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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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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s Well That Ends Well

DOZI 2026.02.26 16:28 read.108 /

고등학생이란 참으로 단순했다. 평소와 같은 학교에서 평소와 다른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버리고 마는 고등학생은 얼마나 단순한가. 그 단순한 고등학생 를르슈 람페르지는 축제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은 차치하고,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응원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미안해! 람페르지만 괜찮다면 쿠루루기를 빌리고 싶어!”

 

다리가 부러진 응원단장은 발목을 짚고서 겨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옆에 서있던 스자쿠는 어색한 표정으로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를르슈는 이 선택의 순간에 결정적인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더 허탈해졌다.

축제를 좋아하는 미레이 애쉬포드가 이번에는 옆학교와 연합 축제를 열겠다고 한 것이 세 달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세 달 후, 연합 축제가 열리면서 두 학교 간의 대항전 같은 것이 이벤트로 선정되었다고 했다. 사흘 동안 열리는 축제 기간동안 축구, 농구, 야구와 같은 간단한 구기대회와 응원전도 열린다는 것 정도는 이벤트를 주도하는 학생회인 를르슈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축제의 첫날에 응원전을 주도하는 응원단장은 다리가 부러진 꼴로 나타났다. 응원단장은 어색하게 발목을 짚은 채로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스자쿠를 빌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자쿠가 그 이전부터 응원단의 일을 도와줬기 때문에 응원단장의 안무는 급하게라도 외울 수 있는 인재라는 이유였다.

학교의 자존심이 걸린 응원전에서 응원단장의 부재는 컸다. 모든 학생들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으니 급한 대타로 스자쿠가 나서주는 게 응원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그래서 스자쿠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니, 스자쿠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를르슈 허락이 필요해.’ 라고.

그리하여 이 응원단장은 를르슈 람페르지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었다. 를르슈는 불타는 속과 다르게 겉으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왜 내 허락이 필요한거지? 스자쿠가 하고 싶으면 하면 돼.”

“정말로? 근데 를르슈는 나랑 축제 내내 데이트하고 싶어했잖아.”

 

스자쿠 네 녀석, 알면서 그런단 말이지!

그렇다. 를르슈는 아무렇지 않게 허락을 내렸지만 실상은 스자쿠와 축제 내내 데이트를 하고 싶어했다. 연합 축제로 성대해진 만큼 일손이 많이 가는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학생회인 스자쿠와 를르슈는 근 한 달동안은 주말도 반납해가면서 일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달린 대가로 축제기간에는 오프를 얻은 두 사람은 여유롭게 축제를 즐길 생각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와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미리 다 정리해둘 정도였다. 귀신의 집이나 연극, 상영회 같은 것도 기대가 되었다. 조금 조잡하고 어리숙해보여도 단순한 고등학생에게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런 를르슈를 알고서도 스자쿠는 그런 것이다. 애당초 스자쿠가 잘 거절했다면 를르슈에게 이런 불편한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다시 한 번 확실한 허락을 구했다.

 

“정말 괜찮아? 나 응원단장이 되면 사흘 내내 계속 연습만 해야 돼. 를르슈랑 축제도 못 즐겨.”

“…학교의 명예가 걸려있는 일이 더 중요하잖아. 어쩔 수 없지.”

“진짜? 진짜 괜찮아?”

“괜찮다고 하잖아!”

 

가서 확실하게 애쉬포드의 명예를 드높이고 오너라! 를르슈의 고함에 응원단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람페르지 말대로 우리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스자쿠는 떨어지는 허락에 를르슈를 잠시 말없이 쳐다보았다. 를르슈는 그의 알 수 없는 시선이 신경쓰였지만 이내 모른척 했다. 시선을 피하는 를르슈에게서 눈을 뗀 스자쿠는 응원단장의 옆에 섰다.

 

“좋아, 를르슈도 허락했으니까 나도 열심히 할게.”

“두 사람 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을게!”

 

그렇게 스자쿠의 얼굴을 본 것이 이틀 전이었다.

