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오브 세븐 X 황자 를르슈
남창촌에 팔려간 를르슈
마약 주의
19세 미만 구독 불가
조용하던 궁 안에 빠르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를르슈는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를 방에는 노크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야? 나이트 오브 세븐, 아무리 출세를 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를르슈 전하께서 용서해주실 걸 아니까 일부러 그런거야. 그리고 화풀이 겸.”
“경어를 쓰던가 반말을 하던가…. 뭐가 또 화가 났어, 스자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며 를르슈를 끌어안았다. 오랜 소꿉친구 시절부터 정을 통한 연인이 되고 나서 둘의 입장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이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을 때면 그것들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갑자기 유로 브리타니아에 간다는 이야길 들었어.”
“나나리네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길래 구경을 가려고.”
나나리는 를르슈가 아낌 없이 사랑하는 여동생으로, 지금은 유로 브리타니아에서 홀로 유학 중이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다른 황족들도 다녔던 학교인지라 보안 면에서는 철저하지만, 브리타니아 본국과 거리가 조금 있기 때문에 처음에 보낼 때 를르슈는 많이 불안해 했다.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나나리는 당차게 외치며 짐을 싸서 유로 브리타니아로 떠났고, 를르슈는 아리에스 궁에서 외로워했다. 위로를 해주겠다며 열심히 물고 빨았던 어부지리 격으로 스자쿠만 좋았다.
그러던 와중에 나나리에게 학교 축제 초대장이 온 것이고, 를르슈는 모처럼 여동생이 허락한 상봉에 기꺼이 가려고 한 것이다. 그래, 남매끼리 만나고 싶다는데 스자쿠가 뭐라고 나설 것은 없다. 마음에 안 드는건 스자쿠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에리어11에 가야지. 유피의 호위잖아.”
“나 다녀오고 나서 같이 가면 안 돼?”
“그러면 나나리의 초대에 늦어지니까 안 돼.”
“요새 유로 브리타니아는 위험해.”
스자쿠는 를르슈의 짐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말해도 갈 걸 알지만 잔소리는 해두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유피의 연설에 네가 옆에 있어야 에리어11에도 희망이 생긴다. 스자쿠, 나는 무사히 다녀올거고…. 제레미아랑 사요코도 같이 갈 거니까.”
“호위의 빈틈이 없다는 건 알지만 내가 없다는 게 중요한거야. 나나리한테도 나랑 같이….”
“축제를 즐기는 나나리를 보러가는 자리다, 바보야.”
“나도 축제를 즐기는 나나리…!”
“말의 모순이 있다, 이 거짓말쟁이야.”
스자쿠는 한 달 전부터 에리어11의 부총독으로 취임한 유페미아의 기념 연설 호위를 하기로 일정이 잡혀있었다. 오랜만에 가는 고향에 를르슈가 갖고 싶어하는 거나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 목록도 다 준비했다. 가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제일 큰 부담이 생겼다면 를르슈가 브리타니아 본국을 떠난다는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나나리를 볼 겸해서 쉬러 가는 거니까 자리를 길게 비우게 되긴 하겠지.”
“나도 를르슈랑 같이!”
“대체 몇 살 먹은 어린애야? 너도 에리어11에 오래 있을 예정이잖아. 나 혼자 외롭게 아리에스에서 기다리는 건 싫어. 지루하고. 모처럼의 여행으로 덜 외로워질 거라서 차라리 나은데.”
“…내가 없을 때 외로웠어?”
“당연하지. 슈나이젤 형님과 체스를 40판 둬도 하루가 안 끝나서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제국 재상과 체스만 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해서 회의를 나눴겠지만, 아무튼 상대가 제국 재상이라고 하더라도 를르슈가 자기 말고 다른 대체재를 찾으려고 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금방 돌아올게. 유피의 연설 호위만 마치고 나면 금방이니까.”
“스자쿠가 멋있게 나오나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을게.”
