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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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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ter and sweet

수성의 마녀 / DOZI 2025.10.05 00:00 read.41 /

슬레타 머큐리는 자신이 매사에 이성적인진 않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항상 감정적인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미오리네 렘블랑과의 햇수로는 연애 4년차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슬레타는 믿어왔다. 이성과 감정의 이상적인 밸런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슬레타와 미오리네 나름대로 밸런스를 갖추면서 쓸모 없는 곳에서는 진을 빼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4년째 연애에 접어들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귄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같이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으나, 4년째에 들어서는 슬슬 서로의 생활패턴을 알게 되다. 덕분에 티격태격 했던 그 시절은 가끔 이야기가 나오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캠퍼스 안에서는 이미 완벽한 부부라고 소문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는 슬레타와 미오리네. 자타공인 이제 연인이 아닌 부부의 단계에 접어든 두 사람의 연애사정은 순풍에 돛을 단 배마냥 부드럽고 유유자적 흘러가는, 신뢰와 안정으로 가득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슬레타는 언젠가 선생님이 될 꿈을 위해서 학생 시절에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었다. 반면 미오리네는 대학에 대해 큰 뜻은 없었으나 캠퍼스 커플을 해보고 싶다는 슬레타의 로망을 위해서 진학했을 뿐이었고, 열아홉 살 때까지 굴려왔던 주식으로 나름의 자본을 모아서 대학 진학과 동시에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미오리네의 사업은 번창했다. 미오리네는 처음에는 작은 대학생 잡지에 실려서 나오더니, 나중에는 경제잡지나 신문 같은 데에서도 미오리네의 이름을 걸고 싶어했다. 얼굴이 팔리는 일이야 사업가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미오리네는 최근 들어서는 필요 이상으로 얼굴을 내미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슬레타와의 대학 생활에 크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미 ‘렘블랑’이라는 이름이라던가, 본인 스스로 만든 회사 때문에 소문난 ‘미오리네’라는 이름 같은 것들이 유명해졌긴 했지만, 미오리네는 대학 졸업까지 앞으로 남은 1년 간은 얌전히 지내고 싶었다. 슬레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청춘의 유예기간을 알콩달콩 지지고 볶고 싶었다.

그런 미오리네의 귀여운 구석을 보고서 슬레타는 항상 기뻐하며 그녀의 배려에 고마워했다, 라면 이 이야기는 시작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슬레타가 믿고 있었던 이성과 감정의 밸런스가 정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게 무너지게 된 것은 사소한 계기였다.

 

“미오리네 씨, 제 휴대폰 어디 있을까요?”

“또 어디에 뒀는지 까먹었어? 내 휴대폰으로 전화 해봐.”

“미오리네 씨 휴대폰은 어디 있어요?”

“거실 소파!”

 

샤워를 마치고 나온 미오리네가 머리를 한창 말리고 분주할 때, 슬레타는 자신의 휴대폰을 찾기 위해서 거실 소파에서 미오리네의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1002라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나서 바로 뜨는 웃고 있는 슬레타를 배경으로 한 화면에 슬레타는 헤헤, 하고 웃었다. 미오리네 씨의 사랑이 느껴져.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최근 전화목록에 들어가 아마 가장 상단에 있을 자신을 찾았다.

 

‘음…?’

 

나랑 생각보다 전화를 별로 안 하는 구나, 미오리네 씨.

슬레타는 한 페이지를 넘어가야 나타나는 자기 전화번호를 보고서 기분이 묘해졌다. 수두룩 쌓인 미오리네의 일 관련 연락들 보다 자신이 훨씬 뒷전인 기분이었다. 아니, 미오리네 씨가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일을 더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슬레타는 원래 목적인 휴대폰 찾기에 집중하며 전화를 걸었다.

