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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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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http://very2ndplace.com/CG2/4519

 

 

 

 

 

그때 스자쿠가 받았던 비디오는 복사본 없이 오리지널인 모양이었다.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스자쿠는 비디오의 처분을 자신이 맡겠다고 서류에 남겼다. 를르슈가 낮잠을 자러 간 사이에 서류를 옮기는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가 깨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스자쿠는 를르슈의 옆에 붙어서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살폈다.

그날 밤에 스자쿠는 를르슈를 데리고 처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차가워진 밤 공기에 그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옷을 입히고 조금 이르지만 목도리까지 둘러주었다. 를르슈는 얌전히 옷을 입혀주는대로 따랐다. 자기 의사 같은 것을 보이지 않는 를르슈의 인형 같은 모습은 몇번이고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건물 밖이라고 해봤자 바로 뒷마당이었다. 이 곳은 제로가 머무는 별관, 보통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다보니 경비는 최소 인력으로 두고 있었다. 뒷마당은 감시하는 눈도 없고, 스자쿠도 가면 없이 나갈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잃어버릴까봐 바짝 옆에 붙어서 따라 걸었다.

스자쿠는 뒷마당의 나무들이 떨군 나뭇가지와 낙엽을 긁어모았다. 를르슈도 옆에서 그 모양을 따라했다. 놀이를 하듯이, 스자쿠와 를르슈는 그것들이 제법 쌓일 때까지 반복했다. 스자쿠는 썩어가는 낙엽과 말라가는 나뭇가지 앞에서 가지고 왔던 비디오를 꺼냈다. 그러자 를르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어린 아이 같고,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자신의 기억을 무의식 중에 떠올린다. 그 비디오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스자쿠는 씁쓸함에 입맛을 다시면서 비디오를 바닥에 내던졌다.

세 개의 비디오 중 하나를 발로 밟아 박살을 냈다. 파편이 튀고 테이프들이 늘어지는 것에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내장처럼 뽑힌 검은색 테이프들을 손으로 죽죽 늘어뜨리고서 낙엽 위로 집어 던졌다. 그것을 보고 있던 를르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자쿠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를르슈도 해. 이거, 이제 없앨 거니까.”

“…?”

“이렇게.”

 

를르슈의 허벅지를 손으로 감싸고 그의 다리를 움직이는 시늉을 했다. 를르슈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스자쿠처럼 남은 비디오를 부수고, 테이프를 잡아 늘렸다. 그리고 낙엽 더미에 내던졌다. 남은 하나도 를르슈가 처리했다. 스자쿠는 그 모습을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세상에 남아있다는 흔적들이 없어진다. 또 다시. 스자쿠는 그 사이 차가워진 를르슈의 손을 붙잡았다. 서늘한 손가락을 감싸주면 를르슈가 스자쿠 쪽으로 다시 달라붙었다. 스자쿠는 주머니 안에 속의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서 그것이 불이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 축축한 나뭇가지가 불이 붙을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내 불길이 붙으면서 불꽃이 확 일어났다. 따뜻하네. 조금 뜨겁고. 스자쿠는 잿더미가 되어버릴 것들을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들고 나온 담배를 꺼내들었다.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꺼내려는 순간에 를르슈가 고개를 내저었다. 불을 붙이려는 순간에 를르슈가 ‘아’ 하고 소리를 내는 것에 스자쿠는 그것을 이해했다. 비디오 속에 담뱃불로 지져졌던 를르슈가 떠올랐다. 바로 담배를 집어넣었지만, 를르슈는 이미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미, 미안, 를르슈.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이 녹는 냄새, 그런 와중에 스자쿠의 사과는 부질없게 느껴졌다. 를르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주저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흐아, 아…. 를르슈의 작은 울음소리에 스자쿠는 그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몸을 숙였다. 를르슈, 를르슈…! 스자쿠가 계속 불렀지만 를르슈는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스자쿠를 바라보지 않았다.

를르슈는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다. 탈 것이 떨어져 불길이 사그러들 때까지, 스자쿠 쪽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서. 주위가 새카맣게 물들기 전에, 를르슈는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스자쿠는 저를 바라보지 않는 를르슈에게 지쳐서 불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남은 불씨도 없어서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에 불안함을 느낀 것인지,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도 울어서 지쳐서 떨고 있는 손끝이 제게 뻗어오는 것에, 그 기척을 느낀 스자쿠는 고개를 돌렸다. 저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 손을 뻗은 를르슈의 손은 어둠 속이라 그런지 더 희미하게 느껴졌다.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스자쿠는 제 뺨에 닿아오는 를르슈의 손을 느꼈다. 스자쿠가 제대로 있는 걸 확인하려고 하는지, 를르슈의 떨리는 손끝은 천천히 볼에서 턱으로 내려갔다.

