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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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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정

DOZI 2019.06.06 22:05 read.399 /

스자루루+로로나나

 

 

 

 

 

 

 

 

 

 

 

 

한 달 만에 긴 원정을 끝내고 아리에스 궁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나이트 오브 세븐인 쿠루루기 스자쿠는 오랜만에 돌아가는 아리에스 궁이 빨리 가까워졌으면 했지만, 같이 동행한 소년은 그렇지 않은 듯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스자쿠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람페르지…. 이제 곧 아리에스에 갈 텐데 표정은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쿠루루기 경?”

“아니, 믿지, 믿는데…. 그런 표정으로 계속 있으면 를르슈도 걱정할 걸.”

 

를르슈, 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소년—로로 람페르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스자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나나리도 걱정할거야!”

 

좀 풀어지는가 싶던 로로의 미간이 바로 구겨졌다. 스자쿠는 그제서야 제 입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매번 이런 식인 것도 한두 번이지, 로로와 나나리 사이에 있는 스자쿠와 를르슈, 특히 를르슈가 얼마나 난처한지 모른다. 

 

“왜 그렇게, 나나리를…. 아니, 근데 나나리는 황녀 전하니까 로로가 그렇게 예의없게 굴면 안되잖아?”

“알고 있습니다. 제가 황녀 전하께 결례를 범한 적은 없는데요.”

“…를르슈가 불편해 하잖아.”

“황자 전하의 심성이 고우신 탓에 그렇게 여기시는 거겠지요.”

“너 정말 를르슈를 좋아하는구나.”

“예, 될 수 있다면 그 분만의 기사가 되고 싶을 정도로.”

“…….”

 

하지만 를르슈는 스자쿠가 나이트 오브 세븐의 자리에 오르면서 기사를 갖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실제로 황족 중에서도 기사 제도를 유용하게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허례허식으로 남은 기사 제도는 황제의 기사들인 나이트 오브 라운즈 말고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전장에 나가는 황족들의 경우, 기사는 꼭 필요했다. 를르슈는 기지에서 지휘를 맡는 경우가 많기에 호위대를 대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체로 스자쿠가 함께 나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의 여동생이자 ‘섬광의 마리안느’를 잇는 나나리 비 브리타니아가 나섰다.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교관보다 더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지도를 받고 자란 나나리는 어지간한 KMF를 능력 이상으로 다룰 줄 알았다. 를르슈의 지휘에서도 빠지지 않고 활약하는 훌륭한 전력이었다.

그래서 를르슈는 고민 끝에 여동생에게 권유를 한 것이다. 

 

“음, 를르슈의 기사는 나도 되고 싶네.”

“쿠루루기 경은 무리죠. 이미 나이트 오브 라운즈니까.”

“…로로도 무리지.”

 

로로 람페르지를 기사로 받아들이라는 권유를 했다.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로로 람페르지는 를르슈의 외가 쪽 친척으로, 람페르지 가의 후계자이다. 즉, 를르슈의 어머니—마리안느 비 브리타니아가 황후가 되기 이전에 머물렀던 람페르지 집안의 후계자로, 어렸을 땐 병약했으나 커가면서 점차 건강해지면서 이제 군인이 될 정도였다.

로로 람페르지와 나나리 비 브리타니아는 사실상 친척이었지만, 한 명은 그저 서민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황족이었기에 만날 일이 드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마리안느 황후가 친정과 황궁을 자주 오가면서, 건강해진 로로 람페르지를 나나리의 친구로 삼을 겸 데리고 들어왔다. 아냐 알스트레임이라는 귀족 집안 출신 소녀가 나나리의 첫 친구였지만, 아기자기하게 딸을 키우는 건 마리안느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좀 더 폭풍처럼 키워야하는데…. 예를 들면 스자쿠와 를르슈처럼! 

 

마리안느의 말도 안되는 바램으로 로로 람페르지의 첫 입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서 아리에스 궁으로 들어온 로로는 그나마 아는 사람인 마리안느의 뒤를 종종 따라다녔다.

 

‘이런, 로로. 여기는 그렇게 넓지 않으니까 가까이 안 붙어도 돼. 주변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봐도 된단다.’

 

그러면서 로로에게서 빠른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마리안느는,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들과 그의 친구를 불렀다. 

 

‘를르슈!’

‘어머니, 또 밖에 다녀오셨어요?’

‘그럼, 오늘은 나나리의 새 친구를 데려왔어.’

‘나나리의 새 친구?’

‘저 녀석인가요? 엄청 약해보이는데.’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해서 로로는 두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내 마리안느가 안으로 그 둘을 불러서 로로에게 소개시켜주었다. 한 명은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마리안느의 아들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쿠루루기 스자쿠, 훗날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될 남자였다.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나나리의 친구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 활기찬 아이니까 잘 대해줬으면 좋겠어. 아, 스자쿠처럼 엉뚱한 일은 가르쳐주지 말고.’

