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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감금강간 연상연하의 진상

DOZI 2019.06.12 00:52 read.912 /

스자쿠가 왜 납치감금강간을 하게 되었나

연상 X 연하 

 

 

 

 

 

 

 

 

 

 

 

 

 

그가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를 만났을 때에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그때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서, 쿠루루기 스자쿠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0년 전,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쿠라다이트’라는 새로운 물질의 발견으로, 그것을 어디에 수출하고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던 찰나였다.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될 것 같았다. 그 당시 총리였던 쿠루루기 겐부는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회의를 하며 그 관계를 긴밀하게 다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곁다리로 따라온 쿠루루기 스자쿠는, 언젠가 브리타니아에 와서 유학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미리 살펴보고 오라는 부모님의 명령에 따라서 억지로 끌려온 때였다. 그는 호텔에 갇혀있는 동안, 출전할 수 있었던 전국대회도 나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이 호텔 밖을 나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기에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가드들을 데리고 나가는 건 또 유난스러운 것 같아서 스자쿠는 침대와 창문 근처를 서성이면서 갇혀있는 것에 불만스러웠다.

그런 스자쿠를 꺼내준 것은 브리타니아의 한 야회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쿠루루기 겐부는 그 야회에 꼭 참여해야한다고 스자쿠에게 당부했다. 대체 왜요, 라는 말을 댓발 튀어나는 입술로 중얼거린 스자쿠는 무사히 착장을 마치고 겐부의 옆에 섰다.

 

‘오늘 야회는 황제가 가장 사랑하는 황후가 주최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108명 중에 한 명을 사랑해도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스자쿠. 회장에서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라.’

‘네, 네.’

 

높으신 분의 아들로 큰지 벌써 18년, 스자쿠는 나름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스자쿠는 한 번 웃기만 해줘도 자기가 무해하다는 걸 알릴 수 있다는 걸 자주 이용해먹는 편이었다. 학교에서도, 연애에서도, 그밖에 어른들 앞에서도 꽤 먹히는 방법이었다. 오늘 야회에서도 그럴 예정이었다.

야회는 커다란 정원에서 열렸다. 보통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이겠지만, 스자쿠는 이질적인 하나의 물체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그 옆에 달린 모니터에서 이 물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위력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것 안에 타는 사람이 방금 전 스자쿠에게 ‘잘 왔다’라며 어색한 일본어로 말한 마리안느 황후였다는 것이다.

 

‘나이트메어프레임, 이라고 합니다. 쿠루루기 군.’

‘그런가요…가 아니라, 누구세요?!’

 

은발의 시원한 청안을 가진 남자는 평범하게 수트를 입고 있지만, 눈매는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는 탓에 과연 평범한가, 라는 말이 떠올랐다. 브리타니아어는 일상 회화 정도만 가능한 스자쿠는 그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트메어프레임? 익숙한 말이었다.

 

‘그렇죠~ 일본 총리의 아들이라면 여기에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순도 높은 사쿠라다이트만으로 100% 에너지원으로 하는 나이트메어프레임을 연구 중인 로이드 아스플런드라고 합니다, 아, 쿠루루기 군은 이름이 어려우니까 스자쿠 군, 으로 좋겠지요~? 역시, 역시. 마리안느 님 말대로 야회의 완벽한 조율을 위해서는 조금 투박하지만 마리안느 님의 가니메데를 두는 게 나이스~!였던 거죠, 역시!’

 

엄청난 말이 쏟아져나오길래 스자쿠는 저도 모르게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확실한 것은 이 남자는 일본 총리의 아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나이트메어프레임에 미쳐있다는 것이었다. 스자쿠가 도망칠 기색을 보이자 로이드는 스자쿠의 어깨를 턱 붙잡았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고 해야하나~ 우리로써는 가니메데의 파일럿 같은 마리안느 님 같은 사람이 없나 찾고 있는데~ 혹시 스자쿠 군은 나이트메어프레임에 관심…있지! 분명 있지! 사쿠라다이트가 어떻게 쓰이는 지 궁금하잖아? 그쵸?’

‘아, 아니, 저는….’

