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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9

Summer / DOZI 2021.08.05 11:31 read.111 /

같은 시각, 스자쿠 역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드물게 저녁 시간에 맞춰서 집에 온 아버지 겐부와 함께 마주보면서. 언제나 혼자서 먹는 식사가 익숙한 탓에 겐부와의 저녁 식사는 어딘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아버지와는 놀라울 정도로 할 말이 없었고, 스자쿠는 빨리 먹고 일어서야겠다는 일념으로 음식들을 입 안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스자쿠.”

 

하지만 겐부는 아닌 모양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스자쿠를 부르는 것에 스자쿠는 컥, 하고 숨이 막히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람페르지 군과 여행 간다면서? 별장 쪽으로.”

“아, 네. 다다음주에요.”

“둘이서 가는 거냐?”

“아뇨. 를르슈네 동생들도 같이 가요.”

“그래.”

 

이야기는 그걸로 끝? 스자쿠는 쥐고 있던 젓가락을 겨우 움직였다. 겐부는 무어라 더 말을 덧붙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얼른 먹고 일어나자. 스자쿠는 다시 접시 위의 음식들을 비워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람페르지 군의 동생들은 몇 살이지?”

“…음, 둘 다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말고.”

“…예?”

“너도 람페르지 군도, 그 아이들의 보호자로 가는 거니까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뭐지, 이거? 스자쿠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의 어딘가 뻣뻣한 끄덕거림에 겐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이어갔다.

 

“짐은 미리미리 싸두고. 빠뜨리는 거 없이 준비해라.”

“네.”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고….”

 

정말 뭐지? 스자쿠는 꼬박꼬박 대답은 하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답지 않게 이러시지?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저녁 식사를 끝내가고 있던 중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스자쿠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여행 가서 어디 다치지 말고 조심해야 된다. 특히 너는… 조심성이 없으니까.”

“조, 조심성이요?”

 

그거 너무 정석적인 아버지의 대사 아닌가?! 스자쿠는 이번엔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면서 반응했다. 겐부는 묵묵하게 자기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정말로 왜? 스자쿠가 그 물음을 가득 담은 눈으로 겐부를 쳐다보아도 겐부는 답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위화감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상한 건 스자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연한 반응이었다.

괜히 당기는 뒷목을 주무르면서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으면, 방금 전까지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왜 그런 말을 갑자기…? 이제 와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제 와서? 갑자기…?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가식적이라던가, 위선적이라는 생각 보다는 우스움이 앞섰다.

부자 간의 냉랭한 분위기는 10년도 넘게 이어지고 있었고, 혈육이라고는 단 두 사람 뿐인 관계에서도 선을 긋는 것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대화를 되새길수록 나쁘지 않은 변화 같았다. 보통의 아버지와 아들처럼— 같은 것은 스자쿠 본인에게는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썩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는데, 뭔가 좀 어색했다고 해야하나….”

 

전화기를 붙들고 있으면서, 스자쿠는 자신이 전하는 말이 너무 어색해서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상대는 를르슈였다. 를르슈의 쿡쿡거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괜히 저를 놀리는 것 같았다.

 

‘아저씨도 이제 솔직해지려고 하시는 거지.’

“그런 솔직함 필요 없거든?”

‘사춘기 애처럼 굴지 마.’

 

사춘기 애라니, 사춘기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스자쿠는 그의 논리에 반격할 말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대략 보름 정도 남았지, 여행.”

‘응. 애들은 시험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래? 나는 짐 쌀 준비 하고 있는데.”

‘벌써?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뭐… 아버지 말마따나 미리미리 싸두려고.”

‘착한 아들이네.’

“놀리는 거지, 지금!”

‘하하, 그럴 리가.’

 

아무리 봐도 놀리는 거잖아. 스자쿠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에 전화기를 노려보았다. 를르슈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스자쿠는 펼쳐둔 캐리어를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를르슈, 같이 쇼핑 갈래?”

‘살 거 있어?’

“짐 싸다 보면 생길 거 같아서. 그리고 를르슈가 나보다 더 꼼꼼하게 챙겨줄 거 같아.”

‘로로랑 나나리만으로도 벅차. 스스로 해라.’

“그럼 데이트는? 데이트 하자.”

‘데이트….’

 

최근에는 기말고사니 뭐니 하면서 바쁘게 지내느라 전화와 메시지로만 안부를 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데이트를 해도 나쁘지 않겠지.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자쿠에게 그러자고 말했다. 대신에, 네가 쇼핑하는 건 별개야. 알아서 리스트 짜오면 봐주는 거 정도는 해줄 테니까, 생각은 하고 와. 를르슈의 덧붙여지는 말에 스자쿠는 보이지도 않는데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내일 보자.’

“응!”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나면 전화는 끝이 났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에 스자쿠는 휴대폰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전에 나쁘지 않았지…? 데이트도 거절 안 당했고. 그럼 괜찮은거지? 를르슈와 결혼 이야기 이후로 있었던 어색함이 조금 가신 기분이었다. 여행을 떠날 무렵에는 완전히 나아지겠지. 그런 낙관적인 희망을 품으면서,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스자쿠와 를르슈의 데이트가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여행 계획은 점점 세세하게 뼈대를 잡아갔다. 그런 중에 로로와 나나리의 기말고사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각자 방에서 틀어박혀 공부만 하고 있다가, 를르슈의 간식을 먹으라는 말에 겨우 거실로 나왔다. 지쳐서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있는 쌍둥이의 모습은 어딘가 닮아 있어서, 를르슈는 스콘과 홍차를 내어오는 중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공부는 몰아서 하는 거 아니랬지?”

“이 방법이 효율이 좋단 말이에요.”

“맞아.”

“그럼 뭐해, 생산성이 떨어지잖아.”

 

를르슈의 콕 찝는 말에 로로와 나나리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눈앞의 스콘을 한입씩 먹었다. 홍차까지 한 모금 마셔주면 그간의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었다. 형, 힘들어. 오라버니, 피곤해요. 를르슈를 가운데에 두고서 두 사람은 옆자리에 꼭 달라붙었다. 를르슈는 칭얼거리는 동생들의 어깨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아, 형한테서 음이온 나오는 거 같아. 로로의 말에 나나리가 맞아요, 라고 맞장구를 쳤다. 나올 리가 없지. 를르슈의 냉정한 지적에 세 사람은 다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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