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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루루+나나리 캠퍼스물

DOZI 2019.06.06 01:26 read.302 /

스자루루(안 사귐)+ 나나리 캠퍼스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사실은 태어나서부터 살아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스자쿠라는 이름 앞에 붙은 가문의 이름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은 명문 집안 후계자의 숙명이라고 불리는 것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저주 같은 것이다. 그래도 꺼림칙하고 즐겁지도 않지만, 그래도 어긋나지 않고 잘 컸다고 쿠루루기 스자쿠는 본인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23살의 대학교 4학년, 휴학 한 번 없이 달려온 그는 이제 소위 말하는 졸업반, 일 년 후에 졸업하게 되어 학생으로써의 마지막인 지금에 스자쿠는 자기 인생에 대한 감상을 끝냈다. 

 

 이런 재미 없는 인생, 끝내버리자. 어떻게든 올해 안에 자살하자. 

 

 그렇게 그는 자살을 결심한 것이다. 

 자살은 은밀하고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의 명문 가문인 쿠루루기의 후계자가 난데 없이 죽기 직전에 버킷리스트를 다 이루겠다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면 오히려 눈에 띈다. 최대한 졸업과 주어진 길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죽을 방법을 모색해보자.

 별로 집안에 해를 끼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과잉 보호된 나머지 억압된 <$cc>자유에 대한 반발심에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스스로가 재미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스자쿠의 인생은 가치가 없어졌다.

 내일은 개강.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을 캠퍼스 교정을 떠올리며 스자쿠는 한숨을 쉬었다. 졸업까지 남은 학점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이 빡빡한 것은 아니다. 집안에서는 스자쿠가 대학에서 무슨 교양 수업을 듣는 것까지 관리하지 않는다. 삼 개월 정도 그냥 넋놓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수업은 없을까. 신입생 때 같은 학부의 동기 중의 누군가가 출석 관리도 허술하고 그저 떠돌아다니면 되기만 하는 교양이 있다고 했다. 수업의 이름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교양 과목을 목록 중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나서 갑자기 그 정보가 떠올랐다.

 그 교양 시간에 자살할 방법을 떠올리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스자쿠는 그 교양을 선택하기로 했다. 

 

 <사진 촬영의 이해와 실습>

 

 “강의명은 이렇지만, 과제 제출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도 상관 없고. 다만 과제 제출 시에는 사진관에서 인화하든, 스스로 인화를 하든, 방법과 관계 없이 사진으로 보낼 것. 메일 제출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몇 번 유명한 전시회에 걸린 사진을 찍은 경력을 가진 사진가가 교수였다. 그가 만든 강의 계획서를 건성으로 읽은 스자쿠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떠돌아다니면 된다고 했지, 그게 꽤나 한가로운 일이라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깨달았다. 산, 바다, 강, 일출, 한낮, 일몰, 밤하늘, 공원, 캠퍼스, 강의실, 카페….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는 것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체.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니까 우선 출석을 부르지만, 다음 주부터는 그냥 이 강의실에 한 번 들려서 저에게 자기 이름을 적어서 낸 쪽지를 내고 가면 됩니다. 그걸로 출석 점수에 반영하겠습니다. 수업 시작 시간부터 딱 15분만 있을 거니까 그 이후로는 다 결석입니다.”

 

 제출한 사진을 별도로 채점해서 점수는 반영. 사진은 예술이기 때문에 A,B,C 같은 점수가 아니라 패스와 논 패스로 나뉘어진다. 교수는 강의 계획서를 건성으로 줄줄 읽었다. 

 

 “뭐, 대충 궁금한 건 적혀있는 메일로 연락주세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나쁘지 않네. 스자쿠는 강의 계획서를 가방 안에 넣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여기까지고. 따로 들릴 곳은 없고.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누군가가 질문이 있다고 손을 들었다. 교수가 허락했다. 

 

 “저는 이 수업이 사진 속의 피사체를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이런 허술한 출석 관리와 과제 제출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열정 넘치는 학우네. 스자쿠는 속으로 비웃었다. 목소리만으로는 늠름하고 떳떳하다. 하지만 이 수업에 대해서 대부분의 소문을 들은 학생들은 그 질문을 한 학생에게 질렸을 것이다. 교수는 이런 질문을 매 학기 받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학생 이름은?'

 “람페르지, 를르슈 람페르지입니다.”

