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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감금강간 연상연하의 엔딩

DOZI 2025.01.01 13:10 read.93 /

* 균님 커미션 *

납치감금강간 연상연하의 엔딩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것이 쿠루루기 스자쿠가 원하는 엔딩이었다. 그러나 그런 엔딩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그 아무리 사랑의 단꿈에 젖은 스자쿠라고 해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욕실에서 나온 스자쿠는 자신의 셔츠 한 장과 속옷만 입힌 를르슈를 끌어안은 채로 침실로 데려갔다. 두 번째에는 약 기운도 다 빠졌지만 욕실의 열기 때문에 를르슈가 버티지 못한 것 같았다. 를르슈를 침대에 뉘여주고서 스자쿠는 부엌으로 가서 이온음료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자신의 입에 머금은 이온음료를 를르슈의 입술로 넘겨주면서 그가 그것을 삼키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몇번이고 반복했다. 도중에 혀를 섞고 싶긴 했으나, 고작 두 번의 섹스로 기진맥진해지는 를르슈에게는 힘든 일인 것 같아서 스자쿠는 애써 참았다.

이윽고 를르슈가 눈을 떴을 때, 스자쿠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앞머리를 쓸어넘겨주고 있었다. 아직 그 열기에 취해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며 촉촉한 머릿결 같은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걱정이었다.

“괜찮아, 를르슈?”

를르슈는 자신의 앞머리를 넘겨주는 손길에 가만히 멈춰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냉정하게 머리를 굴려도 멍한 머리가 따라주질 않았다. 기분이 좋아서 스자쿠의 품에 매달린 채로 사정했던 두 번째 섹스, 를르슈를 옛날부터 좋아했다고 말했던 스자쿠의 목소리, 다시 돌아온 침실.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를르슈는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시선으로 자신을 향하는 스자쿠에게 대답 대신에 자신을 만지고 있는 스자쿠의 손을 내쳤다.

“괜찮은 거 같네. 있잖아, 를르슈. 괜찮다면 전화 한 통 해주지 않을래? 안 그러면 를르슈도, 나도 꽤 위험한 처지거든.”

“…무슨 전화?”

“나나리한테 전화 좀 걸어줄래?”

스자쿠의 입에서 떨어지는 그 말에 를르슈는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까지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던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되는 기백이었다. 아마 나나리를 진짜 걱정해서 그런 거겠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를르슈는 스자쿠가 내미는 휴대폰을 낚아챘다. 를르슈가 손에 쥔 휴대폰은 다른 것도 아닌 를르슈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섹스 이후에 자기 물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를르슈는 불안한 눈으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걱정할 거 없어. 입고 왔던 옷도 제대로 정리해뒀으니까. 날이 늦었으니까 나나리한테 전화해줄래? 나나리는 연락도 없이 늦는 네 전화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날 집으로 돌려보내주면 되잖아.”

“여기가 네 집이 될 텐데 무슨 소리야?”

“……당신 이거 범죄야, 알고 있어?”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범죄가 되겠지만… 를르슈, 우리는 궁합이 좋은 섹스를 두 번이나 한 사이야. 이제 와서 범죄라던가, 그런 못된 말은 안하는 게 좋겠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뭐, 그래도 좋아. 난 이래 보여도 총리 아들이고, 너는 브리타니아에서 황위 계승 순위가 떨어지는 황자라고 하더라도 황족, 우리 사이의 일 때문에 이대로 전쟁을 해도 좋아. 그런대 나나리한테는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어? 네가 나한테 강간 당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 넌 그 아이한테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은데.”

스자쿠의 마지막 말은 사실이었다. 를르슈는 이를 악물고서 스자쿠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의 퇴로는 보이지 않았다. 스자쿠의 말대로 나나리에게 전화를 걸고 안전함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를르슈는 전화를 할 테니 나가달라는 말을 했지만, 스자쿠는 한결 풀린 얼굴로 웃으면서 그것을 거절했다.

“내가 나나리에게 이상한 소리라도 할까봐 그래?”

“아니, 똑똑한 너라면 나나리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 다만 난 네 알리바이를 보다 확실하게 만들어주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건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돼.”