“나중에 감상 말해줘야 해.”
“응.”
그렇게 입을 맞추고 서로 나중을 약속했다. 를르슈의 짐을 챙기는 와중에 스자쿠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를르슈를 유혹했다. 짐을 다 싸고 나서 할 거야. 하고 나서 너한테 맡기면 뭔가 하나씩 빠져 있어서 안 된다고. 스자쿠의 짐은 늘 간단했고, 그냥 나이트 오브 라운즈 옷만 챙겨도 오케이였다.
먼저 떠난 것은 스자쿠였다. 기념 연설회에 대체 랜슬롯은 왜 필요한 건지. 스자쿠의 투정에 를르슈가 대답해주었다. 위엄이 있잖아. 에리어11에서는 너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더 티를 내야 할 필요가 있어. 군함을 타고 떠나는 스자쿠에게 손을 흔들어준 를르슈는 다음날 황족 전용 열차를 타고 유로 브리타니아로 떠났다.
전화를 몇 번이나 주고 받았다. 스자쿠, 지금 토할 거 같으니까 나중에 해. 를르슈, 멀미해?! 나이트메어는 잘 타면서 열차는 어떻게 멀미를 하는거야?! 나도 모르겠으니까 나중에 전화하라고! 첫 통화에 스자쿠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다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어때? 괜찮아. 물 말고 아무것도 안 넘어가는 거 빼고는. 조금 있으면 연설이지? 유피는 어때? 응, 코넬리아 전하랑 같이 연습 중이야. 누님께서 봐주시면 괜찮지. 별 문제 없을 거다. 너는 실실 웃지 말고 나이트 오브 라운즈 같은 얼굴로 좀 서있어. 어떤 얼굴이더라. 그거 하면 미간이 아파. 우선 내 생각을 하지 말고 다른 생각 해. 기분 나쁜 생각. 지금 기분 나빠. 왜? 네가 없어서. 멍청이가.
텔레비전으로 스자쿠를 보던 를르슈는 결국 웃느라 제대로 보질 못했다. 유피는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스자쿠는 이미 눈빛으로 사람을 한 트럭 죽였어. 정말 기분 나빠 보인다….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식사하는 것도 익숙해지고, 생활하는 것도 몸에 익을 무렵에 나나리의 학교 근처 역에 도착했다.
“우선 비공식 방문이니까 따로 로열 전용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게 부담도 덜 되고 좋아. 배려 고맙다, 제레미아.”
“그럼 나나리 전하가 계시는 곳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미리 학교 측에는 전달해뒀으므로…."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
를르슈는 에리어11의 애쉬포드 학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다른 학교의 축제는 처음 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나리가 보낸 초대장에는 ‘기대해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아리에스에서의 그 활기찬 아이가 새장 밖의 세상에서 얼마나 즐기고 있을지 를르슈로써도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미레이 애쉬포드의 기획이 아닌 보통의 학교 축제도 즐겨보고 싶었다.
유로 브리타니아는 본국보다 공기가 차고, 계절에 따라 백야가 온다고 하는 곳이니 를르슈에게는 낯선 땅이었다. 스자쿠가 없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오늘은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를르슈가 아리에스를 비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몇 없다. 제레미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더 이상 불안해하는 건 그에게 실례인 것 같아서 를르슈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 풍경을 보았다.
학교에 도착하면 나나리가 반겨주었다. 못본 사이에 키가 더 컸어. 그럴 리가요, 높이가 있는 구두를 신어서 그래요! 그리고 나나리의 친구들을 소개 받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성을 들으면 어느집 자제인지 알 수 있었다. 나나리는 이 학원에서 황녀가 아니라 마리안느 황후의 친가 쪽 먼 귀족의 영애로 알려져있다. 황녀로 밝혀져도 상관 없지만 좀 더 자유롭게 학창시절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를르슈가 추천했다. 에리어11에서도 를르슈도 황자가 아니라 람페르지의 성을 썼다.
