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루기 스자쿠(연상) X 를르슈 람페르지(연하)
를르슈 람페르지는 최근 들어 과외라는 것을 받기 시작했다. 클래스메이트들은 그 를르슈 람페르지가 과외를 받는다는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업을 빼먹는다거나, 출석하더라도 조는 것 말고는 어지간해서 보통 이상, 아니 더 노력하면 상위권에 도전할 수 있는 그가 과외? 를르슈는 그들의 반응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 내가 과외라니…. 그것도 대학생 과외라니!’
를르슈에게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나나리 람페르지라는 한떨기 꽃처럼 가련하지만 체력은 한여름의 해바라기마냥 지지 않는 귀여운 여동생이고, 다른 한 명은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마리안느 람페르지였다. 여동생이 귀여우니 오빠된 마음으로써 이 거친 세상이 걱정되는 것이야 당연하다보니 약점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후자는 내용이 달랐다.
를르슈는 어머니를 이겨본 적이 없다. 를르슈의 특기인 체스, 이겨본 적 없다. 체력 싸움, 당연히 이겨본 적 없다. 집안일이라는 항목이 있긴 있었으나 어머니 마리안느는 한마디로 일축시켰다.
‘사람은 적재적소가 있어! 나는 그런걸 하지 않아!’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적재적소라는 말을 위해서였다. 기억나는 무렵에는 C.C.와 사요코가 번갈아 가며 주방에 서있었고, 나중엔 를르슈가 그 집안일을 배우고 있었다.
즉, 마리안느는 집안일이라는 경쟁 항목 자체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승부하지 않는 방법으로 를르슈를 패배시킨 것이었다. 정말 당했다, 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를르슈에게 집안일을 맡긴 만큼의 자치권을 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하도 땡땡이를 쳐서 부모님 소환이 있을 때에도 혼내지 않는다거나, 내기 체스를 하러다녔다가 경찰서에 가서 부모님 소환이 있을 때에도 혼내지 않는다거나, 그랬다.
방치하는 게 아니냐고 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지만 마리안느는 말했다.
‘사람은 적재적소! 를르슈는 거기에 재능이 있을 뿐이야! 오히려 갈고 닦으면 좋아!’
육아에서 버림 받은 것보다 더한 말이 아닌가,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나리가 저를 보고 닮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를르슈는 그 이후로 내기 체스나, 학교 땡땡이는 적당히 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나나리는 어머니와 오빠의 모습에 예전부터 질려서 알아서 성실하게 산 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를르슈에게 과외 제의가 들어왔다. 를르슈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홍차를 담은 찻잔을 내려두었다.
‘이래보여도 수험생이라 과외같은 걸 할 시간은….’
‘그래, 수험생이니까 과외를 받아야지!’
‘…제가 과외를 받는다고요?’
‘응. 거래처의 아드님이 올해로 대학교 4학년인데 취직하기 전까지 대학생으로써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싶나봐. 그 중에 과외해보기가 있는데 를르슈 생각이 나서 추천을 했더니 뭐, 그럭저럭 계약이 잘 됐어. 다음주 토요일부터 우리집에 올거니까 준비하도록!’
어머니의 계약에 를르슈의 주말은 팔려버린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못하고 있더니 마리안느는 빈 찻잔에 찻물을 부으면서 웃었다.
‘그 학생 실력이 형편없어도 우리 아들은 잘할거야, 그렇지?’
이제껏 농땡이치고 개판으로 받아온 성적을 어떻게든 만회해야지, 를르슈. 마리안느의 살벌한 말에 를르슈는 사레가 들릴 것 같은 걸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
‘아, 아직 성적 관리에는 여유가 있는데.’
‘그러니까 과외도 받아도 되잖아? 안 받으면 안 돼. 상대는 총리 아들이라구? 거절하면 곤란해지는 건 엄마야~?’
당했다.
당했다.
당했다!
그런고로 토요일. 상대는 총리 아들, 대학교 4학년이라는 것 밖에 모르는 를르슈는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는 이 집에서 나나리를 친구 집에 보내놓고 적을 기다렸다. 누군지 몰라도 가차없이 대해주마. 멍청이 취급을 하며 이 집에서 울면서 나가게 해주리라!
를르슈가 이를 갈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외부 카메라를 켜서 녀석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수업하러 온 쿠루루기입니다.]
를르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힘이 들어간 주먹이 덜덜 떨렸다.
모니터에 비치는 이 남자. 커다란 눈,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 어색하지만 인상 좋게 웃는 미소, 무엇보다 사근사근한 목소리. 너무나도 무해하다. 패기라고는 없어보이는 이 남자…!
를르슈는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온 쿠루루기는 백팩 하나를 매고서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숙였다.
“를르슈 람페르지, 맞지? 마리안느 씨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오늘은 시범 수업이니까 불편하면 그만둬도 돼.”
그렇게 될 리는 없다. 상대는 마리안느 람페르지다. 를르슈가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상대다. 를르슈는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를르슈라고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쿠루루기 선생님.”
“아, 그래? 그럼 를르슈도 나 스자쿠라고 불러. 내 이름이야. 쿠루루기보다 부르기 편하지?”
“네, 스자쿠 선생님.”
를르슈는 자기 방을 가리켰다. 미리 준비한 의자 두 개에 편한 곳에 앉으라고 스자쿠를 앉혀놓고, 저는 마실 것을 내오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차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적당한 온도로 식어있는 차를 들고 가면 된다. 한입 사이즈로 먹을 수 있는 과자도 준비되어 있다. 손도 더럽히지 않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그저 지금 그대로 들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당했다.
완벽하게 당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지금, 토요일 오후 2시, 완벽한 이상형—쿠루루기 스자쿠—에게 기습을 당했다. 개판으로 가르쳐도, 개소리를 지껄여도, 를르슈는 다 감당할 것 같은 자기 자신이 싫었다. 자기가 호모인지 게이인지 바이섹슈얼인지, 그것보다 그저 자기 방 안에 있는 쿠루루기 스자쿠의 존재에 를르슈는 그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그걸 반했다고 표현하지만.
공지 | <부활의 를르슈> 스포일러 있는 글은 * | 2019.05.12 |
55 | 납치감금강간 연상연하 | 2019.06.11 |
54 | 그 남자, 임신 | 2019.06.11 |
53 | 그저 하고 싶을 뿐 | 2019.06.11 |
52 | 환생하는 스자루루 | 2019.06.11 |
51 | 임신이 하고 싶은 를르슈 | 2019.06.11 |
> | 과외교사 쿠루루기 | 2019.06.09 |
49 | Frame of You | 2019.06.08 |
48 | Don't cry, baby | 2019.06.08 |
47 | 그와 그녀의 사정 2 | 2019.06.07 |
46 | 그와 그녀의 사정 | 2019.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