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쿠가 간과한 것은 를르슈의 실행력이다. 그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다.
스자쿠는 눈앞에 서 있는 슈나이젤을 보며 우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스자쿠의 사과에 슈나이젤은 웃을 뿐이었다. 이런 재미있는 일이 다 있나, 하는 웃음이었다. 스자쿠가 엉거주춤하게 팔을 올리면서 슈나이젤의 옷자락을 쥐었다.
“그, 그럼… 안겠습니다.”
“아아, 잘 부탁하지. 쿠루루기 경.”
스자쿠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제국의 재상 앞에서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숨을 흡, 하고 들이마시면서 스자쿠는 자기보다 훌쩍 큰 슈나이젤의 품에 안겼다. 슈나이젤의 부드러운 옷자락 사이에 어정쩡한 거리로 파고들고 있으면 긴장이 되었다. 스자쿠의 팔에 닿는 단단한 슈나이젤의 몸은 뻣뻣하기 그지 없었다.
“스자쿠, 형님을 더 꽉 끌어안아야지.”
“이, 이거 이상으로 더 밀착하기도 힘들어요, 를르슈 전하.”
“쿠루루기 경은 노력하고 있단다, 를르슈.”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를르슈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를르슈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스자쿠와 슈나이젤의 포옹을 지켜보는 와중에, 스자쿠는 최대한 침착한 자세로 자신의 변화를 느껴보려고 하고 있었다.
“어때, 스자쿠?”
“아… 네. 그냥, 뭐,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재상 각하.”
“그런가? 아쉽게 되었구나, 를르슈.”
그제야 스자쿠와 슈나이젤이 떨어졌다. 를르슈는 ‘아쉽게 되었다’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뭐, 스자쿠의 짝사랑을 응원하고는 있지만 만약 상대가 슈나이젤로 밝혀졌다면 그것은 좀 견디기 힘든 사실이라는 건 확실했다. 오히려 스자쿠가 ‘그냥 그렇다’라고 말한 것에 를르슈는 은근한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 를르슈의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이, 슈나이젤은 를르슈를 보면서 웃음을 참는 듯 했다.
“형님도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상부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그래, 그렇다면 나로써는 나쁘지 않은 거래였어.”
“스자쿠, 30분 있다가 코넬리아 누님과 유피랑 만나기로 했어. 형님을 배웅하고 나서 바로 다음 준비를 하자.”
“네, 전하.”
어제까지만 해도 아리에스의 모든 메이드들과 집사들을 모아놓고서 스자쿠와 강제 포옹을 시켰던 를르슈는, 오늘은 황족 포옹의 날로 명명할 기세로 자신과 친밀하게 지냈던 황족들과의 약속을 줄지어 잡아놓았다. 아침부터 클로비스를 대뜸 끌어안아보라고 하던 것에 이어서 방금 전에는 슈나이젤과의 포옹을 시켜놓고, 다음으로 코넬리아와 유페미아까지 대기시켰다는 것에 스자쿠는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이런 압박감 넘치는 포옹 속에서 어떻게 짝사랑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를르슈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인 듯 싶었다. 그가 한 번 마음 먹은 일에는 어떻게든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스자쿠는 코넬리아와 유페미아까지도 끌어안아봐야 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를르슈?”
“나쁘진 않잖아요.”
스자쿠와 떨떠름한 포옹을 마친 코넬리아가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는 듯한 얼굴로 를르슈에게 물었다. 를르슈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다음 차례인 유페미아를 손짓했다. 스자쿠는 실례합니다, 하고서 유페미아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도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저 부드럽고 따뜻하구나, 하는 기분만 들었을 뿐. 유페미아와도 별 일이 없었다는 것에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든 사람들이랑 다 포옹시켜 보죠! 길포드랑도 해보는 건 어때요, 스자쿠?”
포옹이 끝난 유페미아가 신이 나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길포드랑? 난데없이 스자쿠랑 포옹하게 생긴 길포드가 당황한 눈치였다.
“길, 길포드 경이랑도요? 길포드 경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전 절대로 그런 느낌을 못 느껴서요.”
“딱히 실례가 되진 않는다네, 쿠루루기 경. 오히려 그랬다면 더 곤란해.”
서로 강한 부정을 하는 것에, 를르슈는 오히려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서 갑자기 떠오른 혜안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네요…. 기사들끼리 포옹시켜 본다는 생각은 못해 본 것 같습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도 소집시켜서 스자쿠와 포옹을…!”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전하!”
“우선 제레미아도 불러야겠군.”
“아니라고요!”
를르슈를 겨우 말린 스자쿠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대체 언제까지 누구를 안아봐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오늘은 하루 종일 꽃을 토할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이 무섭기만 했다.
를르슈는 기어이 제레미아와 나이트 오브 라운즈 중에서 지노와 아냐, 비스마르크를 불러다가 포옹을 시켰다. 스자쿠는 아리에스와 제국에 헌신하는 최강의 기사들과 포옹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영광인지 치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지노가 웃으면서 스자쿠를 끌어안고서 와하하, 웃었을 때였다.