남매는 남매인가봐요. 두 분 다 로열 퍼플의…. 어떤 여학생이 를르슈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를르슈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황족의 먼 친척이니 이런 영광스러운 우연도 있죠. 잘 둘러댄 오라버니의 여전함에 나나리는 학교 구경 겸 축제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를르슈의 옆에 섰다.
학교의 부지는 넓고, 곳곳마다 축제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나나리는 유명인사였다. 가는 곳마다 인사를 주고 받는 나나리의 모습에 를르슈는 가슴이 벅찼다. 아마 다음번 학생회장은 제가 될지도 몰라요! 나나리의 말에 를르슈는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학생회장을 떠올리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스자쿠 씨는 잘 지내시나요?”
“아, 어제 에리어11에 가서 유피의 연설 중 호위를 맡았어.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나이트 오브 세븐이 오면 복잡해질 거예요. 저 혼자서 감당 못 해요.”
“나나리를 곤란하게 할 순 없지. 그리고 오랜만에 나나리랑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 타이밍이 좋았어.”
나나리의 학급에서 한다는 메이드 카페에서 대접을 받고 있는 를르슈는 철저하게 고증된 메이드 차림의 귀족의 자제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나리는 쉬는 타임이라 교복 차림이었다. 다들 복잡한 와중에 를르슈와 나나리의 대화를 귀담아 들을 순 없을 것이다. 귀족 집안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의 서빙은 어설프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하기도 바빠보였다.
“바로 브리타니아로 돌아가시나요?”
“그래야겠지. 나나리랑 더 있고 싶지만 축제 기간은 오늘 하루 뿐이지? 외출하기도 쉽지 않고.”
“방학이 되면 바로 돌아갈게요.”
“친구들이랑 시간을 더 보내고 와도 돼.”
“정말요?”
“진짜로 보내고 오면 좀 섭섭할 거 같긴 하지만.”
“후후, 그렇지만 바로 귀국할 것 같아요. 요새 유로 브리타니아는 위험해서, 휴양지에서도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고 소문이 안 좋아요. 오라버니도 부디 무사히 돌아가시길 바라요.”
걱정스럽게 저를 쳐다보는 여동생의 눈빛에 를르슈는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 오늘은 비공식 방문이고, 호위에는 제레미아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고. 나나리야말로 학교 밖에 함부로 나가지 말고, 친구들이랑 항상 같이 다니고.”
“이제 열일곱이라구요. 그런 잔소리는….”
“항상 해도 모자라지.”
“모처럼 만났는데도 잔소리는 너무해요.”
“항상 하는 소리를 해줘야지 그럼. 항상 사랑한다, 나나리.”
“그럼 저도 항상 하는 대답을 해드려야죠, 저도요, 오라버니.”
해가 지기 전에 나나리를 기숙사 앞에 데려다주고 를르슈는 교문 쪽으로 걸어왔다. 귀족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를르슈가 타고 온 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띄는 건 싫기 때문에 제레미아에게는 연락하면 교문 앞으로 오라고 할 예정이었다. 이제 슬슬 전화를 하면 적당히 시간 맞춰 오겠군. 를르슈는 그렇게 휴대폰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순식간에 암전되는 시야. 입을 틀어막는 천.
모를 수가 없다. 이건 납치다. 를르슈는 제 시야와 숨통을 조르는 손길에 발버둥을 쳤다. 손에서 떨어진 휴대폰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갈색의 눈. 누군지 추측할 수 없게 마스크와 모자를 깊게 썼다. 누군지 모른다.
“보라색 눈이야. 완전 물건을 건졌는데?”
“황족이 여기에 다닌다는 이야긴 못 들었는데? 로열 퍼플이면 꽤나 높은 직책의 귀족이겠네. 오랜만에 돈 좀 만지겠어.”
“빨리 여기서 나가자. 누군가를 부른 거 같아.”
