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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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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버리기 대작전

DOZI 2021.01.07 16:34 read.350 /

크리스마스 직전에 부랴부랴 사귄 여자친구는 어떻게든 잘 맞는 것 같았다. 손 잡기, 하루 만에 돌파. 키스, 사흘 만에 해결. 섹스… 그것이 문제로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사귄지 일주일 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에서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섹스는 어떻게 하는 거지. 를르슈의 모든 관심사는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키스한 것이 고작이었다. 여자친구는 를르슈가 첫 남자친구인 모양인지 키스하는 중간마다 계속 떠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까지의 분위기 주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그녀는 를르슈에 대해서 환상을 품고 있다.

 

‘를르슈 군은 경험이 많을 테지만… 나는 를르슈 군이 처음이니까.’

 

여자친구는 떨리는 첫 키스를 마친 감상으로 그렇게 말했다. 내 첫 키스, 를르슈 군이라 기뻐. 그런 순진무구한 여자친구에게 무리한 걸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여자친구 사귄 경험이라면 많다. 하지만 섹스에 대한 경험이라면 전무이다. 어떻게 호텔까지 갈 것이며 그녀와 어떻게 해낼 것인가. 삽입은 어떻게 하며… 를르슈는 본격적인 단계에 돌입하기 직전에 생각을 멈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벌건 대낮부터 이런 망측한 생각은 좋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를르슈의 반응에 살짝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귀엽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귀여운 것 같다. 첫 번째는 부동의 1위 여동생 나나리다. 이건 양보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절대 명제이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이런 를르슈의 시스터 컴플렉스마저 ‘믿음직스러운 오빠라서 좋은걸’ 이라고 말해주는 착한 사람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람과 섹스하고 말겠어. 를르슈는 의지를 다지면서 삐져있는 그녀에게 파르페 한 숟갈을 내밀었다. 그러면 그녀는 웃으면서 를르슈에게도 한 숟갈을 나눠먹자고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예상 그대로의 반응을 보여주었고, 오늘의 데이트도 성공적이었다.

다만 여전히 섹스하지는 못했다. 

 

“협력해라, 반역조.”

“를르슈의 심정은 알겠는데 대체로 그 반역조라는 건 뭐야?”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거야. 아무튼 협력해.”

“순순히 피자를 준다고 할 때부터 이상했어. 나는 협력하지 않는다, 동정.”

 

를르슈가 동정인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그 중 나이가 가까운 것은 연령 불명의 C.C.와 동갑내기 스자쿠가 고작이었다. 를르슈는 데이트를 끝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피자 세 판을 시켰다. 데이트 중에 돈 쓸 구석이 많아 큰 지출이었지만,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겠다고 각오하고 산 것이었다. 

옆집의 스자쿠와 아래층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에 한창인 C.C.를 방으로 불러낸 를르슈는 자신의 욕망을 토로했다. 

 

“너네는 경험이 많잖아.”

 

그 말에 스자쿠는 얼굴이 붉어졌고 C.C.는 어이가 없는듯 웃었다. 그래, 조롱할 테면 조롱해라. 하지만 조롱하다보면 를르슈가 불쌍해서 도와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를르슈 나이 스물 하나, 그 얼굴과 그 몸매로 아직까지 동정인 것은 누가 봐도 불쌍하지 않은가.

 

“두루뭉술한 팁을 달라는 게 아니야. 구체적으로 단계를 설명해.”

“으음…. 그렇게까지 동정을 버리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 여자친구랑 어떻게든 하고 싶은 거야?”

 

스자쿠는 호의적이다. 이놈은 사람이 착해서 편하다. 를르슈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둘 다. 동정도 버리고 싶고, 여자친구랑 하고도 싶어.”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아니지, 쿠루루기 스자쿠. 이 녀석은 지금 여자친구한테 ‘경험이 있다’는 설정으로 잡혀있다고.”

“동정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아?”

“하늘 같은 자존심이 허락하겠어?”

“C.C.의 말 그대로다. 자존심 때문에 동정이라고 말 못하겠어.”