“아니, 이건 내 의무야. 전화 걸어, 를르슈. 더 지체했다가는 정말 늦으니까.”

를르슈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50분. 람페르지 남매의 저녁 식사 시간에는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스자쿠의 말대로 전화를 걸었다. 나나리는 세 번째 콜이 이어지기 전에 바로 받았다.

‘여보세요, 오라버니? 어디신가요?’

“아, 나나리. 늦게 전화해서 미안. 지금까지 계속 실내에서 있다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네.”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세요? 계속해서 전화도 안 받으시고 연락도 없으시고….’

“미안. 그래도 걱정하지 마. 그… 곧 돌아갈 거니까.”

이 납치, 감금, 강간을 저지른 범죄자가 자신을 언제 놔줄지 모르기 때문에 를르슈는 애매하게 답을 했다. 하지만 나나리는 그 애매함을 짚고서 물었다. 언제요? 언제쯤 돌아오시나요? 혹시 위험한 곳에 계신 건 아니죠? 나나리의 쏟아지는 예리한 질문들에 를르슈가 대답을 못하고 있는 중에, 스자쿠가 굳어있는 를르슈의 어깨를 감싸며 그의 휴대폰을 빼내어 받았다.

“여보세요, 나나리? 나는 지난 번에 서점에서 만났던 쿠루루기 씨인데… 기억 하니?”

‘쿠루루기 씨? 네, 기억하고 있어요.’

“응, 다른 게 아니라 를르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잠깐 불러서 회의 좀 했더니 이 시간이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우리집에서 재우고, 내일 아침에 를르슈를 클럽하우스까지 데려다 줄게.”

‘그… 오라버니는 괜찮으신 거죠?’

“를르슈? 를르슈가 뭔가 불편할 게 있을까? 아, 설마 를르슈는 집밖에서 잠을 잘 못자는 편이야? 그럼 지금 당장 돌려보내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속으로 혀를 찼다. 거짓말을 뻔뻔하게 내뱉는 이 못된 어른은 를르슈의 어깨를 감싼 손을 둥글게 문지르면서 자신의 품 안으로 이끌었다. 를르슈는 자신을 품으려고 하는 그 품에서 뻣뻣하게 굳은 채로 빠져나와 스자쿠가 전화기를 건네 주는 것에 그것을 받아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의 마무리를 지었다.

“괜찮아요, 쿠루루기 씨. 나나리, 이제 전화 끊을게.”

‘아, 네…. 오라버니, 내일 점심 꼭 같이 먹어요.’

“물론이지, 나나리. 잘 자, 항상 사랑한다.”

‘네, 저도요.’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휴대폰을 뻬앗으며 협탁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다.

“꽤나 사랑이 가득한 전화였어. 조금 질투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내일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계속 이어서 할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스자쿠가 덮쳐오는 것에 를르슈는 등허리에 빳빳하게 힘을 주었다.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더라도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를르슈의 완고한 태도에 스자쿠는 소리내어 웃더니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를르슈는 두 번씩이나 쓰러졌는데 이어서 하면 힘들겠지? 힘든 를르슈 보는 게 더 싫으니까 오늘은 참을게. 대신 다음에는 최소 세 번 할 수 있게 협조해줘.”

“협조?!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럼 굿 나잇 키스 할까?”

스자쿠는 크게 소리를 내려는 를르슈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틀어 막았다. 혀를 진득하게 얽는 그 느낌에 를르슈가 신음하며 고개를 내저으려고 해도, 스자쿠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더욱 깊게 입맞출 뿐이었다. 겨우 떨어진 입술 끝에서 호흡을 고르고 있으면 숨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스자쿠가 를르슈가 다 삼키지 못한 타액을 닦아주었다.

“잘 자, 를르슈.”

스자쿠는 를르슈를 정말 재울 생각인지 침실의 조명을 모두 끄고 난 뒤에 다시 를르슈의 곁으로 다가와 누웠다. 를르슈는 일부러 그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지만, 스자쿠가 그 등마저 끌어안음으로써 모든 것이 무쓸모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져서, 를르슈는 어째서인지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몸에 잔뜩 힘을 주고 긴장한 채로 있으면 스자쿠의 손이 아랫배를 살살 문질러왔다. 뜨겁고 단단한 손이 를르슈의 몸을 옷자락 위로 더듬는 것에 알 수 없는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를르슈는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는 스자쿠의 손을 붙잡았다.

