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를르슈 람페르지에게는 열 살 연상의 남자친구가 있다. 이름은 쿠루루기 스자쿠, 나이는 서른 살, 직업은 평범한 회사원인 그 남자는 를르슈의 남자친구로 사귄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보통의 부모님이라면 자신의 아들이 17살 때부터 동성 연인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를르슈의 부모님은 ‘오히려 스자쿠 군이라면 믿을 수 있지’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들에게도 스자쿠와의 관계를 밝혔을 때, 다들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해주었다.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 받은 관계라는 안정감 속에서 를르슈의 연애는 순풍만범이었을 터이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를르슈 람페르지는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인이 되었으니 스자쿠와 같이 살고 싶다고 은근히 내색을 했으나, 스자쿠는 그것을 일부러 모르는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를르슈가 살 아파트를 같이 구하고 집을 보러 다니기까지 해주었다. 연차까지 쓰고서 를르슈와 함께 다녀주는 것에 를르슈는 기가 죽어서 같이 살자고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하고 결국엔 부동산 계약을 맺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자쿠가 연인관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를르슈의 대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스자쿠는 그동안 오래 기다려왔다면서 를르슈를 보란듯이 따먹은 것이었다. 를르슈는 처음 하는 섹스가 너무 좋아서 무서울 지경이었고,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를 귀여워하면서 그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불만이었던 ‘다음 단계’에 대한 욕망까지 해소되고 다면 를르슈의 연애는 이것 이상으로 순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풍만범에 순탄할 연애가 흔들리게 된 것은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뭐야, 그건?”
“아, 지난주 주말에… 지노랑 사귄지 100일이었거든. 기념으로 커플링 맞췄어.”
“100일 기념으로 커플링을?”
“왜, 뭔가 불만이라도 있어?”
카렌의 왼손 약지에 걸린 은색의 반지를 보고서 를르슈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니, 불만은 없어. 그냥 신기해서. 카렌도 그런 거 신경쓰는구나. 를르슈의 반응에 카렌은 버럭 화를 냈다.
“나, 나도 사실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노가 하고 싶다고 하잖아! 그래서, 뭐, 어떡해…? 그냥 해야지.”
“흐음, 카렌은 의외로 분위기에 휩쓸리는구나.”
“너한테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
100일 기념인데 커플링을 하는구나, 요즘 애들은. 를르슈는 그런 감상으로 카렌의 커플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를르슈도 한창 ‘요즘 애들’이었다.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요즘 애들’이 아니어서 그렇지.
그러나 저러나, 카렌은 반지를 쳐다보고 있는 를르슈의 시선에 부끄러운지 왼손을 가리면서 한마디 했다.
“를르슈야말로 사귄지 꽤 됐으면서… 네가 반지가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카렌은 를르슈의 남자친구를 알고 있었다. 아마 부끄러움을 덜어내기 위해서 툭 던진 말이었겠지만, 를르슈는 그 말에 뭔가 큰 충격을 받은 기분이었다. 사귄지 꽤 되었고, 반지가 없는 게 이상한 수준이라는 보통의 인식에 대해서 를르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상하긴 한가? 를르슈는 자신의 텅 비어있는 왼손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스자쿠가 잡아줄 때면 약간 낮은 체온에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가 손 안에 착 감기는게 좋다고 말해줬던 그 왼손이 오늘따라 비어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반지 하나 선물해주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인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날 카렌과의 대화는 흐지부지로 끝이 났다. 를르슈는 자취하는 아파트로 돌아와서 노트북을 켜고 한참동안 커플링을 검색했다. 과제를 할 때보다 더 꼼꼼한 자료조사를 하면서 커플링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보통 사귄지 1년이 넘으면 커플링을 맞추는군….”
스자쿠와 를르슈의 연애는 이제 3년을 넘겼다. 보통의 1년을 넘겼을 때에,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커플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마… 전 여자친구들이랑은 했을 게 분명한데도. 를르슈는 이를 부득 갈면서 마우스를 꽉 움켜쥐었다.
스자쿠를 알고 지낸지는 20년. 태어났을 때부터 옆집에 살고 있던 스자쿠와 사귀게 된 것은 3년 밖에 되지 않은 이유는 다름 아닌 스자쿠의 방황 때문이었다.
스자쿠를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으로 여기고 있던 를르슈와 다르게, 스자쿠는 를르슈를 좋아했지만 그가 어리다는 이유로 몇번이고 거리를 두었다. 그때마다 또래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대체로 오래 가지 못한 관계였다. 매번 를르슈를 우선하는 스자쿠에게 여자친구들은 질려서 떠나갔다. 스자쿠가 이별을 반복할 때마다 를르슈는 안심했지만,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오는지 몰라 불안한 나머지 어느날은 스자쿠를 붙잡고 울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왜 스자쿠는 를르슈를 좋아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냐고. 그날 스자쿠는 를르슈를 품에 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고, 연애의 방황을 마치고서 를르슈에게 정착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사귀어왔던 여자친구들의 경험이 를르슈는 늘 불만이었다.