아마 매너모드로 바꿔 놓아서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슬레타는 침실이나 드레스 룸, 서재 같은 곳을 돌아보았다. 슬레타와 미오리네가 무리를 해서 빌린 이 아파트는 넓어서 쾌적했지만, 휴대폰 하나 찾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결국 휴대폰을 찾아준 것은 미오리네였다. 머리를 다 마치고 세팅까지 한 미오리네가 침실의 침대 밑에서 징징 울리고 있던 슬레타의 휴대폰을 들고 나타났다.

 

“자기 전까지 휴대폰 하니까 이상한 데에 떨어져 있잖아.”

“미오리네 씨가 어제 늦게 들어와서 그런 거잖아요.”

“내 탓을 하겠다?”

“미오리네 씨 껴안고 자면 잘 때까지 휴대폰 볼 일도 없는데.”

 

슬레타의 툴툴거리는 말에 미오리네는 황당해 하면서도 미안함을 느꼈다. 요즘 일이 바빠서 슬레타를 홀로 자게 만든 것은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미오리네는 말로 사과하는 대신에 슬레타의 품에 안겼다. 갑자기 포옥 안겨드는 미오리네의 체온에 슬레타는 에헤헤, 하고 웃었다.

 

“이렇게 애교 부린다고 제가 봐줄 거 같아요?”

“안 봐줄 거야?”

“봐주죠, 당연히. 근데 미오리네 씨 너무 얌체 같아요.”

“얌체 같아? 왜?”

“그런 얼굴 하는 건 너무 반칙이잖아요.”

 

무슨 얼굴을 했길래 얌체 같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거지? 미오리네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슬레타는 그거도 정말 반칙이에요, 라고 말했다. 몰라, 몰라. 그냥 봐줘! 미오리네는 슬레타의 품을 파고들면서 키득거렸다.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를 앞두고서 한참을 시시덕거리던 두 사람은 겨우 밖으로 나왔다. 가을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은 높고 파랬다. 어디로 가든 즐거울 것 같은 날씨라서 슬레타와 미오리네는 손을 잡고 걸었다.

주말 동안 서로를 충전하고 나서 맞이하는 월요일이 되었을 무렵,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휴대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오전 5시였다. 이른 새벽부터 울리는 벨소리에 슬레타의 품에 기대어 잠든 미오리네가 몸을 뒤틀었다. 슬레타는 뒤척이는 미오리네는 꼭 끌어안고, 미오리네를 대신해서 그녀의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우선 벨소리를 끄고서 누구한테 왔는지만 확인했다.

 

[샤디크 제네리]

 

미오리네가 사업 때문에 자주 만난다는 남자였다. 슬레타도 몇 번 만난 적 있었다. 쾌활하게 웃는 낯으로 슬레타에게 ‘미오리네의 신랑이라며?’라고 말했던 샤디크 제네리. 슬레타와 미오리네의 관계를 알고 있을 그 남자가 왜 이 새벽부터 미오리네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

슬레타는 내심 지금 전화가 부재중 통화로 남겨지길 바랐다. 그러나 샤디크는 부재중 전화로 넘어가기가 무섭게 한 차례 더 전화를 걸었다. 바로 벨소리를 껐음에도 두 번째 전화에는 미오리네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슬레타에게 물었다.

 

“전화, 누구였어…?”

“음… 샤디크 씨요. 지금 새벽 5시인데.”

“샤디크?”

 

미오리네는 슬레타의 품에서 바로 일어났다. 평소라면 잠에서 깨는 데 한참 걸리는 미오리네가 하품 한 번 하지 않고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 놀라웠다. 슬레타는 아직도 울리고 있는 미오리네의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미오리네는 끊어질 것 같은 전화를 놓치지 않고 바로 받았다. 지체하지 않고 샤디크의 전화를 받는 미오리네를 보면서 슬레타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서 느꼈더라, 이런 기분. 슬레타는 어딘가 식어버린 느낌으로 전화를 받는 미오리네를 보았다.

 

“여보세요? 샤디크, 무슨 일이야?”

‘아, 미오리네. 이 시간에 정말 미안하지만… 좀 사고가 생겨서.’