 

오늘의 를르슈는 정공법을 쓸 생각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속마음을 토로하면 이번엔 C.C.가 놀란 눈으로 를르슈를 쳐다보았다. 

 

“음……. 그럼 동정만 먼저 버리고 나중에 여자친구랑 하는 건?”

“동정만 따로 버리는 방법이 있어?”

“원나잇이라던가, 아니면 업소를 간다거나? 업소는 나도 안 가봐서 모르지만.”

 

스자쿠의 해맑은 얼굴에서 ‘업소’라는 말에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를르슈의 표정에서 결벽을 읽어낸 스자쿠는 으음, 하고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C.C.는 피자 박스의 포장을 풀면서 말했다.

 

“그래, 업소에 가봐. 동정이라고 하면 테크닉 쌓는 법도 알려줄 거야.”

“차라리 원나잇이 낫겠어. 업소는 생리적으로 무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돈이 없어.”

“돈도 없는데 섹스만 생각하다니, 저질인 남자군.”

“호텔 갈 돈만 남겨두고 다 쓰고 있단 말이다!”

 

한 번 섹스하고 나면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섹스할 테니까 호텔 갈 돈은 충분해! 결국 참지 못한 를르슈가 폭발하듯 말하자 피자를 한 조각씩 물고 있는 C.C.와 스자쿠는 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쩝쩝거리며 피자를 먹는 소리만 들리는 와중에 C.C.가 말했다.

 

“어떻게 섹스하고 싶은건데?”

“그거부터 감이 안 잡혀. 그러니까 진지하게 어드바이스 해.”

“음…. 쿠루루기 스자쿠, 너는 동정을 어떻게 버렸지?”

“나? 글쎄. 아마… 중학생 때 과외 선생님이 해줬지? 여대생 누나였어.”

“정석적이군.”

“중학생?! 그게 정석이야?!”

 

를르슈는 기함했다. 스자쿠는 붉어진 볼을 긁적이며 ‘그때 기분 좋은 거 알아서 그 이후로도 계속 많이 했어.’ 같은 말이나 지껄였다.

 

“C.C.는?”

“노코멘트다.”

“나는 말했는데!”

“사실 너도 경험이 없는 거 아니야?”

 

를르슈는 의심에 찬 눈으로 C.C.를 바라보았다. C.C.는 콜라를 종이컵에 따라 마시면서 대꾸했다.

 

“나도 해봤으니까 입맛이 있고 취향이 있는거란다, 동정 녀석아.”

“근데 C.C.가 경험이 없으면 어때서? 어차피 를르슈는 처녀를 버리는 게 아니라 동정을 버리고 싶은 거잖아.”

“오랜만에 맞는 소리를 하는군, 쿠루루기 스자쿠.”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스자쿠는 피자 두 조각째를 먹으면서 말했다. 를르슈도 한 조각의 피자를 들고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호텔에서 하는 거라면, 대부분 그거 아니야? 호텔에서 저녁 먹고, 술에 취하면 쉬었다 가자고 하고서 호텔에 들어가서— 그리고 하는 거지.”

“그리고, 다음이 중요해. 어떻게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되는데? 뭘 해야 되고?”

“너 그러니까 진짜 동정 같다, 를르슈.”

“조용히 해! 예시를 들어봐, 스자쿠.”

“예, 예시라니. 어떻게? 그냥 분위기로 하는 거잖아.”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둘이서 상황극이라도 해봐. C.C.가 여자친구고 스자쿠가 남자친구다.”

“갑자기?”

“피자 사줬잖아.”

 

를르슈는 원형의 테이블의 한 구석으로 가서 앉으며 상황극에 대한 감상 준비를 끝냈다. 스자쿠와 C.C.는 남은 피자 조각을 해치우며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선… 우선 어깨를 감싸던가? 스자쿠의 멍청한 소리에 C.C.가 어정쩡하게 그의 어깨에 기댔다.

 

“아, 취한다—.”

“그럼 위에 올라가서 쉴까?”

“위에? 방 잡았어?”

“응.”

“돈도 없으면서.”

“그래도 오늘은 특별하니까 힘내봤어.”

