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카 쥰은 자신의 위에서 움직이는 남자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그의 손가락 마디 마디에 꿰어진 손가락 사이가 너무 뜨거웠다. 더워, 뜨거워. 요다카가 그렇게 하는 말에 남자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고집 있는 점이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요다카 스스로도 이제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네 맘대로 해. 요다카가 그렇게 하는 말에 아케우라지 츠카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후,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요다카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숨을 조를 것마냥 키스를 퍼부은 다음에 섹스를 끝냈다.
요다카가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케우라지는 침대의 뒤 처리도 끝내놓고, 헐벗은 그의 몸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파자마와 속옷까지 내놓은 상태였다. 하는 짓을 보면 가정주부, 현모양처가 어울릴 법한 이 가정적인 남자는 어디에 내 놓아도 구멍날 곳 없는 일등 신랑감이지만, 요다카 쥰에게 지극정성이라는 점에서 이미 마이너스를 찍다 못해 모두가 기피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멀쩡한 사람들을 멀리하고 요다카를 고른 아케우라지가 성격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취향이 글러먹은 건지, 요다카는 수건으로 머리를 북북 문지르던 중에 결론을 내렸다. .그런 이상한 성격, 글러먹은 취향의 남자와 함께하는 요다카 쥰 자신도 그렇게 이성적이진 못하다는 것을.
”다 씻었어요?“
부엌에서 들리는 아케우라지의 소리에 요다카는 대답 대신에 그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불 위에서 무언가를 신나게 볶고 있는 아케우라지의 모습에 요다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새벽 2시죠?“
”…아무리 이제 스케이트를 안 한다고 해도.“
”새벽 2시에 먹으면 살 찐다고요? 그런 말, 담배 못 끊는 요다카 씨한테 듣고 싶진 않은데요.“
예전에는 눈만 마주쳐도 기겁을 하더니, 이제는 제법 맞받아치는 것도 할 줄 알게 된 아케우라지의 뻔뻔한 낯짝에 요다카는 이 성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줘야 할까 싶었다. 흠흠, 좀 싱거운 거 같으니까 소금을 더할까. 아케우라지는 소금을 솔솔 뿌리더니 이제 완성이라며 접시 두 개를 찬장에서 꺼냈다.
요다카 씨도 먹을 거죠? 아케우라지의 말에 요다카는 자신의 대답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접시 두 개에 볶음밥을 나눠 담고 있는 모습에 말없이 숟가락을 챙길 뿐이었다. 적당히 먹는 시늉을 하고 있으면 아케우라지가 요다카 몫까지 다 해치울 것이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아케우라지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에 요다카는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나 태우면 되는 것이었다.
”맛있죠?“
“어.”
요다카의 혓바닥은 아케우라지의 요리에 거의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하는 음식은 제법 맛있고, 무난하고, 가끔 자극을 줄 때에는 확실했다. 뭐야, 거의 아케우라지 츠카사의 섹스와 비슷하잖아. 요다카는 자신의 발견이 꽤 낯부끄러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충 한두 입 먹고 말 볶음밥을 요다카는 거의 반 접시나 비워냈다. 그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아케우라지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요다카를 보며 말해서 안 것이었다.
“진짜 맛있나보네요. 이렇게 많이 먹어줄 줄은 몰랐는데.”
“안 먹어.”
“네? 아뇨, 좋다는 의미였어요. 더 먹어주면 좋겠는데?! 아주 좋을 거 같은데?!”
“안 먹는다고.”
”다 먹을 때까지 못 일어나요!“
볶음밥 한 숟갈을 가득 담은 숟가락으로 아케우라지는 아이를 달래듯 요다카의 앞에서 흔들어보였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진짜로, 츠카사 선생님 비기의 볶음밥입니다. 진짜 맛있으니까 요다카 씨도! 그러나 요다카는 그가 정신 사납게 흔드는 숟가락을 보는둥 마는둥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고 설거지나 해라.“
”할 거였어요! 진짜 안 먹어요?“
”진짜 안 먹어. 너나 먹어.“
담배와 라이터를 든 요다카가 베란다로 나가려고 하자, 아케우라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요다카에게 그가 곧잘 입는 코트와 자신의 한 벌 뿐인 패딩점퍼를 건넸다. 베란다 나가는데 무슨… 웃기지도 않지. 요다카가 필요없다고 하니 아케우라지는 자기도 나갈 거라고 했다. 어디로? 공원으로요. 짧은 대화 속에서 요다카는 아케우라지가 제법 저와 같이 맥락없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먹었으니까 산책해요.”
