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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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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

DOZI 2019.05.15 11:16 read.128 /

마리안느 X C.C.

 

 

 

 

 

 

 

 

 

 나이트 오브 라운즈.

 브리타니아 황제가 거느리는 12명의 기사단이며, 신분은 평민이나 그에 대한 대우는 귀족에 준한다. 입단 조건은 실력. 조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되며, 전장에서의 우수한 전투력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실력주의 탓에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파트part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숙명이다. 나이트 오브 원에 가까울수록 실력이 뛰어난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나이트 오브 식스의 취임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C.C.는 미간을 찡그렸다. 12명 중에서 6번째면 얼마나 애매한거지? 언론에서 떠드는 마리안느에 대한 기사는 지금 범람하는 중이었다.

 

 —마리안느 람페르지. 19살의 갓 성인이 된 그녀는 펜드래건 주변에서의 크고 작은 소란들을 진압함과 동시에 최근 황제 암살 사건의 범인을 잡음으로써, 명실상부한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취임식에서 보여준 그녀의 검술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외모라고 할 수 있다. 로열 퍼플에 가까운 눈동자가 그녀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로열 퍼플이 뭐야?”

 “브리타니아 황실의 직계만 가질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하던데.”

 “…대단한 여자였군.”

 “그럴 리가. 유로 브리타니아 변두리에 살던 촌구석 소녀였는걸.”

 

 물결치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올려묶은 마리안느는 신문지와 잡지들을 한 곳에 치워놓았다. 이걸 또 언제 갖다 버린담. 마리안느가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정작 치우는 것은 C.C.의 몫이 될 것이다. C.C.는 흐응, 하는 느긋한 소리를 내며 다시 읽고 있던 잡지로 눈을 돌렸다.

 마리안느의 취임은 벌써 보름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떡밥을 물고 다니는 녀석들이 많았다. 대체로 마리안느가 어떻게 지냈는지, 다른 나이트 오브 라운즈라면 궁금하지도 않았을 과거에 대해서 캐는 것들이었다. 

 

 “너에 대한 험담도 적혀있는데.”

 “사람이 언제나 좋은 면만 보여주고 살 수는 없지. 그런 거 신경쓰면 아무것도 못해?”

 

 애초에 무조건적인 호의는 이유 없는 악의까지 끌고 오는 법이야. 마리안느는 물컵에 물을 따르며 중얼거렸다. 

 C.C.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늘 순수한 악의, 그것이 아니면 기어스를 가졌을 때의 무조건적인 호의 밖에 몰랐으니까. 중간 같은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영원히 어린애로 남아버린 C.C.에게 마리안느는 매번 상냥했다. 그래서 그 상냥함에 C.C.는 늘 걸음을 늦추었다. 그래도 마리안느가 기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취임식에서 C.C.는 가장 멀고 높은 곳에서 그녀가 작위를 받는 것을 보았다. 늠름하게 황제로부터 칼을 내려받아, 불꽃처럼 일렁이는 눈동자로 아랫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그녀는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어야할 사람 같았다.

 

 “난 내 순서도 마음에 들어. 적당하거든. 너무 높으면 눈에 띄고, 너무 낮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더 위를 향해서 갈 거야?”

 “갈 수 있다면 가보는 게 좋겠지만….”

 “왜?”

 “예상보다 너무 쉽게 가면 또 그건 아니겠지.”

 

 C.C.는 잡지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빳빳한 표지에 손이 베였다.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찍혀있는 마리안느의 사진에 피가 묻어서 미간을 찡그리자, 마리안느는 C.C.의 인상이 찡그려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처 났잖아? 기다려, 약이 어디 있더라.”

 “부엌 바로 옆에 있는 서랍장 맨 첫 번째에 있지만, 난 필요 없어.”

 “바로 나으니까?”

 “응.”

 

 마리안느는 C.C.의 비정상적인 치유력으로도 모자라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비밀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C.C.는 손가락 끝을 물면서 그 사람들을 떠올렸다. 황제와 그의 형이라고 하는 V.V.는 아직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좀처럼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 사이에 마리안느는 약을 가져왔다. 가장 아프지만 빠르게 낫는 약이었다. 그만큼 비싼 것이었는데 마리안느는 잔뜩 짜내서 C.C.의 손끝에 치덕치덕 발라주었다.

 

 “아파, 너무 발랐어.”

 “빨리 나을거야.”

 “이런 거 해도 난 상처 같은거…. 약만 아까워.”

 “내 기분의 문제야. 약 같은 건 나중에 또 사면 돼.”

 “…아직 월급도 받기 전이잖아. 허세는 그만둬.”

 “C.C.는 왜 그렇게 깐깐할까? 나 대신 가계부도 쓰고 있지 않아?”

 

 숫자와 글자를 알고 나서, 그것의 중요성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마리안느의 파괴적인 생활력은 문자에 취약한 C.C.에게 가계부라는 것을 쓰게 만들었다. 덕분에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호의로 물 흘러가듯 아무렇게나 생계를 꾸려갔던 마리안느의 삶이 좀 더 윤택해졌다.