“무슨 사고? 잠깐만….”

 

미오리네는 슬레타를 침실에 혼자 내버려 두고서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달칵, 하고 침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니 슬레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왜 이러지, 진짜. 침대에 풀썩 누워서 미오리네의 남은 온기를 손끝으로 쓸어보며, 슬레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오리네 씨는 사업 관련 일은 나한테 별로 안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었고, 나도 미오리네 씨의 일을 도울 수 없으니까 그런 건 괜찮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찜찜하고 답답하지? 만약 내가 새벽 5시에 전화를 걸었어도, 미오리네 씨… 방금 전처럼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받아줄까?

답을 알 수 없는 고민에 빠져있던 슬레타에게 미오리네가 금방 돌아왔다면 지금의 기분은 또 쉽게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오리네는 전화를 받고서 나갈 생각이었는지, 급하게 세수하는 소리와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다 지쳤던 슬레타가 훤해진 거실로 나가서 미오리네를 불렀다.

 

“어디 가요, 미오리네 씨?”

“아, 슬레타. 미안, 자다가 깨워서. 아니, 거래처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거 같아서 내가 가봐야 할 거 같아.”

“급한 일이에요?”

“엄청 큰일까지는 아니어도, 빨리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 그리고 오늘 늦을 거 같아. 내일 저녁에나 들어올 거 같아.”

“학교는요?”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페널티는.”

“……네에, 다녀오세요.”

“응, 슬레타는 더 자고, 학교 잘 다녀오고, 그럼 내일 봐.”

 

급하게 움직이던 미오리네는 다가오는 슬레타에게 뽀뽀를 쪽, 하고 마쳤다. 그러고 나서 구두를 급하게 신은 미오리네가 나가고, 복도를 박차고 달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체력도 별로 없으면서 달리기까지 하다니. 미오리네 씨, 정말 급하구나. 슬레타는 훤해진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생각이 많아 무거워진 머리가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 거실의 형광등 조명을 빤히 쳐다보면서, 슬레타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오리네 씨…….”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불안하고 초조해요.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휴대폰을 떠올렸다. 슬레타의 이름은 한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기분이 이상해졌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방금 전, 샤디크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갔던 미오리네. 급하게 한 방금 전의 뽀뽀도 뭔가 섭섭했다.

주말 동안 미오리네를 잔뜩 충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슬레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미오리네 씨 바보. 미오리네한테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나쁜 말을 한 번 내뱉어봐도 나빠진 기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슬레타는 성실한 연인이었다. 미오리네의 말대로 7시까지 조금 더 잤고, 학교에 나갔다. 월요일은 오전에만 수업이 있어서 오후부터는 할 일이 없었다. 미오리네 씨한테 연락해볼까, 라고 생각을 했지만, 새벽의 미오리네가 바쁜 것 같아 보여서 전화할 마음도 사라졌다. 괜히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미오리네 씨는 단순히 일을 하는 거 뿐인데, 내가 너무… 너무 속이 좁은 걸까?’

 

슬레타는 높아지다 못해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가을하늘의 푸른 정경을 보면서 한숨을 또 푹 내쉬었다. 하아, 하고 늘어지는 한숨에 슬레타는 호흡을 잠깐 가다듬고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기합을 넣자! 이런 걸로 우울해 하기에는 미오리네 씨는 날 너무 사랑해! 사랑할 거야! 그래,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그만! 

마음을 다잡은 슬레타는 괜히 허공을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혼자서 즐거워 보이네, 슬레타 머큐리.”

“…엘란 씨!”

“수업은 다 끝났나봐?”

“네, 월요일은 오전 수업만 있거든요.”

“월요일 오전부터 힘들었겠네.”

“괜찮아요!”