‘놀랍게도 이 아리에스 지하에는 파일럿 테스트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앗, 기밀사항이지만 뭐, 괜찮아, 괜찮아!’

‘로이드 씨!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뒤에서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군복 차림으로 나타난 여자는 로이드를 말리다가, 스자쿠를 보고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세실 크루미라고 합니다, 쿠루루기 군.’

‘아, 네. 쿠루루기 스자쿠라고 합니다.’

‘로이드 씨가 실례되는 말을 했다면 죄송합니다. 워낙에 나이트메어프레임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주면 실험하고 싶어하는 중이라….’

‘지금 중요한 파트가 될 수 있는 스자쿠 군을 스카웃 중이었다구!’

‘정말, 아무한테나 그러시지 말라니까요! 그럼, 편하게 지내다 가세요.’

 

스자쿠는 로이드를 끌고 마리안느 황후 옆으로 가는 세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다시 나이트메어프레임이라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파일럿수트를 입은 마리안느 황후는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 차림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 보였다.

사쿠라다이트가 이런 곳에 쓰이는 건가. 스자쿠는 제 손이 아주 작아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큰 그 가니메데 앞에서 괜히 속이 울렁거렸다.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방금 전에 갔던 세실이었다.

 

‘아, 역시 전짜 로이드 씨 말대로…나이트메어프레임에 관심 있나요, 쿠루루기 군?’

‘네?’

‘기밀사항이지만 여기 지하에 파일럿 테스트 공간이 있는데 거기 가지 않을래요? 저희가 완벽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어두겠습니다.’

‘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역시 일본 총리의 아들이라 사쿠라다이트가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잘 알고 있군요! 로이드 씨, 괜히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 싶었는데, 아, 혹시 체력 단련 같은 거 받고 있죠? 몸 움직임이 나쁘지 않아요.’

‘저, 저기.’

‘좋아, 마리안느 님께 허락받고 올게요. 잠시만요.’

 

세실이 어깨를 붙잡고 야회의 중앙에 있는 마리안느 황후에게 달려가기 직전에 스자쿠는 잽싸게 빠져나왔다. 어라, 스자쿠 군?! 어느새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스자쿠는 허겁저깁 정원의 어두운 곳으로 빠져나갔다.

달이 점점 밝게 보이고, 별도 총총 뜨는 것이 보일 정도로 어둑한 곳이었다. 하지만 야회의 불빛이 훤하게 비치고 있기에 돌아갈 길은 걱정이 없었다. 좀 조용한 곳에 있고 싶었다. 모르는 말이 자꾸 들리는 곳에 있는 것은 생각 외로 피곤했다.

그러다가 어떤 건물이 보였다. 여긴 나름 황궁 안이니까 어떤 높은 사람이 사는 궁 하나겠지. 스자쿠는 괜히 쓸데 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 나무 근처에 서 있었다. 건물 가까이에 가면 괜한 의심을 살 것이다. 

 

‘피곤하다…. 빨리 돌아가고 싶어.’

 

스자쿠는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유학을 하라느니, 아니면 대학에 가서 정치를 공부하라느니 하는 일상이 돌아오겠지만 여기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스자쿠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속이 좀 시원해지는 거 같았다.

 

‘거기, 누구야?’

 

하지만 이 브리타니아라는 나라는 스자쿠가 쉬는 걸 보는 꼴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스자쿠는 소년의 목소리지만 완전히 날이 선 그 목소리에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오늘 몇 차례 말한 탓에 덜 떨리며 나오는 자기소개였다.

 

‘저는 일본 총리의 아들,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일본 총리의 아들이 왜 아리에스 궁 내부까지 들어왔지?’

‘잠시 피곤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지?’

‘…네?’

‘나를 속일 생각이라면 늦었다. 진짜 일본 총리의 아들이라면 브리타니아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먼저 대답했겠지!’

 

스자쿠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건물 안쪽에서 저를 쏘아보는 시선과 마주했다. 어린 소년은 스자쿠보다 한참은 어려보였고, 그렇지만 그 눈은 경계로 가득 차서 날카롭게 빛이 났다. 파자마 차림이지만 그 손에는 무시무시한 권총이 들려있었다.

스자쿠는 야회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일본어로 반응했다.

