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루기 스자쿠의 첫 경험은 짧은 검은 머리에 호리호리한 큰 키의, 고양이 같은 눈매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스자쿠가 그녀를 본 것은 어느 골목길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는 스자쿠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주었다. 그 웃음이 누군가를 닮아서, 스자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누나, 담배 피우면 몸에 안 좋아요.
-어라, 너 나 아니?
-아뇨, 모르지만… 예쁜 누나가 이런 거 하면 마음이 안 좋아요.
시덥잖은 대화를 하고 나면 그녀는 스자쿠에게 이름을 물었다. 스자쿠에요, 라고 대답하면 멋진 이름이네,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럼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스자쿠의 말에 그녀는…뭐라고 했더라? 이름이 되게 흔했던가, 아니면 흔하지 않았던가? 이름만 기억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스자쿠는 그녀의 눈동자 색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보라색은 아니었다. 목소리도…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낮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래봤자 남자보다 높았겠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녀는 당시에 중학생이었던 스자쿠보다 최소 다섯 살 연상의 대학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왜 나랑 섹스했었지? 그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자쿠가 그녀를 떠올린 이유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도 그녀와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눈앞의 여자는 첫 경험의 그녀와 다르게 굵은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카락에, 안기에 딱 맞을 정도로 작은 키에, 강아지 같은 둥근 눈매를 하고 있지만. 냅다 스자쿠의 뺨을 갈긴 그녀는 씩씩거리면서 스자쿠에게 악을 썼다. 귓가가 쟁쟁 울릴 정도의 목소리여서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서 하도 쳐다봐서 그건 좀 창피했지만 죄인인 스자쿠가 쪽팔리니 그만하라고 말할 순 없었다. 아무런 반응 없이 ‘미안’이라는 말만 건네는 스자쿠에게 여자는 결국 정강이를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여자를 쫓아가야한다는 생각보다 이제 끝났구나, 해방이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뺨도 아프고 정강이도 아프지만 스자쿠는 주변에서 쏟아지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골목길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선객들이 있었다. 그 틈에 낀 스자쿠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 * *
“그래서 또 헤어졌어? 그 여자애 노리는 애들이 제법 있었는데… 스자쿠, 또 적을 만들었구나.”
“뭐, 내가 찬 것도 아니잖아.”
“차일 만한 짓을 했으면서. 일부러야? 일부러라면 굳이 사귈 필요도 없었잖아.”
“딱히…… 고백을 거절할 이유도 없고.”
스자쿠의 대답에 지노와 리발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런 구석에서 성실하다면 성실하구만. 아니, 이런 상대방한테 실례잖아. 그런가? 스자쿠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 대신에 커피를 마셨다. 어제의 실연은 오늘의 스자쿠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다. 뺨은 얼음 찜질을 하니 나아졌고, 정강이는 얼얼하긴 했지만 멍이 들진 않았다.
즉 스자쿠의 컨디션은 평소와 같았다.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별 것도 아닌 여자였던 것이다. 벌써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연락처는 애초부터 저장하지 않았다. 이름은, 그래, 이름을 몰라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길목에서 뺨을 맞고 정강이를 걷어차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스자쿠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카페 밖에는 그가 지나가고 있었다.
짧은 검은 머리에
호리호리한 큰 키의
고양이 같은 눈매가 인상적인
그는 스자쿠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스자쿠도 손을 흔들었다.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서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스자쿠의 불성실한 이성교제에 대해서 떠들고 있던 지노와 리발은 그의 등장에 반갑게 인사했다.
밀크티를 주문한 그는 자연스럽게 스자쿠의 옆자리에 앉았다.
* * *
어렸을 때, 스자쿠는 를르슈를 볼 때마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 힘도 없고, 근력은 평균이라고 해도 지구력은 형편없으니까, 달리기도 금방 지쳐서 못 뛰고, 더위도 엄청 타서 여름에는 그늘에 있지 않으면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또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빨갛게 얼고 동상 같은 것도 쉽게 걸리고….
스자쿠가 생각한 를르슈는 손이 많이 갈 정도로 위험에 쉽게 놓였다. 그래서 매번 도와주지 않으면, 지켜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를르슈가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으면 바로 뛰어나갔고, 달리다가 뛰지 못하면 손을 잡고 이끌어주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걱정을 참견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마 스자쿠보다 훨씬 똑똑한 그의 머리는 스자쿠의 배려를 이해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스자쿠와 짐을 나눠들었고, 달릴 때에 잡아주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여름이든, 겨울이든.
“미쳤어.”
쿵.
“미쳤다구.”
쿵.
“정말 미쳤어.”
쿵.
초등학교 5학년의 스자쿠는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면서 중얼거렸다. 시간은 새벽 4시. 초등학생이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스자쿠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자쿠는 젖은 속옷을 대충 빨아서 널어놓고서, 새 속옷을 입고 심호흡을 했다.