오늘도 그 불만이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듯 했다. 를르슈는 커플링을 끼고 싶지 않은 남자친구의 속내 같은 글도 읽어보면서 더욱 불만과 불안이 커져갔다. 커플링 같은 것을 끼고 다니면 괜히 귀찮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를 원천차단 당하는 것이 싫다는 어떠한 인터넷 게시글을 읽고서 를르슈는 분노했다. 커플링은 서로 좋아해서 맞춘 거면서, 왜 다른 사람을 만날 전제를 하고 있는 거냐고! 너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맞아?! 분노의 댓글을 달려다가 를르슈는 진정했다.
스자쿠는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굳이 그런 글에 흥분할 필요는 없었다. 를르슈는 노트북을 덮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면서 왜 나한테는 커플링을 맞추자고 이야기를 안 하지? 스자쿠 또래의 사람들은 커플링을 맞추는 게 유치한 일인가. 아니, 그래도 인터넷에서는 커플링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대부분 한다던데.
아니면 스자쿠가 진짜… 나와의 관계를 숨기고 다른 사람과 만나고 싶어서? 내가 너무 어려서?
그 생각에 도달하고 나면 를르슈는 우울해졌다. 스자쿠와의 10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어떻게 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었다. 를르슈가 아무리 어른인 것처럼 굴어도 스자쿠는 항상 를르슈를 귀여워할 뿐이었다. 그런 스자쿠를 좋아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멋진 어른인 스자쿠의 주변에는 를르슈처럼 어린애와 상대도 안될 멋진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처음부터 같이 살자고도 안 했고….”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리고 나면, 스자쿠는 를르슈와의 관계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닌가 싶은 결론으로 빠졌다. 같이 사는 것도 싫고, 커플링도 안 해주고. 물론 남자에게 남자친구란 존재는 공공연하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자타공인 인정한 커플인데….
침대에 드러누운 를르슈는 이불을 꼭 말아쥐면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런 우울한 생각 그만하고 싶어. 를르슈는 이제 사춘기도 아니면서 어째서 이런 걸로 불안해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정말 어린애마냥 투정부리는 거나 다름없잖아. 스자쿠가 싫어할지도 몰라.
스자쿠가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다시 한 번 새기고 나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닦아내고 나면 괜히 억울해졌다. 커플링 같은 거 없어도 스자쿠는 나를 사랑해주는데, 왜 이런 걸로 화를 내고 있는 거지? 를르슈는 눈을 질끈 감고서 커플링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를 썼다.
“무슨 일 있어, 를르슈?”
“응?”
“오늘따라 말이 없네.”
커플링 생각을 하며 보냈던 평일이 끝나고, 주말이 되었다. 직장인들이 쉬는 주말이 되면 스자쿠는 를르슈와의 미뤄두었던 데이트를 하겠다며 차를 끌고 나섰다. 드라이브 하러 가자. 를르슈의 아파트 앞까지 데리러 온 스자쿠는 를르슈를 태우고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내를 빠져나가고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면서, 를르슈는 음악을 선곡하는 것도 지겨워졌다. 대신에 스자쿠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럼에도 이상했던 를르슈의 반응을 살피던 스자쿠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를르슈에게 물었다. 를르슈는 아무 일도 없어, 라고 말하면서 스자쿠의 시선을 피했다. 딱히 무슨 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날들은 카렌의 커플링 빼고는 별 일도 없었으니까.
“무슨 일 있었구나. 시선 피하는 거 보니까 더 알겠어.”
“없었다고 말했지? 사람 의심하지 마.”
“거짓말 하는 건 나빠, 를르슈.”
“거짓말도 안 했어.”
를르슈는 자신의 손을 감싸오는 스자쿠의 손길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다정하게 잡아주면 를르슈는 또 쉽게 말해버릴 것 같았다. 어리고 졸렬하고 치졸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서, 스자쿠를 당황하게 만들고, 어이없게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 어린애 같은 모습은 이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뭐가 또 문제야?”
“아니라니까.”
“정말로?”
“그래. 그러니까 그만 물어봐.”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잡힌 손을 빼내면서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운전에 집중해. 나는 잘 거니까. 안전운전 하도록 해.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가 피식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 핸들을 잡는 스자쿠의 두 손을 시선으로 힐끔거린 를르슈는 커플링 생각을 했다.
저 왼손에 를르슈와 똑같은 한 쌍의 반지를 낀 스자쿠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가 스자쿠에게 ‘그 반지 뭐예요?’라고 물으면 ‘애인이랑 맞췄어요’라고 말하는 스자쿠가 보고 싶었다. ‘애인 있으셨어요?’라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를르슈에 대해서 대답하는 스자쿠. 자연스럽게 를르슈의 것으로 파악되는 스자쿠의 모습은 흡족스러웠다.
