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루기 스자쿠가 스무 살이 되던 날 자정, 그는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스자쿠의 첫 키스는 아니었다. 그의 첫 키스는 초등학생 시절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중학생 누나와의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스자쿠는 수많은 여자들의 입술과 키스를 했지만, 그에게 키스란 섹스 직전에 애무 단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흐리멍텅한 키스의 기억들을 단번에 잊게 만드는 스무 살의 키스는 달콤하다 못해 짜릿할 지경이었다. 그저 입술을 맞대고 있는데도, 그 상대의 체온과 느껴지는 달큰한 향기 같은 것에 스자쿠는 취할 것 같았다. 처음으로 마신 술에 한껏 취해 하는 키스는 자신이 오랫동안 원했던 것들 중 하나였다.
“다른 생각할 여유가 있나봐, 스자쿠?”
를르슈는 스자쿠가 자주 입고 자는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빌려입고서, 스자쿠의 것으로 제 몸을 휘감은 채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랫입술을 지긋이 물고 늘어지는 를르슈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어딘가 보채고 있는 것 같았다.
귀엽다. 귀여워. 스자쿠는 를르슈의 뺨을 붙잡고서 다시 입술을 맞대었다. 이번엔 혀를 섞었다. 를르슈는 키스에 익숙한 스자쿠의 모습이 불만스러운지 미간을 찌푸렸다. 예쁜 얼굴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스자쿠는 를르슈의 몸 위로 제 몸을 겹쳤다. 스자쿠가 얽히는 타액이 고인 것을 삼키고 나면 를르슈는 붉어진 얼굴로 스자쿠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열받네.”
“뭐가?”
“네가 이렇게 익숙한 거 말이야.”
“누구 덕분에 이렇게 익숙해졌는데.”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지금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런 얼굴을 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스자쿠는 를르슈가 입고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겨가며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키스만으로도 흥분된 몸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생각할 여유 따윈 없다. 10년, 자그마치 10년을 기다린 순간이다. 겨우 손에 넣은 를르슈를 앞에 두고서 무슨 생각을 하겠어? 스자쿠는 를르슈의 알몸을 끌어안으면서 이제 지금보다 더 완벽한 순간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난 세상을 모두 가진 남자가 된 거야.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그러나 세상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스자쿠는 아직 뜯지 않은 담배와 라이터 하나를 손바닥 안에서 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에 대해서 굳이 말해보자면, 스자쿠는 흡연은 몸에 나쁘니 지양하자는 쪽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담배를 산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를르슈 때문이었다.
며칠 전, 회식을 마친 를르슈가 취해서 움직일 수 없다는 말에 스자쿠는 한걸음에 달려나갔다. 이럴 때라도 의지해주는 를르슈가 기특하고 고마워서, 스자쿠는 누워있던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술집 앞에서 취한 얼굴로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를르슈를 보았다.
그는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아마 회사 동료로 보이는 여자에게 담배를 받아 물면서, 그녀가 붙여주는 불에 깊게 호흡을 하면서 하얀 연기를 내뱉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익숙해보였다.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의 모습에 꼼짝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를르슈가 담배를 피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는 쌍둥이 동생들의 건강을 염려하며, 또 자신의 건강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라 담배도, 술도 멀리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술이야 사회인으로써 어쩔 수 없이 어울리는 편이지만, 담배는 냄새도 싫어하는 편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를르슈는 담배를 피우면서 실없이 웃고 있었다. 스자쿠가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도 모르는 채로,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를르슈.’
‘어, 스자쿠.’
스자쿠가 오자마자 그는 들고 있던 담배를 등 뒤로 감추었다. 스자쿠가 ‘마저 피워도 돼’라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담뱃재를 털고 재떨이에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 황급히 스자쿠의 손을 잡고서 술집 앞을 나오면서, 를르슈는 중얼거렸다.
‘애 앞에서 안 좋은 꼴을 보였네.’
깊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풀어진 넥타이, 풀린 셔츠의 단추, 한팔에 대충 들고 다니는 자켓. 를르슈는 조금 느슨한 모양이었지만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자다 일어난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쓰고 청바지만 간신히 꿰어입고 나온 꼴이었다.
