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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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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캐러 

 

 

 

 

 

 

 

 

 

 

 

 

 제99대 황제는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로, 순혈파 귀족과 황제 사이에서 난 황자가 아니라, 나이트 오브 라운즈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 황후 자리에 오른 마리안느 비 브리타니아의 장남이다. 귀족과 황족, 그리고 제국민 모두가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가 차기 황제가 되지 않을까 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를르슈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슈나이젤은 여전히 재상으로 남았고, 그리고 새로운 황제는 를르슈가 되었다.

 를르슈는 출신부터가 특이했지만, 그의 가장 특이한 경력은 아버지이자 선대 황제였던 샤를 지 브리타니아의 기사단을 정리하지 않고, 자신의 기사단으로 고스란히 삼은 것이다. 대부분 자신의 검과 방패가 되어줄 기사단을 주변의 핵심 인물로 고르지만, 를르슈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특이사항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의 나이트 오브 라운즈에서 나이트 오브 세븐을 맡고 있던 쿠루루기 스자쿠에게 ‘나이트 오브 제로’라는 새로운 작위를 내린 것이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를 뛰어넘은 기사를 뜻한다는 의미에서 제로의 작위를 받은 스자쿠는 황제의 선포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쿠루루기 스자쿠 역시 특이함으로 따지자면 현 황제에 지지 않는다. 에리어11 출신의 넘버스 최초의 나이트 오브 라운즈로, 그의 발군의 기동력이 자랑인 KMF는 스자쿠의 명성에 더욱 보탬이 되었다. 나이트 오브 세븐 시절 이전에는 아리에스 궁의 황자였던 를르슈와 원래 친분이 있었다고는 하나, 확인된 바가 없다.

 새 황제의 즉위와 단 한 명뿐인 나이트 오브 제로. 이 두 가지 사실만 빼면 평소와 다를 브리타니아 제국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큰 변화가 있었던 곳은 나이트 오브 라운즈였다.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이 취미였던 나이트 오브 텐이 처형을 당했다. 새 황제는 나이트 오브 텐의 활약상을 보더니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이거 완전 사이코패스 아니야? 내 나라의 수치다, 죽여라. 그 옆에 있던 나이트 오브 제로인 스자쿠는 쓰게 웃었다. 전쟁을 하다보면 사람이 미치죠…. 너도 그러냐? 아뇨, 전 정신 차리면서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멀쩡한데 얘만 이러면 얘가 정상이 아닌거지. 도려내라, 죽여버려. 

 나이트 오브 라운즈라는 이름으로 횡포를 부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정리가 되었다. 죽고 싶으면 계속 테이블에 앉아있고, 살고 싶으면 망토를 버리고 나가라. 몇 없던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그렇게 완전히 정리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나마 든든했던 나이트 오브 세븐이었던 스자쿠는 나이트 오브 제로가 되면서 라운즈 대기실은 아예 허전해졌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부진했던 놈들, 잘라버려. 

 서류 보고 건성으로 하는 놈들이 전투에서 성실하게 할 리가 없다. KMF 조종 천재라고 해도 그걸 보고 받는 내가 못 알아먹으면 무슨 소용이지?

 겉만 번드르르한 놈들도 처형이다. 나한테 잘 보여서 어쩌려고? 자기 본분에 맞는 일을 해야 보이든가 말든가 하지. 

 

 “아냐.”

 “응, 지노.”

 “브리타니아에 남은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우리 둘 뿐이래.”

 “……기록. 그치만 스자쿠는?”

 “걔는 나이트 오브 제로니까 우리를 뛰어넘은 존재고…….”

 

 이대로 가다간 나이트 오브 라운즈, 전멸할지도 몰라. 지노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황제 폐하의 기사고, 평생직장이니 전멸할 수 없어, 지노. 아냐는 대답했다. 하지만 한달 사이에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둘 빼고 모두 옷을 벗고 나섰다. 나가기 일보 직전에 지노와 아냐를 노려보고 나갔다. 스자쿠와 친하게 지냈던 둘이 연줄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 모양인 듯 했다. 하지만 정작 둘은 스자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황제 폐하의 즉위식이고, 그 이후 반년 넘게 만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반년간 하는 일 없이, 매일 아침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대기실에 있다거나, 혹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일주일 간 궁에 출입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새 황제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를 부르진 않았다. 아프다니까 안 부르는 건가. 지노와 아냐는 휴대폰으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 평화로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고민했다. 