“자려는 사람한테 뭐하는 짓이야….”

“잠이 안 오는 거 같아서. 한 발 빼줄까 싶었지.”

“필요없어. 손 떼. 떨어져.”

“후후, 알았어.”

스자쿠는 를르슈가 원하는대로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순순히 물러나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아예 꺼지라고 할 걸, 하고 후회했다. 스자쿠가 떨어지고 나서도 몸은 미묘하게도 남아있는 열감 때문에 불쾌했다. 빨리 식어버려. 무엇에 달아오른 건지 알 수 없어서 더 기분이 나쁜 를르슈는 이불을 그러쥐고서 심호흡을 했다. 

잠이 올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를르슈는 얼마 가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스자쿠는 해본 적 없는 섹스에 대한 피로로 뻗어버린 것처럼 자고 있는 를르슈를 자신을 향하게 하고서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잠에 빠진 를르슈의 입술부터 뺨을 쓰다듬어 주면 를르슈는 그 손길에 기대듯이 얼굴을 부벼왔다.

귀여운 를르슈. 너도 날 좋아하게 될 거야. 그럼 꿈에서 만나.

 

* * *

 

다음날 늦은 아침이 다 되어서야 를르슈는 눈을 뜰 수 있었다. 뻐근한 몸을 움츠리면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면 스자쿠가 를르슈의 옷을 돌려주었다. 거의 하루 만에 다시 입는 자신의 옷은 어제와 다른 느낌이었다. 를르슈가 옷을 주섬주섬 입는 모습을 본 스자쿠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간단하게 브런치라도 하고 갈래? 맛있는 가게 알거든.”

“필요없어, 집에 갈 거야.”

“그래? 알았어.”

매정한 거절을 당했음에도 스자쿠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를르슈를 처음 이곳으로 데려왔을 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까지 안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함이 거짓말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열리는 현관문, 하루 만에 되찾은 자유에 대해서 를르슈가 감동에 젖으려고 할 때였다.

“그럼 를르슈, 다음엔 언제 올래?”

“다음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여기에 또 올 거 같아?”

“못 올 건 없잖아.”

스자쿠는 웃으면서 타고 왔던 VIP 전용 엘리베이터의 가장 아래층 버튼을 눌렀다. 정말 딴길로 안 새고 집에 바로 데려다줄게. 나나리가 오래 기다리면 마음이 안 좋잖아. 를르슈는 또 다시 두 사람이 갇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을 죽여야만 했다. 저 변태 강간범이 언제 또 뒤틀려서… 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긴장하게 되었다. 를르슈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자쿠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동차 키를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를르슈는 자신이 들어왔던 주차장이 얼마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섣불리 도망치려고 한다고 한들, 보다 더 안전한 곳에서 도망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보면 스자쿠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다시 그의 차에 탔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를 타고서 거리로 나왔으며, 스자쿠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보면 어느새 클럽하우스 앞까지 다다랐다. 도착하자마자 금방이라도 차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는 를르슈 쪽의 차문을 잠그면서, 스자쿠가 말했다.

“그럼 를르슈, 잘 들어가고. 연락할게.”

“하지 마.”

“응, 나나리한테도 안부 인사 전해주고.”

당장 꺼지라는 말을 하려고 할 때, 스자쿠는 를르슈 쪽의 잠금을 풀어주었다. 딸깍,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에 를르슈가 어이 없어하며 스자쿠를 쳐다보았다.

“굿 바이 키스라도 할까? 나나리가 볼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꺼져!”

를르슈가 기어이 싫은 소리를 하게 만드는 데에 이 남자는 도가 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를르슈는 조금 떨리는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면서 억지로 반듯하게 걸으며 클럽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스자쿠가 타고 있었던 차 쪽을 힐끔 쳐다보면 스자쿠는 어느새 유유자적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온몸이 지끈거리는 통증이 은은하게 감도는 것이,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었고, 믿을 수 없지만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이런 현실감 같은 것은 원치 않았는데. 를르슈는 혀를 찼다.