꿈을 꿨다. 를르슈랑 키스를 했다. 그러니까, 키스를 했는데, 그냥 키스가 아니었다. 를르슈가 나나리에게 곧잘 하는 그런 키스가 아니었다. 혀랑 혀를… 그거로도 모자라서 를르슈의 젖꼭지를 핥고 깨물었고… 를르슈가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물고서 헐떡거리는 모습에 스자쿠는.
“미쳤다.”
쿵.
스자쿠는 혼자서 또 커지는 자신의 페니스에 이를 악물었다. 그 꿈은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본 야한 동영상의 내용이랑 똑같았다. 그때 스자쿠는 가슴 큰 누나가 기분이 좋다면서 허리를 흔드는 것에 흥분하고 있었다. 아마 거기에 있던 애들은 다 발기했을 것이다. 몇명은 자기 바지 안에 손을 넣으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그만둔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었다. 같이 보던 를르슈가 토를 했다. 우웨엑, 하고 스자쿠의 옆에서 바로 토하는 를르슈의 소리에 스자쿠는 비명을 지르면서 당장 동영상을 멈추라고 했다.
를르슈를 화장실에 보내놓고, 를르슈가 바닥에 쏟아놓은 토사물을 닦으면서, 스자쿠는 를르슈한테는 위험했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멈춰있는 동영상 화면 속의 누나 젖꼭지 색깔이 를르슈의 핑크색 젖꼭지랑 닮았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스자쿠는 자신이 꿈에서 핥았던 를르슈의 젖꼭지를 떠올렸다. 스자쿠가 가슴을 핥을수록 를르슈는 가슴을 내밀면서 몸을 떨었다. 더 해달라고 보챘다. 그러다가 스자쿠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서….
스자쿠는 페니스를 문질렀다. 서투른 자위의 반찬은 를르슈였다. 힘도 없고, 지구력은 형편없고, 달리기도 오래 못하는 를르슈. 도와주지 않으면, 지켜주지 않으면 안되는 를르슈. 그리고 사정을 했다.
그런 를르슈에게 가장 위험한 건 자기 자신, 바로 쿠루루기 스자쿠였다.
* * *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때 쯤이면 스자쿠는 험악하던 말투도 고치고, 조금은 생각하고 움직였다. ‘평소와 같은’ 상태로 를르슈를 대하게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치려고 애를 썼고, 나름대로 노력의 효과를 보고 있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변하는 모습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 얼굴을 오래 보이지 않았다. 스자쿠가 상냥하게 굴수록 를르슈도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손을 잡고 같이 뛰지도 않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아니니까, 이제 중학생이니까.
스자쿠는 위험한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곧잘 하던 검도에 몰두해서 대회에서 큰 상을 타기도 했다. 다른 스포츠도 곧잘 해내서 운동으로 풀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한계가 왔다. 운동 후의 흥분에 를르슈를 반찬으로 자위하는 날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때 접했던 친구들이 장난으로 돌렸던 게이 동영상 덕분에 스자쿠의 를르슈를 반찬으로 한 상상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커가면서 변해가는 를르슈는 또 다른 반찬이었다. 왕자님처럼 웃고 있지만 저한테는 새침하게 군다거나, 혹은 새침한 척 굴지만 결국 스자쿠의 부탁은 다 들어준다거나.
중학교 2학년의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를 자신으로부터 지켜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자쿠는 를르슈를 닮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 * *
동정을 버렸을 때, 스자쿠는 이 방법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를르슈를 닮은 사람과 섹스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서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섹스여서 그런걸까?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는 좀 다를까?
스자쿠는 자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는 사람과 섹스를 했다. 두 명 중에 한 명은 진짜 사랑을 하고 하는 섹스인데, 기분이 좋겠지, 그럼 나아질 거야. 평소처럼 를르슈 옆에 있을 수 있어. 를르슈 생각을 하면서 사정을 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하지만 섹스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것이라서, 그나마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 했다. 키스는 솔직히 별로지만,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면 견딜만 했다.
섹스로 때우는 시간은 의미가 없었지만,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를르슈는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스자쿠는 열심이었다. 근본이 성실한 그는 이런 부분에서도 성실하게 섹스를 해왔다. 를르슈를 지키기 위해서야. 를르슈는 소중한 친구니까, 그러니까, 를르슈랑 키스도 하면 안 되고, 섹스도 해선 안 돼. 그건 옳지 않아. 그건 를르슈를 위험하게 만드는 거니까.
대학교 1학년의 스자쿠는 제 옆자리에서 밀크티를 마시는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볼 때마다 설레고 떨리고, 스자쿠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연약한 존재. 아, 위험해. 섹스하고 싶어진다. 안 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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