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루로로나나+스자
쿠루루기 스자쿠의 아침은 오전 5시 30분에 시작한다. 단 세 번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눈을 번쩍 든 스자쿠는 침실의 창문을 열었다. 10월에 들어서 차가워진 공기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더워 죽는게 낫냐, 얼어 죽는게 낫냐 누군가 묻는다면 스자쿠는 더워죽는 것이 더 나았다. 추우면 몸이 둔해지니까.
스자쿠는 트레이닝복으로 빠르게 갈아입었다. 현관 앞에서 운동화를 신다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까치집이 진 머리를 하고 그냥 나갈까 하다가, 스자쿠는 모자를 썼다. 덜 부스스해 보이겠지. 평소라면 어차피 달리면서 더 엉망이 될 머리를 누가 신경 쓰냐고 했겠지만, 지금의 스자쿠는 아니었다.
현관문을 소리없이 닫았다. 자동 도어락이 작동하는 소리는 어쩔 수 없다. 스자쿠는 옆집을 향해서 ‘미안.’하고 고개를 숙였다. 12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대신에 다리를 풀 겸 계단으로 내려간다. 사실 엘리베이터 소리가 시끄럽지 않을까 싶어서 한 선택이었다. 1층까지 내려온 스자쿠는 공원으로 나가는 길을 걸으며 제가 사는 12층 쪽을 쳐다보았다.
불이 꺼진 옆집은 다행히도 아직 자는 중인 것 같았다. 소리 없이 내려오느라 긴장한 몸이 조금 풀렸다.
하아, 하고 내뱉은 숨이 하얗게 번지는 사이로 스자쿠는 달리기 시작했다.
브리타니아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생활 면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쾌적한 환경과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한다는 만족감까지 완벽했다. 몇 가지의 문화적 차이를 제외하면 일본에 있을 때랑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스자쿠는 아주 확실한 차이점 하나를 찾아냈다.
공원의 나무그늘 사이로 햇빛이 서서히 비치는 것을 보며 스자쿠는 집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손목시계를 보면 오전 7시. 개운한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스자쿠는 숨을 골랐다. 뛰면서도 호흡을 조절하는 것에는 능숙했지만 긴장으로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은 노력해도 고쳐지지가 않았다. 집에 다 와서 긴장이라니. 스자쿠는 엘리베이터의 거울 너머로 비치는 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12층에 다 도착했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스자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간에는……
“로로, 나나리! 일어나!”
옆집의 를르슈가 아이들을 깨우느라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다.
스자쿠는 저를 깨우는 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히 민망함에 뒷목을 감싸며 제 집의 도어락을 입력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또 옆집에서 소리가 들렸다.
“밥상 앞에서 자지 마!”
결국 웃음이 났다.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함께 스자쿠는 집으로 들어갔다.
일본에서의 생활과 아주 다른 가장 큰 차이점, 그것은 바로 옆집의 를르슈였다.
스자쿠의 옆집에는 람페르지 삼남매가 살고 있었다.
첫째인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와 동갑으로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 훌륭한 두뇌와 수려한 외모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캠퍼스 미남으로, 스자쿠는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보이지 않는 장벽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것은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느껴지는 이질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를르슈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를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면 바로 동생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었다.
둘째—로로 람페르지는 대학 부속 학원 고등부에 재학 중이다. 내년이면 수험생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에 대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를르슈가 매일 속상해하고 있다.
그리고 막내, 나나리 람페르지는 중등부에 재학 중이다. 스포츠를 잘하고 싶지만 지구력 말고는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잘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도전은 꾸준히 하고 있어서 그때마다 상처를 달고 살아서 를르슈가 속상해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람페르지 삼남매의 옆집에서 살면서 어쩌다보니 알게 된 것이었다. 스자쿠는 시리얼에 우유를 붓는 와중에 우당탕, 하고 열리는 옆집의 문소리에 또 웃음이 터졌다. 로로와 나나리가 학교에 갈 시간이 이 12층에서 제일 시끄러울 때였다.