 

 “황제 폐하의 알현을 하러가자. 우리는 폐하의 기사인데 너무 하는 게 없어.”

 “맞는 말. 그렇지만 지금은 나이트 오브 제로인 스자쿠가 일을 하고 있을 거고.”

 “…스자쿠만 일을 시키는거야?! 그 많은 일들을?!”

 “폐하는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걸지도.”

 

 주군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기사라니, 그런 치욕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지노와 아냐는 동시에 내일 알현을 하겠다는 서류를 보냈다. 놀랍게도 답장은 스자쿠로부터 왔다. 폐하께서 너네와 내일 만찬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니, 차림을 갖추고 참석해주길 바란다. 반년만의 소식 치고는 너무 정이 없다. 

 그래도 만찬이라면 좋은 소식 아니야? 폐하를 본건 연회 때 말고 없으니까. 아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끼리만 있는 거라면 그간의 쌓인 불만이나…그런 것도 이야기하자. 전쟁이 없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니까. 

 

 다음날 저녁. 대기실에 느즈막이 얼굴을 들이민 지노와 아냐를 맞이한 것은 스자쿠였다. 

 

 “늦었네, 둘 다.”

 “스자쿠, 아니, 나, 나이트 오브 제로. 늦어서 죄송합니다.”

 “편하게 말해도 돼. 만찬 자리에서도 편하게. 그 편이 폐하도 편하니까.”

 “……스자쿠도 만찬에 함께?”

 “응.”

 “우리는 우리끼리 알현한다고 했어.”

 “나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황제 폐하의 명령만 따를 뿐.”

 

 따라오라고 먼저 문을 열고 나서는 스자쿠를 멍하니 쳐다보는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 날이 선 듯한 분위기에 더는 따지지 못하고 두 사람은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준비된 차를 타고서 어디론가 흘러간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 나이트 오브 제로가 탄 차는 펜드래곤에 있는 궁 치고는 소담한 궁에 도착했다.

 꽃이 예쁘게 손질되어 있는 화원을 보면서 아냐는 중얼거렸다. 

 

 “여기는 아리에스…….”

 “아냐는 예전에 왔었다고 그랬지.”

 “응, 마리안느 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온 적은 없지만.”

 “여기가 아리에스야? 황제 폐하가 여기 계신다고? 원래 계시는 본궁은….”

 “오늘 만찬은 여기서 할거야.”

 

 황제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로 부른 걸까.

 식당까지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황족 다음으로 버금가는 신분의 사람들이 셋이나 몰려다니는 데 숙여지는 고개가 당연했다. 

 

 “들고 온 총이나, 칼, KMF 호출기.”

 “…나이트 오브 라운즈로써는 당연한거 아닌가? 황제 폐하의 호위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늘 그걸 들고 다녀야 돼.”

 “들고 있는지 물어본거야. 내놓으라고 말한 게 아니라.”

 “…….”

 “오늘 아리에스는 그 어느 때보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해야하니까.”

 

 식당으로 들어선다. 준비된 자리에 앉지 않고, 그 뒤로 선다.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었다. 황제가 부른 자리에 먼저 앉는 기사가 있을 리가 없다. 스자쿠도 역시 가장 상석에 두 번째로 가까운 곳에 서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웃음 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이는 것이 말하는 사람은 두 사람으로, 아주 즐거워보였다. 하인과 메이드 같지는 않고. 지노와 아냐가 긴장한 틈에 주인공들은 나타났다. 

 

 “황제 폐하! 그리고 나나리 전하!”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 벌써 다들 왔군. 먼저 자리에 앉지 그랬어? 스자쿠가 또 뭐라고 하던가?”

 “주군 보다 먼저 앉는 기사는 없습니다, 폐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아냐에게 손을 흔든 나나리는 웃음을 지었다. 아냐는 눈인사로 대답했다. 자리에 앉는다. 둥근 테이블에 황제와 황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 그리고 그의 나이트 오브 제로, 맞은 편에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앉았다. 

 

 “나의 즉위식 이후로 다들 오랜만이지? 인사해라, 이쪽은 내 여동생인 나나리다.”

