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컴 너머의 소음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를르슈의 물 흐르듯이 매끄러운 대화 진행과 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몰입하는 여자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호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중요한 부분은 놓치지 않았다. 스자쿠는 긴장으로 인해 땀으로 젖어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신호를 기다렸다. 를르슈가 스스로 세운 작전대로라면, 지금쯤 신호가 오는 것이 맞았지만, 왜인지 를르슈는 뜸을 들이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상대 여자는 그런 를르슈의 대화에 휩쓸리며 이제 ‘그것’을 꺼내들었다. 혹시 몰라서 스자쿠는 감시 카메라를 살폈다. 여자의 손에 들린 것은 의심할 것 없는 ‘그것’이었다. 이를 악문 스자쿠는 복도를 내달렸다.
‘자기 같은 사람이 무너질 때가 난 너무 궁금하더라.’
‘듣던 대로군요, 레이디.’
스자쿠가 달리는 그 사이, 신호에 이어서 를르슈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를르슈는 손목을 걷은 채로, 그녀에게 ‘그것’을 허락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 모습에 스자쿠는 재빠르게 를르슈의 손목과 여자의 손 사이에 있는 그것을 걷어차며 사이를 파고들었다.
“뭐, 뭐야?!”
“여전히 생각보다 빠르군, 스자쿠.”
“지금 이게 뭐죠, 미스터 람페르지?!”
“뭐라고 해야할까요, 굳이 말하자면 정기단속 같은 겁니다.”
“설마 경찰…?!”
“경찰이 이런 허술한 함정 수사를 할 리가 없잖아요?”
를르슈는 웃으면서 스자쿠가 박살낸 ‘그것’— 리플레인의 파편을 주웠다. 약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손수건으로 감싸면서, 그는 그것의 냄새를 맡았다. 스자쿠는 도망치려던 여자의 손목을 잡으면서 그녀를 붙들어두었다. 이 모든 상황이 익숙한 를르슈는 그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제로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아시겠습니까, 레이디?”
를르슈가 말하는 제로라는 이름에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깨달은 것처럼 벌벌 떠는 여자의 모습에 를르슈는 생긋 웃었다.
“이 리플레인… 브리타니아 패밀리에서 유통하는 것이군요. 뭐, 겉모습은 제로가 주는 것과 다를 게 없지만 냄새를 맡으면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신중하신 레이디께서 이런 싸구려를 즐긴다는 게 좀 안타깝긴 합니다만.”
“모, 몰랐어. 난 제로가 주는 거라고 해서 받아온 거란 말이야!”
“거짓말도 서툰 분께서 이런 간 큰 짓을 벌이다니, 그 패기는 높게 사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로는 약속을 깬 사람에게 관대하진 않아서요.”
“몰랐다니까, 난 진짜 몰랐어!”
“모르면 모르는대로 문제죠.”
스자쿠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녀의 미간 사이에 소음기를 단 권총을 들이밀었다. 바락바락 악을 쓰던 여자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스자쿠는 붙잡은 손목을 거칠게 들어올리면서 그녀의 주삿바늘 자국이 남은 팔목을 살폈다.
“제로의 리플레인은 멍이 들 정도는 아닌데… 아마 이 정도가 되려면 브리타니아 쪽 리플레인을 쓴 거라고 볼 수 밖에 없죠. 그리고, 몰랐다고 하고 싶으면 이런 흔적은 감추는 게 우선 아닐까요?”
스자쿠의 냉정한 관찰에 를르슈는 박수를 치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선고의 시간이었다.
“레이디, 안타깝지만.”
“시, 싫어, 죽기 싫어, 살려줘, 이번 한 번만 봐줘…!”
소음기에서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시체가 된 여자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렇지만 안쪽으로 울리는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여자 하나를 죽인 두 사람은 태연하게 복도를 걸어갔다. 음악 속에서 약과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를 지났다.
길바닥 구석에 버려진 쓰레기통에 를르슈는 리플레인 파편을 감쌌던 손수건을 통째로 집어던졌다.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의 뒤를 따라걸었다. 두 사람은 세 걸음 만큼의 거리를 두고서 걸었다.
두 사람이 묵고 있는 허름한 호텔은 이 거리에 올 때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스자쿠와 를르슈는 이 거리에 올 때면 항상 관광을 즐기러 온 사람인 것마냥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그럼 낡은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노인은 두 사람의 옷 차림에 흥미를 가지면서 말을 붙이곤 했다. 시답잖은 농담 몇 마디로 스자쿠와 를르슈는 이 호텔의 단골이 되었다.
그것이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이 아니냐고, 스자쿠는 불안한 적이 있었으나 를르슈는 태연했다. 오히려 이렇게 자주 다니는데 그럴싸할 인상도 주지 않고, 말없이 묵고 드나드는 것이 더 의심이 가는 법이야.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말없이 수긍했다.