 

슬레타가 혼자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있을 때, 이전에 같은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던 엘란 케레스가 다가왔다. 엘란은 이전에 같은 교양수업을 들었을 때 알게 된 사이었다. 그는 미오리네와 비슷하게 학생 신분으로 여러 사업을 하고 있었고, 미오리네도 그의 사업수완에 대해서는 딱히 흠 잡을 것이 없다고 말했었다.

엘란은 혼자 벤치에 앉아있던 슬레타의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네, 앉으세요. 슬레타는 잠시 잠깐에도 미오리네 생각을 하는 자신에 대해 쓴웃음이 나왔다.

 

“미오리네는 오늘 안 나왔다며?”

“아, 네…. 일 때문에 오늘은 못 나온다고 하셨어요.”

“하긴, 그럴 만한 일이긴 하지.”

“네?”

“나도 아침에 전해들었는데 사고가 제법 커서, 미오리네도 꽤 애를 먹을 거 같더라.”

“…엘란 씨는 아세요, 미오리네 씨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뭐,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공생하는 사이니까.”

 

기껏 다잡은 마음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미오리네는 슬레타에게 성의 없는 뽀뽀 한 번으로 모든 걸 대체했고, 슬레타는 그 뽀뽀 하나로 모든 것을 납득해야만 했다. 하지만 엘란은 미오리네에 닥친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오리네 씨한테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건 나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왜 나만 모르는 거 같지?

서서히 가라앉는 슬레타의 분위기에 엘란은 흐음,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슬레타 머큐리, 우울해?”

“우울…하기 보다는 좀 뭔가… 화가 나요.”

“화가 난다고?”

“미오리네 씨가…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그런 게 있어요.”

“너 답지 않네. 미오리네 관련으로 화를 낸다니.”

“…….”

 

슬레타 답지 못하다, 라는 말에 슬레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오리네 씨한테 화가 난 건가, 아님, 그냥 내가 쓸데없이 우울해 하는 건가. 고민에 빠져있던 슬레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엘란과 시선을 마주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엘란 씨가 보기에는… 미오리네 씨랑 가장 가까운 사람은…?”

“아무래도 너지.”

“그렇죠?”

“그렇지.”

“그럼 됐어요.”

“그래?”

“네, 아니, 뭐랄까, 확신 같은 게 필요한 거 같은데.”

“미오리네가 확신을 안 줘? 신뢰가 부족해?”

“그, 그런 건 아니에요! 미오리네 씨는 절 사랑해요. 그런데, 그런데 제가…….”

 

슬레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말이 없어진 슬레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잡았던 마음과 애써 넣었던 기합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침울해지는 슬레타를 보고서 엘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럴 때는 좋은 방법이 있어.”

 

엘란은 슬레타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뭘 하시게요? 놀라서 동그래진 슬레타의 눈망울에 엘란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흐끅, 그래서, 그래서허어… 미오리네에 씨가, 히끅, 흑, 흐윽…. 속상하잖아요오!”

“응, 그래.”

“그래, 가 아니라요!”

“응, 맞아.”

“제, 제 이야기 들으신 거 맞아요? 엘란 씨, 지금 저, 놀리시는 거면….”

“슬레타 머큐리를 놀리면 미오리네 렘블랑한테 무슨 일 당할지 뻔한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요!”

“그래, 내가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미오리네가 뽀뽀 한 번 해준 게 속상했다는 이야기 뿐인데.”

“더 있다고요!”

“응, 그래.”

“소, 속상해요!”

“응, 맞아.”

 

엘란이 간 곳은 학교 근처에 널리고 널린 술집이었다. 아무데나 가자. 가자고 한 건 나니까 돈은 내가 낼게. 슬레타는 미오리네에게 엘란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고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뭔가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서 메시지 송신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일거수일투족 다 말해주는데, 미오리네 씨는 나만 모르게 하고…. 그런 마음에 술잔 안의 술은 술술 넘어갔고, 슬레타는 엘란을 붙잡고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슬레타는 자신이 어떤 지점에서 미오리네에게 화가 났는지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사소한 것들이 짜증이 나고 신경이 쓰였다. 다른 사람만큼이나 나한테 전화도 잘 안 걸어주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려주는 것들을 나는 모르게 하고…! 그걸 고작 뽀뽀 한 번으로 퉁치려고 한다는 게 새삼 제일 화가 났다.

