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우라지 츠카사가 요다카 쥰과 만나게 된 계기는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
당시 아케우라지는 돈이 없었으며, 닥치는대로 일을 몰아서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낮에는 빙판 위에서 서기 위해서, 밤에는 그 빙판에서의 시간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 아케우라지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묘한 일감이 들어왔다.
밤에만 움직이는 어떤 사람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링크 위에서 버티기 위해 일자리를 전전하던 아케우라지를 보고서 어떤 남자가 명함과 함께 권한 일이었다. 밤에만 스케이트? 낮에는 뭘하는데요? 아케우라지의 당연하면서도 순진한 질문에 그 남자는 쓰고 있던 모자를 더욱 깊게 고쳐쓸 뿐이었다. 아무튼, 자네랑 이 일이 어울릴 거 같아서.
평소의 아케우라지라면 재수 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은 사절이라고 무시했겠지만, 그는 돈이 급했다. 밤마다 몸을 갉아먹는 아르바이트도 하루 이틀이었다. 게다가 스케이트를 타주면 된다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좋아하는 일을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미가 당기는 일자리였다.
그렇게 아케우라지는 그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밤에만 움직인다고 했으니 밤에 전화를 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낮 내내 전전긍긍하며 언제쯤 걸어도 괜찮을지 재고 또 재다보니 저녁 노을은 지고 밤은 깊어졌다. 겨우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부재 중 전화로 5번이 넘어가고, 6번째 시도는 15콜이 넘어가기 전에 겨우 이어졌다.
“여보세요?!”
‘…….’
“아, 안녕하세요. 그, 일자리 소개 듣고서 연락드렸는데요. 아케우라지 츠카사라고 합니다.”
‘…….’
“밤에만 움직이시고, 그, 스케이트를 같이 타면 된다는.”
‘…맞아.’
“마, 맞나요? 다행이네요. 솔직히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어디로 가서….”
‘메세지 보내줄 테니….’
“네!”
‘적당히 찾아와. 그럼.’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아케우라지가 전전긍긍하며 기다린 메세지는 13분 후에 도착했다. 어떤 주소를 휘갈겨 적어 놓은 종이를 대충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가장 크게 적힌 ‘11시 30분부터 3시까지’라는 글자가 그나마 또렷했다.
이 근방의 링크장에 대해서는 전부 다 꿰고 있었기 때문에 주소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11시 30분부터 3시까지’였다. 그때까지 스케이트를 탄다는 걸까…? 그러면 11시 30분에 가야하나? 아니 근데 그때 링크장이 열기는 하나…?
아케우라지가 고민하고 있을 때, 메세지는 한 번 더 왔다.
[내일부터]
근데 돈은 얼마나 준다고 하는 지도 모르는데 이런 거 쉽게 믿어도 되나?
아케우라지가 그나마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이미 시간은 내일이 되었고, 아케우라지는 11시부터 주소의 링크장 앞에 서있었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몰라서, 스케이트를 할 때 곧잘 입는 차림으로 뻣뻣하게 서있었다.
11시 20분이 되자 저 멀리서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들어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대신에 바로 앞에 멈춰서서 조수석으로부터 사람 한 명이 내려서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뒤에서 내린 남자는 내리자마자 담배를 태웠다. 불이 화악, 번지면서 그 남자의 선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이 어두운 와중에 선글라스까지? 아케우라지는 계속 쳐다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담배를 한 대 다 태운 남자는 그제서야 어둠 속에서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아케우라지를 발견한 듯 싶었다. 그는 담배꽁초를 치워버리고는 아케우라지 쪽으로 걸어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 걸음걸이에서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케우라지 츠카사, 너야?”
“아, 네. 맞, 습니다.”
“일찍 왔네.”
“네. 11시 30분부터 하시는 거 같아서.”
“맞아. 스케이트는?”
“들고 왔습니다.”
“그래.”
“저….”
“응?”
몰아치는 듯한 대화 속에서 아케우라지는 겨우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되나 눈치를 보면서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제가 하는 일의… 보수는 얼마나 될까요?”
“보수?”
“……네. 제가 지금 돈이 급해서요.”
