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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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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oresque 1

2세 / DOZI 2020.11.13 21:13 read.467 /

2세물입니다~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와요! 

 

 

 

 

 

 

 

 

“쿠루루기는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세이류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세이류가 교무실에 불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매년 이 시기만 되면 세이류는 교무실에서 한참을 시달리다가 돌아와야만 했다. 교무실에서 하는 일은 간단했다. 진로희망서를 적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진로희망 부분을 적어내는 것이었는데, 세이류는 그 빈칸들을 채우는 것이 어느때보다 어려웠다. 

다른 문제의 정답을 맞추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하게 해치우는 세이류지만, 진로희망서는 매년 써도 답을 적어내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몇 년이나 더 반복해야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담임 선생님이 귀찮은 표정으로 텅 비어있는 진로희망서를 내밀었다. 

 

“너 작년에도 이랬다면서? 너 때문에 입력하는 거 늦어지고 있으니까, 그건 알고 있어라.”

“…죄송합니다.”

“죄송해 하지 말고. 내일까지 제출해.”

“네.”

 

세이류는 가방 안에 진로희망서를 반으로 접어 넣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밖에서는 운동부 사람들이 뜀박질을 하는 소리와 기악부 아이들이 음을 맞추는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세이류는 그런 소음들을 들으면서, 오늘따라 가방이 더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든 금방, 척척 해내는 세이류는 이런 곳에서는 영 감을 잡지 못했다. 특히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A가 B고, B가 C이면, A는 C이다. 이런 간단한 공식 같은 인생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D라는 변수는 곤란할 정도가 아니라 미울 정도로 싫었다. 

1학년 때는 선생님, 2학년 때는 공무원, 3학년인 올해는 뭐라고 적어야 할까. 

세이류는 한숨을 내쉬면서 ‘적당한’ 것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진로희망서의 빈칸을 채우기에는 모든 것이 역부족인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정답이 될 수 있을까. 늘 명쾌한 해답을 주는 부모님도 이 진로희망 관련으로는 전적으로 세이류에게 맡겨버린다.

다른 때에는 얼마든지 참견하면서, 왜 이거는 안 도와주는 거야. 세이류는 길목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툭, 하고 발로 차며 걸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내일까지 제출해야하는 종잇조각 때문에 돌멩이는 금방 다른 곳으로 튀고 말았다. 그리고 집앞까지 다다랐다.

세이류는 현관을 열었다. 집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그 전에 인사가 먼저였다. 세이류는 부엌까지 들리게 큰소리로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 * * 

 

세이류는 교복을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옆에서 그를 도왔다. 학교는 어땠어? 아버지는 요리를 하고 있는 손은 멈추지 않으면서 세이류에게 물어온다. 세이류는 접시를 나르면서 ‘으음’ 하고 말을 골랐다. 딱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던… 정확히 말하면 방과후는 조금 기분이 나빴던 것 같기도 했었다.

 

“진로희망서 빨리 내라고 잔소리 들었어.”

“아, 벌써 또 그 시기군. 올해는 뭐라고 적을 거야?”

“딱히…. 하고 싶은 건 없는데.”

 

아버지는 세이류의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해? 시선으로 대꾸하면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나도 너만할 때에는 그런 생각 자주 했거든.”

“아버지는 그럼 뭐라고 썼어?”

“연구원.”

“연구원? 무슨 연구원?”

“그냥 적당한 걸 생각해낸 거라서 크게 의미는 없었어.”

“그럼 나도 연구원 쓸래.”

“너는 좀 고민해.”

 

학생이었던 아버지가 적었을 진로희망서를 떠올렸다. 힘을 빼도 단정하게 획을 그리는 글씨로 연구원이라고 적었을 그 얼굴은 어땠을까. 세이류는 저녁 준비를 다 마친 식탁을 둘러보았다. 이제 퇴근하는 아빠만 기다리면 됐다. 금방 온대. 전화를 마치고 온 아버지의 말에 두 사람은 거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세이류는 가방 안에 넣어둔 진로희망서를 꺼냈다. 접힌 자국을 펼치면서, 이름을 먼저 적었다. 학생 칸과 학부모 칸이 나란히 비워져 있는 이 종잇조각은 심리적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다른 것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옆에 세이류는 달라붙었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아빠는 진로희망 뭐로 적었대?”

“글쎄….”

“아빠랑 아버지랑 언제부터 같이 알고 지냈다고 그랬지? 중학교?”

“고등학교.”

“음…. 그때도 아버지 꿈은 연구원이었어?”

“다른 거로 바꿨던 거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나. 의사였던가.”

“의사?!”

 

세이류는 반쯤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의사와 아버지. 정말 생각도 못한 조합이었다. 

 

“왜 하필 의사야?”

“성적 때문이지. 아무데나 들어가긴 아깝다고 억지로. 너는 그러지 마.”

