했다.
반려시켰던 서류를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들려보내면 를르슈 황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허가 승인을 내렸다. 나이트 오브 세븐이 전장에서 억지를 부려도 를르슈 황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도리어 사과를 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 같은 흑의 황자,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가 유독 유해지다 못해 거의 무방비해지는 상대가 나이트 오브 세븐이라니. 나이트 오브 세븐— 쿠루루기 스자쿠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하필 나야?’
스자쿠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신에게 서류를 안겨주는 로이드를 노려보았다. 로이드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스자쿠의 등을 펑펑 두드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어, 전하는 네게 약하시니까~!”
스자쿠는 서류를 정중하게 받아들고 자신의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일하는 건물의 회랑과 복도를 지나서 를르슈 황자의 집무실까지 걷는 데에는 약 7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거리를 걷는 7분동안 스자쿠는 어떤 얼굴로 황자를 봐야 하는지 고민했다.
를르슈 황자는 작년부터 스자쿠와 함께 일하는 카멜롯의 필요 예산에 0을 하나 더 붙인 예산을 할당했다. 로이드가 장난 삼아 0을 덧그린 예산계획서를 스자쿠가 들고 갔기 때문이었다. 스자쿠가 들고 온 서류에 를르슈 황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서명했고, 그리고 엄청난 예산과 함께 카멜롯은 군부 내에서도 유독 부유한 예산을 굴리며 랜슬롯을 보다 더 과감하게 발전시켰다.
올해도 이 예산을 유지하고자 하기 위해서 로이드가 계획서를 올렸지만,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반려당한 듯 싶었다. 그래서 로이드는 나이트 오브 세븐을 팔아 예산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맞아, 를르슈 전하는 내게 약하시니까….’
를르슈 황자는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약하다. 그리고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정작 나이트 오브 세븐과 같이 있을 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와 엮이는 것에 대해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화를 깊게 하는 것도 아니고,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유혹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전하랑 있을 때에는…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 싫어.’
스자쿠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벌써 7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은 벌써 를르슈 황자의 집무실 앞이었다. 기사를 따로 두지 않는 를르슈 황자의 호위인 제레미아 고트발트가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를르슈 황자의 집무실에 자주 드나드는 나이트 오브 세븐과 제레미아는 이런 식으로 안면을 익혔다. 스자쿠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나이트 오브 세븐입니다, 를르슈 전하.”
“…들어오도록.”
를르슈 황자의 입실 허가에 스자쿠는 한숨을 삼키며 서류를 고쳐쥐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황자의 집무실이었다. 단순한 구조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꾸미지 않는 황자의 검소함이 묻어나는 집무실.
브리타니아 국기를 벽에 등지고 있는 흑의 황자,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만이 조금 들뜬 분위기로 스자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카멜롯 예산 관련으로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스자쿠의 말이 끝나자 를르슈 황자는 손을 내밀었다. 스자쿠는 그의 손과 스치지 않도록 서류를 내밀었다. 를르슈 황자는 서류의 종이들을 팔랑팔랑 넘기더니, 한숨을 내쉬고서는 만년필을 찾았다. 잉크가 유려한 궤적을 남기며 종이 위에 새겨졌다. 허가 완료, 승인, 카멜롯 예산 확보 완료. 로이드가 다 먹은 푸딩 그릇을 탁탁 울리면서 승리의 종소리를 흉내를 낼 게 분명했다.
“확인했다. 이대로 진행하면 돼.”
“네, 감사합니다.”
“…그래.”
스자쿠는 서류를 펼쳐보지도 않았고, 를르슈 황자는 그 서류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로이드가 이번에도 0을 하나 덧그렸다면 브리타니아 제국의 군부는 카멜롯 예산 때문에 파산해버리지 않을까…. 스자쿠는 쓸 데 없는 생각을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를르슈가 넘기는 서류를 받았다. 이번에도 손이 닿지 않게, 서류만 넘기는 손짓으로 돌아온다.
이제 볼 일이 끝났으니 나가도 된다. 그렇게 스자쿠가 나가려고 할 때, 를르슈는 붙잡지 않는다. 스자쿠에게 한없이 약하고, 스자쿠에게 누구보다 너그러우면서도, 스자쿠를 붙잡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를르슈의 태도에 대해서 스자쿠는 늘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의문을 드러내고 물어보는 것은, 스자쿠가 넘지 않는 선 중에 하나였다. 를르슈 황자가 제 아무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를르슈 황자에게 그 이유 같은 것을 물어보는 것은 스자쿠에게는 흥미 없는 일이었다. 그럴 가치가 없다, 라고 판단하며 스자쿠는 고개를 숙여 를르슈 황자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를르슈 황자는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으나 그렇다고 스자쿠를 붙잡지 않았다. 소문이 날 정도로 스자쿠를 좋아하는 주제에 를르슈 황자는 또 거리를 둔다. 스자쿠는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도 않고 그저 적당히 이용할 뿐이었다.
“근데 내가 물어본 적 있어. 전하께서는 왜 그렇게 스자쿠를 좋아하시냐고.”
다시 돌아온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건물. 살롱에서 쉬어가던 중에, 지노 바인베르그는 스자쿠의 귓가에 소곤거리면서 말했다. 스자쿠는 떨어지라고 그의 팔을 밀어냈다. 무거워, 지노.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 큰 소리로 말하면 부끄러워지는 건 스자쿠인데? 지노가 다시 달라붙자, 스자쿠는 이제 포기해버렸다.
“그랬더니 전하께서 뭐라고 하셨는 줄 알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처음에는 어떤 이유에서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좋아져서 말할 수 없대.”
“그렇구나.”
“자기의 연애 이야기인데 감흥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그게 어떻게 연애 이야기야?”
그냥 전하가 날 좋아하는 이야기일 뿐이지. 스자쿠는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었다. 스자쿠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스자쿠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슈타트펠트 양이 찾아왔었는데.”
“뭐? 카렌이?!”
“네가 아마 를르슈 전하랑 이야기하러 간 사이에 찾아와서 내가 상대해줬어.”
“뭐?! 왜 호출 안 했어!”
단순한 지노는 또 그쪽 이야기로 빠져든다. 그가 최근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는 즐거운 듯한 템포로 흘러간다. 스자쿠는 감흥이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는 스자쿠와 관련이 없으니까. 지노에게도 적당히 대꾸해주다가 스자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과 상관 없는 이야기에 어울려주는 척을 하는 것도 넌더리가 났다. 스자쿠가 자리에서 일어나 살롱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지노는 무심한 그의 등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도 불쌍하지, 왜 저런 남자를.
그 시각, 불쌍한 를르슈 황자전하는 저런 남자를 위해 승인을 내린 카멜롯 예산계획서에 대한 변명을 제국 재상에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멜롯의 예산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설명해줄까, 를르슈?”
“랜슬롯은 제7세대 나이트메어프레임으로 좀 더 많은 실험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투에 도입되는 경우가 많고, 파손됐을 때의 장비 및 부품의 확충도 필요하고요. 보다 더 유연한 예산 안에서 제7세대 나이트메어프레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건 지난 번에도 들었던 말이야. 정작 카멜롯의 나이트 오브 세븐은 너에게 그렇게 감사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
그런 지적을 받자마자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랑에 빠져 돈을 흥청망청 쓰는 멍청이가 된 남동생을 보며 슈나이젤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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