 

* * *

 

그 이후로 연락을 하겠다던 스자쿠는 잠잠한 듯 하다가도, 를르슈가 모든 것을 잊을 만할 때 쯤, 그럴 때면 매주 금요일마다 전화를 걸어왔다.

첫 번째 금요일. 를르슈가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지끈거리는 근육통은 어느새 익숙해질 만큼의 가벼운 둔통으로 남았고, 잘하면 그날의 기억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읽히지 않은 책이나 지루한 인터넷 체스 게임에도 넌더리가 나있을 때, 를르슈는 자신의 휴대폰에 뜨는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전화번호를 보고서 몸을 굳혔다.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를르슈는 휴대폰을 방에 두고서 그대로 1층으로 내려왔다. 밖에서 막 돌아온 나나리가 하얗게 질린 를르슈의 얼굴을 보고서 걱정을 했다. 그제서야 를르슈는 자신이 숨조차 제대로 쉬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금요일. 를르슈는 나나리와 외출을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감에 따라서 나나리의 고등부 입시 기초를 한 번 더 살피는 일도 끝이 났고, 다시 새로운 문제집을 사러 조금 먼 교외의 서점으로 향했다. 가까웠던 그 서점은 쿠루루기 스자쿠와 만났던 그 서점이었기 때문에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나리는 평소 가던 서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자는 오라버니가 의아했지만, ‘오라버니랑 멀리 나가는 것도 즐거운 데이트에요.’라고 기특한 말을 해주었다. 서점에서 문제집을 고르고 나서 각자 자유로운 독서 탐방을 하고 있었을 때, 스자쿠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연히 받지 않았다. 를르슈는 ‘쿠루루기 스자쿠’라고 부재중 통화 목록에 이름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세 번째 금요일. 를르슈는 스자쿠의 번호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겁쟁이라고 스스로를 욕하고 있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자기혐오에 시달리면서 스자쿠의 번호를 차단하려고 했지만, 그의 이름이 뜨는 것만으로도 밀려드는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를르슈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무력함에 허탈해진 를르슈는 또 스자쿠의 이름을 띄우며 울리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받고 싶지 않아, 도망치고 싶어, 싫어. 그런 감정들이 몰아쳐서 를르슈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를르슈의 여름방학은 끝이 났다. 스자쿠는 여름방학이 끝난 그 이후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이대로 없었던 일이 되었으면. 를르슈는 쉬이 잠 들지 못하는 밤이면 자신을 쓰다듬었던 스자쿠의 손길을 떠올리는 것이 싫었다. 완벽하게 잊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흔적이 희미해졌으면 했다. 그러나 를르슈의 밤은 언제나 그 뜨거운 손 안에서 토정했던 기억이 갈수록 또렷해졌다. 를르슈의 어딘가가 무너져 한계에 달했을 때, 그때 스자쿠는 전화 대신에 직접 그 모습을 드러냈다.

 

* * *

 

교문 앞에 서있는 하얀 자동차를 보고서, 를르슈는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저 차는 이전에 를르슈를 태우고 다녔던 스자쿠의 차와 똑같은 모델이었다. 설마 그 남자가 뻔뻔하게 교문 앞에서 기다릴 리가…. 를르슈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교문을 넘어서려고 했다. 그러면 자동차 문이 열리면서 그 남자, 쿠루루기 스자쿠가 걸어나왔다.

“안녕, 를르슈. 오랜만이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응? 무슨 소리야?”

“됐어. 비켜. 사람 앞길 막지 말고.”

를르슈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스자쿠를 비껴 나가려고 했지만, 스자쿠는 웃으면서 를르슈의 팔을 단단하게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를르슈는 앞으로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만큼의 힘이었다. 스자쿠가 다가오는 것에 를르슈가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아, 를르슈?”

“무슨 이야기? 네 진심 어린 사과 같은 거?”

“사과? 아하하, 무슨 소리야. 그런 걸 할 리가 없잖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해야지.”

를르슈는 사과할 일이 없다고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스자쿠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스자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나 재미있는 영상을 가지고 있거든. 여기에 를르슈도 나오는 건데 같이 볼래?”