 

“저, 저 그렇게 단순하지 않거든요?! 엘란 씨도, 아시죠?!”

“복잡하지.”

“복잡해요, 복잡해서 모르겠어요오….”

“인간은 원래 복잡해.”

“도움이 하나도 안 돼요….”

 

슬레타는 눈물을 훌쩍 훌쩍 닦아내며 다 비어버린 싸구려 위스키 병을 끌어안았다. 엘란은 그런 슬레타 앞에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서는 계산을 하겠다며 일어섰다. 벌써 갈 시간인가. 슬레타는 밖을 내다보았다. 패기롭게 대낮부터 낮술로 시작했는데 시간은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갔다. 마신 술병도 제법 되었는데 대부분 슬레타가 비운 것이었다. 엘란은 ‘왜 안 드세요?’라는 슬레타의 말이 있을 때나 홀짝거리는 정도였다.

많이 드시지도 않을거면서… 엘란 씨는 왜 술을 사주신 거지? 그런 생각을 한 슬레타는 겨우 몸을 가누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란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에 슬레타는 구구단을 거꾸로 외워주었다.

 

“완전 취했네.”

“…집에 가야 돼요.”

“미오리네한테 연락하면 데리러 오겠지?”

“아뇨.”

 

슬레타는 술기운에 뜨거워진 자신의 볼을 찰싹 때리며 즉답했다. 아뇨, 라는 단호한 대답에 엘란이 호오, 하고 재미있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미오리네 씨는 바빠요…. 일 하는 데에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미오리네가 바빠? 흐음… 그렇다고 해서 안 올 거 같진 않은데. 아니면 내가 데려다 줄까?”

“아뇨… 알아서 갈게요. 여기서 집이 그렇게 멀지도 않고.”

“괜찮겠어?”

“바람 좀 쐬면 괜찮아질 거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엘란은 슬레타가 찬바람에 정신이 좀 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었다. 슬레타는 기분 좋게 뺨을 간지럽히는 가을 바람의 차가운 기운에 나른한 하품을 했다. 쩌억 벌어졌다 다물리는 슬레타의 하품하는 모습에 엘란이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한 번 미오리네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오리네는 알아? 네가… 그, 뽀뽀 한 번으로 상처 받은 거?”

“상처요? 에이, 이건 상처가 아니죠.”

“상처가 아니면 뭔데?”

“상처가 아니라… 뭐랄까… 속 좁은… 쫌생이… 같은….”

“뭐야, 그게.”

 

슬레타가 그러게요, 하고 실없이 웃었다. 쓴웃음을 짓던 엘란은 손목을 꺾어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이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역까지 가는 길은 같았기 때문에 슬레타와 엘란은 같이 걸었다.

 

“미오리네한테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네? 뭐, 뭐를요?”

“오늘 나랑 술 마신거나, 네가 속 좁은 쫌생이가 되었다는 사실 같은 거.”

“…제가요? 왜요?”

“미오리네가 너한테 그런 일을 숨기면 넌 기분 나빠할 거잖아.”

 

미오리네 씨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라고 말하려다가 슬레타는 히잉, 하고 울음을 참았다. 미오리네는 슬레타에게 그런 일이 있어도 말해줄 것 같진 않았다. 지금도 말해주지 않는걸. 어쩌면 나보다 일이 더 좋은 거 같기도 하고. 지금 내가 전화 걸면 바빠서 받아주지도 않을 거 같은데, 샤디크 씨 전화는 새벽 5시에 받았고. 오늘도 나한테 전화 한 번 없었고. 이 시간까지 안 들어갔는데도  연락도 없는 걸 보면 정말 내일 저녁에 들어오는 건데… 난 왜 이렇게 이런 것들이……

 

“억울해요오…….”