“돈이 급하다…?”
“…….”
“재미있네.”
그 말은 꼭 돈이 급한데 스케이트 탈 정신이 있냐는 식으로 되묻는 거 같아서, 아케우라지는 저도 모르게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키득거림도 없이, 표정으로 경멸하는 것도 없이 분위기만으로도 아케우라지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냥 가버릴까, 하는 아케우라지의 분위기를 보더니, 남자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는 아케우라지에게 반듯한 지폐 열 장을 건넸다.
“얼마나 급한지 모르니까 우선은 10만엔.”
“10, 10만엔이요?”
“그래. 잘 하면 더 주고. 못 하면 그냥 10만엔.”
“……그, 스케이트만 타는 거죠?”
“다른 거 하고 싶어?”
“아, 아뇨!”
“그럼 들어가자.”
그런데 잠겨진 링크장의 문을 어떻게 들어가려고… 라고 말하려는 순간 남자는 링크장의 경비 시스템 해제 카드를 갖다대고 잠금을 풀었다. 스케이트화로 갈아 신어. 남자의 말은 거의 명령조였다. 아케우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케이트화로 바로 갈아신었다. 조금 빠른 속도로 갖추다 보니 남자가 하는 것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남자는 스케이트화에 익숙한지 헤매는 구석도 없이 얼음 위로 올라탈 준비를 갖추었다.
“저기….”
“어.”
“제가 그쪽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글쎄… 보통 뭐라고 부르지?”
질문에는 질문으로 대꾸하는 것은 이 남자의 수법일까. 황당하지만 침착하게, 아케우라지는 그 남자에게 평소에는 뭐라고 불리냐고 물었다. 남자는 고민을 조금 하다가 대답했다.
“도련님.”
“도, 도련님이요?!”
“도련님이라고 부를래?”
“아, 그건 좀. 아,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
그 사이에 최대로 낮춰진 조명이 얼음 위를 때리고, 반사되는 빛이 반짝이는 것을 즐길 새도 없이 남자는 앞질러 나갔다. 있는 힘껏 내달리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어떻게 따라잡지? 아케우라지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는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며 잘 타시네요, 라고 말하려고 했다. 남자는 빙판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말했다.
“요다카 쥰.”
“…아, 요다카 씨군요! 요다카 씨, 스케이트 엄청 잘 타시네요!”
“그렇게 부르게?”
“아무래도 도련님은 좀 그래서요. 아, 근데 무슨 일을 하시길래 도련님인 거예요?”
“야쿠자.”
남자는 또 그렇게 대답해놓고 빙판 위를 아름답게 미끄러지며 달려나갔다. 얼음과 스케이트 날이 부딪쳐 내는 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면서도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아케우라지는 그가 이루어내는 움직임을 눈으로 좇다가 자기가 들은 말을 다시 떠올렸다.
야쿠자?
야쿠자라고…?
야쿠자라고 자신을 밝힌 요다카 쥰은 기세 좋게 얼음 위를 내달리고 뛰고, 날아오르며, 반복해서 아케우라지 츠카사의 시선과 사고를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의 모든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을 때, 자신이 무언가 위험한 일에 휩쓸렸다는 자각이 들었다. 아니, 야쿠자랑 스케이트 한 번에 10만엔? 이거 진짜, 정말 스케이트만 타는 거 아닐 수도 있잖아. 심야의 스케이트 교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저 정도 사람이라면 배움도, 코치도 필요없을 텐데. 애초에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10만엔 줄 정도면…!
“이제 네 차례.”
그런 사이에 요다카 쥰의 시선이 아케우라지에게 와닿았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그의 시선에 아케우라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제 모르겠다, 모 아니면 도다! 어차피 받은 10만엔을 토해내라고 하지 않겠지…?! 아케우라지는 과감하게 점프를 뛰었다. 빙판 위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는 아케우라지의 모습에 요다카는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아케우라지의 뒤에 섰다.
“15만엔.”
“네?”
“더 해봐.”
그리하여 아케우라지 츠카사는 돈만 주면 스케이트 시켜주는 미친놈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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