 “나나리 비 브리타니아입니다. 아냐는 오랜만이고, 지노 씨와는 한 번 춤을 추었죠. 스자쿠 씨는 매일 보니까 인사는 이정도만.”

 “나이트 오브 스리인 지노 바인베르그입니다.”

 “나이트 오브 식스인 아냐 알스트레임입니다.”

 “나이트 오브 제로,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각자의 자기 소개가 끝났다. 이 자리에는 브리타니아에서 제일 높은 사람과 그 두 번째 사람이 있고, 그들을 지키기 위한 세 명의 기사가 있다. 그 중압감은 더없이 무거워야할 텐데도 분위기는 가벼웠다. 

 황제의 지시에 따라 음식이 나왔다. 브리타니아 정통 코스요리였다. 황제는 에피타이저를 다 먹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갑작스럽게 나를 보자고 한 이유를 모르겠더군. 그동안 아버지가 명령하신 에리어 전투로 싸우느라 힘들다고 생각해서 휴식을 줄 겸 부르지 않고 있었는데.”

 “그래도 6개월 이상 부르시지 않고 나이트 오브 제로에게만 의지하시는 건, 저희를 믿지 않으셔서 그런건가요?”

 “흠.”

 “나이트 오브 제로도, 나이트 오브 세븐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희와 동고동락을 함께한 전우입니다. 그에게만 새로운 작위를 내리신 건 폐하께서 하신 일이니 저희는 따를 뿐입니다만, 폐하를 모시는 기사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건……신뢰를 얻지 못한 것 같아 수치스럽습니다.”

 

 지노와 아냐의 말에 황제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흠. 흠. 흠. 그가 뭔가 계산하듯 고개를 젓더니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스자쿠한테만 말하는 건, 나나리한테도 비밀로 한 거라서 마음이 아프니까.

 

 “이제 더 이상 에리어 확보를 위한 전투에 나갈 필요는 없다. 국토의 확장은 여기서 중지다.”

 “폐하의 새 정책이십니까?”

 “그래. 아직 공표하지 않았지만, 지금 있는 에리어도 다 포기하고 본국만 남길 예정이다.”

 “……에리어를 포기하신다구요?”

 

 에리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경제 공급을 쥐고 흔들었던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그리고 에리어 전투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99대 황제까지 오는 브리타니아의 긴 역사와 어긋나는 방침이었다. 

 

 “너희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니 에리어 전투가 없으면, 하는 일이 줄겠지.”

 “……저희는 폐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할 뿐, 전투가 없어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싸우기 위해서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된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기사단이었는데도, 나의 명령을 따를 것이냐?”

 “저를 다시 뽑아주신 것은 폐하이십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나에게 충성을 할 수 있다고 맹세했지. 그 뜻을 그르칠 마음도 전혀 없다, 이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순식간에 가라앉는 분위기에 웃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증명해보거라, 너희들의 충성심을. 황제는 소고기를 나이프와 포크로 썰면서 웃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너희들의 이야기는 이미 스자쿠로부터 잘 듣고 있었으니까. 나이트 오브 라운즈 중에서 너희 둘만 남긴 것도 스자쿠의 이야기 때문이다.”

 “오, 오라버니도 너무 무섭게 이야기 하지 마세요.”

 “미안하다, 나나리. 하지만 이렇게 만나기가 힘들어서. 굳이 아리에스를 고른 이유는 여기서 스자쿠와 내가 결의를 다졌기 때문이다. 나름 역사적인 장소에 너희들과도 함께 하고 싶었다.”

 “폐하와 저만의 결의를 다진 자리에 왜 두 사람을 부르셨는지…….”

 

 시종일관 조용히 있던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지노와 아냐는 황제의 입에서 나온 ‘스자쿠로부터’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껏 다 잘려나간 나이트 오브 라운즈들은 정말 스자쿠와 친분이 없었기 때문에 잘려나간 거였구나. 

 

 “나이트 오브 제로는 지금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브리타니아가 이제껏 거느려온 모든 에리어를 포기하고 나면 있을 반발 세력들을 사전에 진압하고, 앞으로 있을 테러까지 막기 위해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

 “…….”

 “나이트 오브 제로라는 특이한 작위를 내린 이유도,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같은 신분이기 때문에 서로의 임무에 대해서도 공유가 가능하다고 해서 내린 것이다. 딱히 스자쿠를 특별취급한 것도 아니고, 너희를 홀대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원래 귀족이지? 이 사실이 새어나가면 너희가 혼란스러워 할 것도 생각해서 일부러 그런 것이다.”