“억울하다는데?”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선선한 가을바람 사이로 날카롭게 꽂혀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미오리네였다. 슬레타는 등 뒤에서 들리는 미오리네의 목소리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보았던 트렌치 코트 차림으로 단단히 무장한 미오리네는 술에 취해 얼굴이 벌개진 슬레타를 보고서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만났으니 난 갈게. 잘 가.”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타이밍 좋게 엘란은 빠져나갔다. 가을바람보다 더 냉랭한 미오리네의 시선에 놓여진 슬레타는 할 말이 없었다. 술 기운 덕분인지 괜히 참을 수 없는 말들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슬레타. 저 녀석이랑 술 마시는 거, 왜 얘기 안 했어?”

“…까먹었어요.”

“거짓말.”

“진짜예요.”

“그 말, 진짜로 믿어줘?”

“…….”

“뭐가 그렇게 억울하길래 도로 한복판에서 또 울려고 그래?”

 

미오리네의 말을 듣고 나니 진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레타는 눈가를 벅벅 닦아내고서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으니까 그냥 집에 가요. 슬레타가 말을 돌리려는 것에 미오리네가 앞서가는 슬레타를 붙잡으며 말했다.

 

“빨리 말해.”

“뭘 말해요…?”

“뭐든 좋아. 아니면 오늘 내가 뭔가 잘못했어?”

“…아뇨, 미오리네 씨는 잘못한 거 없어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런 얼굴이야?”

“그냥, 이건 제 기분 문제예요.”

“그럼 더 중요하지.”

“거짓말 하지 마세요.”

 

슬레타는 내뱉어 놓고서 화들짝 놀란 눈치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 타기를 하던 중에 보기 좋게 지뢰를 밟은 기분이었다. 미오리네는 그런 슬레타에게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것처럼 다가왔다. 

 

“거짓말은 네가 하고 있잖아.”

“미, 미오리네 씨가 먼저 그런 거예요!”

“내가? 내가 뭘?”

“제 기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거요.”

“네 기분이 중요하지, 그럼 내가 다른 사람 비위 맞춰주는 게 더 중요해?”

“……그럼 왜 뽀뽀 한 번만 해줬는데요!!”

 

이번에는 보기 좋게 폭탄을 투하한 기분이었다. 슬레타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갔음에도 미오리네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에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아무말이었다. 

 

“그, 뽀뽀 한 번만 해줬다는 게, 기분 나빴던 게 아니라. 아니, 그건 솔직히 기분 나빴어요. 제가 무슨 뽀뽀 한 번으로 다 해결되는 애처럼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근데, 근데 전 그게 아니거든요? 미오리네 씨가 생각하는 거보다 더 복잡하고, 아니, 인간은 원래 복잡하지만….”

“…….”

“그러니까, 저는, 그, 기분이, 나빴어요. 그냥, 여러가지로……. 미오리네 씨 휴대폰 봤을 때부터 좀 이상하긴 했는데, 그런데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거든요? 근데 뭐랄까, 이제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나빠요.”

“…….”

“미오리네 씨 잘못이… 미오리네 씨는 잘못한 게 없진… 않진… 않은데……. 근데 그거 가지고 제가 계속…….”

“그래, 내 잘못이 있다 이거잖아. 그게 뭔데?”

 

슬레타는 도로 한복판에서 미오리네와 이렇게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속상했다. 사실은 내일 저녁에야 볼 수 있는 미오리네를 바로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미오리네를 탓하고 있을 게 아닌데. 슬레타는 제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마냥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가 진 슬레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자, 미오리네는 슬레타의 손을 꼭 붙잡고서 흔들었다.

 

“말해줘, 슬레타.”

“들으면 황당할 거예요.”

“한두 번 황당해본 거 아니니까 괜찮아.”

“미오리네 씨가 저한테 질리면 어떡해요?”