어딘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입술을 맞대었다. 갑자기 길바닥에서 시작한 키스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쓴 담배맛에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를르슈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었다. 결국 급하게 한 키스에 호흡이 부족한 를르슈가 어깨를 밀어냄으로써 키스는 끝이 났지만, 스자쿠는 아직도 부족하기만 했다.
‘왜,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냐.’
‘방금 전에 여자라면 회사 동료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게다가 그 사람은 유부녀고.’
‘그런 거 아니야. 를르슈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질투도 아니야?’
‘아니라니까….’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잡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에 여자가 있었던 것, 조금 짜증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를르슈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말 하나가 거슬렸을 뿐이었다.
‘애 앞에서’
‘안 좋은 꼴을 보였네.’
나는 언제까지 를르슈에게 애 취급을 받아야하는 걸까? 우리는 섹스까지 한 애인인데.
스자쿠와 를르슈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그들은 서로를 안 지 벌써 10년이 넘은 사이였다. 스자쿠가 10살, 를르슈가 20살 때 첫 만남이 있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스자쿠가 20살, 를르슈가 30살이었다. 서로 안 것은 10년의 세월, 그리고 좁히지 못하는 것도 10년의 세월이었다. 스자쿠는 가끔씩 그 간극이 견딜 수가 없었다.
* * *
처음 펴본 담배는 맛이 없었다. 깊게 호흡을 하면서 들이키는 연기에 기침을 몇 번 하고는 했지만, 곧 호흡은 익숙해져갔다. 한 대를 다 태워갈 무렵에는 쓴 맛에 미간이 있는대로 다 구겨져있었다. 이걸 어떻게 를르슈는 맛있다는 듯이 피웠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스자쿠는 남은 담배를 주머니 안에 대충 구겨 넣었다.
이런 담배 좀 피운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애처럼 보이진 않겠지.
를르슈가 슬슬 도착할 시간이었다. 오늘은 퇴근한 를르슈와 주말까지 함께 보낼 예정이었다. 스자쿠는 흡연 구역 밖으로 나와 역까지 걸어갔다. 쌀쌀한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담배 냄새가 남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데이트는 순조로웠다. 오랜만에 를르슈가 좋아하는 술집에 가고, 스자쿠가 좋아할 법한 안주를 먹고, 술에 한껏 취해서 서로의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일은 주말이니 아쉬움이 남으면 서로의 집에 가면 됐다. 대체로 깔끔한 를르슈의 집에 가는 편이지만, 지금 가까운 곳은 스자쿠의 집이었다. 술집에서 나오면 그 다음 행선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스자쿠의 집으로 향했다.
를르슈의 집에 비하면 깨끗하진 않지만, 그렇게 크게 어지르는 편도 아닌 스자쿠의 집은 그 집 나름대로의 아늑함이 있다고, 를르슈는 그렇게 말했다. 그거 좋은 거지? 스자쿠는 키득거리며 물었다. 난 를르슈가 있으면 어디든 다 좋아. 스자쿠는 를르슈와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하으, 읏… 아, 스, 자쿠. 으응, 읏!”
“를르슈, 후, 잠시만, 콘돔 안 했으니까.”
“그냥, 해…. 으, 아아, 아!”
“먼저 해도 된다고 한 건, 를르슈야.”
“응, 으응, 아! 으으… 으, 응, 읏, 아, 아아…!”
솔직하게 저를 찾는 를르슈에게 키스를 퍼부으면서, 스자쿠는 파고든 쪽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앞뒤로 움직일수록 를르슈의 신음은 높아졌다. 스자쿠의 키스에 허겁지겁 매달리는 를르슈는 입술이 떨어지자, 이번엔 스자쿠의 목을 끌어안고서 히끅거렸다.
움직이기는 버거웠지만, 를르슈의 포옹은 기분이 좋았다. 스자쿠가 한 차례 사정을 하고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를르슈는 헐떡거리던 호흡을 고르고서 중얼거렸다.
“지쳐….”
“벌써?”
“너는 모르겠지만, 내 나이에 3번 간 건 엄청난 체력 소모야.”
를르슈는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정된 정액으로 더러워진 배나 다리 사이를 티슈로 닦으면서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웃기지, 분위기에 타서 귀찮은 일을 하고 말이야.”
“뭐가 귀찮은데?”
“콘돔 없이 해도 된다는 말 같은 거.”
“…나는 좋았어. 를르슈가 그런 말 하는 거 좋아.”
