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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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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ZI 2020.02.01 16:43 read.452 /

줄리어스X를르슈입니다

스자쿠X를르슈도 있습니다

이 글의 최종목표는

원홀투스틱 입니다 

 

 

 

 

 

 

 

 

를르슈가 우울해질 수 밖에 없는 연초였다. 바람과 같이 와서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어머니는 멀쩡한 이름 없이 이니셜만 대는 여자와 함께 동생들을 휩쓸고 가버렸다. 를르슈는 안 갈거니? 유로 브리타니아. 그들의 행선지를 듣는 순간 를르슈는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했다. 나나리와 로로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혼자서 집을 보기로 한 것은 자기 선택이었지만, 외롭고 우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엌에 서성거리다가도 일상적으로 3인분 이상을 만들었던 걸 생각하면, 1인분 몫만 따로 계산하는 건 왠지 서글펐다. 죽지 않을 정도만 먹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말라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을 때였다.

친구 겸 애인인 스자쿠는 집안 모임으로 교토로 돌아가고 있을 때라 를르슈의 울적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있기 때문에 기약 없는 기다림은 지겨웠다. 

를르슈의 생활 영역이 침대-화장실-침대로 굳어지기 직전에,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하고 인터폰을 드는 순간 를르슈는 굳고 말았다.

 

‘오랜만이네, 를르슈.’

“…네가 왜 여기 있어?”

‘추운데 들여보내주면 안 돼?’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흐음, 아무나 데리고 들어가도 상관 없지?’

“그래.”

‘그럼 를르슈 이름으로 같이 잘게. 그래도 돼?’

“적당히 해!”

 

결국 문을 열고 말아버렸다. 를르슈의 앞에는 저와 똑같이 생긴 얼굴, 차이점이라고는 화려한 안대 말고는 없는 줄리어스 킹슬레이가 서있었다. 한 손에는 묵직해보이는 캐리어가 있었다. 아예 작정을 하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뭐야, 그 짐은.”

“기숙사에서 쫓겨나서.”

“뭐?! 그럼 본국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로로랑 나나리가 와있다던데, 난 걔네 싫어.”

 

줄리어스의 캐리어를 질질 끌고 들어온 를르슈는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미간을 찌푸렸다. 줄리어스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너도 없는데 굳이 만날 필요도 없잖아.”

“기숙사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줄리어스가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는 유로 브리타니아에서도 유명한 명문 사립으로, 줄리어스가 입학하던 해부터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후원금을 매년 기부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줄리어스는 교내에서 거의 특별 취급 받고 있었지만, 본인은 싫어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제와서 쫓겨날 일을 저지를 이유도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풍기문란인데.”

“알고 싶지 않다.”

“궁금했으면서.”

“대답하라고 한 적 없어.”

“뭐…. 처녀야 예전에 버렸지만 동정은 아직까지 지키고 있으니 남자로써 정조는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줄리어스!”

 

를르슈의 기준에서 저속한 말을 망설임 없이 하는 줄리어스는 눈웃음을 지었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듯, 어깨를 으쓱거리다 코트를 벗었다. 묵직해보이는 코트 아래에 스웨터도 아닌 타이트한 터틀넥 민소매에 를르슈는 아연실색했다.

 

“왜? 하나 줄까?”

“…얼어죽어봐야 정신을 차릴까.”

“아쉽게도 여기가 유로 브리타니아보다 더 따뜻하네요. 차라도 내줘, 목 말라.”

“얼음 물이면 되겠지?”

“브리타니아 브렉퍼스트.”

“…….”

“를르슈가 좋아하는 거니까 늘 있지?”

 

결국 티 포트까지 데워온 를르슈는 하나 밖에 없는 쌍둥이 남동생을 위해서 홍차를 내왔다. 비교적 스자쿠 말고는 끓는점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줄리어스가 눈앞에 있으면 를르슈는 끓는점 이전에 온도계가 박살이 나버린다. 상상하자면 박살난 유리 파편 사이로 수은이 동그랗게 맺혀있는 기분이다.

비슷한 기분을 누군가에게서 느끼긴 했지만, 를르슈는 부글거리는 속내를 가라앉히며 찻잔을 줄리어스 쪽으로 들이밀었다.

 

“교내 불순 동성 교제로 쫓겨났어.”

“……안 물어봤는데.”

“그런데 새로 온 교생이랑 잘 때는 안 걸렸는데 왜 갑자기 걸렸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나 말고 꽤 귀여운 느낌에… 뭐랄까, 쿠루루기 스자쿠 같은 느낌의 남자애랑 하던 중이었는데.”

“야!”

“들어봐, 를르슈. 심각해.”

“네가? 아니면 내가?”

 

남동생이 형의 애인과 비슷한 사람과 하던 중이었다는 걸 들은 를르슈의 머릿속은 사고를 포기했다.

