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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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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혹은 악마

DOZI 2025.10.29 00:19 read.105 /

이제 성인이 되기까지 일주일 정도 남기고서 그 소녀는 죽고 말았다. 차가운 호수 근처에서 발이 미끄러져 빠져 죽었다고 알려진 이 소녀는, 물에서 건져졌을 때에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물가가 무서워서 한 번도 가까이 한 적 없었던 소녀가 추운 겨울의 얼음이 다 얼지 않은 호수 근처를 떠돌아다녔다는 것이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어버린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볼 방법은 무엇도 남지 않았다. 소녀의 집안은 신실한 카톨릭 신자 집안으로, 장례를 치를 때에도 그들의 율법을 따르고자 했다. 그래서 쿠루루기 스자쿠가 그 소녀의 마지막 가는 걸음을 준비했던 것이었다.

그 소녀를, 쿠루루기 스자쿠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스자쿠를 볼 때면 항상 붉어지던 뺨, 촉촉하게 젖어 반짝이는 두 눈동자, 웃을 때면 가지런히 드러나는 하얀 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님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그 소녀는.

 

“그 애, 너 때문에 죽은 거지?”

 

그 소녀는 스자쿠 때문에 죽은 것이다. 스자쿠가 죽인 것과 다름 없다. 스자쿠가 그녀의 죽음을 부추긴 게 틀림없다. 

그 죄책감에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서 스자쿠가 이불 위에서 거칠게 호흡을 내쉬고 있을 때, 등 뒤에서 그런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껏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던 스자쿠의 죄악감을 한 번에 내려꽂는 말투로, 남자는 낮게 웃었다.

 

“네가 사랑해주지 않아서 죽은 거잖아.”

 

스자쿠가 누워 있는 침대 위로 누군가가 앉는 무게감이 전해진다. 가볍게 닿아오지만, 사람의 무게감 만큼으로 묵직하다. 그 남자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는 스자쿠의 어깨 부근에 손을 얹으면서 있잖아, 하고 운을 뗐다.

 

“사랑받지 못한 인간은 지옥에 가. 너는 그 애가 지옥에 가길 바라는 거야? 뭐, 그 애가 목숨을 스스로 내던진 거라면 그대로 지옥에 가도 싸겠지만.”

 

지옥. 지옥. 지옥.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스자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소녀는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 그렇게 착하고 순진한 아이가 어떻게 지옥에 떨어질 수 있겠어. 스자쿠는 이불을 꽉 그러쥔 손끝을 덜덜 떨고 있을 때였다. 그 남자는 겨우 드러난 스자쿠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덧대면서 속삭였다.

 

“쿠루루기 스자쿠, 나를 봐. 그리고 놀라지 마.”

 

스자쿠는 자신의 이불을 서서히 벗겨내는 손길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자쿠의 새액새액 내뱉는 숨소리와 남자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스자쿠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혼자서 머무는 사제의 방에, 꽉 잠긴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도 없이, 남자는 들어와서,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미쳐버린 게 분명해. 스자쿠는 자신을 보라고 말하는 그 남자의 손이 자신의 턱을 들어올리게 하는 나긋한 힘에 이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그는 수십 쌍의 눈알도 없고, 날개도 없고, 후광도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남자의 얼굴로 웃으면서 스자쿠의 다리 사이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스자쿠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는 스자쿠의 숨통을 조여왔다.

큭, 크흑……. 스자쿠가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컥컥거리는 것에 남자는 스자쿠의 입술을 문지르며 동그랗게 벌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놀라지 말라고 했지, 숨을 쉬지 말라고 한 적은 없는데.”

“……후, 후우.”

“나의 주인께서는 살인자의 기도에도 상냥히 응해주시니 네게는 얼마나 멋진 일이야?”

 

남자는 하얀 셔츠 사이에서 길다란 하얀색 깃털을 꺼내보이고서는 스자쿠의 코끝을 간질였다.

 

“왜 너를 사랑한다는 그 애를 안지 않았어?”