“그나저나 그런 병이 진짜로 있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 스자쿠가 그런 병에 걸리다니… 안타깝네요.”
전혀 안타깝지 않다는 목소리였다.
“근데 짝사랑하는 상대라고 무조건 두근거린다는 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 아닌가요? 같이 있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런 마음도 들지 않는 상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내 작전이… 일차원적이라고?”
“뭐, 연애라는 건 그런 거잖아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나 다름없으니까요.”
지노는 그렇게 말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는 비스마르크와 아냐를 따라 나섰다. 를르슈는 지노의 날카로운 지적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안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신데렐라의 구두 찾기 작전은 이론상으로는 완벽했지만 보이지 않는 변수들이 있었으니까. 지노의 말마따나 같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상대라면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컸었다.
이제야 조용해진 아리에스의 응접실에, 스자쿠가 정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메이드를 불러서 시키면 될 일을 스자쿠가 일일이 하고 있는 것에 를르슈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내 기사지, 메이드가 아니야. 스자쿠.”
“다들 바쁘고, 나는 지금 할 일이 없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네가 할 일은 많아. 아직 너가 안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음… 오늘은 그렇게 토할 기분이 들지도 않았으니까,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자가치유라도 됐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렇다면 좋겠는데.”
“아니면 오늘 포옹했던 사람들 중에서 네가 짝사랑 하던 상대가 있어서 괜찮아진 건 아니고?”
“그건 진짜 아니야.”
를르슈는 소파에 기대 앉으면서 오늘 내내 고민했던 것을 입에 올렸다.
“너의 가장 마지막 상대는… 나나리다.”
를르슈가 끔찍이도 아끼는 그 여동생의 이름이 나오자, 스자쿠는 올 것이 왔다는 기분이었다. 사실 를르슈와 같이 살고 있는 나나리의 포옹은 한참 전에 이루어져도 당연했지만, 아마 를르슈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계속 미루어 온 것이겠지.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나나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돌아오고 준비가 되는 대로 해보자고.”
각오를 다진 를르슈의 목소리는 늠름하게 울려퍼졌다. 스자쿠도 덩달아 긴장하게 되었다. 나나리를 한 번도 그런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는 것에는 진심으로 맹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나리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조금의 거부감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억누르고 모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스자쿠는 그녀를 안아봐야 하는 것이다.
를르슈는 나나리가 오는 대로 바로 포옹을 시킬 것처럼 굴어놓고서, 나나리가 오고 저녁을 먹고 서로 쉬는 시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나리는 스자쿠의 병세를 걱정하다가, 오늘은 하루 종일 괜찮았다는 스자쿠의 이야기에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녀의 미소에 스자쿠와 를르슈는 오늘 하루의 피곤이 잊혀지는 것 같았다.
“나나리.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단다.”
“뭔가요, 오라버니?”
“그… 스자쿠를 안아줄 수 있겠니?”
“…네?”
나나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저에게 부탁을 간청하는 오라버니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순진한 시선에 를르슈는 황급히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과 스자쿠를 포옹시켜 보고 있는데, 스자쿠가 좋아하는 상대라면 뭔가 보통의 상대랑 다른 변화가 있을 게 분명할 거 같아서 말이야. 오늘 어지간한 사람들과 다 해봤는데, 이제 네가 마지막이야.”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슈나이젤 형님부터 유피까지 모두 안아봤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든.”
“아아…….”
“나이트 오브 라운즈까지 불러봤는데 별 소득이 없었고.”
“그런…….”
나나리가 만약 스자쿠의 짝사랑 상대가 되면 어떡하나. 를르슈는 그 생각이 들어서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스자쿠의 병세는 심해지고 있었고, 나나리만 그의 짝사랑 상대 후보에서 제외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났다. 하지만 나나리가 스자쿠의 짝사랑 상대라면, 두 사람을 이어줘야 하는 것은 를르슈가 할 일이었다.
“근데 저라고 해서 스자쿠 씨한테 도움이 될까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자연스러운 나머지 두근거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뭐, 우선은 시도해봐야지.”
“스자쿠 씨는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아. 나나리한테 그런 감정은 전혀 갖고 있지 않고.”
“…그럼 안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 를르슈가 만족할 때까지 하는 거거든, 이거.”
스자쿠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팔을 벌렸다. 를르슈의 고집을 알고 있는 나나리도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와 나나리가 서로를 끌어안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에 를르슈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스자쿠가 나나리를 안고서, 평소와 다른 감정을 느낀다면… 그래서 스자쿠와 나나리가 연인으로서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된다면. 를르슈는 그런 가정에 도달하자 무언가 망설여졌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건가? 스자쿠는 나의 기사인데, 나나리에게? 아니, 나나리에게 주는 건 아깝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뭔가. 를르슈는 스자쿠와 나나리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고 빈틈없이 서로를 끌어안았을 때였다. 를르슈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그러면 장난을 치는 것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스자쿠와 나나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오라버니!”
