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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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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上

DOZI 2026.05.27 22:04 read.204 /

생긴지 얼마 안된 카페에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에는 홍차를 마시는 편이지만 처음 도전하는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로 그 카페의 수준을 파악하기로 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카페 안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를르슈는 자기 몫의 아메리카노와 직원들의 음료까지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말소리가 하나 둘 보태지고 나면 음악은 들리지도 않았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군. 사람이 많아서 너무 피곤해.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주문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렸다. 음료를 만드는 아르바이트생은 두 명,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사장으로 보였다. 나름의 역할 분배가 잘 되어 있는 듯 했지만 음료가 나오는 속도는 더딘 편이었다. 를르슈는 다음부터 이 카페에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속도는 너무하잖아.

를르슈의 짜증이 조금씩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를르슈의 번호가 불렸다.

 

“125번 손님, 주문하신 음료 네 잔 나왔습니다!”

 

를르슈가 다가가자, 아르바이트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초록색 눈동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잔뜩 긴장한 티가 역력했고, 환하게 웃고 있지만 자신이 제대로 했는지 자신이 없어보이기까지 하는, 순진한 아르바이트생. 를르슈는 가볍게 목례를 하면서 캐리어에 담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아, 캐리어! 담아드릴게요. 잠시만요.”

“스자쿠, 내가 해드릴 테니까 너는 다음 주문 만들어.”

“아, 네! 부탁 드릴게요.”

 

이름은 스자쿠라고 하는구나. 를르슈는 아무 생각없이 자신에게 음료를 내주었던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을 기억해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를르슈가 주문했던 음료들이 캐리어에 들기 좋게 담겨지고 나면,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그 스자쿠가 있던 곳을 한 번 힐끔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스자쿠라는 남자는 를르슈와 눈을 마주치고는 어색한 듯 뺨을 굳히며 이를 드러내며 웃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오세요!”

 

를르슈 람페르지 32세,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 * *

 

를르슈는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그 카페에 들렀다. 오로지 스자쿠라는 아르바이트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자쿠는 오전 10시 오픈부터 오후 2시까지만 일했다. 그것은 를르슈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를르슈가 퇴근을 하고 나서 재빠르게 찾아가도 스자쿠는 마주칠 수 없었고, 를르슈가 거래처 미팅을 위해서 잠깐 나왔을 때 2시에 퇴근하는 스자쿠를 멀리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카페 유니폼이 아닌 폴로 티셔츠 차림의 스자쿠를 보는 것은 신선했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스자쿠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를르슈는 이제까지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메일로 약속 장소를 정한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다.

명함을 나눈다. 

인사를 한다. 

사업 이야기를 한다. 

 

를르슈가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회사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업수완이 좋고 일처리 방식이 깔끔하다는 이유였지만, 동시에 32세에 사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외의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다시 말해— 를르슈는 조금 지난 유행어로 모태솔로였다. 그래서 스자쿠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 커피 한 잔을 사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스자쿠가 주문을 받을 때도 있었고,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받을 때도 있었다. 커피를 주는 것도 복불복이었다. 스자쿠가 주문도 받고 커피도 내주는 날이면 기분이 좋았고, 그렇지 못한 날은 아쉬워서 남은 하루 동안 스자쿠 생각만 했다.

를르슈는 어떻게 해야 스자쿠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우선 남을 알기 전에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겠지?’

 

를르슈는 어떻게 해야 기쁘던가? 사업의 궤도가 어느 정도 노선을 타서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릴 때가 를르슈는 유의미한 ‘좋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스자쿠의 카페에 매상을 올려주면 되지 않을까? 그럼 비싼 걸 잘 사주는 손님으로 를르슈를 인식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를르슈는 실행했다. 직원들에게 아침부터 음료를 쏘겠다는 명목으로 조금 이른 시간에 카페에 찾아왔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스자쿠 혼자 카페를 보고 있었다. 를르슈는 떨리는 손끝을 겨우 다잡으며 카운터 앞에 섰다.

 

“어서오세요! 주문 하시겠어요?”

“아… 딸기 요거트 스무디 하나, 자몽 요거트 스무디 하나…….”

 

를르슈는 떨지 않으려고, 발음을 또박또박 하기 위해서 입술 끝에 힘을 주고 주문을 이어갔다. 그러나 주문이 끝나갈 무렵에 스자쿠는 조금 겁에 질린 눈으로 를르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거트 스무디 모든 종류별로 다 해서 8개 맞으시죠?”

“네.”

“아… 제가 지금은 혼자라서요.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데 괜찮으세요?”

 

시간이 좀 걸린다니 어쩜 이런 행운이 다 있나. 를르슈는 기세 좋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와 같이 있는 이 시간이 더 늘어난다니,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 오늘 하루는 잘 풀릴 것 같았다.

 

“그, 그럼 스무디 8개 준비해드릴게요. 캐리어에 담아드릴게요.”

“네.”

“다 되면 번호 불러드릴게요! 기다려주세요!”