“……나는 그래선 안 돼.”

“그건 네가 신부라서? 그래서 나의 주인의 종으로써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서?”

“…그래, 주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니까.”

“훌륭한 답변이지만 완벽한 오답이군.”

“나한테 룰을 지키는 건 중요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너는 네 아버지를 죽였는데?”

 

스자쿠의 과거까지 낱낱이 알고 있는 이 남자는, 사람이 아닌 듯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그 보라색 눈동자에 장난기를 띄우면서, 스자쿠의 코끝을 간질이던 깃털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만들었다. 스자쿠는 우울로 잠긴 눈가를 부비면서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누구야?”

 

* * * 

 

그 날 이후부터, 스자쿠에게는 기묘한 동거인이 생겼다. 동거인은 를르슈라는 남자였다. 

를르슈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스자쿠의 과거를 전부 다 알고 있고, 스자쿠의 속죄에 대해서 안타깝다, 라고 평하면서도 자신의 주인이 그 속죄를 높이 사고 있으니 수행을 멈추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스자쿠는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 

그는 검은 머리카락, 보라색 눈동자, 하얗고 긴 팔다리와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 성서 어디를 훑어보아도 그런 천사도, 악마도 없었다. 를르슈, 라는 사람의 이름을 한 무언가도 없었다. 스자쿠는 그에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너는 천사인 건지, 악마인 건지, 그도 아니면…….

 

그러나 그런 것을 물어볼 틈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낮에는 스자쿠의 옆에 하루종일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자쿠는 성당 사람들에게 그를 옛날 친구라고 소개했다. 잠시 잠깐 머무는 나그네 같은 친구에요,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잘생긴 를르슈의 등장에 ‘신부님의 친구도 미남이시네요’라는 우스갯소리만 할 뿐이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자신이 머무는 사제관의 빈 손님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러나 를르슈는 밤마다 스자쿠의 침실에 들어와서 좁아터진 침대를 같이 쓰자고 졸라댔다.

서로를 꼬옥 끌어안은 채로, 나눠 덮은 이불 하나로 발가락을 겨우 가릴 정도인데도, 를르슈는 스자쿠의 품에 더욱 밀착하며 좋다고 말했다. 스자쿠는 자신의 팔 베개를 하고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를르슈를 볼 때면, 뜸했던 그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를르슈는, 악마일까, 천사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지만 그의 등장으로 스자쿠의 음울한 속죄는 어느 정도 소강 상태가 되었다. 보다 밝아진 스자쿠는 를르슈가 있는 일상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를르슈는 미사도 성실하게 드리고, 가끔 영문 모를 주인 소리를 했지만, 그것도 스자쿠의 앞에서나 했으며,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스자쿠의 모습을 보고서 흥미롭게 쳐다보기도 하고, 스자쿠의 아침 운동에 따라나왔다가 다리를 삐어 스자쿠의 등에 업혀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는 매 순간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처럼 반응했지만, 가끔씩은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사람처럼 시큰둥하게 굴 때도 있었다.

 

* * * 

 

“그 애 기억해? 너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네가 거절하니까, 호수에 빠져 죽어버린 애.”

“…….”

 

스자쿠는 그 소녀를 위한 마지막 미사를 드렸을 때 울려퍼졌던 레퀴엠이 떠올랐다. 흐느끼는 울음소리 사이로 쉬지 않고 이어지던 장송곡. 그 장송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를르슈는,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스자쿠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비가 내리는 밤. 성당 안팎은 고요하고 갑자기 쏟아지는 겨울비에 오가는 사람도 없는 이 공간 속에서, 그때의 레퀴엠이 흐른다.

 

“나는 요새 그 애의 심정을 알 거 같아.”

 

를르슈는 스자쿠의 이불 사이를 파고들면서 말했다. 스자쿠가 누울 수 있는 공간만큼을 비워두고서, 자신이 늘상 눕는 자리에 몸을 구겨넣는다. 흥얼거리던 레퀴엠의 멜로디가 끊어지고, 스자쿠가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스자쿠는 늘 궁금했던 것 대신에 이번에 새롭게 떠오른 질문을 했다.

