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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쿠의 자취

DOZI 2026.06.15 16:27 read.137 /

쿠루루기 스자쿠가 살고 있는 자취방은 낡긴 했어도 방음이 잘 되는 아파트였다. 근처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주로 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 스자쿠는 1학년 2학기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본가에서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스자쿠는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독립과 동시에 집안에서의 원조도 끊기고 스자쿠는 조금 각박한 생활이지만 썩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취를 한다는 것은, 본가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빨래를 한다거나 요리를 한다거나, 기본적인 의식주를 지키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자쿠는 독립한지 한달이 되던 해에 포기할 것은 깔끔하게 포기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가 제일 먼저 포기한 것은 의식주 중에서 ‘식’이었다. 먹는 건 대충 먹어도 돼. 하지만 사람 꼴은 하고 다니자. 스자쿠는 식비가 다소 들긴 하지만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집에서는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귀찮아했다.

그런 스자쿠의 자취생활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아버지 말고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스자쿠의 남자친구인 를르슈 람페르지였다. 스자쿠와 다르게 생활력이 강한 를르슈는 스자쿠가 집에서 요리하는 것보다 밖에서 사먹는게 싸다고 이야기했을 때, 진심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스자쿠에게 돈 낭비도 낭비이거니와, 외식 생활은 쉽게 건강을 해친다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스자쿠가 요리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웬만한 사람 만큼의 요리를 할 줄 알았고, 건강에 대한 상식 정도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를르슈처럼 철저하게 지킬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스자쿠의 자취 첫 한달 동안 식비가 생활비의 50%에 육박하는 것을 본 를르슈는 긴급선언을 했다.

 

“너 그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어. 밥은 내가 해줄게.”

“뭐?”

“그렇게 먹었다가는 영양불균형으로 일찍 죽는다고!”

“그건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야?”

 

스자쿠의 자취방 근처에서 장을 실컷 보고 온 를르슈가 소금, 설탕, 간장… 이런 조미료들을 부엌에 부지런히 줄을 세우고, 기본적인 찬거리로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냉장고 턱턱 집어넣고 있을 때였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사랑이 느껴져서 좋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많은 식재료들을 썩히고 버릴 것을 생각하면 아까웠다. 하지만 가만히 있었다. 를르슈에게도 이런 쓸모 없는 노력은 필요없다고 깨닫게 해야 했으니까.

 

“먹는 건 중요하지. 그런데 생활비의 50%가 식비라면 그건 좀 문제야. 엥겔 지수가 폭주하는 수준인데 걱정이 안 될리가 없잖아.”

“걱정해도 내 돈인데 뭐.”

“네 돈이라서 더 걱정하는 거야. 너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응?”

“결혼 자금 모을 생각은 없어? 너 웨딩홀 대관하는 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알아? 내 계획상으로 25살에 결혼식을 올리려면 우리는 지금부터 모아도 모자라다고!”

“결… 결혼?”

 

스자쿠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를르슈와 영원히 결혼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스자쿠는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결혼 자금 모으기 대작전’을 세우는 를르슈의 말을 경청했다. 앞으로 식비를 경제적인 규모로 줄이고, 한달에 조금씩이라도 적금을 부어서 결혼 자금을 만드는거야. 를르슈의 원대한 계획 앞에서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위해서 도시락 통도 사주었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챙겨주긴 할 테지만, 너 스스로도 도시락 쌀 줄 알아야 돼. 알겠어? 를르슈의 되묻는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가 자취를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1학년 1학기에 를르슈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 뒤에 스자쿠는 극적으로 사귀게 되었다. 캠퍼스 커플이 되어 서로 손을 잡고 교정을 거니는 것 정도는 귀여운 일이었지만, 스자쿠를 집까지 데려다주던 를르슈가 너무 귀여워서 집앞에서 잡아먹을 듯이 키스를 하다가 그만 스자쿠의 아버지에게 걸려서 스자쿠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신 처분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시키는대로 잘했던 스자쿠가 게이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정신병원에 넣을지, 아니면 동성애 치료 캠프에 보내야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 사이에 스자쿠는 이제까지 모아온 돈을 들고서 자취방을 구했다.

스자쿠의 탈출이자 독립에 를르슈는 처음엔 눈물을 머금고 반대했으나, 이내 스자쿠를 그렇게 만든 것은 본인이라는 생각이 있는지 너를 책임지겠다며 영원을 약속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자쿠 돌보기를 열심히 하고 있던 를르슈의 노력에, 스자쿠는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아무튼 스자쿠의 의식주 중에서 제일 먼저 포기했던 ‘식’이 바로 잡힌 뒤부터, 를르슈는 스자쿠를 훌륭한 한 명의 성인 어른으로 육성하는 것에 주력했다. 너는 키우는 맛이 있어. 스자쿠에게 가계부 쓰는 법을 알려주던 를르슈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동갑내기 를르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묘했지만, 스자쿠는 대충 대꾸했다. 를르슈도 개발하는 맛이 있어. 그 말에 수치심 버튼이 눌린 를르슈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입술로 틀어막은 스자쿠는 솜씨 좋게 를르슈 개발에 착수했다.

아무튼 스자쿠 육성도, 를르슈 개발도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는 때였다.

 

 

 


이을지 말지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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