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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the record

DOZI 2026.06.14 21:16 read.124 /

섹스가 끝난 뒤, 스자쿠는 를르슈의 글씨로 가득한 대본을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다. 

엊그제가 마지막 촬영이었고, 어제는 스태프들과 함께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고, 그리고 어제의 연속으로 오늘—드디어 를르슈와 오랜만에 섹스를 했다. 를르슈가 기분 좋게 울고, 스자쿠는 개운해질 정도로 만족하고 있을 때였다. 콘돔 더 있어?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가 질린 표정을 했다. 또 하겠다고? 스자쿠는 웃으면서 말했다. 없어도 좋아. 를르슈는 자기가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 두어 개는 굴러다닐 거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콘돔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남자라니, 를르슈는 야해.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대꾸도 하지 않고 몸을 돌린 채로 이불을 푹 눌러썼다. 부끄러워할 때의 버릇이었다.

콘돔만 꺼냈으면 좋으련만, 스자쿠는 를르슈의 대본까지 꺼내버렸다. 이제 촬영이 끝났고, 나머지 포스트 프로덕션은 스태프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데, 를르슈는 성실하게 마지막 술자리에서까지도 대본을 들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스자쿠가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를 내자, 몸을 돌렸던 를르슈가 스자쿠 쪽으로 다시 향했다. 너, 뭐하는 거야? 를르슈의 약간 심통난 목소리에 스자쿠는 키득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아니, 되게 열심히 했다 싶어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칭찬이 그렇게 칭찬 같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스자쿠가 대본을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추었다. 를르슈의 키스 신이 있는 부분이었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입술을 맞대고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를르슈는 그림이 되니까 용서가 되지만. 

 

“를르슈는 생각보다 키스 신이 많았지?”

“너보다 많기는 했지만… 그나저나 ‘생각보다’는 뭐야?”

“아니, 뭔가 평소 를르슈는 그런 거 안 하니까.”

“뭘? 키스?”

“키스나 포옹 같은 거 말이야.”

“자주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나리한테?”

“너한테도 자주 해주잖아.”

 

방금 전까지 입술 부어오를 때까지 키스한 게 누구라고 생각해? 를르슈는 통통하게 부푼 입술 끝을 문지르며 스자쿠에게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다시 한 번 복기하듯이 를르슈의 대본을 훑고 나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다시 누웠다. 한 품에 안기는 허리나, 손이 가도 부드럽게 닿아오는 를르슈의 반질반질한 머리를 쓱쓱 쓰다듬던 스자쿠는 입을 열었다.

 

“딱히 질투하는 건 아닌데….”

“질투하고 있군.”

“그러니까 아니라고 말했는데.”

“질투하니까 그런 말로 시작하는 거잖아.”

“알았어, 질투한다고 쳐. 를르슈, 나 이제 말 좀 이어서 하자.”

 

를르슈는 보통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지만, 스자쿠의 앞에서는 다소 수다쟁이가 되는 경향이 있었다. 스자쿠가 말을 하려고 하면 꼬투리를 잡거나, 괜한 시비를 거는 것은 아마 그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모습은 귀엽지만, 지금은 살짝 억울했다.

 

“영화 찍는 동안 를르슈한테 여자가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보통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 정도로 해서 삼각관계가 좋잖아.”

“뭐… 그게 보편적이긴 하지.”

“근데 를르슈한테 얽힌 여자들은 전부 다 를르슈를 좋아했어.”

“내 하렘이어서 싫었다는 거야?”

“보통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약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

 

현실적이지 못한 영화를 찍어놓고 현실성을 운운하고 있는 스자쿠의 말은 우스웠다. 무어라 비웃어주려고 했던 를르슈는 제 허리를 더욱 세게 감싸오는 듯 하다가, 를르슈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는 스자쿠의 손에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파, 아프다고! 스자쿠는 를르슈의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낄낄거렸다.

 

“그런 여자들을 제치고서 내가 를르슈의 남자친구라는 게 좀 뿌듯하네.”

“뿌듯한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엉덩이에서 손 떼. 멍들 거 같아.”

“그렇게 세게 안 주물렀어.”

“너는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는 거 같다.”

 

를르슈가 아프다고 하는 소리에 스자쿠는 이불을 들추고서 를르슈의 엉덩이를 살폈다. 하얗고 매끈한 를르슈의 엉덩이가 스자쿠에게 훤히 드러났다. 스자쿠가 그의 엉덩이 쪽으로 인사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를르슈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했어?”

“인사했어.”

“뭐한테?”

“를르슈 엉덩이한테.”

“왜?”

“안녕, 이라고 하길래.”