“오늘은 내가 늦게 끝나는 날이니까 저녁은 데워서 먹어. 나나리, 로로 꼬셔서 피자 시켜먹지 마. 로로, 너도 기다렸다는 듯이 넘어가지 말고. 둘 다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집에 와. 다음주부터 시험이라 학생회도 동아리도 다 쉬는 거 알고 있으니까 핑계 댈 생각도 하지 마. 친구를 만날거면 집으로 데려와서 놀아. 어디 가게 되면 바로 전화하고. 그리고…….”
“형, 엘리베이터 왔는데.”
“늦겠어요, 오빠.”
를르슈의 낮은 한숨과 동시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결국엔 를르슈가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모양이었다. 스자쿠는 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슬리퍼를 대충 끼워신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를르슈는 없었다. 스자쿠는 비상구 계단 쪽으로 향했다. 창문 너머만 빤히 쳐다보고 있던 를르슈는 스자쿠의 인기척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아, 시끄럽게 해서 미안. 스자쿠.”
“아냐. 활기차서 좋은걸. 무사히 등교 했어?”
“다른 길로 안 새면 지각은 안 하겠지. 학년이 올라갈 수록 애들이 아침마다 더 못 일어나는 거 같아…….”
앞머리를 넘긴 를르슈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동생 둘을 돌보는 를르슈는 아침마다 정신이 없었다. 스스로도 ‘아침마다 전쟁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자쿠에게 몇 번 조언을 구하기도 했었다.
‘혼자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않는다거나?’
‘그럼 지각하잖아!’
‘음…. 그럼 지각하기 직전에 깨우기?’
‘직전에 깨울거면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깨우는 게 낫지 않아?’
버릇 고칠 생각이 없는 건 를르슈 같은데…….
그때 스자쿠는 어깨만 으쓱거리고 다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를르슈는 때 되면 알아서 다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다만 로로와 나나리는 를르슈가 있는 이상 그 때를 맞이하는 것이 상당히 늦을 것이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옆에 서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나란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스자쿠와 를르슈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챘는지 로로와 나나리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대답하듯 손을 크게 흔들어주면 로로와 나나리가 무어라 웅얼웅얼하며 소리를 쳤지만 12층까지 들리지 않았다. 알아 들을 수 있는 내용은 대강 ‘좋은 아침’ 정도였다.
“저러다가 지각할 텐데.”
를르슈는 같이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얼굴은 활짝 펴서 싱글벙글 웃고 있으면서, 입은 잔소리 중인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또 웃음이 터졌다.
“스자쿠 너도 어지간히 자주 웃는구나.”
“왜? 웃으면 좋잖아.”
“사람이 쉬워보여서 문제야.”
“인상이 좋다는 뜻이지?”
“물러터진 어른은 애들 교육에 안 좋다는 뜻이야.”
“너무해!”
이번엔 를르슈가 웃었다. 농담이야. 기지개를 길게 켠 를르슈는 설거지를 하러 들어가야한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성실한 면은 알고 있었지만, 를르슈는 집안일에도 빈틈이 없었다. 설거지는 싱크대 가득 쌓일 때까지 미루고 나서야 한다거나, 빨래는 입을 옷이 없을 지경에 이르러야 겨우 돌리는 스자쿠와는 반대였다.
설거지를 해야한다고 해놓고서는 를르슈는 들어가지 않았다. 왜 안 들어가냐고 물으니,
“막상 하려고 하니까 귀찮아.”
“애들한테 좀 맡겨봐.”
“지각 안하는 게 고작인 애들한테 뭘…….”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를르슈가 조용해지자 스자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의 침묵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틈 같은 것에 스자쿠는 오히려 한숨 고를 수 있어서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창 밖의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아.”
가을이 시작되어 서서히 싸늘해지는 날씨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며 일어나는 스자쿠에게는 동의하기가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네.”
그러나 스자쿠는 날씨가 좋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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