스자쿠는 매일 아침마다 ‘응원단 연습 때문에 일찍 갈게.’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혼자 남은 를르슈는 오프를 받았던 축제 기간에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미레이는 일손이 부족했는데 잘됐다는 이유로 를르슈의 복귀를 환영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까지 학생회실에서 축제에서 생기는 긴급한 사안들을 파악하며 지시를 내리는 일만 하다가 끝난다는 건 꽤나 속이 상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축제의 마지막 날인 오늘, 응원전이 있는 저녁의 무대에서 스자쿠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자쿠는 이틀 동안 점심시간도 응원단과 함께 했기에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 나를 버리고 선택한 그 응원단장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어. 를르슈는 오늘도 출근한 학생회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있을 때였다.

 

“부회장, 큰일이야!”

“…무슨 일이지?”

 

를르슈는 오늘도 쉬지 않고 ‘큰일이야!’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사건은 이러했다. 코스프레 카페를 열고 있는 2-D에서 집사 코스프레를 해줄 남학생 한 명이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접객이 어려워졌다. 그 남학생은 근 이틀 동안 화려한 언변으로 스자쿠와 를르슈 정도의 교내 인기는 아니었지만 코스프레 카페를 근근이 먹여살릴 정도였다. 미리 집사 남학생을 지명하길 원한다면 예약금 제도를 만들고, 그래서 선금도 받아놓았고, 그 선금을 미리 써버려서 환불도 어려운 와중에 남학생은 다리가 부러진 것이었다.

아니, 다리 부러지는 게 무슨 유행이야?! 를르슈는 그렇게 소리 치고 싶은 걸 겨우 참으면서 안타깝지만, 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학생회는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야. 미리 돈을 낸 예약자들한테는 잘 설명하고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

“어머, 듣고 있자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

“회장님?”

“안 되겠다. 부회장이 나서서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네?”

 

이틀 동안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던 미레이가 학생회실에 나타나더니, 를르슈를 그 2-D에 보내버린 것이었다. 인지상정이라면 를르슈를 지금 당장 스자쿠의 옆에 보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 거냐고, 를르슈는 그렇게 대꾸할 새도 없이 2-D에서 집사 코스프레를 하게 되었다.

 

“어서오세요, 아가씨, 그리고 도련님.”

“우와, 진짜다! 부회장이 집사라는 게 진짜였어!”

“어제 미리 예약하길 잘했어!”

“자리는 이쪽으로 준비해두었습니다.”

“저 너무 영광이에요, 부회장.”

“저를 부회장이 아니라 집사로 편하게 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젠 자포자기가 되어버린 를르슈는 집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렸다. 30분 단위로 예약되어있는 손님들에게 의자를 빼주고 차를 따라주고 과자를 내어주는 일은 지겨우면서도 썩 나쁘진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에 대해서 계속 긴장하면서 전화를 기다리는 일 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니 자신을 버리고 간 스자쿠에 대한 분노도 잊을 수 있었다.

 

“앗! 뜨거워. 아파라…. 잔까지 뜨거울 줄은 몰랐어.”

“데이셨나요? 이런,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아, 부회장.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면서 손을 나한테 내미는 건 뭐지? 를르슈는 의아했지만 성실하게 그녀의 손을 봐주었다. 화상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이고 나면 여학생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곧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를르슈의 등판으로 매출은 하늘을 찌르고, 다 팔리고 팔려서 더 이상 내릴 원두가 없으니 커피를 내올 수 없다는 말을 해도 팁이라면서 를르슈에게 커피값을 쥐어주고 갔다.

를르슈가 데였다고 하면 손을 잡아준다는 이야기에 남녀 할 것 없이 다들 뜨거운 찻물을 제 손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를르슈는 갑자기 늘어나는 화상 환자들 때문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성실하게 약을 발라주러 다녔다.

모든 판매가 끝나는 오후 4시. 마감을 알리고 나면 모두들 고생했다면서 를르슈에게 박수를 보냈다. 부회장 덕분에 우리 반이 매출 1위였어! 그거 참 잘 됐군…. 를르슈는 집사복을 벗으려고 할 때였다.

 

“우리 부회장이 일을 잘했다면서? 어디 보자~ 어머, 루루쨩. 정말 잘 어울린다!”

“…회장님 덕분에 좋은 경험 했습니다.”

“이대로 부회장으로 복귀시키는 건 아쉽잖아.”

“하나도 안 아쉬운데요?”

