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無 기어스 無 스자루루 有
골든 위크는 브리타니아계 기업에 다니고 있는 를르슈에게는 그닥 해당사항이 없지만, 올해만큼은 스자쿠의 일정에 맞춰서 여행을 다녀올 겸, 를르슈는 연차를 몰아쓰는 둥 꽤 애를 썼다. 스자쿠와 함께 가까운 온천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붐빌 것 같다는 것에 두 사람 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끝나가는 토요일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직도 휴일이 남아있다는 여유 때문일 것이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소파에 누워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어린이날 겸 시치고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브리타니아인인 를르슈에게는 꽤나 낯선 풍습 중 하나였다. 어린아이들이 예쁜 옷을 입고서 한껏 멋을 내는 것이 귀여웠다. 브리타니아는 보통 생일을 챙는데, 스자쿠는 어땠어?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으음, 하고 고민하며 대답했다.
“시치고산을 안 챙겼다고 하기 보다는, 이래 보여도 쿠루루기 신사의 아들이니까….”
“코이노보리 같은 것도 달고 그랬나?”
“그런 거만 있으면 다행이지만, 우선 중요한 건 ‘이래 보여도’라는 거지.”
시치고산을 치를 때마다 매번 여자 옷을 입어야 했어.
스자쿠는 부끄러웠다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귀한 아들이라고 귀신한테 잡혀가지 않게 그런 풍습이 있었어. 난 몸도 약한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일 년 중에 일주일이나, 아니면 영력이 강해지는 때가 따로 있는 그런 때에….”
“신기하군.”
“미신이긴 하지만 덕분에 병치레도 없이 컸으니까 고맙긴 하지.”
“사진도 있어?”
“…아마 본가에 가면 있지 않을까? 그거 하고 있을 땐 이 집엔 남자애가 없다는 걸 알려야해서 사진도 엄청 찍고 그랬거든.”
시치고산이니까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까지는 그랬던거야. 일곱 살 때는 정말 너무하기 싫어서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었어.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어린 스자쿠를 떠올렸다. 예전에 사진으로 본 적은 있었으니까 상상하기가 쉬웠다. 지금보다 더 부드러운 볼살, 고집스러운 눈매, 하지만 활기차게 웃는 미소 같은 것이 자연스러운 아이였을 것이다. 말투나 행동이 거칠더라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치마를 입어?”
“우리집은 옛날 귀신까지 방지했으니까 기모노나 유카타, 다 입혔어.”
빨간색 아니면 주황색의 옷자락을 끌고 다닐 스자쿠의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요조숙녀처럼 앉아있을 스자쿠는 그래도 어른들이 바라는대로 건강하게 커주었다. 물론 를르슈가 넙죽 그와 연을 맺은 것은 어른들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집안에서도 아가씨라고 부르고, 그래서 얼마나 싫었는지….”
명가의 후계자로써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때였으니, 스자쿠는 혼자서도 자조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후리소데를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단정하게 챙겨입을 줄 알게 되었으니, 올해 정월에 를르슈의 후리소데 차림이 그때 교육이 빛을 발한 것이다. 벗기는 것도 스자쿠가 했으니, 스자쿠는 올해 초부터 소원을 이루었다.
“를르슈는 그런 적 없어?”
“나나리가 언니가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말고는 딱히…. 그때 유피 옷을 빌려서 여장을 하긴 했지만 얼마 못가서 나나리가 진짜 나를 찾아서 그만뒀거든.”
“대단하네.”
“한 달 가까이 했어. 여자가 되는 건 꽤 힘든 일이었고.”
“하, 한 달?!”
