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를르슈의 생일까지 사흘이 남았다. 생일마저도 일하는 일정으로 짜여진 황제의 삶에 대해서, 그의 기사— 나이트 오브 제로, 쿠루루기 스자쿠는 따로 보탤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둘이서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거나, 혼자서 그의 생일을 독차지하는 데이트 같은 것을 못해서 속상하다거나, 그런 개념의 감정은 이미 한 차례 뛰어넘었다.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라는 이유로 생일 또한 하나의 업무로 이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 말고는, 스자쿠는 그의 생일에 대해서 바라는 것이 없었다.
작년에는 갑작스러운 전투 지원으로 나간 탓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생일 파티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하나뿐인 기사, 나이트 오브 제로 없이 생일 파티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황제폐하는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남자였다. 생일이 끝나고도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돌아온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섭섭하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채로, 그저 고생했다고 그의 노고를 치하할 뿐이었다.
작년 를르슈의 생일 파티를 뒤로 하고 전장에 나섰을 때에, 스자쿠는 그제서야 를르슈가 를르슈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나버린 것을 실감했다. 그는 앞으로도 황제의 삶을 살아갈 것이고, 생일 축하를 받는 것조차 하나의 일처럼 여기며, 제국을 위해서 살아갈 거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를르슈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스자쿠가 무어라 말을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타깝거나, 섭섭하거나, 속상하거나, 그런 감정보다는 보다 다른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스자쿠 스스로도 명명할 수 없다는 것이 꺼림칙할 뿐이었다. 어딘가 해결되지 않은 찜찜한 기분으로, 앞으로 사흘 남은 를르슈의 생일 파티를 주관하는 것은 스자쿠의 몫이었다. 물론 최종 결정은 생일의 주인공인 를르슈가 모든 것을 결재하겠지만, 스자쿠가 일차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과정이었다.
올해는 에그제리카 정원에서 야외 파티로 진행하기로 한 를르슈의 생일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그만큼 위험이 뒤따를 테지만, 를르슈의 옆에는 반드시 스자쿠가 있을 예정이었다. 작년 나이트 오브 제로의 부재에 대해서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를르슈의 옆에 딱 붙어서 를르슈의 권위가 무탈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넘길 생일 파티의 안건을 정리하여 황제의 집무실 앞에 섰다. 노크를 하고 들어서면 를르슈는 한창 바쁘게 자료를 읽고 있었다. 폐하, 하고 말을 걸자 를르슈는 그제야 스자쿠를 쳐다보았다.
“파티와 관련된 마지막 확인 안건입니다. 최종안이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래? 또 얼마나 떠들썩하게 치를지 기대되는군. 손님들은?”
“대부분 도착하셨습니다.”
“당일에 오는 사람들도 삐지지 않게 챙겨줘. 그래… 어디 보자.”
를르슈는 스자쿠가 내민 서류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많은 사람들의 회의를 거치고 거쳐서 정제된 서류는 를르슈의 심기를 거스를 것이 없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를르슈는 만년필을 들었다. 서류 위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류의 어딘가 놓친 부분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스자쿠는 긴장하게 되었다.
“어디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다른 건 아니고… 내 호위 때문에.”
“폐하의 호위는 제가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작년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네?”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란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를르슈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라는 군대를 해체시키고 오직 나이트 오브 제로만 두고 있는 이 기상천외한 사상의 황제폐하는, 이제 나이트 오브 제로마저도 호위에서 제외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스자쿠는 그의 말에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튀어나올 말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당황 속에 있는 나이트 오브 제로를 뒤로 하고, 황제는 그에게 수정된 서류를 내밀었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스자쿠는 그 서류를 받았다. 스자쿠의 이름이 지워진 위에는 제레미아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제레미아 경을 호위로 두시겠다고요?”
“나름 인연이 깊은 상대잖아.”
“……폐하.”
“이 건으로 최종 수정해서 다시 한 번 결재 올려. 다시 확인할 테니까.”
“이건 안됩니다! 제가 있는데…!”
“네가 있는데? 그래서?”
를르슈, 라고 부를 뻔했다.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를르슈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스자쿠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라는 그의 눈빛에 스자쿠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를르슈에게 이 분노를 부딪칠 수는 없었다. 그는 제국의 황제, 그리고 스자쿠는 황제의 기사였다.
울컥 차오르는 스자쿠의 분노 속에서도 를르슈는 태연했다. 이제 그만 가봐, 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냉랭했다. 스자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그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를르슈는 붙잡지도 않았고, 스자쿠는 지워진 자신의 이름 부분을 노려보고 있다가 복도를 느릿하게 걸었다.
그날 저녁 제레미아로부터 연락이 왔다. 황제폐하의 생일 파티 당일, 호위를 맡은 게 정말 자신이냐는 확인 전화였다. 스자쿠는 하루 종일 그 건으로 기분이 나빠진 상태였지만, 제레미아에게 신경질을 낼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예, 폐하께서는 제레미아 경이 호위를 맡아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나이트 오브 제로가… 아, 혹시 쿠루루기 경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폐하께서 그렇게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폐하께서? 쿠루루기 경은 그래도 괜찮은건가?’
“…….”