“새벽 2시에?”
“재밌겠죠?”
”너 내가 설거지하라는 말 못 들었어?“
”다녀오고 나서 하면 되죠.“
”난 산책할 기분 아닌데?“
“그렇지만 재밌겠죠?”
옛날의 요다카 쥰이라면 너나 하라고 먹다 남은 볶음밥 접시를 내동댕이 치며 깨뜨렸으면 될 일이었지만, 지금의 요다카 쥰은 섹스로 인한 나른함, 볶음밥으로 인한 포만감, 적당히 찬 바람을 쐬고 식후땡이나 갈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케우라지가 발빠르게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서 앞장서서 신발을 갈아신고 있는 모습에, 요다카는 말리는 것이 더 귀찮은 것을 알고 있었다. 밖에서 흡연장소를 찾는 것도 더 귀찮았지만, 아케우라지의 고집 아닌 고집에 당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패딩점퍼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밤 사이 쌓인 눈의 뽀득거리며 밟히는 소리. 요다카는 눈이 얼어붙은 길에도 같이 손을 잡고 걷자는 아케우라지의 리퀘스트를 차갑게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넘어지면 둘 다 죽어.“
”주, 죽을 일인가요? 그냥 뭐, 다시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요? 손 잡아요.“
“싫어.”
“다 싫대.”
아케우라지는 그러면서 손을 잡아왔다. 진짜 귀가 멀었나. 설거지도 안 하지, 잡지 말라는 손은 덥썩 잡고. 요다카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면 아케우라지는 한술 더 떠서 요다카의 손을 자기 패딩 점퍼 안에 넣었다. 뜨끈뜨끈한 체온으로 덥혀진 주머니에 딸려들어간 손은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따뜻하죠?“
”팔 아파.“
그와의 키 차이로 어정쩡한 위치에 들어간 손과 들려진 어깨에 대해 불평을 하면 아케우라지는 어엇, 하고 손을 뺴버렸다. 그리고는 아프다고 말했던 요다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요다카가 아프다고 하면 금방 그만두는 버릇이 있는 아케우라지는 가끔 이런 곳에서 눈치가 없다. 요다카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케우라지가 뒤따라오는 소리에 혀를 찼다. 그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을 법도 한데, 아케우라지는 별 소리 없이 그냥 따라오기만 할 뿐이었다.
산책은 두 사람이 사는 맨션 근천의 공원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 중간 쯤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케우라지는 살 것이 있다고 했다. 사던가. 요다카는 편의점 뒤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울 생각이었다. 아케우라지는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편의점에 들어갔다. 즉석음식 코너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은 아케우라지의 뒷모습에 요다카는 헛웃음이 나왔다. 너 방금 전에 볶음밥 먹지 않았어?—라고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휴대폰을 챙겨들고 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담배나 피워야겠다. 달칵, 치익, 후욱, 하고 담배를 피우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요다카는 가장 어두운 새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사는 거리는 별빛이 드문드문 보이는 어느 정도 도시이기도 하면서도, 화려한 불야성의 도시로부터 떨어진, 변두리에 있는 곳이기도 했다. 누군가 작정하고 찾아오지 않는 이상 귀찮을 정도로 구석에 있는 이 마을에 온 지도 제법 되었다. 그만큼 미끄러운 빙판과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찾아갈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해서, 요다카 쥰도, 아케우라지 츠카사도 제법 정을 붙였다.
편의점에서 나온 아케우라지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요다카의 옆에 섰다. 그는 얇게 초콜릿을 바른 막대 과자를 사와서 포장을 북 뜯고, 담배를 피우는 요다카를 따라서 한 개피 물듯이 과자를 와작와작 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와작와작, 그 다음에는 요다카 의 숨을 내쉬는 박자에 맞춰서 오독오독 씹고 있는 아케우라지의 모습에 요다카가 입을 열었다.
”너… 방금 전에 볶음밥 먹었잖아.”
“요다카 씨 흉내낸 건데.”
