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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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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한 스토커 2

DOZI 2022.04.24 14:33 read.198 /

를르슈가 스자쿠를 알게 된 것은 반년 전이었다.

 

그날은 정말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일어났다. 

우선 첫번째 우연은 를르슈와 스자쿠가 같은 술집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를르슈는 고등학교 시절의 학생회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그 술집에 들어갔고, 스자쿠는 1차가 끝났으니 2차를 가자는 상사에게 끌려갔다.

두 번째 우연은 를르슈와 스자쿠가 한 테이블 건너에서 서로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서로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심플했다. 를르슈의 술 마시는 모습에 스자쿠는 ‘역시 애들은 젊다…’ 같은 생각을 했으며, 스자쿠의 술 마시는 모습에 를르슈는 ‘역시 어른은 달라…’ 같은 생각을 했다.

세 번째 우연은 젊은 간을 믿고서 쉼없이 들이킨 를르슈가 정신을 못차리고 화장실에서 흡연실까지 기어들어왔고, 그 흡연실에는 우연히 혼자서 남아있던 스자쿠가 있었다는 것이다. 흡연실에 들어온 를르슈는 콜록거리면서도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와있던 스자쿠가 눈치가 보여서 담배를 끄자, 를르슈는 멍한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피다 마세요? 스자쿠는 어딜 봐도 취한 주정뱅이에게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서 대충 대답했다. 그쪽이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요. 그 말에 를르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를르슈 람페르지라고 하는데요.”

“아아, 네….”

“애쉬포드 대학 다니고 있고.”

“좋은 대학 다니시네요….”

“여동생도 있는데 정말 예쁘거든요.”

“좋으시겠어요.”

“네.”

 

갑작스러운 를르슈의 자랑에 스자쿠는 그가 정말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라고 영혼없는 대꾸를 하자 를르슈는 불만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스자쿠에게 말했다.

 

“그쪽은요?”

“네? 저요?”

“네.”

“뭐… 회사 다니고 있어요.”

“이름은?”

“회사 이름이요? 쿠루루기 상사라고….”

“아니, 그쪽 이름이요.”

“네? 저요?”

 

스자쿠의 두 번째 ‘네? 저요?’에 를르슈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자기소개할 때에는 이름부터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는 말은 가르치는 말투여서 스자쿠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왜 자기소개를 해야하는 거죠? 그런 눈으로 스자쿠가 쳐다봐도 를르슈는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술기운에 얼굴이 붉었고, 한숨을 쉴 때마다 몸이 비틀거렸다.

 

“스자쿠, 쿠루루기 스자쿠인데….”

“네.”

“외동이에요.”

“그러시구나.”

 

를르슈는 스자쿠의 말에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꼽아 세었다. 그리고는 스자쿠를 보고서 말했다.

 

“스물 넷? 스물 다섯?”

“네?”

“나이가?”

“저요?”

“네.”

“서, 서른인데요.”

 

그 말에 를르슈는 헉, 하는 얼굴을 했다. 그 상태로 스자쿠를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를르슈의 변화무쌍한 얼굴에 스자쿠는 그의 상태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토라도 할 생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를르슈는 하얗게 질린 입술로 중얼거렸다.

 

“저는 스무 살인데요.”

“아, 네…. 좋을 때네요.”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기가 죽은 듯 했다. 패기있게 스자쿠에게 자기소개를 시켰던 스무 살의 남자.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술? 스자쿠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담배 냄새 때문에 열어둔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자 를르슈는 콜록거렸다. 그것에 스자쿠는 반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별 다른 의미는 없었다. 찬 바람이 들어오면 창문을 닫는다, 이런 건 상식이니까. 그러나 를르슈는 달랐다.

뭔가 우울한 얼굴로, 입꼬리가 가라앉은 것 같은 를르슈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불안하게 바닥을 보다가, 그 상태로 스자쿠를 쳐다보았다. 뭔가 상당히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 같은 얼굴에 스자쿠는 ‘응?’ 하게 되었다. 뭐지?

 

“무리겠죠.”

“뭐가 무리죠?”

“여러 가지로….”

 

를르슈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를르슈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술 먹은 사람의 변화 치고는 너무 다채로워서, 스자쿠는 ‘요즘 애들은 이런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리일 거에요.”

 

아니, 대체 뭐가 무리인데. 스자쿠는 조금 답답해졌다.

 

“뭐가요?”

“그러니까, 그게….”

 

를르슈는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바닥을 헤매면서 중얼거렸다.

 

“…호… 같은 거 말이죠.”

“네?”

“아니에요.”

“네?”

“괜찮아요.”

 

뭘? 를르슈는 정말 괜찮다고 말하면서 뒤돌아 나가려고 했다. 스자쿠는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의 기미에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아니, 뭐야, 저게, 그러니까, 뭐가 괜찮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를르슈를 붙잡았다. 를르슈는 붙잡힌 손을 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니까 뭐가 문젠데요, 라고 스자쿠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전화번호, 알고 싶은데…!”

 

엥?

 

“왜요?”

“…그러니까 무리겠죠.”

“아니, 제가 번호를 알려주는 게 왜 무리일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어…?”

“아니에요?”

“아니.”

“아니군요?”

 

그건 좀 뭔가, 대답을 유도하는 느낌의, 심문 같은 것이었다고 해야할까. 스자쿠는 갑자기 술기운이 훅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모르겠는데요, 라고 말하려다가 눈이 마주친 를르슈가 울 것 같이 눈가를 붉히고 있는 게 보였다. 번호 안 알려주면 이거 울겠는데?! 스자쿠는 다급하게 11자리의 숫자를 읊었다. 를르슈는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외웠어요. 감사합니다.”

 

뭘 감사해, 주정뱅이가 뭘 외워.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하며 예에, 예에, 하고서 대충 대답했다. 번호를 알려준 스자쿠에게 볼일이 끝난 것인지, 를르슈는 가보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네, 네, 가보세요, 젊은 친구. 술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요…^^ 스자쿠는 그렇게 그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