오늘은 대충 사입은 탓에 서로 색만 다르지 같은 디자인의 하와이안 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를르슈는 여자의 향수 냄새가 배었다면서 먼저 잽싸게 욕실로 들어갔다. 오히려 긴장하면서 일을 처리한 것은 자신인데, 호사를 먼저 누리는 것은 를르슈라니. 스자쿠는 욕실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허탈하게 웃으면서 욕실 앞에 섰다.
“저기, 오늘 내가 했잖아. 를르슈는 한 거 없고.”
“내가 왜 한 게 없어? 타겟 끌어오는 것도 일이야.”
“그래봤자 맨날 하는 거짓말 하기 밖에 더 있어? 얼른 나와, 나 씻고 싶어.”
“빨리 씻을게.”
“그렇게 말해놓고서 한 시간씩 씻잖아!”
“그걸 재고 있어?”
“어지간히 해야 모른척 해주던가 하지.”
“째째하긴.”
“뭐?”
스자쿠가 문을 부술듯이 문고리를 돌려대는 것에 를르슈는 문을 슬쩍 열었다. 어느새 하와이안 셔츠를 벗었는지 하얀 상체가 형광등 아래에서 훤히 드러났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몸에 스자쿠는 인상을 썼다.
“땀도 안 흘렸으면서.”
“너야말로 고작 총알 한 발 쏜 걸로 땀을 흠뻑 흘리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난 기초체온이 높아서 그래.”
“아하, 기초체온… 좋으시겠어.”
“부러워? 너도 근육 키워.”
“굳이 몸을 써야할 정도로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서.”
“뭐야, 그게. 내 머리가 나쁘다는 거야?”
“그럴 리가.”
스자쿠는 를르슈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단추를 대충 풀어서 벗어재낀 셔츠를 욕실 구석에 내던져놓고, 바지춤을 풀려고 할 때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지긋한 시선에 스자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스자쿠의 짧은 한숨과 함께 를르슈의 차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스자쿠의 허리를 감싸면서 벗으려던 바지 사이를 파고드는, 스자쿠의 체온보다 조금 낮은 체온의 손. 를르슈의 신음이 스자쿠의 귓가에 닿았다. 흥분으로 가득한 신음을 내뱉으면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속옷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와 스자쿠의 느슨하게 발기한 것을 문지르는 손길에 스자쿠는 마찬가지로 성욕으로 물드는 눈앞을 천천히 깜빡이며 말했다.
“나 아직 안 씻었어.”
“알아.”
“씻으면서 하자고?”
“아니. 그럴 여유 없어.”
“…그럼 씻기도 전에?”
“어.”
“비위 좋네, 를르슈.”
스자쿠는 뒤를 돌았다. 를르슈의 아래는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청바지 앞이 솟아있는 것에 스자쿠는 키득거렸다. 그의 비웃음에도 를르슈는 눈가를 붉히면서 스자쿠의 속옷까지 내려서 그의 페니스를 꺼냈다. 땀과 함께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페니스에 를르슈는 크게 한숨을 토했다. 뜨거운 숨이 스자쿠의 목덜미에 닿았다.
“빨리 넣고 싶어?”
스자쿠의 부추기는 듯한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었다. 낮아지는 를르슈의 시선 끝은 스자쿠의 페니스 앞에 바로 와닿았다. 스자쿠는 작은 입을 벌려 있는 힘껏 자신의 것을 삼키는 를르슈의 모습에 기분 좋게 웃으면서 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자신의 머리를 헤집으며 더 깊게 물라는 듯이 목구멍으로 은근히 처박는 스자쿠의 손길에 를르슈는 저항하지 않았다.
펠라치오의 질척한 소리가 욕실에 울렸다. 스자쿠의 신음과 를르슈의 코로 새는 신음이 흐르면서 섞여들었다. 스자쿠의 페니스는 적당히 젖었음에도 를르슈의 뒤에 넣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를르슈는 불만에 가득 찬 눈으로 스자쿠를 노려보면서도, 한참 전에 발기한 자신의 페니스를 손으로 훑으면서 자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스자쿠의 것으로 꿰뚫리는 쾌락만큼은 못하는 그것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다. 를르슈는 더 아래를 훑으면서 찔끔찔끔 새어나오는 정액으로 제 뒤를 풀기 시작했다.
를르슈의 손이 구멍을 푸는 것을 보면서, 스자쿠는 키득거리면서 허리를 움직이며 를르슈의 목구멍 너머를 찧듯이 들이밀었다. 갑작스럽게 치받는 느낌에 를르슈가 쿨럭거려도 스자쿠는 아랑곳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를르슈가 눈물로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아도 스자쿠는 하아, 하고서 한숨을 내쉬며 치밀어오르는 사정감을 참지 않았다. 목구멍 안으로 쏟아지는 정액을 컥컥대며 받아내고 나서, 를르슈는 자기 역시 허무하게 사정한 것을 알았다.
“펠라치오만으로 갔어?”
“……왜, 안 넣었, 어?”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를르슈의 입술 끝에서 더듬거리며 나오는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그냥 그러고 싶어서?”