‘뭐야, 그게. 를르슈도 재미있어 했잖아.’

‘불경하다, 스자쿠.’

‘이제 와서 그런 말 쓰지 마.’

 

로로는 머뭇거리며 알겠다고 말했다. 전하, 하고 말 끝에 존칭을 붙이니 를르슈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돼. 어머니의 친척이라면 나에게 있어 너도 나나리와 같은 동생이니까. 형이라고 불러도 좋아.’

 

소년들이 인사를 다 나누고 있을 때, 마리안느는 이제 폭풍의 시간이 다가올 것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나리 전하, 일어나셨어요? 메이드의 소리는 나나리가 낮잠에서 깨어난 것을 알렸다. 아직 졸음에 겨운 눈을 부비면서 오라버니, 하고 제 오빠를 찾아 나온 나나리는 다들 모여있는 자리에 모르는 얼굴이 있는 것에 잠이 확 달아났다.

 

‘아, 나나리. 너의 새 친구야.’

 

를르슈는 로로를 소개했다. 로로 람페르지, 어머니의 친척이고,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지. 나나리와 로로는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스자쿠는 꼭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나리는 여자고, 로로는 남자인데 말이지. 흐음. 스자쿠가 귓속말로 를르슈에게 그렇게 말하자, 를르슈는 간지럽다고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닮은 두 사람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로로 람페르지입니다, 나나리 황녀 전하.’

 

먼저 로로가 인사를 했다. 나나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제 오빠와 그의 친구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준비해준 자리였지만, 나나리는 로로라는 소년이 꺼림칙했다. 그리고, 로로 역시 그러했다.

 

‘나나리 비 브리타니아입니다. 아리에스에서 좋은 시간이 되시길.’

 

이것이 나나리와 로로의 첫만남이었다.

를르슈는 나나리의 기고만장한 대답에 놀라서 스자쿠의 손을 꽉 쥐었고, 스자쿠는 갑작스럽게 손톱을 세워 손바닥을 찌르는 를르슈 때문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마리안느는 갑작스럽게 황녀로써의 프라이드를 내세우는 딸을 보며 바닥을 구를 것처럼 웃었다.

그 이후로 나나리와 로로의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아리에스에서 같이 생일 파티를 연다거나, 나이가 똑같고 생일도 같으니 사교계에서 데뷔할 때에는 같이 춤을 춘다거나, 기량이 비슷해서 KMF 훈련할 때에도 같이 한다거나.

를르슈와 스자쿠는 두 사람의 겹치는 일정을 듣고 있으면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저러다가 둘이 사귀면 어떡해? 친척끼린데 괜찮아?’

‘황실에 근친혼은 흔하고, 그리고 로로는 거의 남에 가까운 먼 친척이라 괜찮아…가 아니라! 나나리와 로로는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올해로 10년째 같이 생일파티 해주고 있고, 그때마다 둘이서 먼저 춤을 추잖아.’

‘…….’

‘요즘 들어서 를르슈랑 나나리랑 같이 있는 시간보다, 로로랑 나나리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더 길지 않아? 역시 둘이 사귈 수 밖에.’

‘아니다!’

 

아직 둘에게는 연애는 이르다고 말한 를르슈는 턱을 괴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 로로랑 나나리 나이에 우리는 섹스했는데.’

‘닥쳐라, 스자쿠.’

‘Yes, Your Highness.’

 

그래, 둘이 연애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럽고 괜찮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자쿠도, 를르슈도 그렇게 느꼈다. 둘은 서로를 좋아할까? 아니, 좋아하면 그런 분위기일 리가 없는데. 

그렇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우리 관계를 다질 시간도 없는데 남의 이야기는 그만두자고 섹스를 하고 나서 스자쿠는 원정을 떠났다. 이번엔 드물게 로로 람페르지가 스자쿠의 밑에서 보좌를 맡았다.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전선은 생각보다 치열했고, 돌아오는 아리에스의 차 안에서나 이렇게 물어보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공적을 쌓았으니 진짜로 황족의 기사가 될 수 있는데, 로로.”

“형이 허락하면 저는 언제든 무릎을 꿇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쿠루루기 경.”

“…그렇다면, 나나리의 기사는?”

“황녀 전하는 저 없어도 알아서 잘 사실텐데요.”

“……그렇지.”

 

를르슈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로로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있지, 로로.”

“예.”

“나나리가…왜 그렇게 싫어?”

“…….”

“너무 싫다고 티를 내면, 를르슈가 상처받는 거 같아서.”

“나나리 황녀 전하가 싫다고 한 적 없습니다.”

 

부드럽게 달리던 차는 멈추었다. 열리는 문에 로로는 한 박자 늦게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오히려 좋아지고 있으니 기분이 나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