비겁한 자식. 더럽고 치졸한 놈. 를르슈는 그가 열어주는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안전벨트까지 메어주고서 안심한 듯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기어를 조작해서 애쉬포드 학원을 빠져나가는 운전은 여전히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를르슈는 학교가 제법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비겁하게 영상을 찍어?”

“아, 영상 보여준다고 했지. 자, 내 휴대폰이야. 비밀번호는 1205. 갤러리에 들어가서 제일 첫 번째 영상 보면 돼.”

“…….”

스자쿠의 휴대폰 비밀번호가 1205, 바로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에 가볍게 소름이 돋았지만 ‘재미있는 영상’을 위해서 를르슈는 넘어가기로 했다. 휴대폰의 기본 배경화면을 넘기고 갤러리에 들어가 몇 없는 사진과 영상을 스크롤해서 제일 오래된 날짜의 영상을 터치했다.

영상은 7초짜리 영상이었다. 꽤 오래된 브리타니아 제국 뉴스를 잘라서 편집한 클립이었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7초동안 나오는 것은 어린 를르슈의 모습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브리타니아의 황자였던 를르슈가 있었다. 어머니 마리안느가 살아있었을 때, 어린 를르슈가 공식석상에 나섰던 유일한 때의 영상이었다. 를르슈는 그 7초를 몇번이고 보다가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재미있지? 를르슈 영상은 구하기 힘들어서 그거 뿐이야.”

스자쿠는 눈을 맞추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를르슈는 그렇게 말하는 스자쿠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설마 고작 이것 때문에 자신이 원수의 자동차에 기꺼이 탔다는 것이 화가 나서 무어라 말하려고 할 때였다. 스자쿠는 운전을 멈추었다.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애쉬포드 학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저렴한 거 치고는 여기 스위트 룸도 나쁘지 않아서 좋더라. 스자쿠는 호텔의 감상을 말하면서 를르슈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를르슈가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할 때, 스자쿠는 문을 잠갔다. 마치 를르슈가 달아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스자쿠는 빠르게 움직였다.

“오늘은 영상 보여주려고 온 거 아니야. 카구야의 이야기를 하려고 일부러 여기를 잡은 건데…. 서로의 집은 싫을 거 아니야?”

그럴 싸하게 카구야의 이름이 나와도 를르슈는 의심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스자쿠는 조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를르슈네 집에 가서 이야기 할까? 오랜만에 나나리한테 인사도 하고.”

그것은 싫었다. 순수한 나나리에게 저 변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를르슈는 싫지만 자신이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금 전보다 누그러진 태도로, 그러나 스자쿠를 노려보는 시선은 여전한 채인 를르슈를 보면서 스자쿠는 그것에도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띄우며 문을 열어주었다.

호텔의 입구와 로비를 지나서 스자쿠가 잡아두었다는 스위트 룸에 들어섰다. 스자쿠의 집과 비슷한 분위기의 스위트 룸은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를르슈가 굳은 채로 서있는 것에 스자쿠는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뭐라도 마실래? 아, 아님 뭐 먹을래? 룸 서비스?”

“됐어. 빨리 이야기나 해.”

“급하기는.”

스자쿠는 를르슈의 옆에 앉았다. 많은 자리 중에서 왜 하필 자신이 옆자리에 앉았는지 를르슈가 그것에 대해서 지적하려고 할 때,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들이밀어진 화면 속에는 나나리 또래의 여자아이가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이 여자애가 스메라기 카구야구나. 눈앞의 스자쿠와 어딘가 닮은 느낌이 드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어때?”

“귀엽…네.”

“를르슈 취향이야?”

“그럴 리가 없지. 애초에 나나리랑 동갑인 어린 여자애를 상대로….”

“그렇지? 를르슈가 취향이라고 했으면 좀 위험했어. 카구야까지 질투하게 되면 나 너무 속 좁아 보이잖아.”

스자쿠는 그래도 를르슈가 카구야에게 신경 쓰는 것이 별로였는지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고서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 시선이 서로 닿고 나면 괜히 피하게 되는 것은 를르슈였다. 고개를 돌리는 를르슈의 뺨에 손을 뻗은 스자쿠는 다시 눈을 맞추게 만들면서 입을 열었다.

