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쿠루루기 X 학생 를르슈
(연상연하)
저는 나나리 람페르지. 올해로 15살입니다.
태어나서 5살 때까지 자란 곳은 브리타니아지만, 그 이후로는 일본에서 컸습니다. 바쁜 어머니와 상냥한 오라버니 덕분에 건강하게 컸습니다. 취미는 오라버니와 주말 데이트, 브라더 컴플렉스라고 불려도 상관 없습니다만, 오라버니도 저 못지 않는 시스터 컴플렉스니까요. 서로가 좋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말 거리는 북적거렸습니다. 평소보다 사람이 많은 거 같네, 하고 오라버니가 하는 말에 저는 오라버니의 옆에 바짝 붙었습니다. 나나리, 위험하니까, 라는 말로 저의 어깨를 감싸주는 오라버니는 늘 왕자님 같습니다.
오늘도 108명의 아내를 둔 황제에게 반역하기 위해서 먼나라까지 쫓겨난 왕자님 같은 오라버니에게 오늘도 오라버니의 여동생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갑자기 인파가 늘어났습니다.
누군가 건물에서 나온 모양이었습니다.
“아, 쿠루루기 스자쿠에요, 오라버니.”
“그래?”
어지간한 연예인을 기억하지 않는 우리 남매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쿠루루기 스자쿠의 스캔들 기사에 남은 이상한 선글라스 때문이었습니다.
일명 ‘쿠루루기 선글라스’는 쿠루루기 스자쿠가 아니면 소화하기도 어렵거니와, 어지간해서는 다들 고르지 않는다는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누가 봐도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걸 증명하는데도, 쿠루루기 스자쿠는 그 선글라스만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스캔들의 절반 역시 그 선글라스 때문에 걸린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오라버니는 ‘좀 더 똑똑한 녀석을 쓰는게 좋을 텐데….’하고 쿠루루기 스자쿠가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연출을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저 역시, 연기는 좋지만 그런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타격이 크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선글라스는 여전하잖아.”
“오라버니, 들리겠어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들릴 리가.”
오늘도 그런 망할 선글라스를…. 오라버니는 생긴 것과 다르게 입이 거친 편입니다. 제 앞에서는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를 쓰지만, 오라버니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법 험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끔씩 마음 속 소리가 튀어나오곤 하잖아요.
눈에 띄지 않게 얼른 가자. 오라버니와 손을 잡고서 오늘의 메뉴가 유명한 파스타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인파는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않고, 오라버니를 따라가는 발 걸음도 겨우 따라잡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기, 좀 천천히 가는 게 어때?”
제가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만, 오라버니가 뒤를 돌아보면서 저는 겨우 오라버니를 따라잡았습니다. 누구였을까, 돌아보고 나면 망할 선글라스, 아니 쿠루루기 스자쿠였습니다.
“역시,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내 취향이야, 너.”
어딘가의 영화 대사면 좋겠지만, 듣고 있는 대상이 오라버니라면 뭔가 이상하잖아요. 오라버니는 자기 손목을 덥썩 잡고 있는 쿠루루기 스자쿠를 보고는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마치 미레이 씨가 새로운 이벤트를 고안할 때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보통 제가 홍차를 내오거나 뭔가 타이밍 좋게 뭐라도 하려는데…. 이런 상황은 예상 외입니다.
보통 이상한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자기 오라버니에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은 안 하잖아요?
“지금 보니까 너도 귀엽네. 하지만 내 취향은 이쪽일까.”
“……아, 네. 감사합니다.”
뒤늦게 이어지는 제 칭찬에 감사합니다, 정도는 좋았을까요? 오라버니는 급하게 자기 등 뒤로 저를 감추었습니다. 역시 멋집니다.
“누구신지는 몰라도 가던 길 알아서 잘 가세요.”
“아, 소개가 늦었구나. 나 쿠루루기 스자쿠. 27살.”
“저에게 말을 건 이유는?”
“내 취향이라?”
“아쉽게도 저는 17살이라 미성년자입니다. 경찰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건 봐줘. 아, 그래, 친구라고 하자! 친구, 친구 좋지? 그치?”
“나나리, 경찰을.”
“밥도 내가 살게!”
“빨리.”
“어떻게 해야 나랑 친구해줄거야!”
