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쿠의 출근을 배웅하고 나면 를르슈는 대체로 집에서 주식을 한다거나, 다른 시장 거래에 몰두를 하며 장이 마감될 때까지 자기 자신의 벌이를 하는 것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 들어서 집중을 통 하지 못한 채로, 를르슈는 마른 한숨과 함께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를르슈가 요즘 자주 다니는 사이트는 오메가들이 다니는 익명 사이트로, 정보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커뮤니티였다. 그 중에서도 를르슈가 가장 많이 들어가본 게시판은 약물과 관련된 게시판이었다. 오메가의 약물 거래는 불법이지만, 알음알음으로 음지에서도 팔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꺼림칙했지만, 어느 정도의 지식이 쌓인 이후에는 를르슈도 하나 정도는 사보려고 고민하고 있었다.
를르슈가 약물에 손을 대겠다고 작정한 것은 지난 설날 때 일이었다. 양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시끌벅적한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 지치지 않는 스자쿠는 를르슈와 함께 섹스를 했다. 그에게 안기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를르슈도 있는 힘껏 스자쿠를 끌어안고 절정을 느끼면서 만족스러운 새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새해 첫날이 지나고 사흘 정도 쯤 되었을 때, 스자쿠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기, 귀엽다….’
‘아기 좋아해?’
‘예전엔 잘 몰랐는데 요즘 들어서는 정말 귀엽다고 느낀달까.’
장난감 하나를 물고 빨며 꺄르륵 웃어대는 아기의 영상이 슥, 하고 지나갔다. 아마 홈비디오를 보여주는 코너였던 것 같았다. 스자쿠는 멍하니 있다가 곧 를르슈를 보고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를르슈에게 좀 상처가 되었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으랴.
를르슈는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는 오메가이지만, 흠이 하나 있다면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도 아직까지 발정기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아직까지 스자쿠에게 노팅이 되지도 않았고, 스자쿠와 생물학적으로 짝을 맺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스자쿠는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부부고 섹스도 잘 하고 있잖아?’라고 일관했지만, 를르슈에게 그 부분은 예민한 부분이었다.
스스로 하자가 있는 오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를 반려로 맞이한 스자쿠에게 실례가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팅도, 짝도, 맺을 수 없는 오메가가 과연 오메가인가. 그 사이에 누군가 스자쿠를 데리고 가면 어떡하지, 스자쿠라는 알파를 홀리는 오메가가 나타난다면. 를르슈는 그 생각을 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에는 병원을 알아보았다. 합법적인 선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정기를 맞이해야 했는데, 발정기를 유도하는 약물은 불법이라며 대차게 거절당했다. 합법적인 선이 되지 않는다면, 차선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알아보고 알아본 곳이 지금 눈앞에 배너 하나 없는 말끔한 사이트였다. 어떤 임상실험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오메가용 발정기 유도제가 있지만 아직까지 시판에 내다 팔 허가는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긴장감이 맴도는 문구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를르슈는 이 약을 살 생각이었다. 돈은 충분히 있고, 증거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서운 것은 부작용, 그리고 약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닥친다는 것이다.
임신이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기야 있으면 좋을 것이다. 를르슈는 훌륭하게 육아를 할 자신도 있었다. 스자쿠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서로 조금 헤맬지는 몰라도 누구를 닮던 간에 아기는 사랑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임신보다 앞선 것은 스자쿠에 대한 독점욕이었다.
스자쿠는 지금 누구와도 짝을 맺지 않은 프리 알파였다. 그 말은, 스자쿠를 원하는 오메가가 페로몬으로 그를 유혹한다면 스자쿠도 영락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야 그런 사태를 막고자 스자쿠가 오메가 페로몬에 대한 억제제를 들고다니는 일도 있었다. 억제제는 어지간해서는 독했기 때문에 스자쿠도 그 약을 먹고 나면 한동안 맥을 못추리고 집에서 쉬는 경우가 잦았다. 이제 그런 것은 싫었다. 저를 위해서 스자쿠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아무리 부부라는 법적인 관계는 그저 법적으로 인정될 뿐이다.