어리광을 부리는 네 모습이 좋아, 라고 말을 덧붙이려고 했다가, 를르슈의 가볍게 목을 울리며 웃는 소리에 스자쿠는 입을 다물었다. 그 웃음은 대체로 스자쿠를 귀여워할 때 짓는 것이었다. 섹스로 한창 지쳐있고, 정담으로 그 여운을 달래고 있어야 할 때에 스자쿠의 머리 속은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말에 휘둘리는 너도 너야.”
“…그래?”
“어쩔 수 없는 애라는 뜻이지.”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얼굴에도 를르슈는 스자쿠의 심각함을 모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거벗은 채로 다 벗어서 집어던진 옷가지들을 찾아서 정리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지쳤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정리를 한다고? 스자쿠도 침대에 걸터앉아서 를르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얀 엉덩이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이는 게 꽤 야하게 느껴졌다.
한 번 더 할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를르슈가 스자쿠를 불렀다.
“너, 담배 펴?”
스자쿠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담배를 흔들어보이며, 를르슈는 굳은 얼굴을 했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애초에 변명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우스운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른이야, 성인이라고, 담배 정도는 피울 수 있잖아. 법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고. 스자쿠는 그런 말을 내뱉고 싶었다가도 를르슈의 눈치를 보았다.
“그냥, 한 번 재미 삼아서.”
“재미로 하기엔 위험하지. 이건 압수.”
스자쿠는 라이터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를르슈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모습에 달래주는 것처럼 ‘햄버그 해줄 테니까 기다려’라고 말했다. 그런 걸로 기분이 풀리겠냐고. 스자쿠는 대답 대신에 침대에 누워버렸다. 스자쿠의 맨살이 드러난 등줄기에 를르슈가 다가와서 입을 맞추었다.
“이런 걸로 삐지지 마, 스자쿠.”
삐진다고? 난 화가 난 거야. 스자쿠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반박하는 순간 애처럼 떼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먹을 꽉 움켜쥐고서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에는 빨간 불빛이 반짝반짝거렸다. 위험, 위험, 분노 게이지, MAX—! 스자쿠는 벌떡 일어나서 를르슈에게 한 마디를 하려고 부엌으로 향했다.
‘를르슈, 나 이번엔 진짜 화났어!’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언젠가 나나리가 선물해준 팬시한 연두색 앞치마를 알몸 위에 두르고 있는 를르슈를 보자마자, 스자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를 뒤적이느라 내민 하얀 엉덩이와 잘록한 허리선 같은 것을 보면서, 를르슈의 용의주도한 알몸 에이프런에 함락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 이후로, 놀랍게도 스자쿠는 흡연자가 되었다. 흡연자가 되면 골치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재떨이를 들고 다니거나, 양치 도구는 물론이고 탈취 스프레이도 항상 구비해야만 했다.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가면서 를르슈에게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럼에도 담배를 피운 이유는 하나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동시에 를르슈의 얼굴도 떠올랐다. 담배를 피우던, 술에 취한 를르슈. 익숙하게 담배를 물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괜히 열이 받았다.
자기만 더 좋아하는 것 같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열 살이나 많은 어른이니까 매사에 침착했고, 차분했으며, 스자쿠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가끔은 귀여운 구석을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연장자의 여유를 갖고 있었다. 스자쿠는 그에게 멋대로 휘둘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어리게만 느껴지는 것이 요즘의 고민이었다.
그 고민을 한참 동안 하고 있으면서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나면, 스자쿠는 흡연 구역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을 좀 쐬고, 돌아가서 옷을 빨고 샤워를 하고 나면 흡연의 흔적은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오늘은 를르슈가 야근으로 늦는다고 했으니 연락도 늦은 밤에나 올 것이고, 스자쿠는 모처럼 혼자서 보내는 밤이 퍽 외롭다고 느꼈다.
“뭐하다가 이제 들어와?”
그러나 스자쿠가 사는, 학생들이 주로 사는 낡은 아파트 앞에서 를르슈가 쇼핑백을 들고서 서있었다. 스자쿠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를르슈는 조금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를르슈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스자쿠의 앞에 섰다. 지금은 탈취 스프레이도 안 뿌렸고, 옷도 안 갈아입었고, 씻지도 않았으니 담배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자쿠의 냄새를 맡은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담배 폈어?”