 

별 거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평생 기록에 남는 거잖아. 후회를 하고 있는 듯이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세이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의사가 될 수도 있었구나. 정말 신기하다. 그런 감상을 품으며 다시 아버지의 어깨에 기댔다. 

 

“아버지가 의대 갔으면 아빠랑 못 만났겠네?”

“그렇겠지.”

“연구원, 의사, 또 뭐 있었어?”

“기억 안 난다니까….”

 

아버지는 정말 잊어버린 것처럼 세이류에게 말했다. 더는 이야기를 안 해줄 생각인 거 같았다. 세이류는 아빠가 오면 그는 진로희망서에 뭐라고 적었을지 꼭 물어보기로 했다. 뭔가 황당무계한 직업이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언제 오려나, 하고 기다리던 사이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활기차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옷을 갈아입고서, 저녁 밥상에 세 가족은 둘러 앉았다. 고픈 배를 맛있는 밥으로 채우고 있으면 금방 행복해졌다. 회사에서 말이야, 하고서 아빠의 이야기가 잠깐 이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되긴 했는데 또 내일 봐야 돼. 곤란한 일도 크게 무리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세이류는 어땠어? 아빠의 말에 세이류는 진로희망서 이야기를 했다. 이미 한 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도 다시 들어주었다.

 

“그래서 쓸 게 없어. 난 뭐가 되고 싶은건지 모르겠어.”

“아직 어리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데.”

“근데 내일까지 꼭 제출하랬어. 나 때문에 입력도 못하고 있대.”

“뭐라도 적어야겠네, 그럼.”

 

밥을 먹던 와중에 생각에 빠진 아빠의 모습에 세이류는 오늘밤까지만 생각해내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식사는 다시 이어졌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버지의 오늘 주식 장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짧막한 코멘트가 있었다. 아빠가 조금 질린 얼굴로 ‘또 이상한 거 하고 있네’ 라는 말을 했지만, 아버지는 못 들은 척 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아빠와 세이류가 설거지를 맡았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세이류는 아빠에게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아빠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내 꿈?”

“응. 아니면 진로희망서에 적었던 거.”

“어렸을 때면 진로가 정해졌던 때라…. 재미 없지만 정치인 같은 걸 적었지.”

“정치인?”

 

의사와 아버지 만큼 의외의 조합이다. 안 어울리지? 세이류는 아빠의 웃는 얼굴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중에 진짜 꿈도 생겼어?”

“응.”

“뭐였어?”

“를르슈랑 결혼하는 거. 애도 낳고 잘 지내는 거.”

“…….”

“꿈은 이루어진다!”

 

장난스러운 말투에 괜히 진지하게 받아치려던 세이류만 놀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세이류가 기분이 상한 것을 알아차린 아빠는 그제서야 다급하게 말을 붙여왔다. 

 

“아니, 뭐, 진지하게 말하면 있긴 있었어. 군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거도 하고 싶었고.”

“…진짜로?”

“응. 공부하는 거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는데.”

 

군인이나 운동선수.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잘하는 아빠를 떠올리면 그럴듯해 보였다. 마지막 접시까지 헹구고 싱크대의 정리까지 마쳤다.

거실에는 토끼 모양으로 사과를 깎아낸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어, 두 사람 다. 아버지의 왼편에는 아빠가, 오른편에는 세이류가 앉았다. 단내가 풍기는 사과를 한 조각 삼키고 나면, 잊고 있었던 진로희망서가 눈에 띄었다.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어보이면 아빠와 아버지가 작게 웃으면서 빨리 해치우자고 말했다. 

 

“세이류는 하고 싶은 거 없어? 세이류 취미가 뭐였지?”

“책 읽기, 음악 듣기.”

“좋아하는 건?”

“숙면?”

 

마지막 말에 아빠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낼 거에 숙면을 적을 순 없잖아.”

“안 적을 거야. 그냥 농담한 거야.”

“다행이다.”

 

아버지와 아빠는 서로에게 기댄 채로 세이류를 쳐다보았다. 빤히 쳐다보는 두 시선에 세이류는 펜을 손끝에서 굴릴 뿐이었다. 두 사람의 세이류를 보던 시선은 이윽고 서로에게 향하더니 마주보고는 웃고 말아버렸다. 아버지와 아빠의 사이 좋은 모습은 언제 봐도 기분이 이상했다. 두 사람은 세이류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한결 같은 모습이다. 

 

“웃지만 말고 도와달라니까.”

 

알겠어, 알겠어. 아버지의 느긋한 목소리에 아빠도 가세했다. 세이류는 예쁘게 생겼으니까 모델이나 연예인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아빠의 말은 농담인 것 같은데도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진심인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세이류가 한마디 하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면서 말했다. 모델도 나쁘지 않지. 아버지까지 놀리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세이류를 놀리는 아빠와 아버지의 모습에, 세이류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진로희망서에 ‘모델’을 휘갈겨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