“먹었는데 또 먹는 거야?”
“저 요다카 씨 흉내 잘 내죠?”
”저리 비켜.“
재를 터는 요다카의 모습에 아케우라지는 끝 부분만 짧뚱하니 남은 과자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먹는 거로 너무 눈치주지 말아요, 서러워요. 아케우라지의 말에 요다카는 담배를 지져서 껐다.
“딱히 눈치 주는 건 아니야. 서러우라고 한 말도 아니고.”
“네?”
“가는 데는 순서 없다니까 걱정되서 그런 거지.“
”…네?“
요다카는 아케우라지에게 가자고 말했다. 아케우라지는 조용한 거리에서 요다카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며 물었다. 무언가 상당히 억울하다는 듯이.
”가는 데 순서 없다는 게 뭐예요? 저 빨리 죽을 거 같다고요?“
”그래.“
”와, 너무해. 난 고작 새벽에 볶음밥에 과자 몇 개 먹었을 뿐인데…. 요다카 씨는 담배도 피우면서!“
”내가 한 말의 의도를 이해를 못하나 보군.“
”빨리 죽을 거 같다면서요.“
”그 뒤에.“
“그 뒤가 뭐였죠?”
“……너 그냥 빨리 죽을 거 같다.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
요다카는 아케우라지를 앞질러 걸었다. 아케우라지가 뭐였더라, 하면서 걸어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멈추는 소리에 요다카가 뒤를 돌아보자, 아케우라지가 머리를 쥐어싸고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뭐하는 거지. 요다카가 뒤를 돌아보는 것에 아케우라지는 갓 키스를 마친 사람 마냥 얼굴이 붉어진 채로 요다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걱정되서 그런 거군요!”
“…….”
“저도 요다카 씨가 걱정되니까 우리 서로 야식 끊고 담배 끊고 운동 열심히 해서 오래 오래 같이 살아요!“
이미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을 아케우라지는 다시 요다카의 손을 잡고서 제 패딩점퍼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아파, 라고 말할까 하다가 요다카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잡힌 손끼리 마주치는 것을 꼼지락거리다가 요다카는 손끝에 뭔가 딱딱한 것이 걸리는 게 느껴졌다. 각진, 비닐포장, 미끈…. 이건. 요다카의 손끝이 그 콘돔 상자를 만지는 것을 느낀 아케우라지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집에 있는 거 다 떨어져서요.”
”새삼 젊군.”
“네?”
”그 많던 게 다 떨어졌단 말이지….“
요다카는 요근래 온갖 핑계를 대고서 덮쳐왔던 아케우라지의 활발한 성 생활을 떠올리며,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케우라지의 손이 또 제 손가락의 마디마디를 꿰듯이 쥐어오는 것에 요다카는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요다카의 손과 아케우라지의 손 사이에 놓은 콘돔 상자가 약간 뜨끈해졌을 무렵에 두 사람은 맨션으로 돌아왔다.
침대 옆 협탁에 콘돔을 털어넣고 있는 아케우라지는 어딘가 신나보였다. 먼저 드러누운 요다카의 옆에 아케우라지가 눕자 침대가 크게 출렁거렸다. 요다카를 끌어안는 아케우라지의 팔, 맞닿는 가슴과 얽히는 다리 같은 것이 뜨겁게 느꺼졌다. 녹아버릴 것 같다. 예전에는 그 뜨거움이 싫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요다카는 눈을 감았다. 아케우라지의 심장 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하지만 태연한 척 자는 숨소리를 내고 있는 아케우라지에게, 요다카도 속아주자고 생각했다.
| 8 | bitter and sweet | 2025.10.05 |
| 7 | 츠카쥰 의식의 흐름 | 2025.09.14 |
| 6 | 만났다 헤어졌다 헤어졌다 만났다 에필로그 | 2025.07.08 |
| 5 | 만났다 헤어졌다 헤어졌다 만났다 2 secret | 2025.07.08 |
| 4 | 만났다 헤어졌다 헤어졌다 만났다 1 | 2025.07.08 |
| 3 | 돈만 주면 스케이트 하는 미친놈 | 2025.02.20 |
| 2 | 요다카 쥰이 꼴리는 밤 | 2025.02.09 |
| > | 밤마실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