 “사진 찍을 줄 압니까? 스마트폰이든, 폴라로이드든, 뭐든.”

 “…압니다.”

 “사진 촬영할 줄 아는 겁니다, 그럼.”

 “…….”

 “수업 시간에 사진 찍으러 다닌다면 실습이죠?”

 “…논리로는 맞습니다만.”

 “람페르지 군이 피사체를 ‘아름답게’ 담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면 배울 수 있겠죠. 난 개인적으로 아름다움이라는 건 주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학생이 내가 가르치는 아름다움이 마음에 안 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아무것도 못 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스자쿠는 가방 속에 모든 걸 다 집어넣었다. 교수도 더 이상의 질문자가 없는 걸 알고 수업을 마친다고 종료 선언을 내렸다.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스자쿠는 기다렸다는듯이 뛰쳐나가는 인파에 밀려서 그냥 가장 늦게 나가기로 했다.

 우르르 몰려 다니는 학생들은 대형 강의실임에도 좁은 출구로 꾸역꾸역 나가고 있었다. 중간자리 쯤에 앉은 스자쿠는 사람들이 나가면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방금 전의 그 사람, 웃기지 않았어? 맞아, 그런 거 배우고 싶으면 사진 동아리에 들어가면 되잖아. 교수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 할까봐 걱정했다고. 소문대로 허술한 수업이네. 근데 람페르지면 그 람페르지? 멀어서 얼굴은 잘 못봤는데. 에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귀찮은 교양을 듣겠어? 그 람페르지의 소문대로라면 시간 아깝다고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걸.

 

 너무하네. 아직 그 람페르지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스자쿠는 가방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이 수업은 대체로 신입생이나 2학년이 듣는다. 졸업반은 취직 준비를 위해 이런 시간 잡아먹는 교양을 듣기엔 무리다. 스자쿠를 아는 사람도, 스자쿠가 아는 사람도 찾기 어려운 100명 이상이 듣는 대형 강의. 적당히 시간 죽이기 좋다.

 이제 한적해진 분위기에 스자쿠도 자리에서 슬슬 일어나려고 했다. 강의실에는 같은 줄의 제일 끝자리에 앉아있는 남학생 한 명과 스자쿠만 남아있었다. 그는 책상에 시선을 박은 채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분위기는 뭔가 어둡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이제 이 강의실 닫을지도 모르니까 나가야된다고? 하지만 스자쿠는 그렇게 참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스자쿠는 그를 홀로 남겨두고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개강 첫 주, 술집 어디를 가도 모임으로 북적거리는 걸 잊어버렸다. 스자쿠는 혼자 마시기 좋은 술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조차 시끌벅적함에 질렸다. 원래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걸 좋아하는 스자쿠지만, 자살 직전에는 그래도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다. 오늘은 그 계획의 정비도 필요하고.

 

 몇 분이세요? 아, 그. 한 분이신가요? 저쪽 테이블로 안내해드릴게요! 

 

 뭐라고 거절할 사이도 없이 안내됐다. 우선 생맥주와 혼자서 먹을 닭꼬치 정도는 시켰다. 아르바이트생이 갖다줄 때까지 이 시끄러운 소음 속에 스자쿠 혼자 남았다. 애초에 혼자 왔지만. 빨리 먹고 나가자, 그 생각 뿐이었다. 

 

 “람페르지? 정말 람페르지야? 그 공대의 람페르지 선배의 람페르지?”

 “아, 오라버니 말씀하시는거죠? 맞아요.”

 “우와, 분위기 완전 다르다. 나 예전에 람페르지 선배랑 같은 교양 들은 적 있었는데 뭔가 무섭고….”

 “그런가요….”

 “같은 동아리 친구 중에 람페르지 선배랑 같은 과인 애가 그러는데 엄청 엄격하고, 자기 일에만…. 아, 욕하려는 게 아니라, 람페르지 선배랑 너랑은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저에게는 상냥한 오라버니인데, 뭐랄까, 학교에서는 이미지가 달라서 또 신선하네요.”

 “그렇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해! 음, 우리랑 완전 다른 분야지만 벌써 해외에서 상도 많이 받고.”

 “맞아요, 그래서 오라버니가 대학생이 된 이후로 좀 외로워져서. 같은 학교에 가면 만날 일이 많을까 했는데, 건물 위치도 너무 떨어져있고, 수업도 좀처럼 맞추기 어렵네요.”

 “람페르지는 오빠랑 친해?”

