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양심 없는 거 압니다
키스데이는 5월 23일이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5월 29일이네요...
무엇을 숨기랴, 스자쿠와 를르슈는 서로가 서로의 첫키스 상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키스의 상대로 카운트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이유에서였다.
“난 너 안 좋아해. 그러니까 키스 같은 건 안 해.”
스자쿠 10세, 키스를 하자고 했더니 돌아오는 정직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스자쿠가 패기롭게 키스의 이야기를 꺼낸 상대는, 옆집에 사는 동갑내기 소꿉친구 를르슈였다. 를르슈는 별 이상한 이야기를 다 듣는다는 식으로 스자쿠에게 짧막하게 대답해놓고서는 다시 읽고 있던 백과사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스자쿠가 아니었다.
“아니, 서로 좋아해야만 키스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니, 그럼 영화배우들은 맨날 서로 좋아해서 키스하는 거야?”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그럼 나랑 를르슈도 키스할 수 있잖아.”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를르슈는 스자쿠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이었다. 스자쿠는 그게 아니라!—라고 외치면서, 를르슈의 손에 들린 백과사전을 빼앗았다. 눈이 동그래진 를르슈는 자신의 뺨을 붙잡고서 눈을 맞추게 하는 스자쿠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스자쿠의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면서 말을 걸었다.
“를르슈는 키스가 궁금하지 않아?”
“안 궁금해. 그리고 키스는 나나리랑 충분히 하고 있고.”
“그런 ‘가족끼리’ 하는 거 말고! 애인끼리 하는 거!”
“너랑 나는 애인도 아닌데.”
“그러니까 해보자는 거야.”
“그러니까?”
“애인이 생겼을 때, 키스도 못하는 남자라고 하면 창피하잖아.”
“…….”
“여자애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를르슈, 협조해줘.”
“…너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키스 못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를르슈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키스 못한다고 구박해도 좋아?”
하늘처럼 높은 를르슈의 자존심을 건드는 말을 꺼내자, 를르슈의 미간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아직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애인의 키스를 할 예정은 당분간은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게 될 상대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를르슈의 말랑한 뺨을 만지던 스자쿠는 ‘그렇지?’ 하고 그의 구겨진 자존심에 불을 지폈다.
“…좋아, 키스해봐.”
“진짜? 해도 돼?”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내가 못하면 어떻게 할 거야?”
“어차피 연습이잖아.”
“그럼 잘할 떄까지?”
“좋아.”
스자쿠는 자신과 를르슈의 키스가 ‘연습’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것에 아주 만족스러운듯이 웃었다. 빼앗다시피했던 백과사전을 다시 구석에 정중하게 내려놓고, 스자쿠와 를르슈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에 앉아서 눈을 마주했다. 서로의 눈동자에 자기가 비치는 것은 뭔가 낯설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호흡 같은 것이 간지러워서, 를르슈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숨을 겨우 내뱉을 만큼으로 입술을 벌리고 있으면 조심스럽게 스자쿠의 입술이 닿아왔다. 이 바보 스자쿠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입술에 닿는 피부의 느낌이 뜨끈뜨끈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졌다.
를르슈의 뺨을 만지다가 그의 목으로 손을 뻗고, 그 아래로 향해서 서로의 허리춤 옷자락을 꽉 붙잡고서, 스자쿠는 기세 좋게 혀를 밀어넣었다. 말랑하고 따뜻하고 미끈거리는 를르슈의 입안을 맛본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스자쿠는 후우, 하고 숨을 몰아넣으면서 를르슈의 혀와 제 것을 비벼댔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러서 목덜미를 적셨다. 를르슈의 고개가 자꾸 아래로 향하는 것을 겨우 붙잡아서 억지로 저를 향하게 만들었을 때, 를르슈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애인끼리의 키스를 하는데, 울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 스자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를르슈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를르슈가 후응, 하고서 우는 소리와 함께 눈물을 떨구었다. 스자쿠의 셔츠자락은 를르슈가 잔뜩 힘을 준 만큼 구겨졌다. 그 옷자락을 보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혀를 가볍게 깨물었다. 를르슈는 낑낑거리면서 스자쿠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집안에서 책이나 읽는 것으로 겨우 체력 보전을 하는 를르슈가 스자쿠를 밀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라는 마음으로 스자쿠는 를르슈의 입안으로 제 타액을 들이부었다. 갑자기 넘어오는 그것에 를르슈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스자쿠가 턱을 단단히 붙잡았기 때문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결국 울먹거리는 소리와 함께 를르슈가 타액을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히잉, 하고 를르슈는 이젠 셔츠를 쥘 힘조차 없는지 스자쿠의 옷을 놔버렸다. 스자쿠도 한계였다. 산소 부족으로 어질어질한 머리로 를르슈를 놓아주고 나면, 를르슈는 얼굴을 가린 채로 훌쩍거렸다.
“어땠어?”
“바, 바보… 이런 키스는 하는 거, 아니야.”
“그치만, 애인끼리는 이런 키스한다고 책에 적혀있었는데.”
“무슨 책?!”
“당연히 야한 책이지.”
“그런 거 보면 안 되는데…!”
“그래서 어땠어?”
평소라면 저보다 똑똑한 를르슈가 어린애처럼 사사건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즐거워서, 스자쿠는 히죽거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안된다고, 싫으면서도, 진심으로 스자쿠를 밀어내지 않고서 스자쿠의 타액까지 다 삼켰던 를르슈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래를 팩 돌려버렸다.
“별로야.”
“그럼 잘할 때까지 해볼까?”
“뭐?!”
“그치만 를르슈가 연습이라고… 잘할 떄까지 해준다며.”
“그, 그래도!”
“나한테 거짓말 한 거야?”
스자쿠의 시무룩해진 표정 앞에 를르슈는 이길 수가 없었다. 를르슈는 아직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으면서, 스자쿠 쪽을 힐끔거렸다. 연습은, 하루에 한 번 뿐이야. 그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신 이 연습은 비밀이야. 아무리 연습이래도 남자끼리 이러는 건 좀 그러니까.”
“당연하지.”
어린애들 치고 앙큼한 키스 한 번이 끝나고 나서야, ‘남자끼리 키스한 건 좀 그렇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 사람은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어느 한 쪽이 만족스러운 키스를 할 때까지, 이 연습은 계속하는 것으로…— 대신에 비밀! 어기는 사람은 바늘 천 개 먹기! 어렸을 때 모양처럼 경쾌하게 외치는 놀잇말에 스자쿠와 를르슈는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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