“를르슈, 왜 전화 안 받았어?”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한 거 가지고.”

“그걸 세고 있었어? 조금 감동이야.”

“…….”

를르슈는 자신과 눈을 깊게 맞추면서 좀 더 가까워지는 스자쿠를 밀어내듯이 질문했다.

“이야기는 저게 끝이야?”

“아니, 더 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다른 사람 이야기만 하는 건 싫어서.”

“…뭐?”

“나중에 애쉬포드 쪽에 서류 보내놓을게.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있거든.”

스자쿠는 붙잡은 를르슈의 얼굴이 더 멀어질 틈을 주지 않은 채로 바로 입을 맞추었다. 거의 한 달 만에 하는 깊은 키스는 낯설면서도 입가에 닿는 미지근한 숨결이 익숙하게 느껴져서 를르슈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스자쿠가 웃는 것이 느껴져서 뒤늦게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스자쿠는 아예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는 것으로 를르슈의 반항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스자쿠가 를르슈의 호흡을 기다려주는 키스의 중간중간마다 를르슈는 벗어날 타이밍을 놓쳤다. 아니, 키스가 깊어질수록 를르슈는 자신이 스자쿠에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칠어진 숨을 한창 고르고 있을 때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이 허리를 감싸다가 어느새 느슨해진 셔츠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 손 빼, 라고 말하려고 할 때 갑자기 따끔한 통증이 아랫배에서 느껴졌다.

“좀 따끔하지? 괜찮아, 다 들어갔으니까.”

스자쿠는 를르슈의 앞에서 작은 주사기를 흔들어보이면서 웃었다. 를르슈는 입안에 퍼지는 쓴맛과 동시에 흐려지는 시야에 눈을 부릅뜨려고 했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를르슈의 시선에 스자쿠는 정말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렇지만 를르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 * *

 

눈을 떴다, 라는 느낌은 있지만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를르슈는 설마 눈에 뭔가가 씌워진 게 아닐까 싶어서 손을 뻗어 그것을 치워보려고 했지만, 손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위로 꽉 묶여 있는 듯한 자세에 를르슈는 비교적 자유로운 다리를 흔들어보이면서 자신이 있는 곳을 어디인지 가늠해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쿠루루기 스자쿠와… 키스를 하다가 또 약을 맞아서, 그리고, 그리고 기억이 안 나.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발끝을 몇번 바닥으로 튕기고 나면 돌아오는 탄성으로 보아, 를르슈는 어딘가의 침대에 묶여있는 것 같았다.

—어떡하지,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거지.

침착하려고 해도 초조함이 계속 불어나서 를르슈는 소리를 내는 것도 망설여졌다. 그런 때에, 갑자기 를르슈 쪽으로 어떤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인기척이었다.

“쿠…루루기 스자쿠? 당신이야?”

를르슈는 자신을 이렇게 묶어놓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를르슈의 근처로 다가온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대답없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인기척은 공포나 다름없었다. 를르슈는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최대한 있는 힘껏 반항하려고 했지만, 시야를 가리는 어둠 너머에 있는 그 상대는 를르슈의 다리를 바로 붙잡으며 그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찰칵, 하고 버클이 풀리는 소리와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를르슈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골반을 짓누르며 모든 것을 묵살하는 상대에게 를르슈는 애원했다.

“아, 싫어, 벗기지 마…!”

속옷까지 한 번에 내려버리는 그 손길은 뜨거웠는지 차가웠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지금, 촉각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할 텐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포로 아무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아래가 다 벗겨진 를르슈는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파고든 상대를 느꼈다. 뭘 하려고 하는지 싫어도 알 수 있었다. 긴장한 를르슈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던 상대는 옷을 벗는 듯, 거칠게 옷을 바닥으로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가 몸을 한 번 겹쳐오면 아직 옷을 입고 있는 를르슈의 상체 쪽으로는 덮쳐오는 그의 체온이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체온이 차가운지, 미지근한지, 뜨거운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를르슈는 어떻게든 지금의 상대가 쿠루루기 스자쿠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드러난 를르슈의 축 늘어진 페니스, 그것을 감싸는 손은 차가운 젤로 젖어있었다. 그래서 그 손이 알고 있는 스자쿠의 뜨거운 손이 아니라서 무서웠다. 서지 않는 를르슈의 페니스에는 크게 감흥이 없는 것인지, 상대는 를르슈의 회음부를 가볍게 젤로 적신 뒤 애널로 손을 뻗었다. 정말 하려는 것이다.