 

겁에 질린 눈은 잠시 기분 탓이었던 것 같았다. 스자쿠는 평소처럼 씩씩하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를르슈는 카페에 비어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운터 너머에서 일하는 스자쿠를 볼 생각이었다. 일에 집중하고 있는 스자쿠는 몇 번씩 믹서기에 뭔가를 담았다, 갈았다, 씻었다, 다시 담았다, 갈았다를 반복했다. 총 8번의 믹서기 설거지를 하는 스자쿠를 바라보면서, 를르슈는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스자쿠가 설거지를 하면서 드러나는 탄탄한 팔 근육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묘해졌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옷차림이 가벼워졌고, 스자쿠의 잘 짜인 근육질 몸매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눈호강을 해도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혹시 내가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거 아닌가? 를르슈는 지금까지 쳐다본 것을 스자쿠가 혹시 눈치챘을까 걱정이 되어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시선이 자꾸 갔다. 를르슈는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아주는 스자쿠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스자쿠가 번호를 부르기 전에 먼저 다가갔다. 를르슈가 다가오자 스자쿠는 환하게 웃으면서 를르슈를 맞아주었다.

 

“네, 손님! 스무디 8잔 나왔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헤헤, 네.”

 

‘헤헤, 네’하고 웃는 남자는 현실에서 존재하는구나. 그런 귀여운 남자가 존재하는구나. 를르슈는 진한 감동을 느끼면서 8잔의 스무디를 들고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에 들어가면 를르슈를 귀찮게 만드는 만사의 트러블메이커, 그러나 직함은 를르슈의 비서라는 이름으로 회사에 붙어있는 엄마 친구, C.C.가 를르슈가 사온 스무디를 보고 혀를 찼다.

 

“를르슈, 너 설마 전부 다 스무디로 사온 거야?”

“어. 비싼 스무디 맛있게 먹도록 해.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어쩐지 오래 걸리더라.”

 

스무디 8잔을 기다리며 오래 걸리는 시간 동안 를르슈는 행복했다. C.C.가 무어라 지껄이든 말든.

 

“이거 만든 아르바이트생도 고생했겠다. 스무디 같은 건 손도 많이 가서 귀찮을 텐데.”

“…귀찮다고?”

“당연하지. 너 예전에 나나리가 딸기스무디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유기농 딸기로 만들면서 은근히 귀찮아했잖아. 그래서 나랑 마리안느 건 해주지도 않았고.”

“…….”

“뭐 마시기야 하겠는데…….”

“그럼 그냥 잠자코 마셔.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카페에서 주문 취소 안 당했어? 스무디 8잔은 거의 괴롭힘 수준이잖아.”

“조용히 하라고!”

 

를르슈는 C.C.를 방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괜한 소리를 한 C.C.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귀찮다고? 괴롭힘 수준이라고?

를르슈는 귀찮은 괴롭힘 수준이라는 자신의 연애전략에 대해서 변론하고 싶어졌다. 스무디를 많이 팔아서 카페의 매상이 오르면 스자쿠가 나를 기억해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시뮬레이션 상이었다. 를르슈의 시뮬레이션은 대체로 통하는 편이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괴롭힌 게 아닌데…….”

 

를르슈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좋아해서 그런건데, 라는 말을 겨우 삼키면서. 좋다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가슴이 더욱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 답답함이 너무 힘들어서, 를르슈는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다. 만약 자신이 스자쿠를 괴롭힌 거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그 카페에 찾아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개 버릇은 남 못 준다는 말이 있듯, 를르슈는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그 카페를 찾았다. 오늘은 카페에는 스자쿠를 비롯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고 있었다. 이 카페의 커피가 제법 맛있다는 소문이 난 모양인지, 점심시간 마다 직장인들은 이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한 잔씩 사가는 편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일하는 카페가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부끄러운 마음보다 우선인 것은 스자쿠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게 카운터 담당은 스자쿠였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앞에 서서 평소처럼의 주문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스자쿠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서오세요! 아, 손님. 스무디는 맛있으셨나요?”

“아…….”

“그때 저 혼자서 준비한 거라… 제가 아직 손이 느려서 그런데 혹시 스무디가 녹지는 않았을까요?”

“아, 아뇨.”

“그럼 다행이네요! 아, 주문 도와드릴게요!”

“아, 네….”

 

나를 인식하고 있구나. 스무디를 종류별로 시킨 진상 손님으로.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한 잔….”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한 잔! 알겠습니다~ 카드로 계산하시나요?”

“네…….”

 

를르슈는 오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꽤나 불행하게 느껴졌다. 스자쿠는 를르슈를 스무디 8종 세트 진상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를르슈한테 말 한 마디 더 붙여본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죽고 싶어졌다.

제일 만들기 쉬워 보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번호표를 받으면 를르슈는 다시 없을 패배감에 빠져서, 카페 안에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습관은 무서웠다. 이렇게 우울한 와중에도 음료를 만드는 스자쿠를 보는 것은 습관이었다. 커피 콩을 갈고, 에스프레소 머신에 넣고, 샷을 내리고……. 스자쿠의 행동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손이 느리다고 하기에는… 손이 느린 게 문제가 아니라 를르슈의 주문이 살인적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카페에 있던 스자쿠가 감당하기 어려운 주문이었고, 그래서 그때 겁에 질린 것 같은 눈을 한 것도….

 

“손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아닌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건네주는 커피를 받았다. 스자쿠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천상의 맛일 텐데, 오늘만큼은 자신의 연애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이렇게 쓰디 쓴 커피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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