 

 “수입이 늘어났다고 바로 지출을 늘리는 건 비효율적이야.”

 “하지만 쓰지 않으면 낙수효과 같은 건 없어?”

 “…….”

 

 그건 C.C.가 모르는 말이었다. 마리안느는 대답이 없는 C.C.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다시 서랍장에 약을 집어넣었다.

 

 “약이 얼마나 비싸고, 네가 얼마나 빨리 낫는 것과 상관 없이, C.C.가 다치면 약을 발라줄거야. 없으면 뭐, 돈이라도 꿔서 약을 사는거지.”

 “영광이네.”

 “아무렴. 황제의 기사의 유일한 친구니까!”

 

 마리안느는 부엌에 들어가서 찬장을 살폈다. 우유가 떨어진 거 같네, 우유랑 계란…. 흠, 푸딩 같은 거 먹고 싶은데. 마리안느의 리퀘스트에 C.C.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 보러 갔다올게.”

 “아, 나도 같이 갈래.”

 “화제의 나이트 오브 식스랑 같이 다니면 불편해.”

 “너무한걸.”

 “불편한 건 네가 될 거라는 이야기야.”

 “왜? 나이트 오브 식스는 장도 못 보나?”

 

 방금 전에 읽은 잡지에 따르면,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되면 황궁 안에서도 생활이 가능하고, 최소한 하사받은 대저택에서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그러지 않고 C.C.와 원래 살던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고, 이전과의 생활보다는 외출이 좀 줄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영위하고 있었다.

 세상을 떠도는 C.C.에게는 황궁이 낯설어서, 마리안느의 그런 선택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마리안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이트 오브 식스의 옷차림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마리안느, 너 정말 그러고 나갈건가…?”

 “응? 그렇지만 새 옷 꺼내입고 나가면 C.C.의 빨랫거리가 늘어나잖아.”

 “길거리에서 너를 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더 귀찮아질 거 같은데.”

 “오히려 서비스를 더 받을 수도 있어. 아, 그렇지만 오늘은 C.C.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으니까 외식은 나중에.”

 

 C.C.가 먹고 싶은 것도 사자.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마리안느의 모습에 C.C.는 한숨을 쉬었다. C.C.는 자기가 직접 자투리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들고서, 마리안느의 뒤를 따랐다. 문을 잠그고 시장을 향해 나서는 마리안느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의 등을 휘감는 망토가 조금 낯설긴 하지만, 마리안느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한테 휩싸이면 바로 집으로 갈거야.”

 “C.C.가 도망가지 않게 손을 잡고 걸어야겠는걸.”

 

 왼손을 잡아오는 마리안느의 체온. C.C.는 괜히 땅바닥을 보고 걸었다. 딸기도 제철인 거 같고, 조금 비싸더라도 알이 굵고 싱싱한 걸 사자. 그리고 연유에 찍어 먹고 싶으니까 그것도. 아, 꿀도 떨어진 거 같고! 밀크티도 해먹고 싶고! 케이크, 팬케이크도! 마리안느의 줄줄이 이어지는 리퀘스트에 C.C.는 빨라지는 그녀의 말을 겨우 따라잡으며 다 기억하려고 했다.

 딸기, 연유, 꿀, 밀크티, 케이크, 팬케이크, 푸딩.

 

 “그리고 피자! 사실 앞에 말한 거는 별로 안 중요하고 피자만 있으면 돼.”

 “밀가루는 무거운데.”

 “내가 들면 돼. 아, 배달을 해줄 수도 있겠다. 토핑도 잔뜩 얹어 먹고, 치즈도 왕창 뿌리고!”

 “…….”

 “아, 그래도 딸기는 먹고 싶어.”

 

 C.C.는 사람들이 서서히 마리안느를 알아보는 복잡한 와중에도 주변 가게를 다 살폈다. 딸기, 연유, 꿀, 밀크티를 만들 찻잎, 조각 케이크, 팬케이크에 쓸 바닐라빈, 몇 개 남지 않은 푸딩을 전부 샀다. 피자를 만들기 위해 묵직한 밀가루 포대를 고르고 있는 중에,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마리안느를 보았다.

 

 들어달라고 할까.

 하지만 저렇게 바빠보이는데. 

 

 옛날 같았으면 이름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했겠지만, C.C.는 그러지 못했다. 만약 불러서, 마리안느가 이쪽으로 오게 되면, 사람들은 C.C.에 대해서 궁금해할 것이다. 이름도 밝힐 수 없고 이니셜로 답하는 이상한 소녀가 친구라고 하면, 마리안느의 평판이 떨어질 것이다.

 C.C.는 혼자서 거뜬하게 들 수 있는 가장 작은 밀가루 포대를 골랐다. 피자는 둘이서 마음껏 먹을 수 없겠지만, 마리안느 혼자서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 정도여도 좋아,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