천에 묻은 약 냄새가 폐 가득 들어차는 것에 를르슈는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을 챙겨…위치 추적이 되…아니 바다에 버려…그러면 죽은 줄 알고 안…그나저나 진짜…남자여도 횡재야……
—이거 원래 남창인거 아니야?
—길들이라고 했지 즐기라고 한 적 없다
—뒤로 받을 줄 알아. 처녀는 아니고, 이미 누구 손을 탔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감각만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위로 묶인 손은 쓸려서 아플 뿐이다. 주먹을 있는 힘껏 쥐어서 손톱 자국에 스스로 아파서 주먹도 못 쥔다. 가슴팍을 더듬는 손길에 를르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봐, 신음을 참아. 귀족님의 노리개인 게 틀림 없어.
—가슴까지 느낀다고?
유두를 꼬집는 손길에 를르슈는 결국 소리를 냈다. 높은 교성에 남자들이 낄낄거리며 욕설을 지껄였다. 유로 브리타니아의 억양이 느껴진다. 아직 유로 브리타니아 안인가? 를르슈의 두뇌가 움직이기 이전에 갑자기 뒤에서 들이받치는 감각에 를르슈는 소리를 질렀다.
—처녀를 내야 잘 팔리는데 이건 완전 남창이잖아. 누가 사?
—마켓에 내놓긴 글렀네. 모처럼의 로열 퍼플인데.
누구라고 밝힐 수 없다. 황족이라고 밝히는 순간 오히려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유로 브리타니아에서 유학 중인 나나리의 신원이 밝혀져서 더 위험해진다. 마켓은 또 뭐지. 아직도 인신매매가 있단 말인가. 휴대폰은 어떻게 됐지. 제레미아는…. 스자쿠는?
—마켓에 못 내놓으면 스쿨에 보내자.
—하하, 퍼플 클래스로?
—새로운 전학생으로….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경험도 많고 친구도 많이 모으겠지.
뒤로 들어차는 느낌, 들쑤시는 것. 스자쿠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사랑 같은 것도 없이 그저 들쑤시는 느낌에 를르슈는 구역질이 났다.
—또 토할 거 같은데.
—귀족님의 충성스러운 노예였나본데? 약으로 길들여놓을까.
—약값 들어서 귀찮은데.
—몸 팔아서 갚으라 그래.
팔목에 따끔한 감각에 를르슈는 발악했다.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약물이 온몸을 도는 감각은 시야를 차단 당한 이후로 모든 것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뭐가 무엇인지 모른다. 스자쿠는? 스자쿠는? 스자쿠는? 스자쿠는? 스자쿠는? 이런 거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이럴 땐? 나나리가 위험하지 않게 나나리는 위험하지 않게 나나리는 절대로 몰라야 돼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라야 해 이런 일은 위험해 아무도 몰라야 해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스자쿠도 스자쿠도 몰라야 해 이런 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어디에 어디로 어디에서 아리에스 에리어11 스자쿠를 좋아해 스자쿠를 사랑해 우리는 매번 서로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해서 에리어11에서 유학하던 시절부터 줄곧 함께였고 서로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스자쿠 나를 찾아 아니 찾지 마 나는 나는 다른 남자와 내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정액을 먹고 여러 명과 스자쿠 나는 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누군지도 모르고 나는 여기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남자들의 상대를 남자에게 안겨서 너를 찾 찾 찾아도 되는걸까 나는 여기에 있는데 여기가 어디지 스자쿠는 나를 찾으면 나를 찾으면 나를 보면 싫어할 거야 나는 스자쿠를 배신했어 스자쿠만 사랑한다고 했는데 스자쿠가 없는 사이에 스자쿠가 가지말라고 할 때 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부터 나는 나는 나나리를 만나러 왔어 그렇지만 스자쿠는 나를 찾아주지 마 나를 나를 나는 죽었어
나는 죽었어….
“맛이 간 거 같은데?”