그러나 현실의 스자쿠는 그런 커플링도 없고, 를르슈의 것이라고 과시할 만한 것도 없었다. 누가 보면 그는 연애 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스자쿠가 직접 말로 꺼내지 않는 이상, 다들 스자쿠가 연인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를르슈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내 거인데, 왜 내 거라는 티를 안 내지?
“케이크가 별로야?”
“응? 아냐. 맛있어.”
“맛있는데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뭐 잘못 들어간 거 같이….”
“아니, 그건 아닌데…….”
드라이브를 하던 두 사람은 교외에 있는 커다란 베이커리 카페에 도착했다. 스자쿠가 회사 사람에게 추천 받았다는 카페였다. 주차장도 널찍하고 사람이 조금 북적거리긴 하지만 앉을 자리는 있었다. 케이크와 음료를 시켜서 한입 오물오물 먹고 있던 를르슈는 스자쿠의 왼손 약지가 비어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걸 표정에 드러낼 정도로. 그러나 스자쿠는 그런 속도 모르고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마음 편하게 먹어. 이제 곧 방학이지? 시험은 다음주까지라고 했던가?”
“맞아, 시험은 다음주에 끝나.”
“그럼 공부해야하는데 나랑 데이트하러 나온 거야?”
“그건 아냐.”
“억지로 나한테 맞출 필요없어, 를르슈.”
“아니라고. 공부는 원래 평소에 해두는 거고, 갑자기 몰아서 한다고 해서 효율이 오르는 것도 아니니까.”
“정론이긴 한데, 를르슈다운 말이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케이크 한 입을 먹여주었다. 포크 끝에 안정감 있게 실린 케이크 한 조각이 를르슈의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갔다. 생크림과 딸기 과육의 조합이 좋았다. 를르슈의 취향이었다. 스자쿠는 잘 먹는 를르슈가 보기 좋다면서 다시 한 입 사이즈로 케이크를 떠서 먹여줄 준비를 했다.
이거 너무 어린애한테 하는 거 아닌가? 를르슈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자쿠가 다음 한 입을 먹여주려고 내미는 것에 를르슈는 ‘내가 할게’라면서 스자쿠의 포크를 빼앗았다. 그리고 스자쿠가 미리 떠둔 한 입을 스자쿠 쪽으로 돌렸다. 내가 먹여줄래, 하는 시선으로 스자쿠를 바라보면, 스자쿠가 웃으면서 한 입을 받아먹었다.
이런 걸 보면, 스자쿠는 를르슈를 좋아한다.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이 달콤한 시선이 거짓말 같진 않아. 를르슈는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커플링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내가 먹여주니까 더 맛있어?”
“응. 를르슈가 먹여주니까 더 맛있네.”
“바보, 그럴 리가 없잖아.”
“아냐, 진짜 맛이 달라진다니까?”
스자쿠의 말은 능청스러웠다. 를르슈는 포크를 들고 다시 케이크 한 입을 떠먹여주고, 를르슈 스스로도 한 입을 먹었다. 맛은 방금 전과 똑같이 취향이었고, 좋았다. 이런 케이크를 파는 베이커리 카페를 일부러 찾아온 스자쿠의 센스가 돋보였다. 스자쿠는 항상 이렇게 를르슈를 위해서 준비해준다. 그것은 스자쿠보다 열 살이나 어린 를르슈가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 같았다.
스자쿠에게 한 입 먹여주기를 반복하던 를르슈는 이내 어떠한 생각에 다다랐다.
—그럼, 커플링도 내가 해주면 되잖아. 지금 케이크를 먹여주는 것처럼, 내가 직접 해주는 거면 스자쿠도 더 좋아할지도 몰라.
그 결론에 도달하고 나면, 를르슈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언제까지고 스자쿠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수동적인 자세야. 이젠 내가 스자쿠에게 커플링을 해주는 거야. 스자쿠에게 어린애가 아니고, 진작에 너와 같은 어른이 되었다는 걸 보여줄 기회야. 를르슈가 방금 전과 다르게 더 들뜬 얼굴로 케이크의 마지막 한 입을 먹여주는 것에, 스자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기대해라, 스자쿠! 네가 받으면 펑펑 울 정도로 감동적인 커플링을 선물해주마! 를르슈는 속으로 악당처럼 크게 웃었다. 하지만 스자쿠의 앞에서는 조신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홍차를 쭉 들이킬 뿐이었다.
| 공지 | <부활의 를르슈> 스포일러 있는 글은 * | 2019.05.12 |
| > | 30살 직장인 X 20살 대학생 | 2026.06.20 |
| 450 | 대표님의 남편이 귀여움 | 2026.06.18 |
| 449 | 스자쿠의 자취 2 | 2026.06.17 |
| 448 | 유유상종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12 | 2026.06.16 |
| 447 | 스자쿠의 자취 | 2026.06.15 |
| 446 | Off the record | 2026.06.14 |
| 445 | 69 스자루루 69 | 2026.06.09 |
| 444 | CAFE 下 1 | 2026.06.07 |
| 443 | CAFE 中 | 2026.05.30 |
| 442 | CAFE 上 | 202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