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Very2ndPlace
< >

No memory, no pain

DOZI 2019.06.28 18:45 read.438 /

기억조작대잔치

 

 

 

 

 

 

 

 

 

 

 

 

 

 

쿠루루기 스자쿠의 인생은 17살부터, 그리고 브리타니아의 펜드래건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17살부터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쿠루루기 스자쿠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17살부터 태어났다.

그리고 그 이전은 모른다.

인생 최초의 기억은 황제로부터의 칼을 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Yes, Your majesty. 그 말은 입에 붙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나는 브리타니아의 기사, 나이트 오브 라운즈, 그리고 나이트 오브 세븐. 뒤를 돌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스자쿠는 저도 모르게 아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다.

지금 태어났기 때문이다.

 

기억이 없다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스자쿠는 그런 감각보다 ‘태어났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았다. 그게 더 자유로웠다. 그리고 과거를 알아볼 시간은 스자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나이트 오브 세븐은 바빴다. 늘 이리로, 저리로, 휩쓸리고 끌려다니듯이 나이트메어에 타서, 누군가를 죽인다. 하지만 갓 태어난 스자쿠의 안에는 원래 무언가가 있었는지,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망설임이 있고, 그래서 작전을 그르칠 때도 있다.

시말서를 쓰면서도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임시변통의 말들을 지어내며 썼다. 그런 거짓말을 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어쩌면 근본은 썩어있는 인간이었을지도, 하고 과거를 가끔 추리해본다. 그때 뿐이다. 그 다음 전쟁터, 그 다음 전장, 그 다음….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이름은 그저 식별 코드에 불과했다.

나이트 오브 세븐이 원래 내 이름이었을지도. 파란색 망토를 등에 두를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이트 오브 세븐은 그동안 쉬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휴가를 줄 겸.’

‘하지만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인력은 늘 부족하다.’

‘그러니.’

 

체력은 있지만, 피로는 어쩔 수 없다. 스자쿠는 잠깐 졸아버린 사이에 도착한 곳에서 눈을 떴다. 잡초가 무성한 정원과 녹이 슨 철문은 끼기긱, 하고 불쾌한 소음을 내며 겨우 열렸다. 차에서 내린 스자쿠는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는 아무도 없다. 원래부터 버려진 폐궁이라고 들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폐궁인데 왜 헐지 않았을까. 엉망진창의 풍경을 보면서 스자쿠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제 임무가 생각났다.

 

‘그곳은 감옥이다.’

‘거기에서 보초를 서라.’

‘안심하도록. 감시할 사람은 한 명 뿐이다.’

 

감옥. 이젠 간수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쾌하거나, 싫다고 하기보다는 이제까지와 좀 다른 노선이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한 것과 크게 다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안 죽여도 되는구나, 그런 위안이 조금 더 들 뿐.

 

“아아아악! 아, 아, 아아악!”

 

안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목이 잔뜩 쉬어있는 상태였기에 이미 그렇게 된 지는 오래된 것 같았다. 스자쿠는 그 고성에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발걸음을 빨리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감옥에 갇혀있는 자들은 대부분 죄수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믿으며, 옳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지금의 처사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빼앗겼으니 발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소리도 그런 것이다.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대부분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 아아, 아아아아….”

 

스자쿠 안으로 들어가면, 한 남자가 바닥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건물 안은 바깥처럼 황량하고, 먼지투성이다. 남자는 빛이 바랜 카페트 위에서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언가를 부순 흔적들이 남은 거실, 유리조각이 밟히는 바닥, 그리고 그 위에서 울고 있는 남자.

감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가 호화롭지만, 사람이 갇혀있으면 그곳은 감옥이다. 스자쿠는 그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울다가 지친 것인지 남자는 허억, 허억, 하고 숨을 내쉬다가 기절한 것처럼 조용해졌다.