“싫어, 들어오지 마, 만지지 마…!”

그러나 상대는 숨소리 하나 내쉬는 법 없이 를르슈의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젤에 젖은 손가락이 안쪽을 후벼파는 듯한 행동에는 스자쿠가 했었을 때의 그런 쾌락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길들이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넓히는, 들쑤시는 그런 감각에 를르슈는 스자쿠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 스자쿠지? 쿠루루기, 스자쿠라고, 말해….”

위로 붙들린 팔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를르슈는 제 뺨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도 그가 스자쿠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손가락으로 넓히던 것으로 모자라서 상대는 아예 젤을 통째로 를르슈의 안에 들이부었다. 뱃속을 싸늘하게 식히는 그 젤이 차오르면서 쿨쩍거리는 소리가 아랫구멍에서 질척거리며 나는 것에 를르슈는 엉엉 울었다.

“스자쿠… 라고 말해. 읏, 무섭단 말이야. 싫어, 그만, 멈, 춰….”

를르슈의 울음 섞인 애원에도 상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뱃속의 젤은 이제 체온만큼이나 따뜻해져서 애액처럼 흐르고 있고, 벌어진 구멍이 손가락으로 넓혀져서 뻐끔거리고 있다는 게 를르슈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까. 안 돼, 여기서 죽으면 나나리가…. 를르슈는 흐느끼면서 제발 멈춰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이제껏 멈춰준 적 없는 상대가 를르슈의 힘없는 반항에 멈출 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상대의 체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때였다. 를르슈는 자신의 아래를 뚫고 들어오는 페니스에 헐떡거렸다. 젤로 풀어둔 를르슈의 구멍은 그 페니스를 삼키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를르슈는 이전 스자쿠와의 섹스 때처럼 뭔가의 쾌락도 느낄 수가 없었다.

무서움, 공포, 증오, 착란, 괴로움, 고통… 그런 것들이 를르슈의 뱃속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삽입되어 피스톤질을 한창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인지, 를르슈의 페니스가 힘없이 늘어진 것에 상대가 젤투성이의 손으로 억지로 세우려고 하면 를르슈는 울음에 쉰 목소리로 싫다고 말했다.

“그만, 해. 아, 싫어, 싫어, 흑, 싫… 어, 무서워, 그만, 해. 빼줘.”

뱃속이 젖어들어가는 것이 무섭고 징그럽다는 생각 뿐이었다. 섹스라고 할 수 없는 이 강간 중에 느껴지는 것은 스자쿠와 상대의 차이였다. 지금쯤이면 키스를 하며 를르슈에게 되도 않는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을 스자쿠와 다르게, 자신을 꿰뚫고 있는 지금의 상대는 말 한 마디, 숨소리 하나 없이 를르슈를 유린하는 데에만 신경쓰는 것 같았다. 그런 차이를 되새기면서 스자쿠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를르슈는 계속해서 스자쿠를 불렀다.

“스자쿠, 제발, 스자쿠면 대답해…. 나 너무, 싫어, 이런 거, 싫어….”