 

내 엉덩이가 너한테 안녕이라고 말해? 를르슈는 스스로 물어봐놓고서도 멍청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엉덩이가 추워보인다면서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를르슈의 엉덩이가 전해주었던 안부를 들려주었다.

 

“를르슈 엉덩이가 그러는데, 조금 놀라긴 했는데 안 아팠대. 를르슈가 엄살 부린거래.”

“뭐?”

“왜, 못 믿겠어?”

“믿겠냐?”

“솔직히 를르슈 엉덩이를 제일 많이, 자주 보는 사람은 나잖아. 를르슈 엉덩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도 나잖아. 를르슈는 자기 엉덩이한테 인사한 적 있어? 없잖아. 근데 나는 인사도 하고 통성명도 하고 그렇게 잘 지내는 사이야.”

“미쳤군.”

 

스자쿠의 손이 끈적하게 가슴팍으로 올라오는 것에 를르슈는 기겁을 하고 떼어냈다. 왜 그래, 를르슈 젖꼭지한테 인사하려고 했는데. 를르슈는 인사라는 말에 난데 없는 수치심을 느낄 것 같았다. 의식하면 안 돼, 의식하면 안 돼. 를르슈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이불 밖으로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스자쿠의 팔다리가 를르슈를 감싸면서 그를 다시 침대에 묶어두었다. 애정 어린 몸짓이라고 하기에는 레슬링 기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꽈악 붙들린 를르슈가 소리를 질렀다.

 

“떨어져! 아프다고!”

“를르슈 엉덩이는 괜찮대.”

“내가 안 괜찮아!”

“를르슈 젖꼭지가 인사 하다 말아서 속상하대.”

“안 속상해!”

 

스자쿠의 농락에 를르슈는 팔다리를 퍼덕거리면서 침대에서 굴러다녔다. 거의 헤드 끄트머리까지 몰린 를르슈를 보고서 스자쿠는 겨우 풀어주었다. 그럼 이제 천천히 인사해볼까. 를르슈는 정말로 젖꼭지에게 손을 흔들 것 같은 스자쿠의 모습에 시선을 돌렸다. 미친놈, 곱게 미치던가. 나한테 왜 이러는데. 를르슈가 속으로 스자쿠를 한껏 욕하고 있을 때였다.

고개를 돌린 를르슈의 뺨을 감싼 스자쿠가 다정하게 입을 맞춰왔다. 쪼옥, 하고 입술 끝을 빨아들이는 소리에 를르슈는 고개를 바로 하고 스자쿠와의 키스에 열중했다. 부드럽게 맞닿는 입술은 조금의 떨어짐도 없이 서로를 깊게 탐하는 것에 집중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곱슬머리 사이를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조금 엉망이 된 머리를 하고서, 서로 사랑한다는 시선으로 한껏 쳐다보고 난 뒤였다.

 

“를르슈 입술이 키스가 좋았대.”

“또 그런 소리를…….”

“이제까지 한 키스 중에서 내 입술이 제일 좋다는데?”

“그렇다고 쳐.”

“왜 를르슈는 인정 안 하지?”

“그렇다고 했잖아.”

“진심으로 인정하는 거야?”

“하아…….”

 

집요한 놈. 를르슈는 날이 선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그 매서운 시선에도 스자쿠는 히죽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순순히 인정해주는 를르슈, 너무 좋아. 누가 봐도 순순히 인정하는 눈빛이 아니었음에도, 스자쿠는 를르슈의 젖꼭지를 손끝으로 짓누르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를르슈는 흥분으로 뾰족하게 선 젖꼭지 끝을 꾸욱 눌러오는 손길에 신음하면서 스자쿠를 쳐다보았다. 살짝 눈물이 맺히는 그 보라색 눈빛에 스자쿠는 가슴이 떨릴 정도로 흥분했다.

 

“를르슈, 우리 만난지 얼마나 됐지?”

“뭐… 7년 정도인가.”

“7년이나 됐는데 를르슈 엉덩이한테 인사한 건 오늘이 처음이네. 좀 섭섭했겠다.”

 

또 다시 인사를 운운하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더 참지 않고 폭발했다. 그만해, 이 변태자식아! 를르슈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제 젖꼭지를 괴롭히던 손까지 바로 떨쳐내는 것에 스자쿠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를르슈, 진짜 미안. 이제 인사 안 할게. 스자쿠가 이불 더미 사이로 숨어버린 를르슈를 끌어안으면서 달래듯이 말을 걸어도 를르슈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무드 없는 섹스에 질렸으면 좋으련만, 를르슈는 달콤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연인에게 약한 편이었다. 이불 밖으로 겨우 머리만 내밀면 스자쿠가 환하게 웃으면서 를르슈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몇번이고 이 키스에 용서해버리고 마는 것이 조금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를르슈는 우선 지금 이 순간의 키스를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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