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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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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너와 공허한 나 下 *

DOZI 2019.06.13 01:18 read.513 /

부활루 이후

 

 

 

 

 

 

 

 

 

 

 

 

를르슈와의 식사는 대부분 아서 주니어와 같이 함께 이루어졌다. 아서 주니어는 를르슈의 무지막지한 손에도 발톱을 세우는 등의 반항도 하지 않고서 얌전히 붙들려있었다. 그 사이에 스자쿠는 떠먹이기 좋은 음식 같은 것, 혹은 한 입에 베어물기 좋은 것들을 를르슈의 입에 밀어넣었다. 빨대로 유동식을 먹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를르슈는 자주 사레가 들렸다.

귀찮고 번거롭다. 

제로의 임무가 당분간 한가했고, 흑의 기사단에는 제로의 휴식을 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어있던 인력들도 채워져서 스자쿠는 여유롭게 를르슈를 돌볼 수 있었다. 그것이 벌써 일주일 째였다. 그 동안의 를르슈는 아서 주니어를 만지는 걸 좋아했다. 아서 주니어는 를르슈에게 호의적이었고, 야아아옹, 하고 길게 부르는 소리도 애교가 넘쳤다.

나한테는 안 그랬으면서. 

스자쿠는 아서 주니어와 함께 노는 를르슈를 보고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피곤한 일이었다. 얌전히 있으면 얌전히 있는대로 무섭고, 시끄럽게 굴면 시끄럽게 구는대로 피곤했다. 를르슈는 어렸을 때 이런 느낌이었나? 스자쿠는 제가 알고 있던 를르슈를 떠올렸다. 

 

항상 나나리를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던 를르슈.

스자쿠를 믿기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던 를르슈.

마지막엔……. 

 

스자쿠는 마지막에 있었던 그 장면을 떠올리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워있던 스자쿠가 벌떡 일어나는 것에 몸을 크게 움츠린 를르슈는, 그것이 별것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다시 아서 주니어의 목 아래를 살살 쓰다듬으며 저도 기분 좋은 듯 웃고 있었다.

가끔은 억울했다. 지금의 를르슈처럼 다 잊을 수 있다면 잊고 싶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호의나 적의 따위에만 반응하고, 다른 것은 모르고 싶었다. 

세계 정세라던가, 평화 같은 건 지키고 싶지도 않고, 이 가면을 집어던지고 자유롭게, 자유롭게…. 스자쿠는 자유롭게,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을 찾지 못했다. 아서 주니어를 쓰다듬던 를르슈는, 아서 주니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에 붙잡지 않고 내보내주었다. 스자쿠가 잡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 교육의 효과였다. 를르슈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지만, 그래도 를르슈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잊지 않고 외우는 편이었다. 

 

“를르슈, 간식 먹을래?’

 

오늘의 간식은 푸딩이었다. 를르슈는 간식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스자쿠는 아침 식사와 같이 들어왔던 푸딩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를르슈는 눈을 반짝였다.

스자쿠가 의자에 앉으라고 하는 것에 를르슈는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고서 를르슈는 입을 벌렸다. 빨간 혀가 살짝 내밀어진 모습에 스자쿠는 한숨을 쉬었다. 푸딩의 포장을 뜯고서 스푼의 절반을 푸딩으로 채웠다. 를르슈에게는 가득 찬 한 입은 언젠가 흘리기 마련이었다. 

 

“아, 그래, 옳지.”

“~!”

“알아, 맛있지?”

“!”

“천천히 먹어도 돼.”

 

를르슈는 스자쿠가 천천히 떠먹여주는 푸딩에 점점 빨리 달라고 재촉을 했다. 하지만 스자쿠는 일정한 속도로 먹여주었다. 불만스러운 를르슈의 미간을 눈치챘지만, 급하게 먹였다가 체하는 건 곤란했기에 스자쿠는 스푼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손에다가도 힘을 주었다.

반쯤 먹였을 때,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자쿠의 손에는 푸딩이나 스푼 따위 밖에 없었다. 이거 달라고?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돼, 많이 먹으면 기침하잖아.”

“~~~!”

“위험해. 를르슈, 아픈 거 싫지?”

“…!”

 

아픈 거, 라는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스자쿠는 한숨 대신에 를르슈의 입에 푸딩을 올린 스푼을 가져다 댔다.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어라.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쥐고 있는 스푼을 스자쿠 쪽으로 향하게 했다. 