발작같다. 주체할 수 없는 폭력, 억울함을 안고 있는 울음소리, 스스로도 어쩔 줄 모르는 충동 같은 것들이 이 폐궁 안에서 가득 느껴졌다. 남자가 일어날 때까지 시간은 걸릴 것 같았고, 스자쿠는 그 사이 안을 돌아보기로 했다.

 

지상으로 2층, 지하로 1층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꽤나 넓은 건물이었다. 서재만 해도 세 곳이었다. 그리고 황족이 살았던 것이 확실했는지, 으리으리해보이는 침실과 그 옆에 딸린 작은 침실, 혹은 두 침실이 이어진 문이 있는 곳이 여러군데 있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증축된 것 같았다. 스자쿠는 아이 방으로 보이는 곳이 두세 개가 되는 걸 보고서, 한 명의 황후가 아이를 낳고, 하나의 브리타니아 가문이 여기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살았는지는 모른다. 흔히 걸려있을 초상화는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거실에 걸어두겠지만, 거실에는 남자가 지금 쓰러져 있다.

 

마지막으로 거실로 돌아와서, 남자를 살폈다.

검은 머리의 브리타니아인. 스자쿠와 비슷하지만 훨씬 마른 몸. 엉망이 된 손. 손톱으로 긁었는지 목과 얼굴이 엉망이었다. 특히, 눈 부분이 그랬다. 왼쪽 눈은 꼭 파내려고 했는지, 다른 부분보다 집요한 상처가 많았다. 뭔가로 찌른 흔적도 있었다.

 

‘흉터가 남을 수도 있겠다….’

 

남으면 남는 거지만. 스자쿠는 자신의 상처에 둔감하듯, 남의 상처에도 그러했다. 우선 남자의 팔을 잡아 올렸다. 단숨에 올라오는 무게에 스자쿠는 혀를 차며 그를 안아올렸다. 질질 끌고 갔다가 애매하게 깨웠다가는 피곤하니까.

돌아봤던 방 중에서 그나마 깨끗한 침대가 있는 곳에 남자를 내려두었다. 엉망이 된 얼굴 왼쪽의 피부를 보며, 스자쿠는 한숨을 쉬었다. 그 부분을 장갑을 낀 손끝으로 살짝 매만지면, 남자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아픈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약을 달라고 해야지.’

‘흉터가 남으면, 모처럼.’

‘예쁜 얼굴이….’

 

예쁜 얼굴? 스자쿠는 스스로 하던 생각에 머리를 털었다. 미와 추에 대한 개념은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는 거의 없는 것이었다. 검은색과 흰색 중에 뭐가 낫냐고 물으면 검은색이 때가 안 타서 좋다, 하지만 흰색은 뭐가 묻어도 금세 티가 나니 좋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좋고 싫음의 개념은 없는 것처럼.

떨떠름한 기분으로 스자쿠는 나머지 옷장을 열어 대충 남아있는 옷들 중에서 그나마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옷자락을 길게 찢었다. 남자의 손을 침대에 묶어두었다. 느슨하게 묶었으니 어디가 아프진 않겠지만, 그래도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이로.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거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부하를 불러서,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했다. 새로운 침대 시트, 비상약, 그리고 간편한 조리식 나흘치, 그리고 더 필요한 건 알아서 채우도록. 유능한 브리타니아 군인이라면 자신의 상관이 당분간 머물 곳에 대해서 어떻게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알 것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Yes, my lord.”

 

스자쿠는 거실에 있는 것 중에 유일하게 형태가 온전한 소파에 앉았다.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와서 기침이 조금 나왔다.

소파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위치라면, 원래의 화려했을 그 거실의 풍경이 눈에 잘 들어왔을 것이다. 아마 이쯤에서 초상화가, 그리고 저기에 꽃을 두었을지도. 누군가가 죽어가는 신음소리도, 나이트메어가 건물을 부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폐궁에서, 스자쿠의 피로에 젖은 몸은 잠으로 이끌렸다.

 

깨어난 것은 남자의 악다구니 때문이었다.