“너한테 질릴 만큼 당했으니 이제는 내가 갚아줄 차례라고 생각할게.”

“좋은 거예요, 그거?”

“나빠 보여?”

“……별로 좋은 거 같지 않아 보여요.”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슬레타는 뭔가가 정리되는 것 같았다. 미오리네 말대로, 미오리네는 슬레타가 예전에 정수기 방문판매원 때문에 정수기를 3대나 집에 설치했을 때에도 슬레타랑 헤어지지 않았고, 게르마늄 팔찌를 사왔을 때도 잔소리를 된통 하고 난 뒤에 줄이 삭아서 끊어질 때까지 껴주던 사람이었다. 슬레타에게 질릴 만큼 당했으면 진작에 당했고, 갚아줄 때가 왔다면 언제든 갚을 사람이었다.

슬레타는 미오리네와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생각은 조금씩 정리되고, 술 기운도 깨면서 뭔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느릿하게 떼면서, 슬레타는 입을 열었다.

 

“미오리네 씨는… 제가 샤디크 씨처럼 새벽 5시에 전화해도 받아주실 거예요?”

“뭐?”

“제가 급하다고 하면… 바로 나와 주실 거예요?”

“…….”

 

오늘 새벽의 일에 대해서 슬레타가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미오리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교내외에서 나름 알아주는 닭살커플이 될 때까지 애정을 퍼붓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슬레타는 그것으로도 매번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엉성한 질문으로 미오리네의 마음을 시험하고 있는 지금은, 미오리네가 가지고 있는 슬레타에 대한 애정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고작 그런 걸로 술 마시고 억울하다고 울고 있던 거야, 넌? 미오리네는 잔소리를 할까 하다가 당연하지, 라고 입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자른 것은 슬레타였다.

 

“미오리네 씨, 제가 이렇게 말 안 하고… 비밀로 하고… 그러니까 기분 나쁘죠?”

 

슬레타의 말에 미오리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슬레타는 울 것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한숨을 푸욱 내쉬고서는 중얼거렸다.

 

“기분 나쁜데… 말을 못하겠어요.”

“어디서부터 기분 나빴는지 말해봐.”

“미오리네 씨는 일이 좋아요, 제가 좋아요?”

“너.”

“저랑 같이 학교 가는 거보다 일이 더 중요하면서…… 거짓말쟁이.”

“아니, 오늘은 좀… 예외 상황이었어.”

“뭔데요, 그런 거! 전 몰라요!”

“알려주면 되잖아!”

“바로 알려주면 되는데 왜 이제 와서 알려주는 거예요?! 미오리네 씨 바보!”

“뭐?!”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슬레타는 냅다 바보라고 내질러놓고서 미오리네의 눈치를 보았다. 미오리네의 비상한 머리는 가열차게 돌아갔지만, 슬레타가 미오리네를 바보라고 지칭한 시점에서 이성의 한 구석이 무너져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슬레타가 어느 정도 맞는 말을 해서 또 당황스러움은 더해져갔다.

 

“미오리네 씨는 저한테 전화 자주 안 하면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전화 자주 걸고! 저랑 전화 하루 한 번도 안 할 때도 많은 거 알고 있었어요?”

“아니, 그건… 우리 같이 사는데 굳이 전화를….”

“일하는 사람들이랑도 얼굴 자주 보잖아요! 게다가 저한테는, 미오리네 씨 오늘 저한테는 내일 저녁에나 들어오겠다고 말해놓고, 또 거짓말 했죠? 그리고 샤디크 씨가 전화 거니까 바로 일어나서 나가버리고! 제가 무슨 뽀뽀만 해주면 다 만족하는 줄 아시나봐요?!”

“스, 슬레타.”

“그리고 왜 엘란 씨도 미오리네 씨가 왜 바쁜지 아는데…! 근데 왜 저는 모르는 건데요!”