모양이 이상하지만, 꼭 스자쿠에게 먹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라, 어라. 스자쿠가 계속 당황하는 사이에 탱글탱글한 푸딩이 올라온 스푼은 스자쿠의 입 쪽으로 다가왔다. 를르슈는 아, 하고 소리 내어 입을 벌렸다. 스자쿠도 멍청하게 그것을 따라했다. 그 사이에 스푼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엄청 달고, 캐러멜이 위에 뿌려진 푸딩이 입 안에서 녹고 있었다. 

 

“~?”

“으응….”

“!”

“맛있어, 고마워, 를르슈.”

 

를르슈는 ‘고맙다’는 말에 또 활짝 웃었다. 스자쿠가 푸딩을 떠올리면, 를르슈는 다시 방향을 돌려서 스자쿠에게 먹였다. 정말 이상했지만, 를르슈가 스자쿠에게 먹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남을 돌보는 걸 좋아했지, 넌. 스자쿠는 괜히 써지는 입맛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푸딩이 제 입에 들어올 때마다 고맙다고 했다.

간식을 먹은 후에는 양치를 한다. 를르슈의 턱을 붙잡고 닫히지 않게 볼까지 아프지 않게 쥔 스자쿠는 양치를 시켰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식으로 양치를 했다가는 없던 충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스자쿠가 일일이 해주는 중이었다.

를르슈가 좋아하는 딸기맛 치약을 어찌어찌 공수해서 잘 쓰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3분의 1 가까이 줄어든 치약은 그간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려주었다. 를르슈, 가글하자, 가글.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양치컵을 쥐고서 입을 헹구었다. 

 

“넌 정말 대단해, C.C.. 하루도 쉬지 않고 이런 걸 했단 말이지, 1년 동안.”

‘좀 더 내 노고를 치하해도 좋아, 제로.’

“죽겠어. 아직 오후 4시 밖에 안 됐다니.”

‘오후 9시에 자고 오전 7시에 일어나는 우리 애는 어때?’

“잘 먹고 잘 자고….”

‘그거 뿐?’

“더 다른 게 있어?”

‘정신만 어린애야. 몸은 다 큰 어른이라고.’

“…설마.”

 

스자쿠는 침대 위에서 졸고 있는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따끈한 햇살을 받아서 노곤노곤 풀어진 를르슈는 금방이라도 잘 거 같았다. 

 

“낮잠 이야기지?!”

‘당연히 성욕의 이야기다.’

“너네 둘이 잔 건 별로 궁금하지 않아!”

‘자지 않았어.’

“…….”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를르슈의 성욕 같은 건.’

“너도 알고 싶지 않은 걸 내가 알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지금 돌보고 있는 건 너잖아?’

“좋아서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C.C.는 전화기 너머로 쿡쿡거리며 웃었다. 애 보기는 힘들지, 하지만 를르슈는 애가 아니라서 더 힘들거야. 그때를 떠올리듯 C.C.는 피곤한 한숨을 쉬었다.

 

‘보름에 한 번 정도야. 그때 잠깐 내버려두면 돼.’

“내버려두면 된다고?”

‘아무리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를르슈를 볼 자신은 없거든.’

“…….”

‘너는 남자니까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이제 여기도 절반 가까이 다 와가니까…. 조금만 더 버텨줘.’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스자쿠는 아예 드러누운 를르슈의 옆에 같이 누웠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잔 효과로 를르슈의 뺨은 보기 좋게 살이 붙었고, 조금 안정되었는지 방 안을 자주 돌아다녔다. 그래도 문 밖으로 나가는 건 스스로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스자쿠의 주변에 있는 것도 좋아했고, 아서 주니어가 나가는 창문 밖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완전히 어린애, 말도 안 통하고, 상식도 이성도 없는 어린애. 스자쿠는 자고 있는 를르슈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나의 폐하. 

나의 원수.

나의 친구.

 

아무것도 모르는 를르슈에게는 그 원죄가 존재하는가?

몇년 전에는 수백 번 고민했던 스자쿠의 고민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에 나긋나긋한 몸이 수마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는 악보다 선에 가까워보였다.

정말 네가 제로였어? 정말 네가 사람을 죽였어? 정말 네가 유피를…. 

스자쿠는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서 떠올리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어떻게 되었든 이미 끝난 일이다. 그의 죄는 제로 레퀴엠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지었다. 스자쿠의 죄까지 짊어지고 떠난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를 이제 와서 찾을 순 없었다. 

지금 이 방 안에, 침대 위에 있는 것도 그와 닮은 누군가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고, 어리지도 않아.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도 밀려드는 잠에 빠져들었다. 

