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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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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y Me 1

MarryMe / DOZI 2024.10.24 08:27 read.84 /

쿠루루기 스자쿠가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되고 나서 처음 맡은 임무는 다름 아닌 결혼이었다. 결혼 상대는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이름만 들었을 때는 남자, 그리고 황족이었다. 스자쿠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본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는 무엇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걸까. 스자쿠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자신에게는 거절할 권리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슈나이젤도 그런 것을 알고서 스자쿠에게 결혼을 권한 것이 틀림없었다.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를르슈는 객관적으로 봐도 아름다운 편이기 때문에 쿠루루기 경의 반려로 맞이해도 부족함이 없어.”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를르슈 전하를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세상 모든 부부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만남을 이어가지. 뭐, 어려울 이야기인가?”

“……아닙니다.”

 

스자쿠는 더 이상의 이야기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슈나이젤은 스자쿠를 나이트 오브 라운즈로 만들어준 핵심 인물이었다. 브리타니아에 충성을 맹세한 스자쿠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은 황제 샤를 지 브리타니아이긴 했지만, 그 고삐를 만든 주인의 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슈나이젤은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물론 나라고 아무런 대가 없이 나이트 오브 세븐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아니야.”

 

스자쿠는 쓴웃음이 났다. 결혼을 명령해놓고서 부탁이라고 포장하는 슈나이젤의 속내를 모를 리가 없었다. 3년이라는 길다며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스자쿠가 봐온 슈나이젤이라는 남자는 자신에게 있어서 손해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남자였다. 이번 결혼이라는 명령 혹은 부탁 또한 그의 계산된 뭔가가 있을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일 년간 즐긴다면, 나이트 오브 원의 자리를 약속해주지.”

“……네?”

 

스자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나이트 오브 원.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스자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물론 자신이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자리에 오른 것에는 나이트 오브 원이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이야기가 돌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래보여도 나는 차기 황제 후보야. 그것도 매우 유력하지. 게다가 오디세우스 형님은 나에게 그렇게 의미 있는 라이벌도 아니니, 자네에게 나이트 오브 원의 자리를 주는 것은 일도 아닐 거야.”

 

슈나이젤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황제 후보는 슈나이젤로, 그가 정말 약속을 지킨다면 스자쿠는 나이트 오브 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자쿠는 방금 전 이상으로 슈나이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배 다른 남동생과 일레븐 출신의 나이트 오브 세븐을 결혼시켜서 그가 얻는 이득이란 무엇일까.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스자쿠의 일이었다.

나이트 오브 원의 자리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일 년이고 십 년이고 그 결혼 생활을 해낼 것이다. 스자쿠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재상각하께서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말이 통해서 다행이군, 나이트 오브 세븐.”

“별 말씀을요.”

“그럼 언제쯤 를르슈를 만나보러 가겠나?”

“…빠른 시일 내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캐논을 통해서 말해두지.”

 

슈나이젤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웅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슈나이젤에게 고개를 숙인 스자쿠는 그가 떠난 자신의 집무실 안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트 오브 세븐의 자리에 오르고 난 뒤로 스자쿠는 뚜렷한 임무 없이 카멜롯-이전 특별파견향도기술부-에서 실험을 하는 등의 대기조에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까지의 일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는데, 오히려 그 기다림 끝에 있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니 더 막막해지는 기분이었다.

황족이라지만 남자와의 결혼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브리타니아는 동성결혼이 가능한 나라였구나, 라는 것이 실감이 날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남자라고는 하지만 황족과의 결혼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황족이란 스자쿠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가 그러하듯,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저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스쳐 지나가는 수단일 뿐이다.

스자쿠는 찻잔을 정리할까 하다가, 이전에 어떤 메이드가 스자쿠 스스로 정리하는 모습에 소리를 질렀던 것을 떠올리며 그만두었다. 그건 제가 하는 일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스자쿠를 말렸다. 그 이후로 스자쿠는 메이드들이 할 일과 집사들이 할 일을 남겨놔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되면서 스스로 하는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도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았다.

‘결혼은 나름 인생에 있어서 중대사잖아. 아니, 뭐 깊게 생각 할 게 있긴 하겠냐만.’

찻잔을 치우기도 뭣한 상태로 남아있던 스자쿠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른 세수를 했다. 어차피 정해진 일이었고, 슈나이젤의 말처럼 ‘무엇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아무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왜 자꾸 곱씹게 되는 걸까. 스자쿠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쿠루루기 경, 전화가 왔습니다.”

 

이전에 스자쿠에게 소리를 질렀던 그 메이드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전화? 스자쿠는 자신의 저택으로 직접 전화를 걸 인물이 누가 있나 싶었다. 아, 설마.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전하라고 하시던데요.”

 

설마가 사람 잡는군. 스자쿠는 으응,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전화를 제 집무실로 돌려달라고 말했다. 이내 집무실 전화가 울렸다. 받아야 하는데, 받기가 싫고, 받기가 싫은데, 받아야 하고. 그러나 그런 망설임이 무색하게도 스자쿠의 손은 거침없이 수화기를 들었고, 입에서는 정직한 자기소개가 흘러나왔다.

 

“나이트 오브 세븐,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이쪽은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다.’

“네, 전하.”

 

스자쿠는 자신과 결혼하게 될 남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낮은 목소리는 지쳐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라고 자기를 소개한 남자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진심이냐고 물었다. 무엇을 진심이냐고 묻는 걸까, 라고 생각할 것도 없었다. 결혼 이야기겠지. 스자쿠는 네, 라고 말했다.

 

‘나는 남자야. 더 보고 말 것도 할 것도 없이 남자라고.’

“브리타니아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황족은 해당사항이 없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니, 나는, 그러니까… 하, 나이트 오브 세븐은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건가?’

“못 할 이유는 없죠.”

‘…….’

“아리에스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찾아뵈어도 될까요?”

‘…내일 오전 11시에 찾아오도록 해.’

“확인했습니다.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던가.’

 

그러던가,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어딘가 자포자기한 느낌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말도 안된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면 를르슈 전하와 같은 반응이 상황에 따라서는 정답이기도 하겠지. 스자쿠는 끊어진 전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전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서 나 같은 나이트 오브 라운즈랑 결혼하는 건… 믿고 싶진 않겠지.

하지만 어쩔 것인가. 스자쿠에게 있어서 를르슈와의 결혼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 되었으며, 를르슈가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스자쿠는 이 명령에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할 생각이었다.