운명까지 승복시키는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다.
를르슈는 그렇게 기세 좋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오후 두 시, 스자쿠가 없는 집에서 를르슈는 그 약을 받았다. 제법 두께가 되는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고서 샤워를 했다. 만약에 약이 통해서 히트 사이클이 온다면 를르슈는 스자쿠와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체액 범벅이 되어서 침대에서 뒹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마주 볼 때에는 깨끗한 모습이었으면 했다. 평소보다 길게 샤워를 마치고 나서, 스자쿠의 퇴근 시간인 오후 여섯 시에 약을 삼켰다.
미지근한 물이 알약을 목구멍 뒤로 넘기면서, 를르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이 약이 저에게도 통해서, 스자쿠를 붙잡아둘 수 있기를. 많은 사람들이 남긴 리뷰처럼 갑자기 다리가 풀릴 정도의 열기와 함께 뒤가 젖어들어가는 것을 기대하며 를르슈는 스자쿠를 기다렸다.
스자쿠는 여섯 시 반이 되자 돌아왔고, 를르슈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스자쿠의 가방과 겉옷을 받으면서 그를 맞이했다. 약간 붉어진 얼굴의 아내를 보자 스자쿠는 걱정스러운 듯이 이마를 맞대면서 물었다.
“어디 아파?”
“아, 아니…. 집이 더워서 그런가.”
“그래? 창문 열까?”
“아냐. 스자쿠, 먼저 씻을래? 아니면 저녁 먹을래?”
오메가 페로몬이 나오고 있을까. 그러면 스자쿠가 먼저 눈치챘을 것이다. 를르슈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빨리 뛰기만 하는 심장 소리에 일부러 태연한 척을 했다. 스자쿠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얼굴로 를르슈를 끌어안고서 웃었다.
“아니, 를르슈 먹을래,”
이는 신혼 초에 수 차례나 했던 장난이었다. 스자쿠는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은, 를르슈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를르슈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눌렀다. 스자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알약 하나에 의존하려고 했던 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분노였다.
를르슈?
스자쿠가 부르는 소리에 를르슈는 겨우 웃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주먹을 꽉 쥐면 티가 나지 않았다.
“스자쿠가 씻고 있으면, 갈게.”
평소와 같이 말하면 스자쿠는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바로 욕실로 달려갔다. 를르슈는 떨어지려는 눈물을 참으면서 부엌으로 바로 돌아갔다. 약통을 보자마자 다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지만 한 방울로 그쳤다.
아직 전초전이다. 이거 하나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더 오산 아니야? 를르슈는 이를 악물었다. 욕실로 기세 좋게 들어간 를르슈는 스자쿠의 페니스를 물고 빨면서 최대한 스자쿠의 것을 생각하려고 했다.
너를 좋아해,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너를 완벽하게 내 걸로 만들고 싶어.
스자쿠의 것이 뒤를 찌르면서 들어오는 것에 허리가 풀리고 제 다리로 서있을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왜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는지, 저에게 노팅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스자쿠가 불안한 이유와, 언제까지 이 불안을 안고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걱정으로 쓰러지지도 못한 채로 거울 속의 저와 마주해야 했다.
다음날 새벽, 를르슈는 쓰레기통에 버린 약통을 다시 찾아냈다. 부엌 찬장에 몰래 숨겨두었다. 스자쿠는 부엌을 잘 쓰지 않으니까 여기에 두면 들킬 일은 거의 없었다. 스자쿠와 쓰는 침대에 기어들어가면서, 벗고 있는 스자쿠의 등에 입을 맞추면서 다시끔 결심했다.
노선을 수정하기로 했다.
약을 꾸준히 먹음으로써 내성도 기르고, 약 효과도 볼 수 있을 때까지 복용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를르슈와 같이 먹은 사람은 없었지만 를르슈는 도전하기로 했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병원에 가면 낫겠지. 를르슈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자각하지 않은 채로 하루 세 번, 두 알씩 먹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어떻게든 오메가가 되어서 스자쿠와 짝이 된 다음에, 아이를 낳던지 말던지는 나중에 정할 것이다.