“를르슈가 걱정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어, 안심해!”
“……딱히 걱정한 것도 없고, 안심할 일도 없어.”
를르슈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스자쿠와 나나리는 서로를 가볍게 끌어안고 떼어냈다. 나나리는 정말 작구나, 하고 스자쿠가 말하면 나나리가 울컥하면서 ‘더 클 수 있어요!’라고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를 냈다. 를르슈는 두 사람의 변함 없는 모습에 안심했다.
무언가가 불안하긴 불안했다. 만약 스자쿠와 나나리가, 두 사람이 서로를 선택한다면… 를르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스자쿠를 나나리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는 있지만, 아니, 사실 그것도 잘 못할 거 같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기사인데 어째서, 라는 불합리한 감정이 앞서고 있는 걸 겨우 억눌렀다. 스자쿠의 병과 나나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스자쿠의 짝사랑 상대가 나나리인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데도, 를르슈는 그게 너무 싫어서 눈까지 질끈 감아버렸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럼 이제 다 해봤으니까 자러 가도 되겠지?”
“아, 그렇군. 밤이 늦었으니까.”
“오늘은 일을 거의 안 했는데 를르슈는 괜찮아?”
“네가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겨우 감추고서, 를르슈는 태연하게 스자쿠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나리가 먼저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면서 방으로 들어갔고, 를르슈와 스자쿠는 를르슈의 침실과 그 옆에 있을 스자쿠의 침실로 향했다. 두 사람은 별 거 아닌 대화를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한 번도 토하지 않았네.”
“그러게. 너무 바빠서 병 기운이 돌 새가 없었나봐.”
“내일도 뭔가 시도해보자.”
“내일도? 아냐, 괜찮아.”
“왜? 혹시 모르잖아.”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아, 하고 입을 떼면서 스자쿠가 말했다.
“짝사랑 상대를 모르는 게 좋을 거 같아. 우선 나한테는 지금은 를르슈가 제일 중요하고… 짝사랑 상대가 진짜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우선하게 되는 건, 를르슈의 기사 실격이잖아.”
“…나 때문에 연애를 못한다고 말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뭐어— 비슷하다면 비슷한데, 사랑보다는 를르슈 옆에 있고 싶다는 이야기지.”
“딱히 나를 신경 써서 그런 거라면 필요없어.”
“그게 아니라, 방금 전에 나나리를 안아볼 때의 를르슈를 지켜보니까 더는 못하겠더라고.”
를르슈는 그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뭐가 못할 정도였다는 거지?
“를르슈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어.”
“뭐? 그 정도는 아니야.”
“근데 나도 생각해보니까 좀 그랬어. 를르슈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우선하게 되는 건… 솔직히 싫거든.”
“유치한 독점욕이다, 그건.”
“맞아.”
스자쿠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의 깔끔한 인정에 를르슈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랑을 하겠다고 해서 를르슈를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어.”
“…엄청난 우정이군.”
“하하, 나는 생각보다 를르슈를 많이 좋아하니까. 를르슈도 그렇지?”
를르슈는 그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스자쿠는 대답이 없는 를르슈의 볼이 발갛게 물든 것을 보고서 소리없이 웃었다.
를르슈를 먼저 방에 데려다주고, 스자쿠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를르슈와 종일 붙어있었던 하루는 오랜만이었다. 스자쿠의 병 때문에 고생하는 를르슈가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관심을 온종일 독차지 할 수 있는 것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나리를 안아보았을 때, 를르슈가 시선을 피하고, 울 것 같이 얼굴을 찌푸리던 그 모습이 계속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잃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니까. 스자쿠에게도, 를르슈에게도 씁쓸한 일이다. 만약 를르슈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스자쿠를 멀리하게 된다면, 스자쿠도 똑같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울어버렸겠지. 나는 쓸데없이 눈물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날이 영영 안 오는 것도 아니다. 를르슈는 언젠가 사랑을 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갑자기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토하고 싶은 느낌에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정도의 구역질이 올라왔다. 꽃잎이 목구멍을 긁고 입술 밖으로 튀어나왔다. 보랏빛이 깊어지다 못해 검게 보이는 그 꽃잎이 스자쿠의 입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꽃잎을 몇번이고 토해내던 스자쿠는 눈물까지 나기 시작했다. 꽃을 토해낸 것은 목구멍과 입술인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눈물에 젖은 꽃잎을 몇번이고 토해내고 나서, 스자쿠의 병세는 멈추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꽃들을 보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생각을 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 걸까. 이런 것이 짝사랑이라면 를르슈는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 를르슈는 계속 웃고 있었으면 좋겠으니까. 나의 곁에서 계속 웃고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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