“난 아쉬우니까 이대로 입고 돌아다니기로 결정!”

 

미레이가 찾아와서 옷을 갈아입으려던 를르슈를 끌어냈다. 를르슈야말로 애쉬포드의 명물이자 자랑이지! 이대로 축제 마지막까지 즐기는 거야! 미레이의 제멋대로인 말에 를르슈는 무어라 한 마디를 보태려다가, 주변에서 호응하는 것에 그냥 밖으로 나오고 말아버렸다.

반나절 동안 입은 집사복 차림은 꽤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교복보다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돌아다니다가 눈치껏 교실로 돌아가서 교복으로 갈아입어야겠다. 스자쿠의 무대 전에 빨리 갈아입어야지, 하는 작전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후 4시 50분이 되자 를르슈는 2-D 교실로 돌아갔다. 다들 무대가 설치된 운동장 쪽에서 모여있느라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응원전 무대는 5시 30분부터였으니까 를르슈도 옷을 갈아입고 슬슬 자리를 잡으면 될 듯 했다.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를르슈는 바로 하교할 수 있도록 학생회실에 두고 간 가방까지 챙기기로 했다.

그렇게 학생회실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를르슈는 5시가 되면 학생회가 있는 클럽하우스는 모든 문이 잠기고 전기가 꺼지는 소등상태가 된다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거짓말이지?! 문이 잠긴 학생회실을 보면서 를르슈는 믿을 수가 없었다. 미레이도 일찌감치 짐을 챙겨서 나간 것인지 가방은 를르슈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밖에서 잠긴 학생회실을 열어주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었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스자쿠한테 연락해야… 아, 곧 있으면 무대가 시작할 시간이잖아. 젠장.”

 

를르슈가 갇혔다고 연락하면 스자쿠는 무대를 내팽개치고 를르슈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뛰어올 것이다. 그러면 기껏 연습한 응원단의 무대는 망치게 되는 것은 틀림없었다. 를르슈는 휴대폰을 쥐고 있다가 그냥 화면을 꺼버렸다. 무대가 끝나고 난 뒤에 연락해도 늦지 않아. 오늘 안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

 

“스자쿠가 하는 무대,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운동장 쪽에서는 큰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 조명도 화려하게 비추고 있는 그 모습에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의자에 앉아서 지루한 온라인 체스 게임이나 해야 한다는 게 서글펐다. 이내 폭죽 같은 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무대 중간에 폭죽도 터뜨린다고 계획에 있었지. 예정대로였다면 스자쿠랑 그 무대를 같이 보았던가, 아니면 스자쿠가 하는 그 무대를 혼자서라도 보던가 했을 것이다.

평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스자쿠의 응원단장복도 보고 싶었다. 화려한 프릴이 달린 옷을 입고서 열심히 춤을 추는 스자쿠 같은 건 보기 드물잖아. 재미있을 것 같고. 스자쿠는 그런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시키면 열심이니까 또 잘할 게 분명하잖아.

를르슈는 의욕 없이 온라인 체스 게임 어플을 서너 번 켰다가 끄는 것을 반복했다. 노랫소리와 함성소리가 계속해서 울리는 밖이 부럽고 질투가 났다. 이제 곧 불꽃놀이도 하겠지. 그때 쯤에서야 스자쿠도 옷을 갈아입을 테고…. 불꽃놀이도 못 보는 건가?

바깥에서 들리던 음악의 멜로디가 결이 바뀌었다는 것이 느껴질 무렵이었다.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면서 책상에 기댄 몸을 뒤틀었다. 엎드린 채로 시간을 보내는 건 지루했다. 

심심풀이로 스자쿠와 줄곧 나누었던 메시지 대화를 살펴보던 중에 스자쿠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바로 읽음 표시가 뜨는 것에 스자쿠는 연달아서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야?]

[오늘 무대 못 본 거 같던데.]

[를르슈가 안 보여서 속상했어.]

 

스자쿠가 속상한 만큼 를르슈도 속상했다. 를르슈는 솔직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슬슬 끝날 무렵이구나, 싶었다. 무대가 있는 운동장에서 클럽하우스까지 오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테니까… 불꽃놀이도 끝날 때 쯤에 와주겠군. 아쉬운 마음은 더 커졌다.

