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오지 않을 교실을 둘러보면서, 나나리는 가장 늦게 교실에서 나왔다. 지나가던 친구들이 나나리를 알아보고서 인사를 했다. 잘 가, 나나쨩! 방학 잘 보내! 나나리도 인사를 했다. 한 학기,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던 복도가 방학동안 텅 비어있을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아쉬웠다. 먼저 본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던 로로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로로는 축구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람페르지, 한 게임만 뛰고 가주라. 응?”
“아, 안 돼…. 오늘은 일찍 가야 돼.”
“이제 방학이잖아!”
“방학이니까 더….”
“어, 나나쨩!”
누군가 한 명이 나나리를 알아보고서 손을 흔들었다. 나나리도 인사를 받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나리의 등장에 다들 붙잡고 있던 로로를 놓아주었다. 뭐야, 나나쨩이랑 같이 가는 거였어?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람페르지를 놓아주자! 로로는 갑자기 놓아주는 손에 넘어질 뻔하면서도 겨우 자리에 바로 섰다.
그럼 잘 가, 람페르지! 다들 로로와 나나리에게 인사를 했다. 한 달 동안 보지 못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아쉽기도 했지만, 내일 당장 떠나야하는 여행의 짐싸기를 생각하면 그 아쉬움을 달랠 새도 없었다. 로로와 나나리는 축구 골대로 달려가는 아이들과 반대 방향인 교문 쪽으로 향했다.
“내일 여행 기대되지 않나요, 로로?”
“응. 재미있을 것 같아.”
“시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에요.”
“위험했지, 우리.”
몇날 며칠을 공부에 시달리며 치렀던 기말고사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났다. 짐 얼마나 쌌어? 로로의 말에 나나리는 대답을 망설였다. 우선 웃옷 정도는 챙겼어요. 우와, 많이 했네. 나는 오늘 빨래한 게 말라야지 짐 쌀 수 있는데. 나나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라버니가 미리미리 챙겨두라고 했는데 말이죠. 교복만 입었는데도 왜 옷이 없을까요?”
“그러게. 나 나름 챙겨두긴 했는데. 리스트도 만들어놨고….”
“이상하죠?”
“이상하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금방 집앞까지 도착했다. 대부분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산에 갈 때에는 긴팔이랑 긴바지 입는 게 좋겠지? 그렇겠죠, 아무래도 벌레에 물리거나 하니까요. 바다에 갈 때에는 선크림이랑… 튜브? 그치만 우리 모두 수영 할 줄 알잖아요. 그래도 튜브 있으면 재미있잖아. 비치 발리볼도 할까요? 형이 해줄까? 아하하, 그러게요.
“아쉽네. 아무리 그래도 비치 발리볼 정도는 해주는데.”
“오라버니!”
“형!”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로로와 나나리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스자쿠와 를르슈가 있었다.
“학교는 잘 다녀왔어?”
“네, 방학식이라 금방 끝났어요. 두 분은 어디 다녀오세요?”
“응, 필요한 게 좀 있어서.”
“케이크도 사왔으니까 같이 먹고 짐 마저 쌀까? 아직 두 사람 다 안 끝났지?”
스자쿠는 케이크 상자를 들어보이면서 말했다. 나나리가 와아, 하고 감탄했다. 그래, 집앞에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를르슈가 그런 말을 하자 로로가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아무렇게나 현관에 내려둔 로로와 나나리는 에어컨 앞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너네, 가방은 바로 치우라고 했지?”
“조금만 있다가—!”
“조금만은 무슨…. 아니,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나나리와 로로의 가방은 생각 이상으로 무거웠다. 설마 교과서를 오늘 하루에 다 가져온건가? 내가 며칠에 걸쳐 나눠서 들고 다니라고 했잖아. 를르슈의 잔소리에 로로와 나나리는 에어컨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됐다, 무거운 건 너네가 드는데, 왜 내가 힘든 건지. 그 사이에 스자쿠가 접시와 포크를 준비하며 케이크를 식탁 위에 세팅했다.
“를르슈, 차도 내가 내릴까?”
“아니, 그건 내가 할게.”
“알았어.”
“그 전에—로로, 나나리. 교복 갈아입고 나서 케이크 먹어.”
“으응….”
“네—.”
한참 열기를 식히던 로로와 나나리가 를르슈의 옷을 갈아입으라는 말에 2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때는 제깍제깍 했던 것 같은데, 왜 크면서 저렇게 됐을까? 를르슈의 한탄 어린 말에 스자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로로랑 나나리 정도면 말 잘 듣는 거야.”
“그건 부정하지 않는다만… 그래도 한 번에 확실하게 해주면 좀 좋잖아.”
“를르슈도 저 나이 때에 더 했잖아. 수업도 막 빠지고.”
“유급 안 할 정도로 수업일수 계산했으니까 상관 없잖아.”
“그런 점이 더 했다는 거야.”
를르슈를 위로하기는커녕 속을 긁어놓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들고 있는 찻주전자를 꽉 움켜쥐었다. 넌 대체 누구 편이야? 누구 편이냐니, 사실을 말할 뿐이잖아. 장난스럽게 빙글빙글 웃고 있는 스자쿠의 얼굴에 를르슈는 당했다는 생각 뿐이었다. 더 말했다가는 를르슈의 품행불량했던 과거 이야기만 쏟아질 것 같았다. 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때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로로와 나나리가 내려왔다. 네 사람은 식탁에 둘러 앉았다.
“내일 아침 비행기니까 일찍 자야 돼. 특히 나나리, 기대된다고 밤 새지 말고.”
“이제 안 그래요.”
“로로는 귀찮다고 짐 싸다 말지 말고.”
“어떻게든 하고 있어.”
“스자쿠는….”
“나는 이미 다 챙겼지? 를르슈가 확인했잖아.”
“근데 네가 제일 걱정 되는데. 제일 불안해.”
“너무하네.”
케이크를 다들 한 입씩 먹은 사람들은 ‘맛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제 몫의 접시 위를 비우고 있었다.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면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방학숙제도 챙겨가야하는 거 잊지 말고. 일부러 두고 갔다가는 정말 혼낼 거야.”
“…그, 그치만 놀러가는 건데!”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안 하지만, 방학숙제는 밀려서 할수록 너네 손해야.”
“네에….”
이어지는 잔소리에 로로와 나나리가 시무룩해지는 것이 바로 보이자, 스자쿠는 애써 분위기를 살피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제 방학 시작인데 숙제 이야기는 좀 그렇잖아. 방학 때 하고 싶은 거 있어? 우선 나는 바베큐! 꼬치도 엄청 만들 거야. 스자쿠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놓자, 로로와 나나리도 고민하는 기색 없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불꽃놀이요! 예전에 했던 것보다 더 크게!”
“나는 바다 수영하고 싶어. 스쿠버 다이빙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스쿠버 다이빙은 장비가 없어서 좀 힘들겠지만, 불꽃놀이는 할 수 있어! 사람이 뜸한 해변이라 편하거든. 아, 그리고 시내 쪽으로 나가면 여름 축제도 열리고, 나름 재미있을 거야.”
다들 이야기에 활기를 더해가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니까 내일 늦잠 자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자야 된다? 를르슈의 염려에 다들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일찍 자야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잠이 더 안 오지 않아? 스자쿠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짐을 마저 쌌다. 나나리의 캐리어가 웃옷만으로도 가득 찬 것을 보고서 를르슈가 기함했고, 로로의 캐리어에는 칫솔과 치약만이 덜렁 들어있는 것에 를르슈는 쓰러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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