 

“갑자기 날 좋아하게 됐어?”

“낭만도 없지, 너 같은 걸….”

 

너 같은 걸, 이라고 말하는 를르슈는 스자쿠를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서 얼굴을 이불 속으로 숨겨버렸다. 스자쿠는 그렇구나, 하고 말아버렸다. 켜두었던 방 형광등의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를르슈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 사이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레퀴엠 사이로 흘렀던 그 울음소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자쿠는 이불을 걷어내고 울고 있는 를르슈와 마주했다. 를르슈는 겁에 질려 있었고,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어딘가를 크게 다친 아이처럼 가슴을 꾹 누른 채로 스자쿠의 손 안에서 떨고 있었다.

 

“무서워, 스자쿠.”

“…….”

“너를 사랑하게 되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야. 나는 그 분의 뜻으로 만들어진 존재인데, 그 분의 뜻과 다르게 너를 사랑하고 말아버렸어.”

“…를르슈.”

“나는 너를 벌하기 위해서 왔는데, 어째서 널 사랑해버리고 만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이 사랑이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말하는 를르슈를, 스자쿠는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서로에게 맞닿아 들렸다. 두 개의 따로 노는 심장이 하나의 템포로 맞춰가기까지 키스 한 번의 시간이 필요했다. 

키스를 했다. 스자쿠는 처음 해보는 키스였다. 를르슈의 입술에 닿을 만큼의 키스를 하고, 그의 눈물 젖은 입술이 짜다는 맛이 들었을 땐 혀를 섞고 있었다. 무섭다고 말하는 혀를 달래고 풀면서 자신의 것처럼 빚어내듯 혀를 섞고, 를르슈가 입고 있는 하얀 셔츠를 벗기면서 스자쿠는 머리 한 구석이 빨갛게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멈춰야 한다는 본능보다도 빠른 것은 그를 이대로 사랑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몸을 내밀면서도 어쩔 줄 몰라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스자쿠와 를르슈, 모두 처음이었다.

서로 알몸으로 내벗겨지고 서로의 몸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스자쿠는 를르슈의 발기한 페니스를 보고서 망설임 없이 그 귀두에 입을 맞추었다. 키스를 하던 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몸에 어디든 닿는다면 기분이 좋다는 걸 알았다. 를르슈는 처음 당해보는 구음에 소리를 참을 수 없는지, 헐떡이면서 스자쿠에게 다리를 더 깊게 벌렸다. 스자쿠의 머리채를 잡고서 더 깊게 빨아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를르슈의 정액은 비리고 썼다. 

스자쿠가 정액을 삼키는 것을 본 를르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번엔 스자쿠의 페니스에 자신이 달라붙었다. 커다랗고 검붉은 스자쿠의 페니스를 부지런히 물고 빨고 삼키려는 를르슈의 노력은 애처로웠다. 서로 어디를 문질러도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얼굴에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를르슈는 그 정액이 눈가에 튀었다며 닦아달라고 스자쿠에게 말했다.

스자쿠는 눈가에 키스를 퍼붓고, 쓸 일 없이 놓아두기만 했던 협탁 위의 핸드크림으로 를르슈의 애널을 풀었다. 를르슈가 이전까지 누군가의 종이고, 천사인지 악마인지 알 수 없는 존재였었다면, 지금의 를르슈는 완벽하게 인간 스자쿠의 것이 된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 나의 애인. 를르슈. 

스자쿠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를르슈의 애널에 자신의 페니스를 묻으면서 벌어지는 몸을 끌어안았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몇번이나 전했다. 사정하는 순간에 나누는 키스는 비릿한 피 맛이 났고, 너무 세게 부딪힌 입술 끝에서 터진 피 때문에 서로 퉁퉁 부은 입술을 하게 되었지만, 그 마저도 사랑스러워서 스자쿠와 를르슈는 서로를 끌어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은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