너는 그때 그냥 사라졌으면 더 좋았을까? 아니면, 이렇게라도 존재하는 게 좋을까? 스자쿠는 제 얼굴을 만지는 를르슈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들어가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어딘가 무거웠다. 를르슈와 손을 잡고 걸어서 그랬을까. 그러나 손이 붙들린 채로 같이 돌아가는 를르슈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꼭 소풍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 같은 모습에, 스자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낙엽과 나뭇가지를 줍느라 엉망이 된 손을 씻을 겸, 목욕까지 해치우려는 생각에 스자쿠는 를르슈를 욕실 앞에 세워두고서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비디오 속의 를르슈가 입었던 상처는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를르슈가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겠지만, 스자쿠는 를르슈의 알몸을 볼 때마다 차라리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맨몸을 드러낸 를르슈는 추운지 욕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제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를르슈를 씻기는 일은 고되었다.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것 만큼의 스트레스가 따랐다. 작은 폭군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그가 싫어하는 머리 감기를 하고, 간지러움에 떠는 를르슈의 몸을 비누로 문질러 닦는 것은 힘이 들었다. 겨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입혀서 내보내고 나면 스자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자신이 씻을 차례가 되니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나가면 를르슈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 나가는 것이 싫어졌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겨우 몸을 씻고 밖을 나가면 다행히도 를르슈는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벌써 몇 달째, 를르슈와 같은 침대에 눕고 있기 때문에 곤란함도 이제 익숙해졌다. 스자쿠는 이불을 제대로 덮고 자지 않는 를르슈에게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저도 눈을 감아버렸다.

 

* * * 

 

‘미안해요, 제로.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모르고….’

“그러기 위한 제로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나리의 미안함은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졌다. 스자쿠는 저에게 넘어온 파일들을 확인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테러 다발 지역에서의 육탄전이었다. 나이트메어에 다시 타야한다는 부담감은 없었지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를르슈였다.

그를 데리고 가야하는지, 아니면 이곳에 두고 가야하는지. 스자쿠는 자료 속의 정보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 등 뒤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저만의 놀이를 하고 있는 를르슈를 보는 것도 신경 써야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통신 너머의 나나리는 를르슈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대뜸 를르슈를 맡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데려가야하는데. 여기에 계속 내버려둔다고 하면,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가둬두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도 혼자 있는 상태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를르슈에게 악영향만 끼칠 것이다. 데리고 간다면, 테러 지역에서 를르슈까지 감싸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네?’

“아, 아니야. 우선 그쪽 지역으로 이동하지.”

‘준비는 다 되었어요. 제로만 온다면.’

“…….”

 

나나리의 초조한 목소리에 스자쿠도 마음이 급해졌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서 스자쿠는 다시 한 번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제로?’

“……일행이 있어.”

 

스자쿠는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나리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스자쿠는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사실대로 말할 순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일행을… 혼자 둘 수는 없거든.”

 

스자쿠는 더 이상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무엇을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더 이상 말했다가는 를르슈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스자쿠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나나리는 알겠다고 말했다. 뭘? 무엇을 알겠다고 말하는지, 스자쿠가 그것에 대해서 물으려고 할 때 나나리는 말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하군요. 카렌 씨를 부를게요, 필요하다면 지노 씨도.’

“…….”

‘일행 분은, 잘 지내시나요?’

 

더 이상의 할 말은 없었다. 스자쿠는 대답 대신에 그녀와의 통신을 끊어버렸다. 

 

* * *

 

전투는 육아보다 덜 힘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짜여진 슈나이젤의 작전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제로의 이름이 나오자 바로 패기를 잃었다. 스자쿠는 그런 잔챙이들을 정리하는 것에 맥이 빠졌지만, 싸움이 길어지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부의 격납고로 돌아와 나이트메어를 두고 온 스자쿠는 가면을 쓴 채로 회의실까지 올라갔다. 회의실의 안쪽에는 제로가 쓰는 사실이 있었다. 그곳에 가야지만 가면을 겨우 벗을 수 있지만, 스자쿠는 전투의 피로에 지쳐있음에도 사실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그곳에는 를르슈가 있고, 그를 돌보기 위해서 나나리가 불러준 카렌이 있었다. 나나리의 호출에 놀란 카렌은 정작 를르슈의 상태를 보고서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한 말은 ‘또야?’였다. 또, 라니. 스자쿠가 물어보면 카렌은 ‘나도 이런 를르슈를 보는 건 두 번째야.’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때는 C.C.가 있었지만, 이번엔 네가 있네.’라는 말도 돌아왔다.

