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제로레퀴엠의 흔적에 시달리고 있는 스자쿠 X 기억이 없는 를르슈로 환생물... ? 비슷한 것!
를르슈가 자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무섭다. 그대로 숨을 멈춰버릴 것 같아서, 어렸을 때는 를르슈의 코 밑에 손을 대보거나 아니면 그의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들으려고 가슴팍에 귀를 갖다대거나 했다. 그때마다 잠귀가 밝은 를르슈를 깨워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안심했다. 일어났구나, 하고 내가 반가운듯이 말하면 를르슈는 어이가 없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너 말이야, 잘 자던 사람을 멋대로 깨워놓고는 그렇게 웃으면 다 되는 줄 알아? 자다가 깬 주제에 를르슈는 여전히 말을 잘 했고, 할 말이 없는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자고 있는 너는 무서워.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아.
*
오늘은 나나리가 읽을 동화책을 사러 서점에 왔다. 나나리는 를르슈의 사촌동생으로, 거의 조카 뻘에 가까운 어린애지만, 를르슈는 그 나나리를 너무 좋아한다. 나와의 데이트에서도 나나리의 선물을 고르는 시간을 가질 정도이다. 하지만 나도 나나리를 좋아한다. 그런 데이트도 기꺼이 따를 수 있을 정도로, 나나리는 착한 아이니까.
어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화책 코너에서, 성인 남자 둘은 제법 튀는 조합이었다. 난 어릴 때도 보지 않았던 동화책을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보고 있는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반대로 를르슈는 익숙한 듯이 자기가 자주 봤던 동화책의 출판사 이름을 기억해내고는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를르슈가 쇼핑에 몰두할 때에는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그를 방해할 생각도 없기 때문에, 나는 꽂혀있는 동화책들 중에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집었다. 손에 잡힌 것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 표지에는 눈을 감고 있는 금발의 공주가 그려져 있었다.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동화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옛날, 먼 옛날에… 아름다운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점점 무서워지고, 마녀의 저주를 받은 공주가 물레방아 끝의 바늘에 찔려 그만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왕자가 올 때까지 공주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성에 도사리고 있는 마녀의 저주와 맞서싸울 용감한 왕자의 키스를 받을 때까지.
저주에 걸려 잠들어버린 공주의 그림을 보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속까지 미식거려서 나는 동화책을 덮어버렸다. 가슴이 울렁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아. 기분 나빠. 혼자서 그렇게 심호흡도 하지 못한 채로 굳어있었다.
좁아지는 시야 사이로 를르슈의 모습이 보였다. 책 사이로 를르슈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를르슈는 속눈썹이 길어서, 옆에서 봐도 그 속눈썹이 그림자가 지는 것이 다 보인다. 멀리서도 눈을 내리깔고서 책에 집중하고 있는 를르슈의 모습에서도 그것들이 보였다.
움직이고 있어, 를르슈는 움직이고 있다. 살아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럭저럭 나아지는 것 같았다. 불편했던 속도 편해지고, 가쁘게 올라왔던 호흡도 가라앉고. 손 안에 들고 있던 동화책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지만, 뭐, 그건 나중에 주우면 되니까.
를르슈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를르슈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서는 내 앞으로 왔다.
“스자쿠, 무슨 일 있었어?”
얼굴색이 안 좋은데. 를르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불편한 이야기를 하면 를르슈는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그에게 걱정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를르슈는 손 한 가득 동화책을 들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대신 들어주려고 했다.
“됐어, 떨어진 책이나 주워.”
멍하게 를르슈가 시키는대로 책을 주웠다. 몰랐는데 책이 떨어지면서 한 부분이 찢어진 것 같았다. 너덜너덜한 페이지를 보고서 를르슈가 놀라면서도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미 있는 책을 또 사게 되었다면서 를르슈는 투덜거렸다.
평소라면 나도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았겠지만, 그때만큼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나나리에게 책을 읽어주는 를르슈의 모습은 보기 좋다. 나긋나긋한 말투로 나나리에게 동화책의 문장을 읽어준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나나리는 를르슈의 품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금방 졸아버린다. 공주님이 왕자님의 키스를 받지 못했는데도, 그 뒷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지 잠에 빠져든다.
나는 를르슈가 나나리를 더 편하게 안을 수 있도록 동화책을 받아주었다. 오늘의 책은 백설공주였다. 나나리를 안고서 침대로 향하는 를르슈를 보내고, 나는 혼자서 동화책을 펼쳐보았다. 예쁜 그림으로 가득한 동화책의 내용은 섬뜩한 해피엔딩이었다.
독사과를 먹고서 죽어버린 백설공주는 자는 것처럼 평온해보였다. 그림 속의 백설공주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를르슈가 생각났다. 자고 있는 를르슈는 꼭 백설공주처럼 죽어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무섭다.
“내가 백설공주 같다고?”
그 감상을 돌려서 전했더니 를르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말했다. 를르슈는 나나리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먹을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 두 시. 를르슈는 오늘의 간식으로 먹을 스콘과 달콤한 밀크티를 준비할 생각인 듯 싶었다. 나나리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준비에 한창인 를르슈의 옆에 섰다.
늘상 바라보는 를르슈의 옆모습은 오늘도 보기가 좋다. 를르슈는 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설공주보다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동화책 속에서 순진무구한 백설공주와 를르슈는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 번이고 무슨 일인지 모른다는 얼굴을 한 를르슈는 순진하다.
*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내가 허리를 흔들 때마다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를르슈. 얼굴이 빨갛게 될 때까지도 신음 하나 내지 않는 를르슈의 허리를 붙잡고서 나는 계속 쳐올리고 있었다. 부엌에서 시작된 섹스에 를르슈는 당황하면서도 내 키스를 받아냈고, 그리고 몸을 더듬는 내 손길에 몸까지 열게 되었다. 를르슈의 작은 엉덩이를 벌려서 삽입하고 나서부터는 순식간이었다.
언제 잠에서 깰 지 모르는 나나리를 생각하면 소리를 더 낼 수도 없고, 크게 움직이기도 어렵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 모든 것을 참고 있는 를르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엉망이네. 조용히 속삭이면 를르슈가 고개를 돌렸다. 를르슈의 뒤로 빠진 엉덩이에 살덩이가 맞닿는 소리가 질척하게 울렸다.
빼낸 페니스를 를르슈의 엉덩이골 사이에 문지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정하게 되었다. 아무리 안에다 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나나리가 있는 이상 뒤처리는 빨리 하는 게 좋으니까. 를르슈는 내가 사정한 직후에 내 손바닥에 정액을 토하고 끝이 났다. 내 막무가내로 시작한 섹스였지만 를르슈도 느꼈으니 다행이다. 나는 를르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잠시 숨을 골랐다.
“섹스, 기분 좋다.”
“하…. 이제 됐으니까, 떨어져.”
“응, 잠깐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를르슈의 흥분으로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두근거리다 못해 듣는 내가 벅찰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는 고동에 웃음이 났다. 를르슈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백설공주도 아니다. 왕자나 기사의 키스를 기다려야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내 옆에 있는 내 연인일 뿐이다. 그 단순한 결론에 나는 만족스러워하면서 몸을 떼어냈다. 나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를르슈가 작게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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