 “그럼요.”

 “신기하네. 집에서랑 밖에서랑 완전히 다른 타입인가?”

 “…그럴까요?”

 

 뭔가 대답하는 여자애는 상당히 슬픈 느낌이었다.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괜한 이야기를 들어버린 느낌이었다. 이야기만 들으면 자기 오빠가 학교에서 성격 나쁜 소문이 돌고 있는 걸 예기치 못하게 알아버린 느낌이려나. 그걸 또 대놓고 캐묻는 질 나쁜 녀석들. 

 

 “그래도 람페르지 선배는 잘생겼고, 또 예쁘니까. 성격은 나빠보여도 보기는 좋아! 하지만 람페르지는 성격도 착하고, 얼굴도 귀엽고! 정치학부 이번년도 신입생 최고 미인이잖아!” 

 

 스자쿠는 아르바이트생이 생맥주와 닭꼬치를 갖다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는 척, 옆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아는 얼굴들은 정치학부의 2학년 대표와 그 무리이고 모르는 여자애는 아마도 이번년도 신입생이다. 저 녀석들은 신입생 때부터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괜히 발동하려는 정의로운 마음과 다르게 한편으로는 1년 안에 죽을 사람이 이후에 후배들에게 무슨 참견이 필요할까 싶어서 우선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추정, 람페르지라고 불린 여자애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 같진 않다. 오빠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빠의 행실의 문제이지 본인의 문제가 아니니까. 

 

 “람페르지는 남자친구 있어?”

 “아, 아뇨. 아직은.”

 “사귀어본 적은?”

 “아직까진 없어요.”

 “흠, 그럼 나는?”

 “네?”

 “별로야? 역시, 람페르지는 오빠 때문에 눈이 높구나?”

 “아, 아뇨.”

 “그럼 내가 좋다는건가?”

 

 이제 좋다. 이런 건 죽으려고 작정하기 일보 직전에 봐도 기분 나쁘다. 아무리 들어도 싫은 의도로 접근하는 게 분명한데.

 스자쿠는 생맥주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고 일어났다. 

 

 “아, 개강 첫주인데 벌써 신입생이랑 술자리? 젊어서 좋네!”

 “쿠루루기 선배!”

 “안녕. 단합하는 겸 나도 같이 앉아도 될까?”

 

 우선 끄트머리에 앉은 여자애의 옆자리에 앉는다. 스자쿠의 얼굴을 들여다본 여자애는 상당히 놀란 눈이었다. 지금 당황하고 있겠지. 스자쿠를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2학년 녀석들은 신이 났다. 우선 스자쿠는 집안이 좋은 부자에, 성격도 좋은 데다가, 술자리에서도 화끈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긴장하는 기색이 보였다. 왜냐면 오늘의 먹잇감을 스자쿠가 채갈 수 있으니. 꽤나 공을 들인 작전인 것 같다만…. 

 

 “나는 쿠루루기 스자쿠. 내년에 졸업하지만 잘 부탁해.”

 “나나리 람페르지라고 합니다. 올해 신입생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 근데 오늘은 신입생은 람페르지 혼자야? 다른 친구들은? 지금은 신입생들끼리 바쁠 때 아닌가?”

 “아, 저희 오늘 전공 조별과제로 모인거예요. 저희는 재수강이지만 람페르지랑 같은 조니까 운이 좋았죠! 우리가 잘 알려줄게!”

 

 재수강인 놈들이 뭘 알려준다는건지. 

 스자쿠는 웃으면서 나나리 람페르지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노골적인 끌어안음에 그녀도, 그 앞에 앉아있던 녀석들도 굳은 게 보였다. 

 

 “아직 과제 발표도 안 됐을텐데 벌써부터 술 모임은 그렇지. 신입생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람페르지도 여자니까 더 늦어지기 전에 돌아가는 게 좋고.”

 “에이, 람페르지도 이제 성인이잖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사실 방금 전에 람페르지네 오빠한테서 연락이 왔거든.”

 “네?”

 “오라버니한테서요?”

 

 물론 거짓말이다. 

 

 “예전에 교양에서 만난 적 있어. 의외로 마음도 잘 맞고. 가끔 술도 마시고 하니까. 지금 여동생이 안 들어와서 걱정이라고 같이 찾아주지 않겠냐고….”

 “라, 람페르지 선배랑 아는….”

 “우리 집안 사업 관련으로 하는 세미나에서도 봤으니까.”