더 없이 상큼한 그 미소로 하는 말에, 를르슈는 허망한 얼굴을 하며 스자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 정액으로 범벅이 된 를르슈의 턱을 붙잡고서, 스자쿠는 아직 식지 않은 페니스를 그 입에 다시 들이밀었다. 갑자기 들이차는 것에 를르슈가 당황하면서 스자쿠의 허벅지를 두드렸지만, 스자쿠는 하하, 하고 웃으면서 말할 뿐이었다.
“제대로 청소까지 해야지, 를르슈. 이런 거 좋아하잖아, 너.”
그렇게 스자쿠의 말대로 좋아하는 ‘이런 거’부터 원하는 ‘넣는 것’까지 질릴 때까지 해버린 를르슈는 낮은 조도의 조명 불빛에 눈을 떴다. 옆자리에 있어야할 스자쿠는 테이블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잘 모르는 일본어가 들리는 것을 보아서 그는 모국인 일본에 연락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를르슈가 일어난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스자쿠는 조금 짜증을 내는 듯한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이내 혀를 차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지막은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그러다가 고장난다, 그거.”
“일어났어?”
를르슈가 잔소리하듯 하는 말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를르슈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보면 귀여운 얼굴이지만, 방금 전까지 를르슈의 안에서 질질 흐를 때까지 사정하고도 부족하다고 졸랐던 놈이다. 를르슈는 허리 아래의 둔통으로 뻐근함에 이를 악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온 전화야?”
“아, 응. 아버지한테서. 언제까지 자리를 비울 거냐고.”
“…하나 뿐인 외아들이 경찰 일 하는 게 마음 쓰이시겠지. 얼른 일본으로 돌아가서 효도하는 게 어때?”
“를르슈… 섹스 너무 많이 해서 힘들어?”
“많이 한 건 아는구나.”
“너도 흥분해서 더 해달라고 했잖아.”
“남자라면 당연히 흥분하는 상황이지. 일을 성공시킨 후의 쾌감, 그리고 맘에 드는 상대가 눈앞에 있을 때의 시기적절함까지.”
“알긴 하지만… 안 씻은 남자 거를 빨고 싶을 정돈 아니던데.”
농담 몇 마디와 함께 를르슈는 협탁 위의 휴대폰을 찾았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필요한 것을 훑었다.
“슬슬 슈나이젤이 움직이나봐. 뭐, 브리타니아 패밀리의 주 거래처를 줄줄이 찌르고 다니니까 당연한 거다만.”
“…제로는?”
“알고 있겠지. 곧 있으면 지시가 올 거야.”
“…….”
를르슈의 느긋한 말에 스자쿠는 한숨을 쉬었다. 노트북을 가방 안으로 정리하고 나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옆에 누웠다. 를르슈는 자기 옆의 베개를 두드리며 스자쿠에게 가까이 붙으라고 손짓했다. 스자쿠는 를르슈와 딱 주먹 한 개만큼의 거리를 두고서 누웠다.
“이번에야말로 브리타니아가 리플레인을 일본에 공급한다는 걸 잡을 수 있는 기회야.”
“…그런 것 같아.”
“뭐야, 원하던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시무룩해?”
“이 일이 끝나면 를르슈랑 헤어지게 되겠지?”
스자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말을 해놓고서 스자쿠는 부끄러움 하나 없는 얼굴로 를르슈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이번에 잘 되면, 를르슈도 일본으로 올래?”
“스자쿠, 나한테 정이라도 들었어?”
“……그런가봐.”
“뭐가 ‘그런가봐’야? 약혼자도 있는 게.”
“누가 결혼하재? 약혼자라고 해도 그냥 예전부터 집안끼리 정해놓은 약속이야. 내가 하기 싫다고 하면… 뭐, 그런 걸 떠나서. 그냥 를르슈랑 있는 게 좋으니까 그렇지.”
를르슈는 스자쿠에 대해서 아는 것을 떠올렸다. 일본에서 온 경찰, 목표는 일본에 리플레인을 공급하는 브리타니아 패밀리를 체포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반 브리타니아 세력의 마피아 스파이 짓도 가리지 않고 하는 무시무시한 녀석, 그래서 를르슈와 협력하고 있는 중이면서… 정이 많음. 그리고 또 정력과 성욕이 평균을 웃돌다 못해 를르슈까지 이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스자쿠가 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떠올렸다. 브리타니아 패밀리의 수장, 샤를 지 브리타니아의 11번째 아들이자, 브리타니아 패밀리라는 이유로 휩쓸린 마피아 항쟁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그런 자신의 가족을 팔아넘겼던 브리타니아 패밀리를 박살내기 위해서 스자쿠를 실컷 이용하고 있는 중인 자신을. 그러면서도 스자쿠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서, 자기도 모르게 스자쿠와 함께 일본으로 향하는 미래를 그려보고 말아버리는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제 어깨를 끌어안는 손이 또 따뜻해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말에 그냥 눈을 맞추고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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