‘폐하의 호위를 맡는다는 것은 영광이지만… 나도 이런 상황 속에서 폐하의 호위를 맡는 건 원치 않는다는 걸, 쿠루루기 경도 알고 있겠지?’
스자쿠를 달래듯 말하는 제레미아는 어른이었다. 스자쿠는 휴대폰을 내던지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면서 그러십니까, 라고 중얼거렸다. 제레미아는 를르슈를 어렸을 때부터 봐온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아리에스 궁의 호위대장 출신인 그는 스자쿠와 를르슈가 얼마나 서로에게 각별한지, 그리고 그들의 숨겨진 연인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저도 폐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스자쿠는 엉뚱한 사람인 제레미아에게 진심을 토해냈다. 제레미아가 수화기 너머로 웃는 기색이 느껴졌다. 웃음이 나오냐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스자쿠는 괜한 짜증임을 알고서 입을 다물었다.
‘폐하께서 뭐라고 하셨을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고 하셨죠. 제가 옆에 있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이쿠. 꽤 세게 나오셨군. 나이트 오브 제로의 일정이 비어있는 걸 아시면서도 그랬단 말인가?’
“제레미아 경, 저는 고민 상담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전화를 끊어도 괜찮겠습니까?”
‘스자쿠 군.’
결국 참지 못한 스자쿠가 끊으려고 하자, 제레미아는 어릴 때처럼 스자쿠를 타이르듯 불렀다. 스자쿠는 끊으려던 전화를 붙잡고서 모르겠어요, 라고 중얼거렸다.
“폐하의… 를르슈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왜 저를 두고서 제레미아 경을 옆에 두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고, 생일을… 그렇게 중요한 날을, 왜 내가 아닌 사람을 옆에 두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런 말을 폐하와 해본 적이 있나?’
“…아시잖아요. 를르슈는 이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나이트 오브 제로가 필요한 거야.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폐하께 달려가서 그 말을 전하는 게 어떨까?’
“그건 꼭 떼를 쓰는 거잖아요. 애도 아니고.”
‘그럼 스자쿠 군은 내가 폐하의 호위를 하는 건 괜찮은건가?’
그 말에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처럼 자기 감정을 드러내고 표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제레미아의 말처럼 그에게 호위를 맡기는 것은 스자쿠에게 괜찮은 일이 아니었다. 스자쿠는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고서 스자쿠는 머리를 벅벅 쓸어넘겼다.
앞으로 이틀 남은 를르슈의 생일 파티에 호위는 제레미아가 맡을 거라고 생각하니 속이 좋질 못했다. 제레미아 경의 말처럼 를르슈에게 달려가서 이런 말을 하라고? 네 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라고? 그런… 도움도 안 되는 기사의 모습을 보여줘서, 어떡하라고. 의지가 안되는 연인이라고 나를 타박하면 난 이제 버텨낼 수가 없는데.
스자쿠가 그렇게 고뇌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스자쿠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끝나고 를르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다, 스자쿠. 들어가도 될까?”
“폐하.”
스자쿠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검은색 파자마 차림의 를르슈가 어색하게 서있었다. 추운 복도에서 파자마 한 장 차림은 무방비했다. 스자쿠는 그를 자신의 방 안으로 이끈 뒤, 놓여있는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마주앉으며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가장 심란할 때에, 심란한 문제를 안겨준 장본인은 스자쿠에게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 밤에 찾아오신 거죠?”
“……난 너를 나이트 오브 제로에서 해임할까 해.”
“네?”
“그래도 너와 지낸 시간도 있고, 네 의견도 들어보는 것도 일이니까.”
“…….”
를르슈에게 담요를 둘러주던 스자쿠는 자신이 들은 말을 곱씹었다. 나이트 오브 제로에서 해임한다는 내용은 들어도 들어도 와닿지 않았다.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의 모습에 평소처럼 피식 웃으면서 농담이야, 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스자쿠와 시선을 나눌 뿐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스자쿠가 입을 열었다.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무슨 때가 왔다고…….”
“너를 놓아줄 때가 온 거야.”
“…….”
를르슈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트 오브 제로로써 지냈던 지난 4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각이 너무 많이 들다 못해서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스자쿠는 눈을 질끈 감고서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뭐야, 그게.”
고작 하는 말이 이런 말이라는 게, 스자쿠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의 속내를 알고 있는지 시선을 더 이상 맞추지 않았다. 어깨를 감싸준 스자쿠의 담요를 걷어내면서, 를르슈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돌아오는 내 생일에는 너의 해임 소식을 알릴 생각이야. 구시대적인 기사 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브리타니아 제국을 만들 거다.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제 대화를 통한 방법으로 브리타니아는 바꿔나가야 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흘러가는 그의 말들 속에서, 스자쿠는 를르슈가 자신을 오래 전부터 밀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번지르르한 를르슈의 말들은 계획적이었고, 스자쿠가 끼어들 틈 같은 건 없어보였다.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은 또 다시 스자쿠였다. 일어나려는 를르슈를 붙잡은 스자쿠는 초조함을 감추지 않고 를르슈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랑 헤어지겠다는 거야?”
“…이별은 원래 힘든 법이지. 특히 너와 나 사이는 더더욱.”
“를르슈!”
“마음대로 불러.”
“너는 정말, 네 맘대로…!”
안 이을거지만,,, 그냥 올려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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