 

슬레타는 씩씩거리다가 분을 못 참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기 시작하는 슬레타를 보면서 미오리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까지 쌓인 게 많았을 줄은 몰랐는데… 미오리네는 깊은 반성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오리네가 차근차근 이야기 해볼까, 라고 입을 열었다. 슬레타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샤디크가 새벽 5시에 전화한 건 이거 때문이야.”

 

미오리네는 눈물로 축축해진 슬레타의 손끝을 잡았다.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낸 미오리네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이런 상자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그 아무리 둔한 슬레타라고 해도 알고 있었다.

 

“반지… 맞추고 싶어서 일정을 좀 무리하게 잡았더니 문제가 생겨서.”

 

미오리네는 상자를 열어 반지 하나를 꺼내어 슬레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잘 맞네, 라고 말하며 미오리네는 희미하게 웃었다.

 

“엘란 녀석이 알고 있는 건 페일 계열사에서 맞춘 반지라서 그래.”

“…….”

“솔직히 전화 자주 안 한 거는 미안해. 그렇지만 같이 살고 있고, 집에 가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난 언제든 슬레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할 필요를 잘 몰랐어.”

“…….”

“자주 전화 할게.”

“…….”

“이제 됐어?”

 

미오리네가 끼워준 반지에 슬레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말 이게 뭐예요, 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미오리네의 눈과 마주하니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키스할래요.”

“…여기서?”

“네.”

“조금만 걸으면 집인데?”

“할게요.”

“뭐?”

 

그리고 당돌하게 부딪히는 입술의 돌진에 미오리네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 여기 아파트 사람들이 다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 아니, 뭐, 어쩌겠어…. 미오리네는 깊게 입을 맞추는 슬레타를 끌어안았다. 주말 동안에도 부지런히 붙어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슬레타가 키스를 하니 머릿속이 또 슬레타로 가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머지 한쪽, 미오리네 몫의 반지를 담고 있던 케이스를 꽉 움켜쥐고 있던 미오리네가 호흡을 위해 살짝 멀어지자, 슬레타는 그 반지 케이스를 가져가고서는 미오리네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키스로 가빠진 호흡 와중에 두 사람의 반지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미오리네 씨, 예뻐요.”

“……알아.”

“반지가 아니라 미오리네 씨가 예쁘다는 이야기예요.”

“…그, 그것도 알아.”

 

슬레타와 손을 마주잡고 있으면서, 미오리네는 어딘가로 숨고 싶어졌다. 아파트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같은 것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슬레타와 미오리네는 바쁘게 집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숨 막히는 분위기, 거사를 치르기 직전 특유의 텐션으로 가득찬 그 공간에서 슬레타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미오리네와 연결된 손끝을 타고서 넘어간 것 같았다.

슬레타와 미오리네가 사는 집앞에 들어서자마자, 슬레타와 미오리네는 현관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고서 황급하게 옷을 벗고, 달려들었다. 아직 안 씻었는데, 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키스 한 번으로 다 되는 사람 아니야, 슬레타.”

“네?”

“원래 이러는 거 아닌데… 너니까 특별히 봐주는 거야.”

“……아, 그거. 뽀뽀 한 번 때문에 화난 거 아니였어요.”

“뭔데, 그럼?”

 

신발이 나뒹구는 현관 앞에서, 미오리네의 벗은 몸에 입을 맞추던 슬레타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질투였겠죠.”

“질투?”

“…아무래도 좋아요, 집중하세요.”

 

대체 뭐에 질투한 거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슬레타는 들이닥쳤고, 미오리네는 그녀가 주는 쾌락 속에서 하염없이 무너졌다. 질투? 질투로 우는 건 꼴사납다고 생각했는데, 슬레타가 질투 때문에 울었다고 생각하니 미오리네는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을 질투했던 간에 아무튼 나를 사랑한다는 거잖아. 들뜬 미오리네가 드물게 자신에게 먼저 키스해주는 것에, 슬레타는 질투의 쓴맛을 잊어버렸다. 남는 것은 오로지 사랑의 달콤함 뿐이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