“과다복용인가?”
“젠장, 얘가 요새 넘버 원인데.”
“장사 하루 쉬어야지. 안 그래도 본국에서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왔대. 괜히 재수없게 검문 당할 수도 있으니까.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남자들이 나갔다. 정액투성이로 침대 위에 널부러진 를르슈는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른다. 오늘은 쉴 수 있는 건가. 뒤가 화끈거렸다. 더 쑤셔지면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를르슈는 한숨을 쉬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누가 구하러 와줬으면.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누군가에게 들켜도 수치스러운 몸이다. 이대로 빨리 약에 중독되어서 버려져서 길바닥에서 죽는 게 낫다. 아무데나 놓은 주사 때문에 팔이 멍투성이다. 제 몸을 끌어안으며 를르슈는 간만에 잠을 잘 수 있었다.
—아, 정말 있군요. 스쿨이라는 거.
—유로 브리타니아의 숨겨진 명물이지. 형씨는 못보던 얼굴인데.
—중화연방에서 왔습니다. 유로 브리타니아 관광은 처음이라 즐길 수 있을 때 다 해보려구요.
—그쪽에 부자들도 많이 상대해봤지. 우리 스쿨로 관광오는 건 어때?
—사실 친구들에게 소문만 들었지 정확히 스쿨이 뭔지는 몰라서요.
—원하시는 취향대로 클래스를 나눠놓았지. 블론드, 브라운, 레드브라운 이렇게.
—머리색으로?
—뭐, 그렇게 운영하는 스쿨도 있겠지만, 우리는 눈동자로 구별하지.
—그런가요?
—우리 스쿨에 한 번 와봐. 장난 아닌 학생이 있어.
—…어떤 학생인가요?
—뭐, 그쪽에 다 소문이 났을 진 모르진 몰라도…’퍼플’의 학생이 있지.
—…퍼플?
—아아, 남자이긴 한데 장난 아니지. 그 녀석 단골만 스무 명이 넘는다고. 오늘은 좀 상태가 안 좋지만…. 형씨만 좋다면 좀 저렴하게 해줄테니 유로 브리타니아의 제대로 된 관광을 하고 갔음 하는데.
—남자?
—그 녀석이 별로면 여자도 있어. 퍼플은 아니지만. 근데 퍼플은 꽤 예쁘장하거든. 형씨도 가능할거야!
—…그렇군요. 술값은 제가 계산하죠. 스쿨까지 안내를.
스자쿠는 저에게 스쿨로 안내해주겠다며 앞장 서는 남자 둘을 따라갔다. 부유한 관광객인 척 옷을 갖춰입고 술집에 잠입했다. 를르슈의 실종은 벌써 한달 째 이어지고 있다. 그의 실종을 아는 사람은 아리에스의 사람들과 슈나이젤, 그리고 스자쿠 뿐이다. 황자의 실종이 대대적으로 소문이 나면 오히려 그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여동생인 나나리 조차 모르고 있다.
휴대폰의 마지막 위치추적은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끝났다. 를르슈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스자쿠는 한 달째 유로 브리타니아의 모든 곳을 뒤져보고 있다. 에리어11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도박장을 자주 드나들던 를르슈를 생각해서 카지노도 돌아보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블랙 마켓까지 가보았다. 어디에서도 를르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머리를 비울 겸, 사람들이 오가는 술집에 앉아 있을 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퍼플’ ‘스쿨’ 유로 브리타니아의 매음굴이 점점 음지로 숨어드는 건 알았지만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것은 최근이다. 중화연방의 사람처럼 그들의 대화에 섞여들어가며, 결국 손님인 척 스자쿠는 그들의 스쿨에 다다랐다. 허름한 건물. 숨소리보다 비명과 앓는 소리로 가득한 방마다 우스운 명찰이 붙어있다.