 

“내가 넣으려고 하니까 날 신고하더라고.”

“뭐?”

“너무하지 않아? 나한테 박을 땐 신나게 하고, 내가 하려니까. 아무튼, 신고 당했더니 기숙사에서 쫓겨났어. 마치 벼르고 있던 것처럼.”

“…….”

“아마 안 대줘서 그런걸까?”

“뭐가 널 그렇게 만들었는지….”

 

깊게 한숨을 쉰 를르슈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우울함과 지루함 끝에 찾아온 게 줄리어스라는 것이 서글펐다. 스자쿠 말고는 다 필요 없다는 협소한 인간 관계의 끝이 이 꼴이라면, 올해부터는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

줄리어스는 남는 손님 방에서 머물 생각이라고 했다. 를르슈의 방이면 더 좋은데. 를르슈는 멀쩡히 남는 방을 내버려두고 자기 방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방 정리 되면 부를 테니까 거기서 놀고 있어. 줄리어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테이블 위의 잡지나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침대 시트를 새로 갈고 나서, 가볍게 먼지도 쓸고 닦고 나면 땀이 났다. 를르슈는 약간 현기증이 도는 것에, 아직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줄리어스가 있으니 뭐라도 해먹어야 하겠지만.

 

“벌써 다 끝났어?”

“…보고 있으면 도와라.”

“내가 도와주면 맘에 안 들어할 거면서.”

 

자, 수고했어. 줄리어스는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를르슈가 알기로는 지금 집에 오렌지 주스는 없었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샀어.”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귀엽더라. 나보고 지난주에 푸딩 사갔냐고 물어보면서 번호 줬는데 연락해도 될까?”

“잘 마실게. 연락하지 마. 어차피 또 내 이름 댈 거잖아.”

 

오렌지 주스는 그저 오렌지 주스 맛이었다. 준 사람이 줄리어스여서 괜한 의심을 한 것 같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에 앉은 줄리어스는 좋네, 하고 가벼운 감상을 말했다.

 

“언제까지 있을 거야?”

“새학기 직전까지 여기 있지 않을까?”

“호텔 구해줘?”

“집 놔두고 왜?”

“내가 싫어.”

“를르슈 집 아니잖아.”

“지금 나밖에 없어.”

“그럼 다른 한 사람이 오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정해진다는건가? 민주주의 좋아해, 를르슈?”

 

를르슈는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물어보는 줄리어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쿠루루기 스자쿠랑 섹스 해봤어?”

“…쓸데 없는 소리 좀 하지마.”

"아마 를르슈가 아래였겠지. 키는 더 커도.”

“…….”

“아니, 쿠루루기가 더 키가 컸던가…? 하도 안 봐서 기억도 안 나네.”

“아직까진 내가 더 커.”

“그렇구나. 나랑은 어떨까?”

 

줄리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를르슈의 옆에 섰다. 서로 똑같은 얼굴에 다른 분위기라는 위화감에 를르슈는 시선을 피했다. 줄리어스는 를르슈의 정수리에 손을 얹으며 키득거렸다.

 

“나랑은 키가 똑같네.”

“기분 나빠.”

“누가 위였어? 를르슈? 아니면 쿠루루기?”

“왜 그 이야기가 나오는거야? 너한테 말할 이유는 없잖아.”

“피차 백 버진 잃은 사람끼리 수다 좀 떨자고.”

“…내가 깔렸다는건 이미 전제 조건인가?”

“아, 그럼 를르슈 아직 처녀야? 쿠루루기 스자쿠가 깔렸다고?”

“그만해!”

“그럼 처녀가 아니군.”

“남자가 어떻게 처녀야!”

“하긴, 논리적으로…. 알았어, 를르슈는 쿠루루기랑 애널섹스를 한 적이 있어? 물론 를르슈의 엉덩이로.”

 

들고 있던 유리컵을 줄리어스의 얼굴로 집어던졌지만, 줄리어스는 여유롭게 받아냈다. 힘이 없네, 혹시 식사 거르고 있는거 아니야? 마른 거 같은데.

형제 간의 대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흐름에 를르슈는 다시 현기증이 도졌다. 

 

“를르슈가 처녀였으면 신선했겠지만, 사실 옆에 남자친구가 있는 이상 무리겠지.”

“…….”

“그럼 내가 동정이라는 거에 중심을 두고서 하는거야."

“뭘…?”

 

줄리어스는 여느때보다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긴 뭐야, 근친상간이지.”

 

드디어 세상이 돌았다. 줄리어스가 돌아버렸다.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다리에 힘이 빠져서 무너지려는 몸에, 줄리어스는 가볍게 그것을 받아내며 중얼거렸다. 진짜 말랐어, 힘도 없고…. 안타까운 듯이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즐거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줄리어스의 검은 옷, 그렇게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