스자쿠를 완벽하게 제 것으로 하고 싶었다.
약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지만, 먹는다고 효과도 나지 않았다. 한 달을 먹고, 약통이 텅 빌 때까지 먹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를르슈는 이를 악물었다. 남들은 이 한 알로 떡을 치다 못해 나중엔 히트 사이클이 안 올 때도 일부러 오게 만들려고 한다는데 왜 나는…! 내가 뭐가 문제란 말이냐.
를르슈는 병원에도 다시 다녀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별 이상도 없었다.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는 오메가도 있다고 하네요. 의사는 속이 뒤집어지는 말이나 늘어놓았고, 를르슈는 한층 더 건강해졌다는 이야기에 지금까지 먹은 게 유도제가 아니라 영양제가 아니었나 허탈해졌다. 건강해질 수 밖에 없긴 했다. 평소보다 스자쿠와 섹스를 많이 했으니 운동도 많이 한 셈이 되고, 그 때문에 밥도 더 잘 챙겨먹었으니 건강한 포인트는 거기서 얻었을 것이다. 만약 영양제 사기를 당한 거라면 가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약통을 정리하고, 다시 그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서 효과가 좋은 약물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약만 효과가 좋다는 법은 없으니까. 어쩌면 다른 약이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순조롭진 않아도, 나아가는 것을 멈춘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를르슈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깊게 한숨을 쉬었다.
를르슈가 두 번째 약을 시켰고, 그 약의 결과도 참담했을 때, 를르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스자쿠를 기다린 몸은 저녁도 건성으로 먹고 그와 섹스를 하기 위해서 다시 안겼다.
침대 위에서 스자쿠가 입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는 것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드럽게 닿기만 하는 입술 끝에서 나오는 사랑한다는 말은 기분이 좋았지만 오늘 만큼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스자쿠와 키스를 할 때 를르슈는 결국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혀를 물고 가볍게 훑는 그의 혀에 휩쓸려서 말이 쏟아졌다. 스자쿠, 나 말이야…. 를르슈의 말은 다 이어지지 않았지만 스자쿠는 갑자기 쏟아진 를르슈의 눈물에 당황하며 그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다 벗은 몸이 식지 않게 이불을 서로 나눠서 덮고 있으면 를르슈는 스자쿠를 끌어안은 채로 숨을 다잡았다.
“왜 히트 사이클이 안 오지….”
“너무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야, 약도, 먹었는데.”
“응?”
약이라는 말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눈이 서서히 매서워지는 것도 모르는 채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약을 계속해서 먹었는데 소용이 없었다는 것, 한 번 바꿔봤지만 오늘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 스자쿠를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어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고 나면 스자쿠는 한숨과 함께 를르슈의 뺨을 잡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혼날 줄은 알고 있었지?”
“너는 내 심정을 몰라…. 네가 어디로 갈지, 어떻게 될지. 나 말고.”
“나를 그렇게 못 믿으면 어떡해?”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아도 섹스는 할 수 있어. 우리는 부부야. 를르슈. 스자쿠의 상냥한 말에 를르슈는 가지고 있던 불안을 하나 둘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섹스만 하는 건 아니지만, 를르슈를 사랑하는 데에는 지장 없잖아. 한껏 아래를 세운 채로 하는 말 치고는 신빙성이 없었지만 스자쿠가 하는 말에 를르슈는 손을 뻗어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섹스를 계속 이어서 하자는 신호였다. 를르슈를 끌어안은 채로, 스자쿠는 그의 어깨에 가볍게 이를 세웠다. 깨무는 것에 새된 소리를 내지르면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약 같은 걸 먹으니까 그래. 그런 거 하지마, 를르슈….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이번에야 말로 그 약들을 다 버려버리기로 결심했다.
이 섹스가 끝나고 일주일 후, 를르슈는 거짓말처럼 히트 사이클을 맞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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