 

“누가 있는거야! 당장 이걸 풀지 못해?!”

 

아침? 스자쿠는 눈을 뜨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불편한 옷차림으로 잠을 잤지만, 생각보다 몸이 결리지 않았다. 해가 희미하게 뜨고 있었다. 곧 부하들이 올 시간이었다.

위에 묶어놓은 남자는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스자쿠는 못 들은 척 하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약속한 시간에 온 부하들은 스자쿠가 부탁한 물건들과, 그리고 알아서 채우라는 물건들까지 다 들고 왔다. 스자쿠는 별로 신경쓰지 않을 생활용품들이었다.

 

“갖고 들어가겠습니다.”

“아, 그래. 대충 거실에 내려두면 좋겠어.”

 

부하들은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남자의 고함에 깜짝 놀라는 듯 했다. 하지만 나이트 오브 세븐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실까지 데려가는 것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식료품 박스 위로 서류 박스가 하나 올라왔다.

몸 편히 간수 노릇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서류를 보는 일은 스자쿠의 성미에는 그렇게 맞는 일은 아니었다. 종이 한 장으로, 직접 보지도 않고 무언가를 처리하는 것은 스자쿠에게 힘든 일이었다. 기억이 없는 나의 판단으로 이게 과연 맞는걸까? 그때 정도는 자기가 기억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나이트 오브 세븐, 서류에 뭔가 부족한 점이 있습니까?’하는 말이 들리면, 없다고 대답하면서, 남의 이름 같은 쿠루루기 스자쿠를 적어냈다.

 

“수고했어. 나흘 후에 다시 부르지.”

“Yes, my lord.”

 

남자는 스자쿠의 부하들이 짐을 나르고, 인사를 다 할 때까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있는거지, 그럼 나를 풀어라, 여기서 나가게 해줘! 하지만 스자쿠는 들은척도 안 했고, 그래서 다들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밤새 내내 앉아있던 소파에 앉아서, 스자쿠는 서류 박스부터 풀었다. 서류는 세 종류가 있었다. 이 건물의 내부도와 그 주변에 대한 지도가 있었다. 그리고 황적과 관련된 서류가 있었다. 대충 펼쳐보니 누군가의 출생부터 죽음까지가 적혀있었다. 이름 모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브리타니아 황실에는 스자쿠가 아는 황족보다 모르는 황족이 더 많았다. 10살에 유학을 떠났지만 그 나라의 반브리타니아 세력의 테러에 휘말려 죽었다. 뒷받쳐줄 패트론이 없는 나약한 황족이었을 것이다.

남은 하나는 어제 보았던 남자에 대한 서류였다. 머리채가 잡힌 채로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그나마 얼굴이 멀쩡했을 때의 사진일 것이다. 정말 예쁜 얼굴이네…. 스자쿠는 무심코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줄리어스 킹슬레이.

17살.

태어나서 현재까지 기어스 향단에서 자람.

계약 완료.

단계 : 폭주

위와 같은 사유로 향단에서 격리.

폐궁(건물식별번호: MLKS1711)에 임시로 격리.

 

제국에 기어스 향단이라는 이름의,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 결이 다른 미묘한 집단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무엇을 연구하는지는 모르지만, 스자쿠는 어렴풋이 생체병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얇은 서류였다.

알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여기 갇혀있는지에 대해서 스자쿠는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계약 완료, 폭주? 스자쿠는 모를 말이었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나.

2층으로 올라갔다. 남자를 묶어둔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스자쿠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약, 들고 올걸. 스자쿠의 인기척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날 이렇게 묶어놨어?!”

“나이트 오브 세븐이다, 줄리어스 킹슬레이.”

“나이트 오브 세븐…?”

 

그게 뭐냐고 물어보듯이 말을 따라하는 남자는 멍하니 스자쿠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스자쿠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눈가의 상처가 쓰린지, 남자는 앓는 소리를 또 내었다.