어린 아이처럼 떼쓰듯 스자쿠만을 찾는 를르슈의 태도에도 상대는 아랑곳 않고 를르슈의 몸을 있는 힘껏 꿰뚫고 처박으면서 자신의 사정에만 몰두했다. 토할 거 같아. 좋지 않아, 기분 나빠. 를르슈는 이제 더 이상 소리낼 힘도 없이 꺾일 것 같았다. 뱃속에 미지근하게 퍼지는 정액의 느낌에 를르슈는 이제 끝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사정한 상대는 뜨겁게 젖은 페니스를 를르슈의 입에 처박았다. 그는 젤과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미끄러운 페니스를 를르슈의 입안에 들이밀어 박았다. 입안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목구멍까지 콱 박아버리는 것에 를르슈는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목구멍 끝을 건드리며 퍽퍽 처올리는 허리짓에 골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채를 잡힌 채로 그의 움직임에 맞춰서 페니스를 머금고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토하고 싶지만 계속해서 목구멍을 가로막는 페니스 때문에 를르슈는 계속해서 그의 것을 입에 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를르슈의 구멍에 박던 시간보다 더 짧게, 그러나 그 사정의 순간을 기다리기까지, 를르슈에게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상대는 를르슈의 목구멍 너머로 사정을 했다. 를르슈는 제 목에 쏘아지는 정액의 역겨운 느낌을 견뎌냈다. 를르슈가 남은 정액마저 삼키는 것을 확인한 상대는 그제서야 페니스를 입에서 꺼냈다.

를르슈는 자신의 얼굴에 정액, 타액, 젤로 젖은 페니스를 문지르는 상대의 행동에 결국 참지 못하고 토하고 말았다. 쿨럭거리면서 토할 것들을 다 토해내고 헛구역질을 하는 를르슈는 그 와중에 찰칵,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시야가 환해졌다. 단단히 시야를 가려놓았던 안대가 벗겨진 듯 했다. 를르슈는 눈물에 젖어서 엉망이 된 눈가를 몇번 깜빡이고 나면 스자쿠를 볼 수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스자쿠는 를르슈의 엉망이 된 입가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장난에 성공한 아이처럼 스자쿠의 웃는 얼굴에 를르슈는 무슨 말을 골라야할지 몰랐다.

“왜… 이런 걸 하는 거야…?”

“를르슈도 참. 예전에 말해줬는데. 아니면 또 듣고 싶은 거야?”

“날 좋아해서…?”

“맞아.”

“좋아하는데,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야?”

를르슈의 마지막 질문에 스자쿠는 어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좋아하니까 하는 거야.”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고. 를르슈는 스자쿠의 덧붙여지는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깨끗해진 를르슈의 입가를 확인하고는 스자쿠는 다시 혀를 밀어넣고 키스를 했다. 모든 곳이 엉망으로 망가져서 제대로 된 사고 또한 불가능한 상태인 를르슈는 그의 키스를 받으면서 흘러넘칠 것 같은 타액을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내가 아니면 안될 것처럼 우는 를르슈, 너무 귀여웠어. 아까 발기도 못하는 걸 보니까… 를르슈도 날 좋아하는 거 같아서 기뻤어.”

방금 전에는 좀 심하게 했으니까, 지금은 다정하게 할게. 를르슈가 좋아하는 걸로만 가득하자. 그리고 끝나고 나나리한테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못 들어간다고 말하는 거야. 알겠지?

를르슈는 신이 난 듯한 스자쿠의 목소리에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납치, 감금, 강간을 저질러 놓고 나서 태연하게 사랑하니까 그랬다고 말하는 남자다. 게다가 사람을 몰아넣는 가학적인 성향의 구제불능 변태이기까지 하다.

상황은 그렇게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를르슈는 어느새 풀어진 두 손으로 스자쿠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공포나 두려움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듯한 감정이 스자쿠를 밀어내는 대신에 를르슈로 하여금 그에게 매달리게 만들었다. 자신의 목에 팔을 두르는 를르슈를 보고서 스자쿠는 잘 매달리라고 말하면서 다시 발기한 성기를 를르슈의 애널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스자쿠다. 나를 안았던 그 어둠 속의 상대도 스자쿠다. 나를 원하고,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는 이 남자가 아니면….

를르슈는 뒷말을 더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흔들리기 시작하는 움직임에 따라서 단단해진 를르슈의 페니스 끝에서는 쿠퍼액이 맺히고, 스자쿠가 손바닥으로 감싸고 흔들어주면 정액이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애널로 느끼는 오르가즘과는 조금 싱거운 사정의 전율이 한바탕 일었다. 벌벌 떠는 를르슈를 끌어안으면서, 스자쿠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무언가가 다 부서지고 망가졌지만, 새롭게 맞춰지고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