 “그 말은, 저희를 믿지 않으셨다는 뜻이군요.”

 “스자쿠는 너희가 이 정책을 펼쳐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거라고 자부하더군. 나는 나의 나이트 오브 제로를 믿는다. 그렇다면 너희도 믿고 있지.”

 “…….”

 “너희들의 일은 따로 있어. 괴롭고 힘든 일이다. 너희들에게는 작위 해제라는 통보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브리타니아의 신분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황궁 안에서든, 밖에서든 존재하는 이 모든 불평등에 대해서 나는 맞서 싸울 생각이다. 나이트 오브 제로도 그 결의를 다졌다.

 

 “선택하지 않아도 좋아. 그럼 최후의 나이트 오브 라운즈로 너희들은 영광스럽게 남을 뿐이다. 따로 불이익도 주지 않아.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뒤엎는 것이니까 혼란스러울 것도 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밖에 새어나간다면 영광스럽게 나의 손에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줄 뿐이다.”

 “…….”

 “…….”

 

 스자쿠의 엄포에 모두 손이 멈추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냐였다. 

 

 “나는 황제 폐하의 기사, 그 뜻을 따를 뿐.”

 “나이트 오브 식스의 의지는 그렇군.”

 “…저 역시 황제 폐하의 기사입니다. 그 뜻에 함께 하겠습니다.”

 “나이트 오브 스리까지. 나는 훌륭한 전력을 얻었다.”

 

 식사는 최소한의 말이 오가며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디저트 타임도 먹는둥 마는둥 했다. 황제는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이제 자러 갈 시간이니 돌아가보라며 나이트 오브 제로를 호위로 붙여 본궁으로 보냈다.

 이 아리에스는 이제 황제와 나이트 오브 라운즈 밖에 남지 않았다. 텅 빈 테이블 위로 황제는 턱을 괴며 말했다. 

 

 “자, 그럼 나와 뜻을 함께 하기로 했으니…. 제레미아 경, 준비한 것을 가지고 와라.”

 

 황제의 나이트 오브 제로 말고도 유명한 충신인 제레미아가 들고 나타난 것은 서류 박스였다. 군인의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두꺼운 서류 박스는 세 개씩 나왔다. 열어보거라. 황제의 말에 지노와 아냐는 박스의 뚜껑을 열었다. 두툼한 프린트더미가 있었다.

 다 꺼내. 이런 건 아날로그로 극비리에 준비하는 게 속이 편해서. 스자쿠도 이짓거리 하다가 뛰쳐나갈 뻔 했다. 황제는 웃으면서 첫 번째 프린트를 펼치라고 했다. 지노는 몰래 뒷장의 페이지 넘버를 보았다. 340페이지였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두께의 프린트가 서류 박스에 열 개는 넘게 있는 것 같았다. 

 

 “자, 오늘부터 너희들은 귀족 중에서 있을 반란분자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숙지하고, 그들이 주력으로 삼는 에리어에 대한 정보와 군 시설, 밀수 사업까지 전부 외운다. 6개월동안 심심했다니, 미리 불러서 외우게 할 것을 그랬군.”

 “…어, 언제까지 외울까요, 폐하?”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오늘 자정 내로 가능하지? 내일부터 실전에 투입할 예정인데.”

 “…….”

 “폐하, 카메라로 찍어서….”

 “안 된다. 무조건 외울 것. 스자쿠도 조금 있다가 다시 새로 외우러 올거다. 한 번 보고 외우면 되는 것인데, 왜 그렇게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외워야하는지. 나이트 오브 제로로 만든 부작용이 머리가 나빠지는 걸까? 아무튼 너네는 원래부터 활약하던 나이트 오브 라운즈니, 그 암기력을 믿어보겠다.”

 

 학생 때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 없었는데. 지노와 아냐는 입술을 깨물며 프린트를 노려보았다. 

 최강을 꿈꾸는 여러분들. 나이트 오브 라운즈 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가장 빨리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는 길입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라는 직업은 본질적으로 뇌를 파괴하는 폐하의 암기 테스트를 맨날 맨날 해야한답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 되지 마세요. 

 나이트 오브 제로도 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