 

“상처는 조금 있다가 치료할게. 우선 확인할 게 있어서.”

“뭐든 좋으니까 우선 이걸 풀어.”

“뭐든 좋으면 조금만 기다려.”

“……무엇을 물어도 대답할 수 없다.”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나를 알아?”

 

남자는 아주 놀란 눈으로 스자쿠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의 말을 떠올리듯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주, 줄리어스 킹슬레이가, 내 이름인가…?”

“뭐?”

“나는 네가 뭔지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몰라. 그러니까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어!”

 

꼭 나같네. 스자쿠는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꾹 참으며 ‘아, 그래.’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도망가지 않을게. 어차피 도망갈 힘도 없다. 지금 나한테는 상처도 있는 거 같고, 아프니까 움직이지도 못해. 그러니까 이걸 풀어주면.”

“여기는 감옥이야.”

“…감옥?”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을 쉽게 풀어주는 간수는 없지. 확인이 끝나면 치료도 해줄 테니까.”

 

스자쿠의 말에 남자는 무언가 말을 할 것처럼 입술을 덥썩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알겠다.

스자쿠는 기어스 향단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나이트 오브 라운즈처럼 어떤 군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줄리어스 킹슬레이도 어느 정도 규율을 따르고 순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처사는 불합리하며, 이런 것은 옳지 않다, 빨리 풀어줬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향단에서 자란 것 같지 않았다.

기운 빠진다. 스자쿠는 이런 탈력감을 잘 알고 있었다. 대체로 황족들을 상대할 때 느끼는 것이었다. 짜증이 날 지경에 이르자 스자쿠는 물어보는 걸 그만두고서 줄리어스의 팔을 풀어주었다.

 

“아, 이제 끝난 건가?”

 

이러다가 열이 받아서 쓰러질 것 같아 풀어주는 거라고 말하기도 귀찮았다.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줄리어스의 얼굴에 남은 상처들이 보였다.

 

“이제 치료해줄게.”

“부탁한다.”

 

기어스 향단이란 대체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사람을 아랫것처럼 부리는 이런 태도는 어디서 배워먹은 것인지. 물어볼 것이 산더미였지만 스자쿠는 줄리어스에게 침대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박스들을 뜯어 약 상자를 가져왔다.

가장 아프지만 효과가 빠른 연고와 소독약, 거즈, 솜을 늘어놓자, 줄리어스는 얌전히 얼굴을 내밀었다.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성격은 재수없다. 스자쿠는 소독약을 줄리어스의 얼굴에 콸콸 들이부었다. 아아아악! 줄리어스가 비명을 질렀다. 눈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스자쿠는 줄리어스의 눈꺼풀이 올라가지 않게 힘주어 눌렀다. 소독약으로 세수를 한바탕 하고 난 줄리어스는 훌쩍거리면서 스자쿠가 발라주는 연고에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스자쿠가 그 치료를 하는 시간동안 깨달은 것은, 줄리어스는 엄청난 약골이고, 기어스 향단은 이런 걸 키워내는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줄리어스 킹슬레이, 17살에, 지금껏 기어스 향단에서….”

“남의 이야기처럼 하고 있네.”

“말했잖아. 나는 기억이 없다.”

“…….”

“그리고 네가 하는 말도 믿을 수가 없어. 사람은 몸의 기억이라는 게 있잖아? 네가 하는 말 중에 본능적으로 이건 진짜다, 하는 말이 하나도 없다.”

“그래?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거지.”

“……나이트 오브 세븐은 명령 때문에 이 감옥에 온 건가?”

“그래.”

“그렇군.”

“…….”

“나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그건 나만 볼 수 있어. 죄인은 죄인답게 감옥에 있어.”

“죄?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지?”

 

스자쿠는 말을 괜히 했다 싶었다. 그건 스자쿠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기밀이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인 자기도 모르고 있으니 아마 국가기밀 정도는 될거다. 줄리어스는 의심이 간다는 눈으로 스자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는 어디야?”