 “…….”

 “오빠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람페르지. 이제 슬슬 집에 가야하지 않을까?”

 

 그녀를 먹이로써 노리는 게 아니라, 그녀의 기사로써 활약하는 스자쿠를 보고서, 2학년 무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오빠는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른다. 쿠루루기 집안에서 하는 사업 중에 관련이 안된 분야는 드물다. 다 거짓말인데도 이 녀석들은 멍청하고, 신입생은 순진하다. 원래라면 거짓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 스자쿠가 이렇게 줄줄 거짓말을 내뱉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질 나쁜 사람에게 휘둘리는 사람은 불쌍하니까. 

 

 “계산은 내가 할게. 일어나자, 람페르지.”

 

 얇은 코트를 금방 챙겨 입고 가방을 들고 나온 람페르지를 데리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일부러 옆에 세워두었다. 밝은 곳에서 보니까 대놓고 노려질 만큼 귀여운 얼굴이고, 술집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이상한 놈들이 꼬일지도 모르니까.

 계산을 마치고 람페르지를 끌고 나왔다. 우선 학교 쪽으로 걸어가며 스자쿠는 한숨을 쉬었다. 얼마간 정도 아무말 없이 걷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녀 쪽이었다. 

 

 “쿠루루기 선배,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쪽은 거짓말을 했다. 스자쿠가 그것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 때문에 거짓말 해주신거죠? 오라버니랑 아는 사이가 아니신데도….”

 “…아, 미안해. 사실 네 오빠에 대해선 잘 몰라. 쟤네 앞에서 한 건 거짓말이고.”

 “알고 있어요. 왜냐면, 오라버니의 친구라면, 이름으로 부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안 불러주셨거든요.”

 “하하, 거기서 들켰나보네.”

 “그래도 감사해요. 어떻게 나와야할지 몰랐는데다가, 오라버니의 몰랐던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놀라서….”

 

 상처받은 커다란 눈이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거의 대놓고 욕하는 수준이었는데, 그 여동생의 속이 좋을 리가. 스자쿠는 한숨을 쉬며 학교 앞까지 천천히 걸었다. 

 

 “소문은 그냥 소문이고, 저 녀석들은 길어봤자 한 학기 만나본 사람한테 엉뚱한 평가를 하고 있는거지. 여동생인 네가 오빠에 대해서 믿어주지 않으면 그게 더 슬픈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해도, 좀 슬퍼서.”

 “…….”

 “아, 오라버니한테 연락을 해야겠어요. 진짜로 걱정하고 계실테니까!”

 “그래, 그래.”

 

 어두운 기색을 걷어내고, 람페르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젖은 것 같은 느낌은 어디가고 활발한 느낌이었다. 오라버니, 이제 끝났어요, 학교 앞이에요. 네, 곧 돌아갈게요. 아, 지금 선배랑 있어요. 아, 아뇨, 그, 다른 분이세요. 여기까지 오신다고요? 아뇨, 혼자서…. 괜찮은데. 점점 작아지는 람페르지의 목소리에 스자쿠는 멍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오라버니가, 괜찮으시다면 전화를 바꿔달라고.”

 “…응? 나한테?”

 “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누구냐.’

 

 목소리만 들어도 엄청 화가 난 이 남자. 성격, 절대로 좋지 않아보임. 스자쿠는 겨우 대답을 했다. 

 

 “람페르지랑 같은 학부의 4학년 선배입니다.”

 ‘…다른 놈이군. 나나리랑 같이 있는 이유는?’

 “여자애 혼자 학교 앞이어도 밤길에 내버려두면 위험하니까? 선의와 도의적 차원에서….”

 ‘내가 갈 때까지 전화를 끊지말고 기다려라. 나나리를 바꿔.’

 “알겠습니다.”

 

 람페르지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람페르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무어라 떠드는 소리에 처음엔 집중하더니 나중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안 뛰어오셔도 되니까요…. 오다가 쓰러지실 거 같아요. 과호흡이라도 올까봐 걱정됩니다. 걸어서 오세요. 학교 앞이고 사람도 많고, 선배도 계시고.”

 

 또 왁왁 떠드는 소리에 람페르지는 조심히 오라며 아예 전화를 끊었다. 오빠는 몸이 약한가. 체력이 없나. 스자쿠는 학교 안 교정에 있는 가로등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람페르지네 오빠한테 좀 미안하네. 나랑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졸지에 술까지 같이 마시는 사이로 되어버렸어.”