RED, BLUE, GREEN……PURPLE
겨우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유리창을 가리키며 남자는 스자쿠에게 얼굴을 확인해보고 별로면 다른 여자를 구해다주겠다고 했다. 를르슈가 여기에 있을까. 이런 더러운 곳에. 하지만 이 곳에도 없으면 를르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스자쿠는 마른 침을 삼키며 더러운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더러운 침대 시트에서, 알몸으로, 엉망이 된 채로 자고 있는 를르슈.
“형씨 마음에 들었나? 상태가 안 좋으니 좀 싸게 해줄게.”
“아, 그래요. 우선 지갑을 다 줄테니 마음껏 하게 해줘.”
스자쿠는 현금이 가득한 지갑을 아예 통째로 남자에게 내밀었다. 두둑한 스자쿠의 지갑에 남자는 낄낄거리며 멀어졌다. 즐거운 시간 가지게. 스자쿠는 를르슈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거칠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누워있던 를르슈가 눈을 떴다. 그들이 부르는 보라색의 눈동자가 초점을 겨우 맞추며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꿈?”
를르슈가 처음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그 목소리는 쉬어있었지만 를르슈의 것이 확실했다. 스자쿠는 를르슈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철제침대가 형편없이 삐걱거렸다. 를르슈의 벌거벗은 몸 위에는 정액이 말라붙어있었다. 스자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훑어볼 뿐이었다. 를르슈의 팔목에는 주삿자국이 낭자했다.
“꿈이구나. 꿈…. 스자쿠, 나, 있잖아.”
“…….”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다시 깨면, 또….”
“…를르슈.”
“또 그런 걸 해야 해……. 스자쿠가 아닌 사람이랑.”
를르슈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울음에 스자쿠가 반사적으로 를르슈를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를르슈는 있는 힘껏 밀어냈다. 갈라지는 울음 소리 사이로 를르슈의 발악이 들렸다.
“만지지 마! 나는 스자쿠를 배신했어!”
“아니야, 를르슈, 너는…!”
“스자쿠가 아닌 사람이랑…몇 번이고, 좋다고 울었는데, 스자쿠, 안 돼, 꿈이어도 안 돼, 나를 만지면…….”
꿈에서 깨야 돼. 꿈에서……. 스자쿠를 보고 싶어. 그렇지만 꿈에서 깨야 돼. 스자쿠를 만나면 안 돼. 꿈에서도 만나면 안 돼.
를르슈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곧 희미해졌다. 마지막으로 봤던 것보다 말라있는 몸이 그의 영양상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침대에 풀썩 쓰러지는 를르슈를 보며 스자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청소를 해야할까. 를르슈를 알고 있는 놈들을 다 죽여도 모자라다. 당장 를르슈만 빼돌려봤자 소문이 났을지도 모른다. 중화연방의 사람들까지 상대했다고 했으니….
스자쿠는 기절하듯 자고 있는 를르슈를 편히 뉘여주었다. 가지고 있는 무기로는 남자 둘은 다 상대할 수 있다. 나머지 ‘클래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스자쿠는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웃었다. 어쩔 수 없다. 를르슈가 이곳에 있었던 흔적은 남김없이 지워야하니, 다 죽여야지. 그들이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스자쿠가 구원할 것은 를르슈 밖에 없었으니.
몇 번이고 스자쿠가 저를 찾는 꿈을 꾸었다. 그때마다 스자쿠는 절망에 빠진 눈으로 를르슈를 쳐다보았다. 내가 다른 남자랑 자버렸기 때문에?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는데. 를르슈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스자쿠는 멀어졌다. 그제서야 알았다. 이제 스자쿠를 찾으면 안된다는 것을. 하지만 꿈을 꿀 때마다 를르슈는 계속해서 스자쿠를 그리워했다.
마지막으로 본 꿈에서 스자쿠는 를르슈가 원했던 대답을 해주었다. 그건 아니라고. 그래도 를르슈는 현명하게 행동하려고 했다. 꿈에서도 바라면 안 되는거야, 이제. 꿈 속의 스자쿠한테도 바라면 안 되는거야.
