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 좋아하잖아.”
스자쿠의 잔잔한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를르슈는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자쿠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평소처럼, 웃으면서,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를르슈의 마음을 꿰뚫었다.
“를르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를르슈는 그동안을 떠올렸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들킨 걸까. 그런 것을 떠올릴 새가 아니라고 이성이 외치고 있었지만, 감정은 그러질 못했다. 를르슈는 울고 싶어졌다. 언제부터 알았어? 그런 말이 입밖으로 나가기 전에 얼른 다른 말을 꺼내야한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어떤 말이, 난 모르겠어. 를르슈가 진짜로 울기 직전에, 스자쿠는 고개를 돌렸다.
“뭐, 친구끼리 좋아한다는 말은 새삼스럽긴 하지만 말이야.”
그건 양날의 검이었다.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영원히 숨겨야한다는 죄악감이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앞서가는 스자쿠의 등을 바라보면서, 를르슈는 제 얼굴을 만졌다. 손끝이 얼어있어서 뜨거운지 차가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모든 것은 핑계였다. 모든 것이 아프게 느껴져서 얼얼하고 따가웠다. 가장 힘든 것은 마음이었다.
“너 말이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특히 여자애들한테는 더.”
스자쿠는 인기가 많으니까. 여자애들한테 쉽게 그런 말을 할 것이다. 나도 널 좋아해, 친구로써, 같은 희망고문도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스자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 상처를 입을 것이다.
를르슈 자신처럼 말이다. 아니, 상처를 입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자쿠의 곁에서 아무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면 스자쿠 옆에는 나만 남을 수 있을까. 를르슈는 끔찍한 계산을 하다가 한숨을 삼켰다. 앞서가던 스자쿠가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최악이었다.
“를르슈니까 그럴 수 있는 거야.”
스자쿠를 좋아하게 된 것에는 어느 순간을 정할 수 없었다. 아주 작은 찰나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그것이 점점 모여서 사랑이 되었다고, 그런 낭만적인 대답을 할 수 밖에.
여자애랑 손을 잡아서 놀림을 받더라도, 나나리의 손을 놓지 않는 스자쿠의 다정함을 좋아했다. 를르슈가 나나리를 향해 뒤돌아보는 만큼 늦어도, 먼저 앞서가지 않고 기다려주는 그런 상냥함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못배길 것이다.
하지만 스자쿠는 잔인하게도 모두에게 그러했다. 를르슈가 아니어도,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더라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를르슈가 스자쿠에게 반하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 이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이것 또한, 옛날엔 그랬겠지, 그런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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