나나리가 원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설정도 있었다고 말하는 를르슈는 웃으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은 루나였고, 를르슈의 쌍둥이 여동생이라는 설정이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에는 사라져야하지만, 다시 둥근 보름달이 뜨면 나나리를 만나러 올 수 있는 그런 신비로운 캐릭터였다고. 대부분 유페미아가 설정을 짰지만, 세세한 디테일은 를르슈가 조절해서 연기를 했다고 그랬다. 사라지는 날로부터 딱 하루가 남았을 때, 나나리는 ‘루나’를 보더니 를르슈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 그리고 를르슈가 짠, 하고 나타나자 거짓말처럼 언니가 갖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게 되었고, 한동안 를르슈가 어디론가 사라질까 계속 쫓아다녔다고 그랬다.
“루나라니, 이름도 귀엽다.”
“가발을 쓰고 다녀야해서 힘들었어. 나나리가 머리를 빗겨줄 때 정말 아찔했는데.”
“흠…. 그 루나 씨랑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올해 초에 만났지? 후리소데는 보통 여자들이 입는 옷이니까.”
“그렇지만 그때는 를르슈였잖아.”
“바람을 피우고 싶다는 말을 정직하게 하네.”
“본체는 를르슈니까.”
“그럼 나도 그 스자쿠를 보고 싶은데. 아니, 여자애니까 스자코? 스자미?”
“…를르슈, 이름 잘 못 짓는구나. 그렇게 촌스럽게 안 지어도 돼.”
스자코, 스자미, 스자링, 스자룽, 스자땅…. 를르슈는 스자쿠의 이름을 바꿔가며 불렀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으나 를르슈가 재미를 붙인 것에 스자쿠도 덩달아 를르슈의 이름을 바꾸었다. 루루코, 루루미, 루루링, 루루룽, 아니 이건 루가 세 개나 들어가잖아? 루루땅, 루룻치! 이건 좀 체육계 느낌.
“그래서 여자인 내가 보고 싶다고?”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히나마츠리 같은 것도 했어?”
텔레비전은 어느새 히나마츠리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 저거 지역마다 조금 다르긴 한데…. 스자쿠는 스메라기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히나인형을 떠올렸다.
“카구야는 교토식 히나인형까지 다 가졌던 거 같아.”
“따로 차이가 있어?”
“맨 위에 두 인형이 서로 반대가 되면 교토식이라고 들었어. 나도 갖고 있긴 했는데.”
“너도?”
“본격적으로 여장했으니까.”
본가 어딘가에 있겠지. 그렇겠네.
를르슈와 스자쿠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골든 위크에 다들 어디서 지내시나요? 여행 전문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며 진행하는 것에 두 사람은 텔레비전을 그만 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여장 이야기 왜 한거지? 머리가 눌린 를르슈의 뒷통수를 살살 쓰다듬던 스자쿠가 물었다. 어렸을 때 뭐했나, 그런 이야기 하다가? 시치고산이었던가…. 를르슈는 제 뒷머리를 만지더니 샤워나 해야겠다고 스자쿠의 손을 떼어냈다.
나도 같이 할래! 물 낭비야. 많이 벌고 있잖아! 를르슈만큼은 아니지만!
공지 | <부활의 를르슈> 스포일러 있는 글은 * | 2019.05.12 |
15 | [썰] 해독불능의 스자루루 2 | 2019.05.05 |
> | 어린이날 (폭풍전야) 2 | 2019.05.04 |
13 | Love is Unfair | 2019.05.04 |
12 | Frame of Nightmare 1 | 2019.05.03 |
11 | 그 부마는 누구의 남편인가 | 2019.05.02 |
10 | [썰] 마성의 여자 마리안느가 자식 농사에 성공한 비결 * | 2019.05.02 |
9 | [썰] 동정비처녀 를르슈는 빗치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 | 2019.04.30 |
8 | [썰] 살아있는 것이 고통 뿐인 쿠루루기 스자쿠 * | 2019.04.30 |
7 | [썰] 오메가버스 스자루루 | 2019.04.30 |
6 | 불법개조 로터 1 | 2019.04.29 |
쓰면서... 반성했는데
난 일본 문화 좆도 모름 시치고산이 357이라는것도 이번에 알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