 

‘C.C.랑 있었을 때는 그런 일은 없었겠지.’

 

스자쿠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열리는 문, 그리고 제로의 사실 앞에서 깊게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자마자 를르슈의 우는 소리와 함께 카렌이 애써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피곤함에 스자쿠는 방으로 한 걸음 들어가면서 가면을 벗었다. 

 

“미, 미안. 를르슈, 미안하다니까, 울지 마.”

“…다녀왔어.”

“스자쿠!”

“제로라니까.”

“네가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제로라고 불러주나. 아니, 그게 아니라. 를르슈가 계속 너만 찾고….”

 

너 나간 뒤로는 계속 울기만 하고 밥도 안 먹고. 카렌의 말에 스자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소파를 앞에 두고서도 방의 구석에 처박혀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울고 있는 를르슈의 곁으로 다가갔다. 제로의 망토를 대충 소파 위에 걸쳐두고서, 그의 시선에 맞춰 몸을 숙였다. 스자쿠의 기척에 를르슈는 으으, 소리를 내면서도 스자쿠 쪽을 바라보았다.

낯익은 스자쿠의 얼굴이 나타나자 반가움에 를르슈는 스자쿠를 끌어안았다. 냅다 목에 둘러진 를르슈의 팔에 스자쿠는 몸을 휘청거렸다. 를르슈는 울음으로 쉬어버린 목소리로 스자쿠를 반가워하며 신음했다.

 

“나는 쳐다도 안 보네.”

“고생했어, 카렌.”

“뭐어,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제 돌아가서 쉴 거지?”

“……아직 남은 작업이 있는데.”

“그건 내가 할게. 제로가 뒷정리까지 하면 흑의 기사단이 모양이 안 살지.”

“그럼 부탁할게.”

 

스자쿠는 웃는다고 할 수 없는 얼굴로 를르슈를 끌어안은 채로 카렌에게 말했다. 카렌은 그런 그의 모습에 알겠다고 말하면서 제로의 가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갈 때 잊지 말고 이거나 쓰셔. 그제서야 스자쿠는 속없이 웃을 수 있었다. 그런 중에도 우는 를르슈의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가서, 그의 불안이 오늘따라 더 절박하게 느껴졌다.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남은 상황에 대한 슈나이젤의 보고가 있어야만 했다. 아직까지는 여유롭지…. 스자쿠는 조금 거친 손길로 스카프를 풀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자쿠의 한숨에도 를르슈는 딱 달라붙은 채였다. 이대로라면 쉬는 것도 어려웠다. 스자쿠는 그를 번쩍 들어올려서 소파 위에 앉은 뒤, 그를 무릎 위에 앉혔다.

를르슈가 더 편하게 끌어안을 수 있도록 나름의 배려를 한 자세였지만, 스자쿠의 움직임에 떨어질까봐 불안했는지 를르슈의 포옹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쯤 되면 숨쉬기도 힘들 거 같은데. 스자쿠는 를르슈의 마른 등을 툭툭 쓸어주며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이제 나도 여기 있을 거니까. 빨리 돌아가고 싶지?”

“……?”

“어서 돌아가면 좋을 텐데.”

 

그 말은 이중적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면 를르슈가 돌아오는 것. 둘 중 하나가 되어도 스자쿠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모두가 제자리를 되찾는 것이니까, 하나만 이뤄진다고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를르슈의 등을 쓸어주다가 우느라 엉망이 된 뒷통수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울음으로 퉁퉁 부은 눈을 한 를르슈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를르슈?”

 

스자쿠가 그렇게 부르자, 를르슈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를르슈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하는 를르슈는 평소라면 스자쿠의 도움이 없으면 벗지도 못했던 주제에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스자쿠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채로 바지도 벗기 시작했다. 속옷까지 단숨에 내려벗은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무, 무슨 짓이야! 를르슈!”

“…!”

 

스자쿠의 반응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으면서 그의 손을 떼어냈다. 순식간에 양말만 신은 채로 알몸이 된 를르슈는 스자쿠의 허벅지 위에 다시 올라탔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스자쿠는 를르슈의 모습에 문이 잠겼는지부터 떠올랐다. 카렌이 이걸 본다면, 나나리한테 분명 이야기가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그런 당혹감에 스자쿠가 패닉을 일으키는 동안 를르슈는 눈을 질끈 감고서 아래로 손을 뻗었다.

옅게 난 체모 아래에 아직 서지 않은 페니스를 거친 손길로 주무르던 를르슈는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울지는 않았다.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몸을 한 채로, 를르슈는 남은 손으로 자신의 유두를 꼬집기 시작했다. 손톱을 세운 고통 때문에 발갛게 부풀어 올라 빳빳하게 굳은 유두 끝을 보며 를르슈는 자신의 가슴팍을 스자쿠에게 내밀었다. 마치 빨아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그 몸짓에 스자쿠는 표정을 굳혔다.