“감옥이라고 했잖아.”

“…감옥 같지 않은데.”

“사람을 가둬놓을 수 있다면 감옥이지.”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나이트 오브 세븐.”

 

줄리어스의 안에서 스자쿠의 이름은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된 것 같았다. 스자쿠는 하아, 하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먹은 것도 없는 오전부터 기운이 너무 빠졌다. 체력이 좋다고 한들 정신적인 피로는 계속해서 풀리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쿠루루기 스자쿠야, 내 이름.”

“쿠루루기, 스자쿠?”

“다들 부르기 힘드니까 나이트 오브 세븐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뭔가 입에 딱 감기는 느낌이군.”

 

줄리어스는 거즈 투성이의 얼굴을 더듬다가 아픈데를 건드렸는지 악, 하고 소리를 냈다. 스자쿠는 거즈가 떨어졌는지 확인하느라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멀쩡했다. 줄리어스는 가까워진 사이로 스자쿠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스자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게 원래 내 이름 아닐까?”

“뭐?”

“줄리어스 킹슬레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 같지가 않아. 오히려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느낌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내 이름은 브리타니아식 이름이 아니야.”

“…그런가.”

“그래.”

“그럼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던가?”

“나는 너를 처음 봐.”

“그래?”

 

나는 네가 낯설지가 않은걸. 줄리어스는 흠, 하고서 또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여자라면 유혹하는 멘트가 틀림없지만, 줄리어스는 남자였다. 스자쿠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정보에 대해서 의심하며 무언가를 더 떠올리려는 줄리어스를 보고서 더 피곤해졌다.

 

“밥부터 먹을까, 줄리어스.”

“먹고 나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엉망인 거실에서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되는 조리식을 꺼내들었더니 줄리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건 영양가가 없어. 그 말에 스자쿠는 기어스 향단은 대체 뭐하는 집단인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거실로 내려온 줄리어스는 건물 안을 둘러보면서 아, 하고 중얼거렸다.

 

“대충 어딘지 알 것 같은데…잘 모르겠다.”

“뭐가?”

“이 곳.”

“감옥이랬잖아.”

“아니, 여기는 황족이 살았던 궁이야.”

“흠, 먼저 와있는 동안 둘러봤어?”

“먼저 와있다니?”

“나보다 먼저 와있었잖아.”

“……나는 오늘 아침에 여기에서 눈을 떴어. 그 이전엔 기억이 없어.”

 

스자쿠는 입을 다물었다가 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대책없는 임기응변의 말이 튀어나갔다.

 

“피곤해서 잊고 있었어. 내 부하들이 먼저 두고 갔지.”

“나이트 오브 세븐은 바쁜건가? 하긴,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쉴 새가 어디 있겠냐만.”

“잘 알고 있네.”

“아…….”

 

줄리어스는 제가 한 말에 입술을 다물었다. 긴 침묵 끝에 그가 한 말은 ‘뒤죽박죽에, 엉망진창이다.’라는 말이었다.

 

“나이트 오브 세븐이 뭔지도 모르는데, 나이트 오브 라운즈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황족이 살았던 궁이라는 건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난 기어스 향단인지, 거기에서 계속 컸다며?”

“…….”

“네가 가진 나에 대한 정보는 정말 믿을 수 있는건가?”

“그럼 네가 가진 너에 대한 정보는?”

“…….”

“네가 생각하는 네 이름은?”

“…….”

“아무것도 말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모르는거야.”

 

그 말에 시무룩한 얼굴로 가라앉은 줄리어스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힘이 빠진 그의 모습에, 스자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억이 없는 남자가 두 명이나 있다. 이름 말고는 모든 걸 확신할 수 없는 스자쿠와, 이름과 출생, 확신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믿을 수 없는 줄리어스. 스자쿠는 배가 고프다고 말했고, 줄리어스는 목이 마르다고 했다.

은연 중에 서로 깨달았을 것이다. 둘은 닮은꼴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