쿠루루기 스자쿠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이 크게 술렁거렸습니다. 아, 경찰을 부르려고 진짜 휴대폰을 꺼낸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카메라를 들어올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무섭습니다.
오라버니가 자켓을 건네준 덕분에 얼굴은 가릴 수 있었지만, 오라버니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멀리서 어디선가 ‘스자쿠 군~!’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뭔가 상황이 일단락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황은 곧 데뷔할 신인 배우 를르슈 람페르지와 그를 리드하는 쿠루루기 스자쿠, 그리고 미모의 여동생 나나리 람페르지라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지만.
역시 자기 자신을 미모의 여동생이라고 하는 건 조금 무리일지도.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카페는 가격도 비싸고, 친구들과 어른이 되면 올 수도 있겠거니 했던 곳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사각형의 테이블에는 저와 오라버니가 한 쪽에, 그리고 스자쿠 씨와 스자쿠 씨의 매니저 씨가 같이 앉아있습니다.
맛있는 홍차와 과자가 나왔지만 오라버니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저도 뭔가 먹기에는 민망해서 가만히 테이블 밑에 손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조명 아래서 봐도 예쁘구나, 너.”
“를르슈 람페르지입니다.”
“이름도 예쁘네.”
“당신은 예쁘다, 예쁘다 소리 밖에 못합니까?”
“이름도 잘생겼어.”
“…….”
“아름답다.”
“그만하십시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친구를 해주십시오, 를르슈 님.”
괜히 ‘쿠루루기 선글라스’를 고르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고수하는 이유도 이런 고집이 있어서인 걸까요? 유명한 연예인이 되려면 그런 것은 기본일까요? 저는 오라버니와 쿠루루기 씨의 대화를 들으면서 여전히 어색하게 사이에 끼어있었습니다.
“친구라면 그렇게 다짜고짜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돼?”
“우선 허락하기 전까지 다가오지 않는 게 기본이 아닐까요?”
“아, 그런가. 잊고 있었다. 보통 내가 다가가면 좋아해서. 그럼 그렇게 다시.”
“그런가요? 그럼 나가자, 나나리.”
“나가는거야?!”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다가오지 마세요.”
그래, 약속은 약속, 나는 룰을 지키는 남자. 쿠루루기 씨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오라버니는 제 작은 핸드백과 모자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카페 밖을 나올 때까지 오라버니는 시종일관 앞만 보고 계셔서, 저의 걸음으로는 조금 버거웠습니다. 굽이 있는 샌들을 신은 탓에 발도 살짝 아파올 무렵에 오라버니는 뒤를 돌아봐 주셨습니다.
“미안하다, 나나리. 내가 급해서….”
“아니에요, 그런 분이 갑자기 다가오면 저라도 놀랄 거고.”
“그렇지? 그 녀석도 이상해. 나나리 같이 귀여운 애가 옆에 있는데 왜 나 같은….”
오라버니는 왜 나 같은, 다음 말을 못하고 얼굴을 붉히고 계시는지 알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직 나나리가 신기에는 어른스러운 샌들이 아닐까, 하고 화제가 금방 바뀌어서 우리는 제 샌들을 사기로 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라버니는, 그 이상하다고 매번 말했던 ‘쿠루루기 선글라스’를 산 것이었습니다. 평소보다 쇼핑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더니, 그 선글라스를 팔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안경점이 보일 때까지 돌아다녔던 것이었죠.
사흘 정도 지나니, 늘 반쯤 열려있던 오라버니 방문이 꽉 닫힌 채였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오라버니가 문을 닫을 때면 저한테 무언가 숨길 일이 있다거나 할 때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곤란한 일이라도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문 근처로 다가갔습니다.
“이제 치, 친구를…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쿠루루기 씨.”
결국 쿠루루기 씨가 마음에 들었나봐요. 이후로는 ‘아, 말투는 편하게? 그럼 그 망할 선글라스 갖다 버려.’ 라던가, ‘나는 스캔들이 많은 친구는 싫어.’ 라던가, ‘호텔에 가면 정말 홍차만 먹고 나오는건가?’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친구와는 호텔에서 노는 걸까요. 하긴, 쿠루루기 씨는 연예인이니까 밖에서 마음 편히 놀기가 어렵겠죠…. 어쩌면 저도 연예인 친구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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