“…아, 응.”
“재미 삼아 펴본 거라면서, 아직도 재미 찾고 있는 중이야?”
“…….”
“됐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이거는 롤케이크. 거래처에서 줬어. 너 먹던가.”
“르, 를르슈. 잠깐만.”
“오늘은 더 얼굴 볼 기분 아니야.”
돌아서 가려는 를르슈의 뒷모습에 서둘러 그의 손을 잡으면, 를르슈가 매섭게 손을 내쳤다. 스자쿠는 아랑곳않고서 그의 손을 다시 한 번 붙잡았다. 이번엔 힘을 잔뜩 주고 달라붙으면, 를르슈가 그 힘을 떨쳐내지 못하고 꼼짝없이 스자쿠에게 붙들려 있는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할 말이 있어.”
를르슈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말하면,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스자쿠에게 팔을 내어준 채로 같이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들어가면, 를르슈는 현관 앞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멈추었다. 들어오라고 스자쿠가 말을 해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한참의 침묵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담배 피는 여자라도 만나는 줄 알았어.”
“뭐?”
“너는,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고, 한참 즐길 때인데, 나 같은 사람한테 붙잡혀 있는 게 끔찍하다는 걸 알아버려서….”
“잠, 잠깐만, 무슨 이야기야?!”
“그래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응?”
“요즘엔 너한테서 계속 담배 냄새가 났으니까. 그 여자랑 오래 있나보다…—.”
를르슈의 말은 쉴새 없이 이어졌다가 결국 울음으로 끝이 났다. 자기 혼자만의 망상에 시달리다가 훌쩍거리면서 우는 서른 살의 남자를, 울고 있는 를르슈를 끌어안으면서, 스자쿠는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등을 끌어안으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시뮬레이션 치고는 과한데. 그냥 담배 피운 거 뿐이잖아.”
“나 말고 너한테 흔적 남는 거 싫으니까.”
를르슈의 어딘가 어린 듯한 목소리에 스자쿠는 그에게 습관처럼 키스를 하려고 했다. 할 말이 있어서 부른다고는 했지만, 이런 귀여운 질투를 하는 연인에게는 달콤한 위로와 포상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스자쿠가 입술을 갖다대자 를르슈는 그것을 손으로 막았다. 대뜸 가로막힌 손바닥에 스자쿠가 뭐냐는 듯이 쳐다보면,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담배 폈잖아. 냄새 나니까 키스 안 해.”
“왜, 나랑 키스하기 싫어?”
“담배 폈으니까 싫어.”
그리고 앞으로도, 담배 피우면 키스 안 할 거야.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를르슈도 담배 피우잖아.”
“분위기 맞출 때만 잠깐 하는 거야.”
“나도 혼자서 분위기 좀 탔어.”
“말로 나를 이겨볼 거라면 차라리 지금 항복하는 게 좋을걸.”
“…….”
를르슈의 말마따나 말로 이겨볼 생각을 할 바에야 지금 항복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스자쿠는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불안에 떨었던 를르슈를 생각하면, 그도 나름 이 연애에 있어서 항상 여유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 대접이든 애 취급이든, 두 사람은 연인이다.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한 수확이잖아? 스자쿠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며 를르슈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제 안 할테니까, 를르슈가 키스해줄래?”
그 말에 를르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구두를 벗고 현관의 문턱을 넘어 스자쿠에게 다가갔다. 스자쿠에게서는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지만, 그는 담배 피우는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를르슈의 일거수일투족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 같은 면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스자쿠는 조금 담배 냄새가 날 뿐, 그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를르슈는 스자쿠와 정신 없이 입을 맞추면서, 그의 옷장 어딘가에 걸려 있는 자신의 수트를 떠올렸다. 내일은 여기서 출근을 해야겠군. 거리낌 없이 벗어던지는 옷가지들은 발치에서 구겨지고 있었다. 스자쿠는 하나 둘씩 옷을 벗고 벗기면서, 자신의 침실로 를르슈를 데리고 갔다. 조금 사치스러운 사이즈의 침대는 두 성인 남자가 사랑을 나누기엔 충분했다.
너에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야. 를르슈의 새는 숨 사이로 그런 말들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를르슈의 아이 같이 유치한 독점욕 같은 것들이 스자쿠의 이성을 가볍게 끊어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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