“정말? 너무 설렌다.”

“둘 다 그만. 역겹다.”

 

C.C.와 스자쿠의 상황극은 유일한 관객인 를르슈에게 역겹다는 감상만 남긴 채로 끝이 났다. 어색함에 머리를 쓱쓱 쓸어넘긴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말했다.

 

“솔직히 이건 아니었어. 를르슈 여자친구한테 맞춰야지, 이래서야 C.C.와 나의 경우 밖에 안 된다고!”

“비위 상한다, 쿠루루기 스자쿠. 아, 를르슈. 이건 어때? 네가 네 여자친구 흉내를 내고서 우리에게 전수 받는 거다.”

“그게 어떻게 돼?”

“우리가 네 여자친구를 어떻게 해보는 걸 보고서, 그걸 그대로 여자친구한테 써먹으면 되잖아.”

“말이 좀 이상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그럼 내가 먼저 해볼게.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니까.

C.C.의 자신만만한 말에 를르슈는 우선 그녀의 옆으로 가 앉았다. 다소곳하게 앉는 를르슈의 자세에 C.C.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갈까, 를르슈?”

“그럴까? 오늘 데이트 재미있었어.”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운걸.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어떻게?”

“호텔에서 쉬었다 가자. 아무것도 안 할게.”

“정말?”

“그럼.”

“좋아, 그럼……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놓고서 섹스하면 강간이잖아!”

“안 그런 분위기로 만들어 가야지! 이 동정, 그러니까 동정인거잖아!”

 

스자쿠는 C.C.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기세로 달려드는 를르슈를 떼어놓았다.

 

“그래도 C.C.의 방법이 나쁜 건 아니야. 그렇게 해서 데리고 올라가서, 분위기로 만들어가는 건 맞잖아.”

“그, 그런건가?”

“그럼 여기서부턴 내가 할게. 남자의 역할은 또 남자가 아는 법이니까.”

“믿고 맡긴다, 스자쿠.”

 

자, 호텔 방에 들어왔습니다—. C.C.의 건조한 나레이션에 스자쿠와 를르슈는 어색하게 맞붙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옆에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그녀라면 아마 이럴 것이다, 하는 것이 를르슈의 생각이었다.

 

“왜 그렇게 떨어져 앉아, 를르슈?”

“뭔가 긴장 되어서.”

“긴장 할 거 없어.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잖아?”

“정말이야?”

“응. 나 를르슈한테 거짓말은 안 해.”

 

확실히 남자인 스자쿠는 C.C.와 뭔가 달랐다. 를르슈는 그의 말에 안심한 여자친구가 되어 옆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나도 를르슈가 옆에 있으니까 두근두근하네.”

“그, 그게 무슨….”

“조금 야한 짓 하고 싶어진다는 이야기?”

“뭐?”

“그래도 를르슈는 처음이니까, 나 참을 수 있어.”

“…차, 참는다고 하니까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그럼 나도 나쁜 사람 될까? 그러면 공평하겠지?”

“스, 스자쿠.”

“키스 해도 돼?”

“아아….”

 

그렇게 다가오는 스자쿠의 얼굴에 를르슈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버티고만 있었다. 를르슈는 서서히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귓가에서 삐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긴장에 떨고 있었을 때,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렸다. C.C.였다.

 

“정말 동정과 비교가 안되는데? 쿠루루기 스자쿠…. 다시 봤어.”

“헤헤, 고마워. 를르슈, 어때? 참고가 됐어?”

“…아, 아아. 응. 차, 참고, 됐다.”

“아, 진짜로 두근두근해버렸다. 를르슈가 정말로 여자애 같아서 그대로 키스할 뻔 했어.”

“위험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C.C.와 스자쿠가 시시덕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를르슈는 붉어진 얼굴을 겨우 식히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피자를 먹고 있는데도 약간 체할 것 같이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왔다. 를르슈는 얹힐 것 같은 속을 달래면서 콜라를 마셨다. 스자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던 제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지만 티내면 더 어색해지는 것을 알고 있다.

리서치는 이만하면 됐고, 이제 실전이다. 를르슈는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