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스자쿠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었다. 군부와 집을 오가면서 출퇴근을 반복했고, 를르슈의 집 근처를 일부러 들리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그쪽을 일부러 피하지도 않은 채로 스자쿠는 평온한 척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그에 대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온갖 애를 썼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애원대로 다시는 스자쿠의 곁에 오지 않을 생각인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으며,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거라고, 스자쿠는 다시 한 번 되뇌면서 자기 앞에서 줄곧 울기만 했던 를르슈를 생각했다.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 사람인데, 계속 우는 것만 하네. 혼자서 또 실없는 생각을 했다고, 스자쿠는 자조하면서 차를 몰고 있던 운전대를 손끝으로 툭툭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를르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은 쉽지 않았다. 를르슈를 사랑하는 마음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스자쿠는 이 마음도 언젠가 접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잠시 잠깐의 흔들림일 뿐이다. 흔들다리 효과의 착각 중에 하나일 뿐이다. 주차를 마친 스자쿠는 자신의 아파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보면서, 스자쿠는 오늘이야말로 술을 마실까 생각했다. 를르슈를 잊는 것은 맨정신으로는 힘들었다. 내일은 모처럼 쉬는 주말이니… 아, 벌써 를르슈 씨를 안 본지 일주일이나 지났단 말이야? 스자쿠는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보는 자신이 참 발전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술을 마시자. 안주로 먹을 만한 게 있던가. 뭐 빈속에 마셔도 나쁘지 않지. 숙취로 아프면 생각도 덜 나지 않을까.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추자, 스자쿠는 자신의 아파트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를르슈와 마주할 수 있었다. 를르슈는 하얀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지만 이미 코끝과 귀가 빨갛게 얼어있는 상태였다. 스자쿠는 를르슈와 가까워질수록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안아보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를르슈를 애써 밀어낸 자신을 뭘로 보는 걸까. 물론 를르슈가 사람의 호감을 이용해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외로운 구석을 파고들어 기회를 엿보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한다고, 스자쿠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말했다.
“여기는 어떻게 아셨어요?”
“코넬리아 누님께… 물어봤어요. 미안해요.”
“미안한 건 아시나봐요.”
“…….”
“를르슈 씨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지금 제일 만만한 사람이 저니까 찾아오신 거겠죠? 저도 상처받는다고 말씀드린 거 같은데. 를르슈 씨가 외롭고, 그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친절했던 사람인 저를 찾고 싶었던 이유는 알겠지만….”
“아니에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떨고 있었지만, 를르슈의 시선은 단호했다.
“스자쿠 씨가 친절하고 다정해서 찾은 게 아니에요.”
“…….”
“그냥, 스자쿠 씨가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솔직히, 이제 모르겠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계속해서, 계속해서 스자쿠 씨가 보고 싶어서.”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더욱 경계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정의할 수 없는 를르슈의 혼란스러운 상태에 스자쿠가 더 그를 흔들어놓고 싶진 않았다. 보다 정돈되고 깔끔한 감정으로, 꺠끗하고 아름다운 것만 그에게 주고 싶었다. 스자쿠는 를르슈를 보고서 호흡을 한 번 골랐다.
“안 되는 걸 알면, 멈추면 되는 거예요.”
“멈추는 게 안 돼요. 계속해서 스자쿠 씨를… 스자쿠 씨를 기다리는 내 자신이 싫어요. 찾아가고 싶어지는 것도 참을 수 없게 된다는 것도. 나는, 이제 고작, 일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
“스자쿠 씨가 걱정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연민이나 동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이제 모르겠어요. 편해지고 싶어요. 스자쿠 씨랑 멀어지면 편해지는 게 맞나요? 저는 아닌 거 같아요. 계속해서, 스자쿠 씨 생각 밖에 나지 않고.”
“…….”
“지금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걸 알면서도, 계속 보고 싶었어요.”
“…를르슈 씨.”
“차라리 그냥 죽어버릴걸.”
를르슈는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은 채로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원하는 그의 표정은 우울해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소원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를르슈에게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렸다.
를르슈를 사랑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지만, 를르슈가 스스로를 포기한다는 선택지가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상관의 사랑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 언젠가는 다시 웃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자쿠가 인상을 쓰는 것에 를르슈는 하얗게 번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서 말했다.
“제가 죽어버리면… 스자쿠 씨가 날 기억해주겠죠.”
“…….”
“물론 일 년도 안 되어서 다 잊어버리겠지만.”
“…….”
“그래도 좋으니까. 그냥 내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좋으니까.”
“를르슈 씨.”
“미안해요.”
필사적으로 말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더 이상 달아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불쌍하게 봐달라고 할 정도로, 자신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의 퇴로는 막혀버렸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를르슈는 고개를 푹 떨구고서 스자쿠의 어깨를 스쳐 지나치려고 했다. 발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일주일 사이에 또 마른 것 같은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착각. 그래, 이 모든 건 이제 착각이 아니다.
서로 사랑이라는 지옥으로 같이 떨어지자고 말하는 것은 이제 착각이 아니다. 고작 일 년. 스자쿠와 를르슈의 가슴에는 지난 일 년이라는 시간이 상처로 파고들어 서로의 흉터가 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스자쿠는 흔들다리 효과의 착각이라는 말을 이제 머리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를르슈 씨는 확실하게 하고 싶은 거죠?”
“…모, 모르겠어요.”
“그럼 여기서 확실하게 해요.”
“…….”
“죽고 싶을 만큼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요.”
“말하면요?”
“…….”
“말하면 스자쿠 씨가, 저를 좋아해주나요?"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옳지 않은 거 같아요. 스자쿠 씨를 괴롭히면서까지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제가 쓸데 없는 소리를 해서. 죽지도 않을 거고, 아무 것도 안 할 테니까. 그냥, 그냥 이대로 지나가게 해줘요. 를르슈의 말은 거의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는 눈물로 젖어들어갔다. 울기 시작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자신에게 칼자루가 쥐어진 상황이 우스우면서도, 유치하면서도, 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를르슈 씨를 계속 사랑하겠죠.”
“…….”
“힘들고, 괴롭고, 부끄럽고, 속상하고… 그래도 를르슈 씨를 사랑하겠죠.”
“…….”
“그럼 를르슈 씨도 나를 그렇게 사랑하면 돼요.”
힘들고, 괴롭고, 부끄럽고, 속상한 사랑을 함께 해요. 떳떳치 못할 이 지옥 같은 사랑을 당신과 함께 한다면,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피하려던 몸을 비틀어 스자쿠에게 안겼다. 이미 서로 추위로 얼어붙은 몸이 따뜻해질리가 없음에도, 맞잡고 둘러싼 팔이나, 가슴팍에 와닿는 체온, 서로를 끌어안는 손 같은 것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가까워지는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하얀 숨마저도 달고 따뜻했다.
“키스할래요.”
“…좋아요.”
를르슈와 스자쿠는 그 자리에서 키스를 했다. 아직 주고 받은 고백의 대화는 한 마디도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키스를 하기 위해서 들어올린 고개의 머뭇거림만으로도 모든 것이 전해졌다. 닿을 만큼의 키스를 하고 나서, 바람이 세게 불었다. 를르슈의 목에 걸린 초커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자쿠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은 를르슈가 스자쿠의 목을 끌어안고서 중얼거렸다.
안아줘요.
저를 스자쿠 씨의 짝으로 만들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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