 

[학생회실이다.]

[갇혔어.]

[그래서 네 무대를 못 봤어.]

[미안.]

[보고 싶었는데.]

 

스자쿠도 금방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짧은 답장이 왔다. ‘금방 갈게.’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다릴게, 하고 답을 하고 나면 기운이 빠졌다.

금방 올 수는 없겠지. 옷도 갈아입고, 사람들이랑 인사를 하고 나오겠지. 그 고지식한 녀석이라면 말이야. 를르슈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계속 잠겨있던 학생회실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를르슈!”

“스자쿠?! 벌써 왔어?”

 

스자쿠였다. 화려한 응원단장복을 입고 나타난 스자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를르슈의 앞에 서있었다. 오른손에는 학생회실을 여는 카드키를 들고 있는 채로, 그는 급하게 달려온 듯 싶었다. 그리고 를르슈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

 

“왜 일찍 연락 안 했어?!”

“왜냐니, 너, 무대 해야 하니까….”

“그 무대도 를르슈가 안 봐주면 소용 없잖아!”

“…그럼 네가 처음부터 거절하면 됐던 거 아니야?!”

“난 를르슈가 거절해줬으면 했거든?!”

“왜 남한테 떠넘기는 거야!”

“를르슈야말로 남한테 휩쓸려서…!”

 

서로 화를 내면서 씩씩거리다가 노려보기를 반복하고, 그러다가 숨을 고르고 나면 먼저 웃어버리는 건 를르슈였다. 후하하, 하고 웃어버리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당황했다. 웃어버린 를르슈는 지금 상황이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엔 서로 원하는 건 같았는데, 말을 안 해서 또 이 모양이잖아. 를르슈는 스자쿠의 옷소매를 끌어보고서는 키득거렸다.

 

“그래서 지금 그 꼴로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뭐 어때, 를르슈가 긴급상황이었잖아.”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자. 곧 있으면 불꽃놀이도 하잖아.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을 잡으면서 갇혀있었던 학생회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고 불이 꺼진 클럽하우스는 아늑할 정도의 어둠이었다.

 

“뭐였더라, 미레이 회장님 말로는 불꽃놀이가 30분 정도 늦어진댔어. 뭐 프로그램 오류가 있다고 그래서.”

“운이 좋네. 같이 불꽃놀이도 보고.”

“내 무대도 봐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 진짜 열심히 했거든. 를르슈가 날 버리고 갔지만 봐준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열심히 하고 싶어서.”

“뭘 버리고 갔다는 거야….”

“축제 때 를르슈랑 계속 데이트할 줄 알았으니까 그렇지.”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근데 네가……. 아냐, 됐다.”

 

를르슈는 제 손을 잡고 이끄는 스자쿠가 어딘가 눈이 부신 느낌이었다. 평소보다 화려한 의상 때문인가, 파란색이 워낙 잘 어울리는 녀석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왕자님 같은 옷도 잘 어울리잖아. 를르슈는 어두운 와중에 달빛에도 반짝반짝거리는 스자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 말아버렸다.

스자쿠가 반짝반짝거리는 이유는 자신이 스자쿠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돼. 너무 낭만적인 이유잖아. 를르슈가 걷는 속도가 느려지자, 스자쿠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왜 멈춰?”

“지금, 뭔가 타이밍이 좋아.”

“무슨 타이밍?”

 

그러자 스자쿠가 갑자기 입술을 들이댔다. 를르슈는 익숙하게 저와 입을 맞추기 시작하는 스자쿠의 키스에 습관처럼 입을 벌렸다. 깊게 파고드는 혀를 삼키고 흐르는 신음을 참으면서 스자쿠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습관이 될 정도로 키스를 많이 했는데도, 매번 할 때마다 귓가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다. 퍼엉, 퍼엉,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들렸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뒤로 퍼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을 보면서 넋을 놓고 있게 되었다. 입술을 뗀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활짝 웃어주면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밖으로 향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건 내 장르가 아니라고 했을 텐데! 를르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자쿠를 뒤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스자쿠의 달리는 등을 보던 를르슈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축제 마지막 날, 성공적인 불꽃놀이 앞에서 키스도 하고, 이렇게 데이트를 했으니, 이제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