 

“이런 거, 하지 마. 를르슈….”

“…?”

 

이거로는 안 돼?—라고 말하는 얼굴은 다시 고민에 빠지더니 스자쿠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벗기는 건 처음인 주제에 고전하는 것도 없이 쉽게 스자쿠의 성기까지 손에 쥔 를르슈는 긴장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스자쿠의 허벅지에서 내려가, 바닥에 앉아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를르슈는 입술을 벌려 스자쿠의 서지 않은 페니스를 입에 물었다.

 

“르, 를르슈…!”

 

를르슈의 성기에 혀를 쓰는 방법은 능숙했다. 귀두를 천천히 감싸고 혀를 굴려서 구석구석 핥으면서, 목구멍을 벌려서 성기를 깊숙한 곳까지 물 줄 알았다. 그는 익숙한 것처럼 스자쿠의 페니스를 만졌다. 타액을 일부러 흘려가면서 고환까지 적셔가며 천천히 문지르는 손길에 스자쿠는 기가 막혔다.

서지 않는 게 이상한 펠라치오였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페니스가 딱딱하게 굳는 것에 만족스러운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소리를 내며 빨아올렸다. 추잡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제로의 방에서 들리면 안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를르슈의 목구멍이 죄여오는 것과 동시에, 요즘 오랫동안 자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 스자쿠는 금방 사정하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바로 올라오는 사정감에 를르슈의 입안에서 사정했다.

 

“미, 미안, 를르슈. 입에 있는 거 뱉어, 얼른!”

 

아직도 길게 이어지고 있는 사정에 를르슈는 쿨럭거리면서도 정액을 입으로 받아냈다. 를르슈의 행동은 알 수가 없다. 정액을 받은 것을 확인시켜주려고 하듯이, 를르슈는 하얀 정액이 고여있는 혀를 내보였다. 얼른 뱉어…! 스자쿠의 내미는 손에 를르슈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손바닥 위로 그것들을 뱉어냈다. 타액과 뒤섞인 정액이 질척하게 떨어지는 것에 스자쿠는 죽고만 싶었다.

를르슈가 쌓여있었나? 그러면 혼자서 자위하는 게 맞지 않아? 왜 나한테? ‘이’ 를르슈는 왜 이러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스자쿠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 를르슈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받은 정액을 제 다리 사이에 펴바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애널을 풀기 시작하는데 썼다.

 

“으읏, 아…!”

 

를르슈의 짧은 신음과 동시에 정액과 타액이 휘감긴 손가락 끝이 엉덩이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본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를르슈는 섹스를 할 생각인 듯 싶었다. 하지만 그는 섹스라는 행위의 의미를 알까? 를르슈의 뒤를 풀려는 손을 붙잡자 를르슈는 반항하듯 고개를 저으면서 스자쿠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다시 뒤에 넣은 손가락을 하나, 둘씩 늘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이 익숙해보였다. 

 

“를르슈, 이런 거 하지 말라니까. 하면 안 돼!”

 

스자쿠가 다급하게 말했지만 를르슈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남은 한 손으로는 스자쿠의 성기를 다시 쥐고서 흔들기 시작했다. 가볍게 주어지는 자극에도 스자쿠는 또 다시 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고 있다는 것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를르슈의 답지 않은 생떼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스자쿠의 페니스가 서는 것에 를르슈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스자쿠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를르슈는 자신의 엉덩이를 벌리면서 스자쿠의 발기한 페니스를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스자쿠는 저를 삼켜오는 내벽의 조임에 사정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조루도 분수가 있지, 이런 상황에서 두 번이나 사정하는 건….

를르슈는 스자쿠의 페니스를 삼키고 나서 훌쩍거리면서 울었다. 그러고 보면 를르슈는 흥분의 조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스자쿠를 받아들이는 것에 애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왜? 어째서 이렇게 섹스에 집착하고 있는 거지?

스자쿠는 가만히 있는 저를 대신해서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는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도 성실하게 스자쿠의 쾌락을 위해서 움직이는 몸은 어딘가 기계적이었다. 고통으로 붉어진 유두 끝을 과시하듯 스자쿠에게 떠밀면서, 자신은 흥분조차 하지 않은 하얀 페니스를 만져달라고 말하지도 않고, 오로지 스자쿠의 쾌락만을 생각하는 를르슈. 이건 섹스가 아니다. 스자쿠는 하얗게 질려가는 머릿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오직 타인의 쾌락만을 좇고 있는 를르슈의 섹스는, 비디오에서 보았던 그것과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