 

“…! ~!”

“…으응, 를르슈. 일어났….”

 

그런 전화를 하고 나서 바로 일어난 상황이었기에, 스자쿠의 머리는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바지춤 사이에 손을 넣은 를르슈는 헐떡거리면서 침대 위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침대 시트에 뺨을 부비면서 말이 되지 못하는 신음을 내뱉는 를르슈는 누가 보아도 그 상황이었다. 

이걸 내버려두면 된다고. 

스자쿠는 를르슈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스자쿠가 일어난 것에 를르슈는 울먹거리는 눈으로 겨우 일어났다. 흐응, 하는 콧소리와 함께 를르슈의 아래가 부풀어 오른 것이 보였다. 

 

“나, 나는 없는 게 낫지?”

 

스자쿠는 를르슈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까먹었다. 하지만 를르슈는 스자쿠가 도망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스자쿠는 이도 저도 못가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몰랐다.

를르슈는 바지를 벗고서, 속옷을 내리고, 자기 성기를 드러내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야한 몸짓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흔드는 그것과 같았다. 성적 매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 기계적인 움직임에 스자쿠는 으악, 하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흐응, 응, 으응, 를르슈는 계속해서 칭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 시트에 정액을 흩뿌렸다. 이, 바보, 저걸 누가 치운다고…!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를르슈는 사정하고 나서의 여운으로 뒷목까지 붉어진 몸으로 거기 위에 또 엎어졌다. 정액 범벅의 시트와 옷까지. 안 그래도 를르슈가 있어서 메이드를 쓸 수 없는 방에 빨랫감이 한가득이었다. 

 

“모르겠어, 이젠….”

 

를르슈의 옷을 벗기고 나서 마른 몸을 끌어안아 욕실까지 대령했다. 따뜻한 물로 씻기고, 저도 옷이 젖은 김에 씻었다. 를르슈와 욕조에 같이 들어갔다. 처음엔 이렇게 큰 욕조가 사치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행이었다.

스자쿠는 잠에 빠져서 깰 생각이 안 보이는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카락과 서서히 붉은 기운이 가시고 있는 얼굴. 를르슈의 뺨을 또 무심코 쓸어보았다. 잠꼬대 조차 하지 않는 를르슈는 지금은 꼭 죽어있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물 밑에서 손목을 잡았다. 기어스의 문양이 있는 목덜미를 지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 두근두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있구나. 

 

“그럼 됐어.”

 

스자쿠는 축 늘어진 를르슈의 몸에 가운을 대충 입히고 젖은 머리를 겨우 말리고서 침대에 뉘였다. 저녁에 일어나서 놀아달라고 하진 않겠지. 갈아둔 침대 시트는 어떻게 또 빨래를 하고, 더러워진 옷은 어디다 널어놔야하는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고, 아니 처음인 것 같았다. 정말 평화롭군.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날, C.C.에게 연락이 왔다. 

 

‘그동안 고생했어.’

 

그녀가 보낸 좌표의 나라는 적도에 가까운 나라였다. 덥지 않을까. 지금껏 를르슈가 입고 다닌 옷을 생각하면 너무 더운 나라였다. C.C.는 기어스의 유적도 확인했고, 조각의 회수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제 를르슈의 정신만 되돌릴 차례라고 말했다. 스자쿠가 대답을 망설이자, C.C.는 또 작게 웃었다.

 

‘그 사이에 정이라도 들었어?’

“…아냐. 그냥 어린애를 걱정하는 것 뿐이야.”

‘그래, 그렇겠네. 이제 원래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야지.’

“…….”

‘괜찮아, 우리는 죽지 않잖아.’

“C.C., 있잖아.”

 

나는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래?’

 

나는 를르슈와 함께라면 못하는 게 없었지만, 너는 혼자서도 뭐든지 해내왔으니까. 그래서 부러워. 

 

‘그 녀석은 나의 소원을 위해서 계속 노력해주는 것 뿐이야. 나도 혼자서는…아무것도 할 수 없어.’

“를르슈도 대단하지. 저렇게 아무것도 못해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스자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를르슈는 전화기를 붙잡고 꼼짝도 않는 스자쿠의 옆을 빙글빙글 돌았다. 스자쿠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곧 거기로 가겠다고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이 스자쿠를 향했다. 

 

“이제 돌아가야지, 를르슈.”

 

네가 있어야하는 곳으로. 

그리고 나는 살아가야지, 네가 정해준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