이제 다시 눈을 뜨면, 모르는 사람들에게, 반항하면 약을 맞고, 한 명일까, 두 명? 차라리 때렸으면 좋겠어….
“…를르슈? 일어났어?”
다정한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를르슈는 눈을 떴다. 바로 보이는 천장은 콘크리트 내부가 다 드러나는 그 곳이 아니라 그리운 아리에스 궁의 자기 침실이었다. 바로 옆에는 언제나 상냥하게 웃어주는 스자쿠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스자쿠? 왜 여기에….”
“유로 브리타니아에 갈 때 조심하라고 했지.”
“…!”
“유로 브리타니아의 군대에서 널 발견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또 도박하다가 테러리스트랑 얽혔겠지.”
“…아.”
“새로 유행하는 마약에 취해있어서 신원확인이 늦어졌어. 당분간 해독제도 맞아야하니까 얌전히 누워있어.”
“……나나리는?”
“나나리는 물론이고 아무도 몰라. 슈나이젤 재상 각하까지만 아시고 황제 폐하도 모르시니까. 약 기운 빠질 때까지는 무리하지 마. 내가 옆에서 감시할 거야.”
를르슈의 마른 손을 따뜻하게 감싸오는 것은 스자쿠의 손이었다. 를르슈의 기억은 엉망진창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또 어디까지가 꿈인가? 모르겠다. 스자쿠의 말에 따르면 난 유로 브리타니아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얽혀서 마약 테스트 대상이라도 됐다는 건가. 도박을 한 기억은 없지만….
그런 짓을 당했던 기억보다 낫다. 거짓말이라도 그게…. 스자쿠는 모르겠지. 내가…그런 걸 했다는 걸. 유로 브리타니아의 군대가 알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스자쿠는 모르는 거야.
스자쿠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 달콤한 거짓말에 를르슈는 눈을 감기로 했다.
아리에스에 돌아와서 처음 눈을 뜬 를르슈는 소리를 질렀다. 스자쿠를 보고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다. 제 몸을 보고서 화병을 깨뜨려 자살을 하려고 했다. 스자쿠가 괜찮다고 끌어안자 를르슈는 토악질을 했다. 잘못했어요, 제, 제대로 할게요, 싫어, 싫어! 하지마, 만지지 마! 살려줘, 아니야, 죽여, 그냥 죽여! 싫어! 착란 상태의 눈동자는 초점이 맞지 않았다. 혼절한 를르슈를 다시 씻겨서 침대에 뉘였다.
두 번째로 눈을 뜬 를르슈는 오한이 났다. 계속 맞던 약이 없던 부작용이었다. 스자쿠를 보며 다리를 벌렸다. 약, 빨리, 주세요, 몸이, 이상해지니까…. 뜨거운 약 주세요. 스자쿠의 얼굴을 요염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유혹을 했다. 그러다가 스자쿠의 얼굴을 알아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미안해, 스자쿠. 또 만져버렸어. 미안해…. 혀를 깨물려고 하는 것에 스자쿠가 손가락을 넣어 겨우 살렸다.
세 번째로 눈을 뜬 를르슈는 스자쿠가 놓는 해독제에 소리내어 울었다. 그만 하고 싶어요. 이거 싫어. 약, 맞으면, 싫어. 스자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결과 끝에 알아낸 것은, 를르슈는 스자쿠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에 죽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언제 끝나는 거야. 누가 와요? 몇 명? 세 명은 싫어…. 를르슈는 대답이 없는 스자쿠의 팔을 붙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스자쿠, 나는 언제 죽을까…. 그렇게 잠이 드는 를르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제 약 기운도 빠지면서 재활 치료도 가능해질 거라고 로이드가 말했다. 네 번째의 를르슈는 현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스자쿠는 모든 것을 보았고, 를르슈는 모든 것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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