 

‘놀랍네, 어린애가 총이라니.’

‘어린애 취급하지 마라! 나는 브리타니아의 제11황자,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다!’

‘…음, 일본어 잘하네. 그런데 그런 거 막 말해도 돼?’

‘너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스자쿠는 너, 라고 아주 기고만장하게 대답하는 이 소년이 정말 황자전하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능숙한 일본어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소년은 총을 내려놓으며 ‘진짜 일본 총리의 아들이네.’하며 중얼거렸다.

 

‘방금 전의 결례는 양해바랍니다. 아리에스의 사람들은 특수한 환경에 놓였는지라. 야회는 아직 한참 중일텐데. 왜 여기까지 왔죠?’

 

이번엔 존댓말이었다. 스자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제멋대로였다. 스자쿠는 서있는 곳에서 한걸음도 떨어지지 않으면서 소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야회에 끌려오기 전에 겨우 익힌 브리타니아의 예법에 갖춰서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어서요, 전하.’

‘어머니의 손님 리스트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을 텐데….’

 

브리타니아어로 돌린 대답에 를르슈라는 황자도 브리타니아어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를르슈는 생각난 것이 있는지 ‘아, 혹시.’ 하면서 입을 열었다.

 

‘로이드와 세실을 말하는 게 아닌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이런. 그 두 사람을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

‘괜찮습니다. 브리타니아는 엄청난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쿠라다이트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무기여서….’

 

를르슈는 하품을 했다. 생각해보니 어린애는 한참 잘 시간이었다. 스자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는 왜 여기까지 나오셨죠?’

‘나나리, 아니 여동생이 잘 자는지 확인하다가, 창문 밖에 누가 있는 걸 알고서 확인하려고 나왔습니다.’

‘음…. 직접 나오셔도 되나요?’

‘지금 아리에스의 모든 호위는 야회에 가있거든요. 남아있는 제레미아 경을 부르기에는 유난스러운 일이 될 거 같았고.’

 

이 황자전하는 황당하군. 스자쿠는 어쨌든 자기도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를르슈는 졸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쿠루루기 씨, 하고 어린 목소리가 불렀다. 그건 일본어였다. 스자쿠는 네, 하고 일본어로 대답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브리타니아에서 즐겁게 있다 가세요.’

 

그때의 어렴풋한 달빛과 별빛이 만드는 조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를르슈의 환한 미소가 스자쿠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았다.

이제껏 호텔에 갇혀 지냈던 시간과 야회에서 시달렸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어서, 그저 그 미소만으로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스자쿠가 야회에 돌아왔을 때에는 세실도, 로이드도 없었고, 아버지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꽤나 큰 수확이 있었는지 아버지는 시종일관 기분이 좋아보였고, 스자쿠는 괜히 두근거리는 가슴에 어쩔 줄 모르고 입을 닫고 있었다.

 

그날 야회에서 마리안느 황후의 아이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게 정해졌고, 일본와 브리타니아의 사쿠라다이트 관련 연구도 공동으로 진행되는 걸로도 평화노선이 채택되었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정치 쪽으로 나가는 것보다 사쿠라다이트 사업 관련으로 발을 돌려, 친척들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였다. 그리고 자기답지 않은 일들을 계속했다. 스메라기 카구야는 저에게 끈질기게 애쉬포드 학원의 입학을 추천하는 사촌 오빠가 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말에 겨우 중도입학 시험을 신청했다.

스자쿠는 느리지만 겨우 진행되는 자신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을 잡아가는 행복한 생활이 바로 직전이다. 

 

를르슈는 아름답게 성장했다.

사진이 아니라 살아있는 를르슈를 보고 있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의 옆에 있는 어린 소녀는 그때 지키고자 했던 나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장한 를르슈는 그렇게 웃는구나. 그래, 계속 웃었으면 좋겠다. 

스자쿠는 어느새 홀로 서서 소설책을 쥐고 있는 를르슈에게 다가갔다. 

 

“저기, 잠깐만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돌아보는 눈동자는 변함없이 예쁘게 빛이 나고, 당황하고 있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고일 뻔했다. 스자쿠는 태연한 척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