 “선배는 정말 상냥하시네요. 오라버니는 그런 거짓말로 저를 도와주신 걸 고마워하실 거예요.”

 

 목소리로 들었을 땐 난 이미 죄인 취급이었는데. 스자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람페르지는 브리타니아 사람이라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집은 좀 귀찮은 집이고, 람페르지네 오빠가 괜히 귀찮은 일에 엮인 거일 수도 있거든. 나랑 인맥이 있으면 짜증나는 일 투성이고….”

 “인맥으로 따지면 저는 후배인걸요. 괜찮아요.”

 “…….”

 “네?”

 “아니, 오빠가 걱정이 많을 거 같아서….”

 

 순진한 대답을 늘어놓는 람페르지에게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사실 거짓말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람페르지네 오빠가 오면 진짜 친구라도 할까?”

 “정말인가요?!”

 

 눈에 띄게 좋아하는 람페르지의 모습에 스자쿠는 조금 당황했다. 

 

 “아, 아니, 뭐 그쪽에서 친구 하기 싫으면 안 되는거지만.”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좋아하실 거예요! 저도!”

 “그, 그래? 람페르지네 오빠는 어떤 사람인데?”

 “오라버니는, 음, 이름은 를르슈 람페르지, 저보다 세 살 많으시고, 이 대학의 공과대학 기계학부에 다니세요! 내년에 졸업이라 일 년 밖에 같은 학교를 못 다니지만…. 아, 그리고 요리를 잘하시고, 악기도 잘 다루세요, 뭐든지 잘하십니다! 고등학생 때는 학생회 부회장이었고! 아,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하시지만 승마는 좋아하세요! 세계 체스 대회에서 우승하신 적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알았어, 람페르지. 오빠를 되게 좋아하는구나. 이름은 를르슈 람페르지, 나랑 동갑에, 기계학부. 나머지는 친구가 되면 더 알아볼게.”

 “네! 아, 그리고, 편하게 나나리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나도 편하게 불러. 스자쿠 선배, 스자쿠 씨, 뭐든.”

 “네, 스자쿠 씨.”

 

 람페르지에서 나나리로 호칭이 바뀐 스자쿠는 이것저것 떠들었다.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고급 맨션에서 람페르지 남매는 같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15분 거리에서 이렇게 오래 걸려서 온다고. 평균 성인 남성이 뛰어오면 5분 안에 오지 않을까, 생각했을 무렵에는 10분이 지났다. 

 왜인지 숨을 헉헉거리며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남자가 나타났다. 나나리의 색소가 옅은 머리색과 다르게 새카만 흑발이 희미한 불빛에도 반짝이고 있는 이 남자. 무릎에 손을 짚고 호흡을 고르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첫 감상 : 엄청난 미인

 

 “이 변태 자식이, 이제 갓 성인이 된 나나리에게!”

 

 두 번째 감상 : 시스터 콤플렉스 

 

 “내가 빨리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

 

 세 번째 감상 : 자기 도취에 찌든 느낌 (빨리 왔다니 5분 단축은 스자쿠의 기준에서 별로 빠른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빨리 오지 않아도 그냥 당신을 기다렸겠죠….”

 “정치를 하겠다는 놈이라 그런지 입만 살았군.”

 “오라버니! 스자쿠 씨는 저를 도와주셨어요!”

 “……방금 전에는 선배였는데 이제는 이름으로. 너! 나나리에게!”

 

 나나리는 스자쿠에게 달려드려는 제 오빠를 붙잡았다. 여동생이 잡아서 행동을 그만둔건지, 그만한 체력이 없는건지는 모르겠다. 코트를 입어도 드러나는 마른 체격은 그가 진심으로 달려들어도 스자쿠를 이길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자쿠 씨가 없었으면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같이 기다려주셨고….”

 “스자쿠? 쿠루루기 스자쿠?”

 “…음, 나는 공과대학이랑 인연은 없지만. 쿠루루기 스자쿠라고 합니다.”

 “아, 네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다. 쿠루루기 기업에서 하는 사쿠라다이트 관련 사업 세미나에 교수님 연구생으로 들으러 간 적이 있으니까. 집안에서 꽤나 주목받는 후계자인데 좀처럼 의욕없는 놈이라고 네 아버지가 걱정을…. 아, 이런 건 됐다. 아무튼 나나리의 일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